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30, 2024 연중 30주 수요일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올바른 구원의 태도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길을 가다가 여러분도 가끔 경험하셨겠지만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질문하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예수 믿으세요.’라는 대답을 자기들이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왠지 불쾌합니다. 왜 불쾌할까요?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 불쾌하겠습니까? 그들의 선교 방식이 불쾌할까요?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 불쾌할 리 없고 선교 방식이 불쾌하고, 선교 방식보다는 선교 태도가 불쾌하며, 선교 태도보다는 구원 태도가 불쾌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들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의 태도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보면 그들의 태도는 확신이 아니라 영적 교만이고 적어도 겸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주님을 믿고 있어도 구원에 있어서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있어도 잘 믿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이런 면에서 오늘 어떤 사람은 구원에 대해 겸손하고 조심스럽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적냐고 묻지만 많지 않겠지요? 라는 태도이고, 자기의 구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묻는 그런 태도 같습니다. 이런 태도는 자기 구원에 무관심하지 않고 궁금해하니 좋은 태도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자기가 확보한 것인 양 교만하지 않으니 좋은 태도이며, 무엇보다도 어찌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 배우려는 자세이기에 좋은 태도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좁은 문이란 어떤 문입니까? 많은 사람이 묵시록의 십사만사천 명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숫자가 정해진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런 것입니까? 학교 입학 정원처럼 정해진 제한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런 것이 결코 아니지요. 하느님은 천국 입국 정원을 미리 정해놓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들어올 수 있기를 바라시고 모두가 들어오도록 사실은 문을 활짝 열고 계십니다. 그러니 좁은 문이란 하느님이 정원을 좁혀서 좁은 문이 아닙니다. 뒤에 보면 들어오지 못할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그러니 좁은 문이란, 정의의 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나쁜 짓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느님께서 원치 않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좁은 문입니다. 저절로 사랑이 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좁은 문이 아니고, 모두가 사랑할 수 있고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 불의하지 않기도 힘들고 원수 사랑하는 것은 더 힘드니 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힘쓰라는 오늘 주님 말씀을 가볍게 듣지 않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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