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집]내 시속에 집을 짓다-두레문학 주영숙 편
난정뜨락엔 아직
주영숙
작년 이맘때만 해도 잡목, 잡초만 무성하였던 여기
누가 저토록 아름다운 풍경 속에 우리를 새겨두었는지 여보, 당신 알우?
그 주인공 이름 알우?
알만하지. 저기 저 정자를 지나 대문으로 나가서 휙 돌아보면
커다란 돌 간판에 뭐라 뭐라 적혀있더라고,
당신도 봤잖소? 그 뭐라고 글자가 있는 건 아는데…
요즘은 눈이 침침해서…
하핫! 그랴 그랴, 전에는 눈이 또록또록해서도
이 골짝에 글자라고 생긴 것은 눈 씻고 봐도 없었는데,
아 글쎄, 이 골짜기에 글자란 게 들어오고선 당신 눈이 침침해버렸징?
하여간 똔똔똔똔또 똥~ 이라는 작은 글자는 말고
똔, 똔, 똔, 똔,이라고 쓴 큰 글자 거기에 핵심이 있을 거 아니겠소?
그럼 똔똔똔똔이 그이 이름인가요?
나도 당신이랑 마찬가지 청맹과니인데 알 턱이 있소?
우리 저기 밤나무,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른 저 밤나무 가지 아래 정자에나 앉읍시다.
저 봐, 그네도 있잖수?
히히히, 저 울타리를 폴짝 넘으면 우리의 천국, 우리 집이넹.
우리 저기 앉았다가 집에 갑시다.
와아, 연못이다. 저걸 보니 목이 마른 걸.
여보, 우리 저 물 좀 마시고 가자. 그 노래 있잖소?
그거 연출해보자고.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그것 말이우?
그럼 이렇게 가사 바꾸면 되겠네? 똔똔똔똔 연못 물, 누가 와서 먹나요~
날다람쥐 부부가 아침산책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앗, 아니다. 여보야, 우리 새끼들도 먹여야징? 얼른 일어나요,
일단 집에 갔다가 나 혼자 물 떠갈게. 퍼뜩!
전나무 우리 보금자리가 우릴 부른다.
히힛! 살짝, 살짝, 사알짝! 나는야 울타리를 타고 걷는다,
폴짝, 연못 울타리에 앉아 망본다,
두리번두리번, 또 폴짝 뛰어내려 돌팍을 돌아다녀본다,
아이고 물이 너무 깊구나. 이 일을 우야꼬……
딱 한 송이 하얀 주둥이를 내민 연꽃,
저 연잎들을 디디면 연못 가운데 저 돌팍에 이를 수 있을까?
빠질까 갈까? 살까 죽을까,
아참, 넓이뛰기 높이뛰기 선수 그게 바로 나야 나. 망설일 필요 없징.
파알짝! 이크. 아니다. 저기 저 부들 있는 쪽으로 갔더라면 더 좋았을 껄~
저기도 연꽃 한 송이 봉오리 맺었네.
암튼, 여기 바위에 착 내려앉긴 했는데, 여기 물을 어떻게 먹지?
작은 돌이 있는 데로 좀 더 내려가야 하나? 발을 적시겠는 걸?
이토록 물이 맑으니 물고기들이 죄 보이는 거야.
붕어새끼들이 어디 있나 보자. 물옥잠 밑에서 늦잠 자고 있나
연잎 밑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나? 아공, 안심해라 요것들아, 나는 물만 먹으면 돼.
와아, 저 나리꽃 봐라. 저것들 고향이 동해안 어디라던데……
한 십년 전에 동해안 어느 언덕에서 파다 전에 살던 뜨락에 심었다고 했지 아마……
이사도 참 많이 다닌다.
꽃 팔자 치곤 최상이지 뭐. 고향이야 그립겠지만 말야.
앗! 집주인이닷!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아이고오, 달아나야겠다. 까딱하다간 연못 바위 위에 망부석 되겠넹. 물이고 뭐고 이담에 보자…… 걸음아 날 살려라. 다시 연못가로 뜀뛰기 한 이내몸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다가 포올짝~ 울타리를 밟던 길로 곧바로 휘리릭! 뛴다. 눈 깜짝할 새 참나무 등걸을 타고 올라 쪼르르 위로 가서 전나무 숲 우리 집으로 가야 한다.
