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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의 환상 詩劇 "페르 귄트 / Peer Gynt" 중에서
"솔베이그의 노래 / Solveig's Song"
-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 Andre Rieu And His Johann Strauss Orchestra
- 지휘 겸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 / Andre Rieu
- 노래: 미루시아 로웨스 / Mirusia Louwerse
- Norsk
Kanske vil der ga bade vinter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og var 또 봄은 가고
og naeste sommer med 그 여름 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og det hele ar 더 세월이 간다
men engang vil du komme 아, 그러나 그대는
det ved jeg vist 내 님일세
og jeg skal nok vent 내 님일세
for det lovte 내 정성을 다하여 고대하노라
jeg sidst 늘 고대하노라
O - O - O - 오 - 오 - 오 -
Gd styrke dig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hvor i verden gar 참 많이 받고
Gud glaede dig 오, 우리 하느님
hvis du for hans 늘 보호하소서
Fodskammel star 늘 보호하소서
Her skal jeg vente til du kommer igjen 쓸쓸하게 홀로 고대한지
Kommer igjen; 고대한지 그 몇 해인가
og venter du hist oppe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 가노라
vi traeffes der min ven 널 찾아 가노라
O - O - O - 오 - 오 - 오 -
O - O - O - 오 - 오 - 오 -
'에드바르트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1907)'는 1843년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 Norway)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북구의 쇼팽이라 불리울 정도로 스칸디나비안의 어두운 면과 서정적인 멜로디를 통한 고전적인 구성으로 국민음악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노르웨이의 국민악파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는 조국 노르웨이의 국민음악을 위해 헌신해온 노르웨이의 국보급 피아니스트이자 전설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국민음악에 심혈을 기울인 그리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리 뛰어났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어릴적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노르웨이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올레 불(Ole Bull, 1810-1880)'의 인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올레 불의 권유로 그의 나이 15세 때인 1858년에 독일에 유학하였고 라이프치히 음악원(Leipzig Conservatory)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수학하였습니다. 고국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피아노 콘서트를 가졌고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비창 소나타(Pathetique Sonata Op.13)' 연주와 함께 데뷔하였습니다. 1863년에는 덴마크의 코펜하겐(Copenhagen, Denmark)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그는 덴마크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오르가니스트인 '닐스 빌헬름 가데(Niels Wilhelm Gade, 1817-1890)'와 만났고 음악적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국가의 작곡자로 유명한 노르웨이 국민악파의 작곡가인 '리카르트 노르드라크(Rikard Nordraak, 1842-1866)'와도 만나 노르웨이 작곡가들의 작품연구와 연주활동에 주력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그는 리카르트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그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국민주의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리그는 1864년에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그대를 사랑해요(Jeg Elsker Dig / I Love You, Op.5, No.3)'를 썼으며 1865년에는 로마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로마에 체재하고 있던 1866년에 리카르트 노르드라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였고 그의 역사적인 '장송 행진곡(Funeral March)'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1867년 6월 그리그는 노루웨이 태생 덴마크-노르웨이 리릭 소프라노(Danish-Norwegian Lyric Soprano)인 '니나 하게루프(Nina Hagerup / Nina Grieg, 1845-1935)'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그는 1867년에 지금의 노르웨이 오슬로(Oslo, Norway)인 '크리스타아니아(Christiania) 음악협회'를 조직하였고 지휘자로 활동해왔으며 '크리스티아니아 필하모닉 협회'의 지휘자도 겸임하면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868년 여름, 덴마크에 휴가차 머무는 동안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를 썼습니다. 