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갈까?(시122:1–9)
갈등
1.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산등성이에 걸려 있습니다. 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고 있습니다. 아이가 종일 걸었어요. 작은 신발에는 먼지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발바닥은 화끈거립니다. 아이는 몇 번이나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아빠 아직 멀었어?”아버지는“조금만 더 가자.”다시 한참을 걷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눈이 커집니다. 멀리 산 위에 도시가 보입니다. 저녁 햇살을 받은 성벽이 붉게 빛나고, 그 위로 성전이 보입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 소리를 지릅니다.“예루살렘이다!”(해질 때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황금 도시)
조금 전까지 힘없이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누군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이 따라 부릅니다. 옆 사람에게 말합니다.“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갑시다!”그 말을 들은 사람이 가슴 벅찬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1절,“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오늘 시인은 이렇게 노래를 시작합니다.“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갈까?”그 말을 듣는 순간 시인의 마음에는 기쁨이 솟았습니다. 이 노래를 읽을 때“여러분은 어떠한가요?”누군가 나에게 말합니다.“교회 갑시다. 예배드리러 갑시다. 금요기도회 갑시다.”그때 우리의 마음에서도 시인처럼“기쁘다!”고 노래할 수 있나요?
2. 오늘 시편은 다윗의 노래로 명시되었습니다. 다윗은 기쁘다고 노래한 것은 그의 길이 편해서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말 그대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숨이 찹니다. 발에는 먼지가 묻습니다. 햇볕은 뜨겁고 몸은 지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올라갑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인생길이 가파릅니다. 한 고개를 넘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 뒤에 또 고개가 있습니다. 이 문제만 지나가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묻습니다.“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시인은 드디어 성문 앞에 섰습니다. 2절,“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드디어 왔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왔다.”시인은 내 발이라고 하지 않고“우리 발”이라고 노래합니다. 함께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노래에는‘나’보다‘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길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성문을 지나 3절,“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며칠씩 걸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4절,“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3. 각 지파들(12개)은“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성전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발견합니다. 5절,“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여기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순례자들이 기뻐하며 올라왔습니다. 잘 짜여진(건축된)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모든 지파가 함께 예배하는 모습도 보았어요. 그곳에는‘심판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단순히 기분 좋은 위로만 받는 장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내 마음이 드러납니다. 내 욕심도-내 미움도-내가 붙들고 있던 상처도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왔습니다. 우리의 발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갈등 심화
4. 예루살렘 성문 안에 들어온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골목마다 이어지고,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사람들의 옷자락이 물결처럼 움직입니다. 여기저기서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제물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집 앞에 섭니다. 그때 시인은 뜻밖의 노래를 합니다. 6절,“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왜 갑자기‘평안’입니까? 기뻐하며 하나님의 집에 올라왔습니다. 성문 안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지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것이 평안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인은“평안을 구하라”고 노래한 것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멀리서 보면 든든합니다. 커다란 돌들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천혜의 요새입니다. 망대에는 파수꾼이 있습니다. 밤이 되면 횃불을 들고 성벽 위를 걷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한 도시입니다. 안전과 평안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7절,“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시인은 예루살렘을 하나의 커다란 집처럼 바라봅니다. 성벽이 있고, 그 안에 집들이 있고, 골목이 있고, 궁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이 성 안에 평안이 있게 하소서.”
5. 8절,“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내가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시인의 시선이“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향합니다. 다윗의 노래는 따뜻합니다. 9절,“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시인은 처음에 하나님의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살겠다고 노래합니다. 노래 속에 변화가 보입니다. 처음에는“내가 기뻐하였도다.”노래했습니다. 마지막에는“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노래합니다.
처음에는 내 기쁨이었습니다. 성전에 내가 은혜받으러 왔습니다.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의 평안을 구합니다.
오늘 시편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집에 와서 무엇인가 받고 싶어 합니다.“주님, 건강을 주십시오.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자녀를 지켜 주십시오. 길을 열어 주십시오.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하나님께서는 어느 순간 우리의 손을 펴게 하십니다. 꽉 쥐고 있던 손을 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네 형제를 위해 기도해라. 네 친구를 위해 기도해라.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해라. 내 집을 위해 기도해라.”다윗은 왜 이렇게 노래하였을까요?