집주인, 해바라기 앞에서 날 보느라 정신없는 틈에 달아나는 게 장땡이다~
연꽃아, 부들아, 물옥잠아, 그리고 물고기들아……
아공, 아름다움의 극치, 전에는 이름도 없던 땅이었다가 지금은
똔, 똔, 똔, 똔…… 멋진 이름을 가진 뜨락아,
이따가 보자, 또 보자. 날마다 보고 또 봐도 눈만 뜨면 보고싶은!
2007년 7월 27일 아침 일찍
문학미술의집 난정뜨락에서 –날다람쥐의 글을 대필하다
--------------------------------------------
2007년 4월에 나는 [난정뜨락]이라는 글자부터 커다란 돌에 새기고 나서 집을 준공하였다.
좁다랗게 생긴 계단식 천수답 서마지기에 집을 들어앉히기로 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주택과 미술전시관이 된 이 땅의 끄트머리는 산꼭대기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서 집 뒤는 자연스레 전나무 숲으로 에워싸게 되었다. 반대로 초입은 지방도로에 접한 개울인데다 길보다 1미터는 낮았다. 그래서 땅도 찾을 겸 개울에다 5미터 폭의 다리를 놓고 땅 전체를 매립하였는데, 땅 생긴 모양대로 옹벽을 치는 등 비스듬하게라도 매립하다보니 원래 높았던 양옆의 밭이 한 쪽은 2~3미터 낮아졌고 산에 접한 한 쪽은 우리 땅과 같은 높이가 되었다. 그리고 대문에서 조금 올라 왼편 지점에다 연못을 만들었는데, 엄밀히는 만든 게 아니라 매립을 안 하고 남겨둔 부분인 셈이다.
연못의 3분의 1은 정자가 지붕 역할을 하게하고, 산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도록 해두었기로, 간혹 왕희지의 난정고사를 떠올리곤 한다. 진나라 목제 때였던 353년 3월3일에 41명의 명사가 란팅(蘭亭)에 모여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마음을 가다듬어 시를 읊었는데, 이 시를 모아서 왕희지가 [난정집서]라는 제목의 서문을 쓰고 시집을 엮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나는‘드라마 여인천하’에 나오는 병풍그림들을 그리긴 했지만, 윤원형의 정실부인 김씨를 독살하고 스스로 정경부인 봉작을 받았으나 기어이 자결한 그 난정(蘭貞)이 아닌 난정(蘭亭)이라는 호를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나의 뜨락은 왕희지와는 무관하지만 그래도 왕희지를 떠올리게 하는 정자가 있고, 정자 밑에는 싱그러운 산골짜기 물이 찰람대는 연못인 것이다.
나는 어느 날 이 연못에다 알록달록한 새끼금붕어들을 사서 넣었는데, 녀석들은 새끼까지 치며 아주 건강하고 빛깔도 좋게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차츰 붕어의 숫자가 줄어들더니, 드디어 어느 아침, 재두루미가 붕어를 채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후에는 금붕어보다는 몸이 좀 큰 편인 잉어들을 사서 넣었는데 그 역시 달랑 세 마리만 남아 연못을 배회하고 있었다. 꾀가 많아 그런지 저절로 적응력이 생겨 그런지 연못 밑바닥에만 헤엄쳐 다니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어 꽤 자란 그 녀석들을 억지로 잡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말았다. 지금 연못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거무튀튀한 붕어들과 우렁이들만 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사설시조양식의 행시로 꾸며보면 다음과 같다.
금싸라기 같이 화르르 벚꽃이 지던 날
붕어를 알록달록 색깔 맞춰 열 마리 샀다.
어항이 아니라 모두 연못에다 풀어놓았더니
는실난실 꼬리치며 해방된 민족이다가 한 열흘 뒤
죄다 어딜 갔는지 한 녀석도 보이지 않아서
다시 또 보고 또 보며 연못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랑 아랑 꽃잎 물고 하늘거림도 그저 한 순간
디아스포라*의 생리를 닮았는지
갔다. 숨어버렸다. 제가끔 안착할 나라에.
지금도 그리 믿는다. 절대로 재두루미가 물고 간 건 아니라고.
- 행시, <금붕어는 죄다 어디 갔지?>
*디아스포라(Diaspora) : 그리스어로 ‘흩어 뿌림’의 뜻. 팔레스티나를 떠나 온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을 일컬음.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던 당시에 도망하여 처음에는 이집트, 후에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에서 삶.