그리그는 1870년에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초청으로 다시 로마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을 연주하였고 리스트는 그리그를 극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그의 음악은 자유로운 형식을 취했고 작품은 독일 낭만파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늘 그의 작품 속에 향토색을 아주 진하게 가미시켰습니다. 자기 조국의 국민성을 음악적으로 나타낸 노르웨이의 독보적인 존재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그는 북유럽의 음악을 국제적인 반열에 올려놓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실 그는 노르웨이는 물론이고 스칸디나비안 각국에서도 널리 존경 받는 '작곡가 그리그' 로 추앙받은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1874년에는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종신연금을 받았고 작곡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으로부터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한 부수음악의 작곡을 위촉받았습니다. 그리그는 그의 나이 32세 되던 해인 1875년에 입센의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에 곡을 붙여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한 부수음악 전 23곡'의 작곡을 완성하였습니다. 지금 흐르고 있는 '솔베이그의 노래(Solveig's Song)'는 그리그의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한 부수음악 전 23곡' 중에서 한 곡입니다. 방랑의 길을 떠나 모험 속에 기이한 생애를 보낸 몽상가 페르 귄트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솔베이그의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환상 시극 '페르귄트(Peer Gynt)'는 1876년 지금의 오슬로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초연 되었으며 그리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부수음악 혹은 부대음악은 연극 등에 붙여지는 음악을 말합니다. 부수음악은 일반적으로 기악곡이지만 성악곡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음악도 다소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광의의 부수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re, 1564-1616)'는 그의 희곡에 자주 부수음악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부수음악은 그리스의 비극과 중세의 전례극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비극 '에그몬트(Egmont)'에 감격하여 만든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에그몬트 서곡(Egmont Op.84)'를 비롯하여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읽고 느낀 감흥과 환상을 그린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 Jakob Ludwig Mendelssohn Batholdy, 1809-1847)'의 전 12곡의 부수음악으로 만든 곡 중의 하나인 '한 여름 밤의 꿈(Ein Sommernachtstraum)', 프랑스의 문호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희극 '아를의 여인(L'Arlesienne)'을 위해 작곡한 전 27곡의 모은곡 중에서 다시 선곡하여 만든 '조르즈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아를의 여인 제1모음곡과 제2모음곡(L'Arlesienne Suite No.1 & Suite No.2)', 입센의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에 곡을 붙인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한 부수음악 전 23곡' 중에서 다시 선곡하여 만든 그리그의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 제1모음곡과 제2모음곡(Peer Gynt Suite No.1 & Suite No.2)' 등의 곡이 널리 알려져 있는 부수음악입니다.
입센은 그의 환상 시극 '페르귄트(Peer Gynt)'를 18세기 노르웨이의 민속설화를 소재로 하여 썼다고 합니다. 근대 사실주의의 대가라 일컫는 입센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였고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구사된 대서사시, 판타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후 그리그는 이에 몇가지 편곡을 착수하였던 것입니다. 처음에 피아노 2중주곡의 형태로 작곡되었으나 후에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였습니다. 그리그는 부수음악으로 작곡했던 전 23곡 중에서 선곡한 가장 우수한 4곡인 제1곡 '아침의 기분(Morgenstimmung / Morning Mood, E장조, 6/8박자))', 제2곡 '오제의 죽음(Ases Dod / Death Of Ase, b단조, 3/4박자)', 제3곡 '아니트라의 춤(Anitras Tanz / Anitra's Dance, a단조, 3/4박자)', 제4곡 '산왕의 궁전에서(In Der Halle Des Bergkonig's /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b단조, 4/4박자)' 등의 곡을 모아 '페르 귄트 관현악 제1모음곡(Peer Gynt suite No.1, Op.46)'을 엮었습니다. 다시 추가로 선곡한 4곡인 제1곡 '신부의 약탈, 잉그리트의 탄식(Der Bruderovet, Ingrids Klage / The Abduction, Ingrid's Lament, g단조, 2/4박자)', 제2곡 '아라비아의 춤(Arabischer Tanz / Arabian Dance, C장조, 4/4박자)', 제3곡 '페르 귄트의 귀향(Peer Gynts Hjemfart / Peer Gynt's Return Home, f#단조, 5/8박자)', 제4곡 '솔베이그의 노래(Solveigs Lied / Solveig's Song, A장조, 2/2박자)' 등의 곡을 모은 '페르 귄트 관현악 제2모음곡(Peer Gynt suite No.2, Op,55)'을 엮어 편곡하였습니다. 