뒷모습
-정용철
그 사람의 진실은
그의 뒷모습에 있다.
그가 돌아섰을 때
그가 떠났을 때
그가 멀어졌을 때
그의 진실을 알게 된다.
말을 들어도 모른다.
얼굴을 보아도 모른다.
눈물을 흘려도 모른다.
서로 마주 보는 사이
우리는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나를 감추는 방법을.
하지만 뒷모습은
순결한 미지의 땅이어서
그대로 드러난다.
뒷모습을 보라.
그러면 알게 된다.
그의 진실을.
겉으로 드러난 사람을 보고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뒷모습을 바라다보면 그가 누구인지 진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진면목은 언제 드러날까?
상황이 좋을 때는 대부분 화장하고 나타난다.
갑자기 친구가 찾아왔을 때 생얼을 대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 혹은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
‘그가 떠날 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다하는 날,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갈 때까지 어떤 위기 혹
어떤 순간에서도 주님의 뜻을 이루며
끝까지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한 인생을 향하여 주님께서 이렇게 평가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가룟유다는 이렇게 살았다.
“차라리 왕이 되지 않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사울왕은 이렇게 여겨지는 삶을 살았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과 두번째 왕 다윗과을 비교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인생의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사울 왕은 사십 세에 이스라엘 왕에 오른다(삼상 13:1). 사울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가장 약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그는 사무엘상 9장 2절에 나온 것처럼,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큰 사람’이었다. 인물도 준수하고, 겸손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가 왕 될때 멸시하고 비웃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사울이 암몬 사람을 치고 승리를 얻어 왕될만한 자격이 있음을 보였다. 그 때 사울을 비웃고 반대했던 자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사울은 너그럽게 그들을 용서하자고 제안한다.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삼상 11:12-13)
그렇게 멋졌던 사울이 통치 2년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 한다. 왕이 된 지 2년 만에 블레셋과 싸움이 일어나는데, 기다리던 사무엘이 오지 않자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울이 번제를 드리게 된다. ‘번제를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등장하게 된다. 사울은 자신이 번제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때 하나님의 선고는 이러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 13:13-14)
바로 그 점이 다윗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이 지적될 때 바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며 자신의 잘못을 처절할 정도로 고백하며 돌이키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다 실수가 많은 죄인들이다. 문제는 참된 회개가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다른 신앙의 길을 가게 된다.
우리는 늘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알아달라는 변명의 길, 사울의 길을 갈수도 있고, 철저한 회개, 다윗의 길을 갈 수도 있다.
두 번째 전환점은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에도,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가장 좋은 것들을 살려준다. 사무엘이 책망할 때, 그는 또 신앙적 이유를 앞세우며 변명이 앞선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삼상 15:15)
그때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신앙의 갸륵함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 감춰 놓은 불신과 불순종,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대한 무섭도록 단호한 책망이었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22-23)
하나님의 분명한 뜻에 대해 자기 생각, 자기 주장을 덧붙이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것이다. 그것은 우상숭배요 탐욕이요 자기숭배의 모습이다.
세 번째 전환점은 다윗을 칭찬하는 여인들의 노래를 들을 때였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은 시기와 질투, 두려움으로 가득차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만다.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8-9)
우리의 마음에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에 일생이 달라진다. 그때 부터 사울은 왕의 귀한 특권과 축복을 상실하고, 오로지 다윗을 추격하는데 일생을 소비한다. 질투와 시기에 눈먼 얼마나 가련한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장면인가?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35)
최종적 그의 운명의 결정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은 것이다.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대상 10:13-14)
그는 또 아마도 내가 여호와께 물었다고 말할 것이다. 늘 해왔던 변명처럼, 그런데 응답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엔돌의 신접한 무녀를 찾았다고 말할 것이다. (삼상 28:6-7)
그는 늘 그의 방식으로 물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그는 답만을 원했지, 참으로 회개로, 굴복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찾은 악마는 마지막 가느다랗게 남은 그의 희망의 줄도 단호하게 잘라 버리고 만다.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20]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삼상 28:19-20)
그리고 결국 자살로 그의 비참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가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권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진짜 저주가 된다.
“[21]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22]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23]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잠 30:21-23)
반면 다윗의 삶은 하나님께서 사도행전 13장 22절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는 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언제 그가 그런 인정을 받게 되었을까? 언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경험을 드렸을까? 그의 마음은 늘 하나님께 향하고 있었다. 시편의 수많은 노래들은 고난속에서도 역경속에서도, 죄로 인해 충고받는 때에도 깊은 회개로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었다. 다윗은 그야 말로 하나님을 붙잡고 메달리는 껌딱지였다.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0-11)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또 다른 차이는 위기앞에서의 태도였다. 사울은 위기를 만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았고,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며 신뢰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다. 먼저는 자기 뜻을 앞세웠고 중대한 싸움을 앞두고는 신접한 여인에게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구하였다. 이는 사울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의 모습으로 살다가 비참한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윗도 많은 실수와 허물을 저지른다. 하나님을 신실히 신뢰하고 의지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살기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으로 블레셋 아기스에게로 가고, 아기스의 환심을 사기위해 거짓말같은 말들도 곧잘 한다. 그런데 그 결과로 아시스에게서 하사받은 그의 영토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 자기 꾀의 실체와 절망적 경험을 맞이한다.
자기의 부인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고, 신뢰심을 잃은 지도자의 위기는 돌맞을 위기까지 경험한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그런데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여쭙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는다. 다윗도 넘어지고 실수하는 경험을 하나 위기의 때에 다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으로 인해 새생명과 회복을 경험한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 28:7)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그런 까닭에 사울의 인생의 마지막과 다윗의 인생의 마지막은 너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사울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스스로 칼에 엎어져 죽음을 맞이고, 반면 다윗은 장수하였고 거기에 존귀까지 누리게 된다.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 29:28)
우리는 다윗을 하늘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다른 인생인가?
오늘 나의 걸음은 누구를 따르는가? 사울인가? 다윗인가?
https://youtu.be/PJyolfQaQ8A
https://youtu.be/pB337XE1KGM
https://youtu.be/QBlhsKe4cdc?list=PLkDm9k3-yeTjPMzq9rfkQO___6Q6EjPeM
https://cafe.daum.net/ubiblelandcom/aWQz/165?svc=cafe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