2014년 5월 24일, 개점휴업이던 나의 뜰에 어느 카페 회원들이 찾아와 팡팡 폭죽을 터뜨렸다. 늠름한 청춘 춘양금강송꽃, 이국 땅 밤하늘을 생각나게 하는 십자성꽃, 황진이 그림자가 스치는 벽계수꽃, 암만 봐도 약방에 감초, 쌍둥아빠꽃, 아가씨 같이 늘씬한 몸매, 영락없는 인어공주 인어공주꽃, 그 누구보다도 요정캐릭터에서 벗어나지지 않는 샴푸에요정꽃,
구름도 시샘할 웃음꽃들이 화들짝 피었었다.
미술전시장 한 모서리에 걸린 60호짜리 산수화 이야기는 이러하다.
환한 산골에 폭포 흩날리고 시냇물 졸졸 흐르는
상상화에 ‘환상체험’이라는 시를 곁들인
체험적 시 한 편 감상하는 그게 바로 환상이다.
험난한 인생바다 헤엄치면서 어쩌다 끌쩍였어도
이것은 처음 생긴 일
시방 내 가슴이 가득 찼다
이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
시방 내 혼은 당신의 혼과 겹쳐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던 일
시방 내 심연은 당신 외에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다.
이글거리는 열정까진 아니어도 이 계절에
걸맞은 시화라 내 멋대로 자화자찬한다.
린네 풀꽃이 저기 어디쯤에서 철없이
벽창호 같은 노래로 얄랑거리고
은사시 이파리들이 이리저리 몸을 뒤채며 잠꼬대 한 대도.
= 행시, <환상체험이 걸린 벽은>
베 짜는 여인도 이 미술관에 살고 있는데, 난정이 미뤄둔 숙제 ‘8곡 병풍’의 세 번째 폭이다. 이 글이 두레문학 15호 특집에 속한다니 좀 더 진지한 자세로써, 내가 박사과정 1학기였던 2006년에 나온 시집 [손톱 끝에 울음이…]에 있는 글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난정뜨락에 오시면 보실 수 있는 <베 짜는 여인>. 바닥이 무슨 색깔인지 모를 정도로 빼곡 수놓인 한 점의 액자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완성한 날은 1999년 8월28일인데, 당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한 김에 제가 하는 일의 교통정리를 하느라고 수놓기를 일단락 지었던 거죠. 그렇게 알고 보면요, 베 짜는 여인은 미완성입니다.
여덟 폭 짜리의 한 폭이라 나머지 일곱 폭을 마저 수놓아야 병풍 한 벌이 되기도 하고요.
대학이란 델 들어가고 보니 파야 할 우물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병풍 한 폭이나마 완성한 것만 해도 기적 같았습니다.
대학생활은 꿈도 안 꾸고 있었던 95년 가을에 시작하여 햇수로 4년째에 한 폭이나마 마쳤던 것인데, 나머지 폭은 대학 졸업하고 수놓으면 되는 일이라고 계획을 잡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니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왔지 뭡니까?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엘 들어가고,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석사과정만 마치면 되는 거지 어인 박사과정까지 한다고 덤비다니……
토요일에 이어 온종일 그림에만 매달려 있던 어느 일요일. 세수도 이틀 치를 합쳐서 저녁 6시 무렵에야 한 날이었습니다. 가끔 그런 날에 뜬금없는 손님 오시면 큰 낭패지만, 어쨌든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상쾌하다고 느끼면서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니 세상에 저럴 수가…… 샤프심으로 별의별걸 10원짜리 동전보다 작게 만들다니! ‘저것에 비하면 수놓기는 누워서 떡먹기야!’
저는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공부시키는 맛에 사는 남편에게 눈을 부라렸지요.
“나, 수놓을 거얏!”
남편이 핑하니 콧방귀를 날렸습니다.
“박사 따는 숙제나 끝내고 해~”
아뜩하더군요. 저는 풀이 죽었지만 할 말은 하고 넘어가자 싶었습니다.
“숙제 다 하고나서 과제 하라고? 그 때쯤이면 눈이 영영 안보여서 못할 건데?”
제 열망이 몸살을 피우며 이를 갈았습니다.