이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한 부수음악, 관현악 제2 모음곡, Op.55' 중 제4곡인 '솔베이그의 노래(Solveig's Song)'는 오늘 날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다림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A단조로 시작 되는 바이올린의 애수 띤 선율로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가장 슬프게 울리면서 그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그토록 세상에 널리 애청 되었던 명곡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그는 1880년에 노르웨이의 시인 '아스문트 올라프손 빈녜(Aasmund Olavsson Vinje, 1818-1870)'의 시에 곡을 붙여 가곡 '2개의 슬픈 선율(Two Elegiac Melodies For Strings, Op.34)'를 썼습니다. 제1가곡 '상처받은 마음(Heart Wonds)'과 제2가곡 '마지막 봄(Varen / The Last Spring)'의 곡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1885년에 라이프치히, 로마, 파리, 런던 등지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였고 그의 아내 니나 그리그는 그리그의 가곡 등을 직접 불러 그리그의 가곡 보급에 크게 공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그는 '노르웨이 무곡(Four Norwegian Dances For Piano Four Hands, Op.35)', '제3 바이올린 소나타(Violine Sonata No.3 In C Minor, Op.45)', '교향적 무곡(Four Symphonic Dances For Piano, Op.64)', '서정소곡집(Sixty-Six Lyric Pieces For Piano In Ten Books, Opp.12, 38, 43, 47, 54, 57, 62, 65, 68 And 71, Including: Arietta, To The Spring, Little Bird, Butterfly, Notturno, Wedding Day At Troldhaugen, At Your Feet, Longing For Home, March Of The Dwarfs, Poeme Erotique And Gone)' 등을 썼으며 견고한 하모니와 감수성이 노르웨이 정서와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51세 때인 1894년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고 63세 때인 1906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그는 1896년에 연작 가곡집 '산 소녀(Haugtussa, Op.67)'를 썼고 많은 사랑과 함께 호평을 받았습니다. 1907년에는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고 3개월 동안에 무려 30회의 연주회를 갖는 등 열광적인 찬사와 함께 호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같은 해인 1907년에 영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영국행 배에 오르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폐병의 악화로 베르겐의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리그는 1907년 9월 4일 64세를 일기로 그토록 슬픈 선율을 우리들에게 남겨 놓고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앙드레 류(Andre Rieu, 1949-)'는 1949년에 네델란드의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Netherlands)에서 태어났습니다. 네델란드 마스트리히트 심포니 오케스트라(The Maastricht Symphony Orchestra)의 지휘자로 활동한 그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마스트리히트 음악대학(Conservatorium Maastricht)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Royal Conservatory Of Brussels)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그는 1975년에 현재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Andre Rieu And His Johann Strauss Orchestra)'의 프로덕션 매니저(Production Manager)로 활약하고 있는 '마조리 류(Marjorie Rieu, 1951-)'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는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 1870-1948)'의 오페라 '금과 은(Gold And Silver)'을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1978년에 마스트리히트 살롱 오케스트라(Maastricht Salon Orchestra)를 결성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림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The Limburg Symphony Orchestra)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앙드레 류는 1987년에 마스트리히트를 거점으로 12명의 단원으로 구성하여 출범한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를 창단하였습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서 편곡, 지휘, 사회까지 맡아 연주활동을 펼치면서 점차 단원을 늘려나갔습니다. 지금은 40~50명의 단원으로 늘려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는 네델란드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는 세계적인 로맨틱 클래식의 행복 전도사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Andre Rieu And His Johann Strauss Orchestra)'는 주로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sⅡ(1825-1899)'의 왈츠를 연주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라고 불렀고 앙드레 류에게는 '왈츠의 왕(The Waltz King)'이라고 불렀습니다.