실마리
6. 순례자들은 먼 길을 걸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의 발만 예루살렘에 온 것이 아닙니다. 흩어졌던 그들의 마음도 하나님 앞으로 모였습니다. 바람에 흩어진 낙엽들이 한곳으로 모이듯이, 갈릴리에서, 유다에서, 먼 마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 앞에 모였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4절은“여호와의 지파들.”이라고 노래했어요. 사는 곳은 다르고 형편도 달랐습니다. 각자 등에 지고 온 인생의 짐도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오니 한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오는 이유는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름표를 붙입니다.“당신은 실패했어. 당신은 부족해. 당신은 이제 힘들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그 말들이 먼지처럼 우리의 마음에 내려앉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이름표들을 하나씩 떼어 내십니다. 다시 하나의 이름을 붙여 주십니다.“너는 내 백성이다.”예배는 흩어진 마음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몸만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걱정 속에 가 있던 마음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마음도 데리고 옵니다. 두려움에 붙잡힌 마음도 데리고 옵니다. 내일을 걱정하던 마음도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주님, 제 마음도 이제 왔습니다.”
7. 그러면 놀라운 일이 시작됩니다.“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6절) 시인의 눈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의 집에 온 것이 기뻤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고 나니 옆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이 보이고 공동체가 보입니다.마침내 다른 사람의 평안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우리의 기도에는‘나’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에서“우리 가정을 살려 주세요”로, “우리 가정을 살려 주세요”에서“우리 교회를 살려 주세요”로, 그리고 나아가“주님, 이 땅에 평안을 주십시오.” 기도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다윗은 처음에는“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했는데, 마지막에는“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노래한 것은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것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 한 사람이 작은 등불을 들고 길을 걷습니다. 등불이 작을 때에는 자기 발 앞만 보입니다.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자기 발만 내려다봅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기 시작합니다.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산등성이 위로 햇빛이 쏟아집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옆 사람이 보입니다. 함께 걷고 있는 가족이 보입니다. 멀리 있는 마을이 보입니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 전체가 보입니다.
8.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내 문제만 보입니다.“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내 아픔을 해결해 주십시오. 내 길을 열어 주십시오.”그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도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치기 시작하면, 내 발 앞만 바라보던 눈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옆 사람이 보입니다. 내 형제가-친구가-가정이-교회가 보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이 보입니다. 다윗 기도의 변화는,“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내가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8절) 다윗의 문제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다 보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더욱 확장되어“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9절) 신앙의 아름다운 변화가 있습니다.“‘나를 복되게 해주십시오’에서‘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겠다’”로 바뀝니다. 받으려고 내밀었던 손이 이제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는 손이 됩니다. 하나님의 집은 내 소원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나가는 곳입니다. 내 눈물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나가는 곳입니다. 내 평안을 구하며 들어왔다가 형제와 친구와 교회와 이 땅의 평안을 구하며 나가는 곳입니다.
복음 제시
9. 내 안에도 평안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평안을 구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평안을 만들어 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평안을 주시는 분에게로 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 시편의 순례자들은 하나님의 집을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훗날 예수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길 끝에는 화려한 왕좌가 아니라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을 허무셨습니다. 우리의 평안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마음에 폭풍이 불어도, 인생의 문제가 남아 있어도,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와서 가장 먼저 받아야 할 것은 문제의 해결만이 아닙니다. 평안의 주인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평안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네 가운데 평안이 있을지어다.”그 평안을 품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그것이 하나님의 집에 다녀온 사람의 모습입니다.
기대
10. 유대 여러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잘 짜여진 성읍-예루살렘을 보자 그들은 지쳤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습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걷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올라올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이 있습니다. 오늘 빈 마음으로 왔다면 예수님의 평안을 받아 돌아가십시오. 그 평안을 나만 가지고 갖지 마십시오. 가족에게 가져가십시오.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져가십시오. 우리 교회와 이웃에게 흘려보내십시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샬롬이 시작되고, 깨어진 관계에 다시 다리가 놓이고, 지친 영혼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힘들지? 우리 같이 가자.어디로?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그렇게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오는 교회—그것이 오늘 시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아름다운 기대입니다. 오늘도 기쁨으로 고백합시다.“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