“죽기 전에 수 다 놓고 죽을 거야.”
불가능일거라고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원래부터 좋지 않은 시력인데, 잘 보전하여 죽을 때 가져가면 무얼 하느냐, 이나마 실컷 써먹고 가자. 그게 제 신조입니다.
게다가 수놓을 때는 늘 안경을 벗어야만 했지요. 우리 육체의 눈이 아무리 나빠도 인공의 안경보다는 훨씬 정밀해서일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노안으로 접어들었으니 수놓기가 책 읽기 못지않게 힘들어졌군요. 돋보기로 가능할 일도 아니라는, 지금도 그 걱정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데, 하루가 시급한데,
‘박사 따고나서? 차라리 내일쯤 죽을라요. 나 죽고 나면 후회나 실컷 하시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죽을 수는 없다는 그 사실을 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여자 하나가 이렇게 구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좀 했습니다.
늘 보고픈 당신, 어디 계시든 간에, 한 십년 뒤에라도 제가 병풍 한 벌의 수를 다 마쳤다는 소식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저를 꼭 껴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상관없이……
- 주영숙 정형시집 <손톱 끝에 울음이> 서문
함수초*같이 수줍은 숨결로
베짜는 소리 텅 텅 들려오데요, 21세기에
짜르르 윤기 흐르는 옷감을 손수 짜려고
는개도 하늘거리며 치마폭 드리운 날
초월해버린 상념에 물들어
여자는 단 한 번 베틀에 앉지 않고도
인생을 수놓고 있데요. 그 옛날 허난설헌인양
이승과 저승사이에 끈을 잇는 베의 길을
롬베르크 증후*에 걸렸는지 아슬아슬하게
사라랑 사랑 치마를 쓸며 이리저리
는실난실 춤추다가 어느새 액자에 뛰어들었느냐고
히뜩 히뜩 보고 또 보며 구시렁거리지 마세요.
방방이 붓질해둔 비밀을 구태여 들추지 마세요.
피부 결도 속눈썹도 건드리지 마시고
어처구니없는 주문일지는 몰라도 그저
나비파* 화풍이거니 하고 들여다보기만 하세요.
행시, <함초롬히 피어나/베 짜는 여인이 사는 방>
*함수초(含羞草) : 콩과에 속하는 일년초. 키 30~50Cm. 줄기에 가시가 조금 있으며, 여름에 잎겨드랑이에 담홍색의 작은 꽃이 밀집하여 피고, 세 개의 씨가 들어있는 꼬투리를 맺는다. 잎은 건드리면 곧 아래로 늘어지고 작은 잎도 서로 다물며 합해지는데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다하여 함수초라 부름. 감응초(感應草). 미모사(mimosa)
*롬베르크 증후(독: Romberg 症候) : 두 발의 발끝을 붙여서 서게 하고, 두 눈을 감기면, 신체의 동요가 강해지는 척수성의 운동실조.
*나비파(Nabis 派) : 19세기 말기에 고갱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젊은 화가들이 추진한 회화의 새로운 운동. 대담한 주관적인 표현을 했음.
춘양 금강송님의 댓글을 표절한다면
난정뜨락 미술관의 문을 열자마자
인어공주님과 요정님의 미모에 깜짝 놀라서
푸다닥 후드득 참새 떼가 앞 다투어 날갯짓하고
정녕 황진이 만큼 예쁜 여인이 베를 짜다가
십자성님과 벽계수님과 또 나를 힐끗 보고
별 관심 없다는 표시로 다시 베 짜기에 여념 없어서
뜨신 밥 먹는 신분인데 그것도 모르고
노인이라 차별대우하나 싶어
싱숭생숭한 맘으로 한 모서리를 돌아드니
낙조 어룽어룽 내릴 즈음의 바다
파문(波紋)이란 이름으로 빛나는 물결위에
낚싯배 웅기중기 모여 세월을 낚더라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춘양 금강송님은
중종의 후궁 경빈 박씨(도지원)방 모란병풍 앞에서
그녀보다 더 끗발이 세고 아름다운 인어공주님하고
포즈 잡으며 터질 것만 같은 행복감을 참고 참았다가
술 한 잔 안 마시고서도 비틀거리며 뜬금없이
관동별곡 도입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를 토하시더라.
행시, <춘양금강송님의 댓글을 표절한다면/난정뜨락 미술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