앙드레 류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는 기존의 왈츠를 새롭고 재미있는 왈츠로 편곡하여 연주하였습니다. 클래식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 Wiener Philharmoniker)'의 신년 음악회에서의 왈츠 연주는 춤보다는 음악 자체에 치중하는 연주회용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앙드레 류가 지휘하는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의 왈츠 연주는 연주회용 음악보다는 춤을 추면서 즐길 수 있는 축제나 파티용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 앙드레 류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도중 가벼운 춤 스탭을 밟기도 하였고 유머로 관객들과 소통을 하는 등 춤을 곁들인 음악 한마당을 벌였으며 흥겹고 신바람 나게 콘서트를 이끌어갔습니다. 이는 그가 '클래식 음악은 모든 이들의 것이고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휴식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의 첫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이올린 연주는 물론 편곡,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세계적인 만능 지휘자로 지구촌 곳곳에 그의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는 그의 감성있는 지휘는 물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사회까지 맡아 진행하면서 열정적인 전 세계 투어 콘서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앙드레 류는 화려하면서 친숙한 무대 매너로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냈으며 모든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습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대중 음악, 민속 음악, 영화 음악 등 여러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팝 콘서트 못지 않은 화려한 조명과 여자 연주자들의 바로크 시대 의상 착용 등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데 충분했습니다.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아이스하키 팀 홈경기장에서 열리는 'HP 퍼빌리온(Hewlett-Packard Pavilion At San Jose)' 콘서트를 비롯해서 유럽, 북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의 운동장, 고성, 교회 등에서 150여 회의 콘서트를 열고 있으며 80여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는 2001년 일본 투어 콘서트를 가졌고 한국에는 2004년 10월 8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콘서트에 이어 2005년 10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그는 1996년과 199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세계음악상(World Music Awards)을 수상했으며 '현대판 요한스트라우스'로 칭송받고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이며 지휘자입니다.
'미루시아 로웨스(Mirusia Louwerse, 1985-)'는 1985년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Brisbane, Australia)에서 태어났으며 오스트레일리아가 자랑하는 리릭(Lyric) 소프라노 가수입니다. 그녀는 2006년 호주의 그리피스 음악대학(Queensland Conservatorium Griffith University)에서 음악학사(Bachelor Of Music)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같은 해인 2006년에 '데임 조안 서덜랜드 오페라 어워드(Dame Joan Sutherland Opera Award)'에서 최연소 수상자로 뽑히면서 그녀의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미루시아 로웨스는 앨범 'She Walks In Beauty'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ote)',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L'Enfant Et Les Sortileges)',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의 오페라 '앨버트 헤링(Albert Herring)' 등의 오페라 무대에 출연하여 많은 호평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2007년부터 '앙드레 류(Andre Rieu, 1949)'가 지휘하는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Andre Rieu And His Johann Strauss Orchestra)'의 소프라노 솔리스트로 영입되었습니다. 앙드레 류와 함께 세계 투어 공연에 참가하여 활동 중에 있습니다.
그녀는 2008년 5월에 앙드레 류와 공동제작한 앨범 'Waltzing Matilda'를 발표하였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리아 팝 차트(ARIA Pop Charts) 1위에 올랐고 10일 이내에 플레티넘 달성을 기록하는 등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아리아 차트(ARIA Charts)'는 오스트레일리아 음반산업협회(Australian 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가 매주 발표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 판매 차트(Australian Music Sales Charts)를 말하며 오스트레일리아의 공식 음악 차트입니다.
이어서 2009년에 앙드레 류와 공동제작한 앨범 'I Lost My Heart In Heidelburg'를 발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히트하였습니다. 미루시아 로웨스는 2010년 10월에 앨범 'Always And Forever'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시하여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아리아 클래식컬 차트(ARIA Classical Charts) 1위와 아리아 팝 차트(ARIA Pop Charts) 17위에 올랐습니다. 2010년 12월에 동 앨범은 다시 네델란드에서 출시되었고 네델란드 팝 차트(Duch Pop Charts) 26위에 오르면서 많은 사랑과 함께 호평을 받았습니다. 2011년 3월에 발표된 그녀의 DVD 'Always And Forever'는 아리아 DVD 차트(ARIA DVD Charts) 1위에 4주 동안 머무는 기록을 새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앨범 'Always And Forever'는 클래식컬 아티스트로는 유일하게 아리아 차트 1위 어워드(ARIA No.1 Chart Award)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미루시아 로웨스는 호주의 어린이 음악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 음악 발전을 위한 후원금 기탁과 지원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후원 기금 마련 콘서트에 참여하는 등 어린이 음악교육에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미루시아 로웨스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팝 스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녀 특유의 고음 창법과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는 만인의 가슴을 끊임없이 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 노르웨이의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 귄트(Peer Gynt)는 허황된 꿈을 쫓는 몽상가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머니 오제(Aase)와 산간마을 오두막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페르 귄트는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뜬구름을 잡고 있었다. 그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그(Solveig)를 만나게 되었고 장차 그녀와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모처럼 눈부시도록 화창한 날씨였다. 마을 어귀에서 토크시타트라는 신랑과 신부 잉그리드(Ingrid)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하게된 페르 귄트는 신부 잉그리드의 아름다움에 현혹이 되고 말았다. 페르 귄트는 그녀를 납치하기에 이르렀고 그녀와 함께 달아나 산속 깊은 곳으로 잠적해버렸다. 이 때 슬픈 전주곡이 점점 멀어지면서 제1막의 막이 내린다.
- 제2막이 오르면서 전주곡 제2모음곡 1번곡 '신부의 약탈, 잉그리드의 탄식(The Abduction, Ingrid's Lament)'이 흐르는 가운데 잉그리드에게 싫증을 느낀 페르 귄트는 그녀를 버리고 숲 속 동굴을 성급하게 뛰쳐나온다.
동굴을 빠저나와 아프리카 어느 울창한 숲 속을 헤매던 그는 음산한 기분이 느껴지는 푸른 옷을 차려 입은 숲 속 마왕의 딸을 만나게 된다. 페르 귄트는 그녀의 유혹에 이끌려 숲 속 궁전에 도착했다. 그녀의 청혼을 거절한 페르 귄트는 마왕으로부터 '내 딸과 결혼을 하든지 아니면 네 영혼을 놓고 가든지 양자택일 하거라!' 라고 강요를 받게 된다. 제1모음곡 4번곡 '산왕의 궁전에서(In The Hall of The Moutain King)'가 음산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려는 듯 흐르고 있었다. 페르 귄트의 주위를 압박하려는 듯 행진곡풍의 곡이 흐르면서 점점 그의 가슴을 고동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요란한 굉음과 함께 곡이 정점으로 치솟더니 끝내는 숨이 막힐 것 같은 흥분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에 불안을 느낀 페르 귄트는 급히 이 곳을 빠저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마왕이 그의 딸과의 청혼을 거절한 페르 귄트를 벌써 꼼짝 못하게 꽁꽁 묶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고 칼까지 갈고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솔베이그를 만나보지도 못한 채 멀리 타국 땅에서 숲 속 마왕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 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를 잤을까, 난데없는 종소리에 눈을 뜨게 된 페르 귄트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어디에선가 새벽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자 숲 속 마왕의 숲 속 궁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마왕의 궁전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된 페르 귄트는 간밤 꿈 속에서 착한 솔베이그가 자기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꿈에 그리던 고향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솔베이그에게 돌아온 그는 모처럼 어머니 오제와 함께 단란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페르 귄트는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어머니 오제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쇠약해진 어머니의 손을 어루만져주면서 간호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집을 떠나 숲 속에서 일어났던 모험담과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일들을 두서없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록 망상에 빠진 철없는 아들이지만 그렇게 고대했던 아들이 곁에 있어 주었기에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꺼져가는 호흡을 힘겹게 들이키고 있었다. 어머니 오제는 사랑하는 아들 페르 귄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제1모음곡 2번곡 '오제의 죽음(Death of Ase)'의 선율이 비통하게 울려 퍼지면서 페르 귄트의 눈을 뜨겁게 적셔주고 있었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지구촌 곳곳의 장례식에서 어김없이 연주되는 곡으로 느리고 유유한 선율로 슬픔을 자아내주고 있는 명곡이다. 죽음의 감정과 어두운 면을 잘 그려주고 있는 불후의 명곡인 것이다.
어머니 오제를 참으로 슬프고 참으로 슬프게 보낸 페르 귄트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뜬 구름을 쫓아 다시 솔베이그 곁을 떠나게 된다. 큰 돈을 벌어 오겠노라고 솔베이그에게 장담을 하고 떠나갔다. 그는 바다 건너 멀리 해외로 떠난 것이다.
- 해외로 떠난지 몇 해인가, 여러 각국을 떠돌며 제법 큰 돈을 모았고 여유가 생기게 된 페르 귄트는 모로코의 어느 해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주머니가 빵빵해진 그가 바라본 해안의 아침 정경은 더 없이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제1모음곡 1번 '아침의 기분(Morning Mood)'의 선율이 마치 요정들의 세계처럼 맑고 신선한 기분 좋은 아침의 정경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도 페르 귄트에게는 잠시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재수가 옴 붙었는지 하필이면 최악의 고등 사기꾼에게 걸려들었다. 어렵사리 모았던 전 재산을 몽땅 털렸고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페르 귄트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일어섰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준수한 외모를 앞세워 그럴싸한 언변으로 자신이 마치 족집게 예언자임을 자처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둘 자신을 따르는 신봉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졸지에 그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에 그는 허영심과 부를 앞세워 화려한 도시 아라비아를 향해 발을 들여 놓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페르 귄트는 유명 인사 자격으로 베드윈족 추장이 주관하는 특별한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는 아라비아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춤에 마음이 들떴고 금세 현혹되고 말았다. 제2모음곡 2번 '아라비아의 춤(Arabian Dance)'이 흐르는 가운데 아라비아 미녀들이 다시 춤을 추어대자 그는 한동안 얼이 빠진 상태로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호색가가 되고 말았다. 특히 그는 추장의 딸인 아니트라(Anitra)의 매혹적이고 화려하면서 관능적인 춤에 매료되고 말았다. 제1모음곡 3번 '아니트라의 춤(Anitra's Dance)'이 동양풍의 선율과 마주르카 리듬이 교묘하게 얽히면서 연주되었다. 잠잠했던 그의 주색을 향한 방탕한 성품이 다시 되살아나고 말았다. 이렇게 주색과 방탕생활의 구렁텅이에 푹 빠진 그는 그의 전재산을 한방에 날리는 탕아가 되고 말았다. 아니트라의 춤 곡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무용과 무용극에 널리 연주되고 있다. 이 음악만 들어도 흥이 절로 나는 흥겨운 무곡으로 알려진 명곡이다. 이 곡이 쉼없이 연달아 울려 퍼지며 제4막이 막을 내린다.
- 페르 귄트는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파란만장한 역경을 거치면서 터득한 인생의 무상함을 머리 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을 하였다. 사랑하는 솔베이그와 짧은 인생이나마 서로 함께 의지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따라서 그는 큰 돈을 챙기기 위해 신대륙 미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켈리포니아 광산에 손을 댔으며 끝내는 큰 부자가 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고 훌쩍 흘러간 세월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이제 그의 머리는 백발이 성성해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페르 귄트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재산 모두를 배에 실었다. 꿈에 그리던 고국 땅 노르웨이를 향해 긴 항해길에 오르게 되었다. 제2모음곡 3번곡 '페르 귄트의 귀향(Peer Gynt's Return Home)'의 선율이 푸른 파도와 함께 넘실거리며 흘렀다.
아,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푸른빛으로 티 하나 없이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치기 시작하였다. 비바람과 함께 성난 파도가 밀어 닥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집채만 한 검고 절벽 같은 파도가 밀어닥쳤다. 페르 귄트가 탄 배를 순식간에 삼키고 말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는 꿈에 그리던 고향 땅 항구를 바로 코앞에 두고 몹쓸 폭풍을 만났다. 전재산을 흔적도 없이 몽땅 수장시키고 말았다. 그는 목숨만 겨우 건진 채 지친 몸을 이끌고 산속 그의 집인 오두막을 향해 갔다. 이제나 저제나 오직 페르 귄트만을 기다리며 쓸쓸하게 물레를 돌리고 있는 솔베이그의 머리도 이제는 반백이 다 되었다. 페르 귄트는 솔베이그의 앙상한 무릎 위에 힘 없이 쓰러지면서 '당신의 사랑이 나를 구원해주웠소!' 라고 절규한다. 그리고 통곡한다.
그녀의 한 평생을 오직 기다림과 기다림 속에서 보내버린 솔베이그는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있는 페르 귄트의 주름진 얼굴을 그녀의 가냘픈 손으로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선율이 애절하게 흐르고 있었다. 제2모음곡 4번곡 '솔베이그의 노래(Solveig's Song)'가 연주되면서 마디마디 애틋한 눈물이 그녀의 두빰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페르 귄트의 주름진 얼굴에 적셔지고 있었다. 가련한 페르 귄트는 이렇게 한 많은 생애를 마감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이어서 파 뿌리, 흰 머리칼을 흩날리면서 솔베이그도 싸늘해진 페르 귄트를 꼭 껴안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만다. 페르 귄트의 뒤를 이어 솔베이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애틋한 사랑의 환상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의 전 제5막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