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멸의 고전, 카사블랑카]
‘고전’이라는 이름에는 그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향기가 있습니다. 그런 고전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1942년에 제작한 <카사블랑카>입니다.(사진,일자에게 두말 말고 떠라고 재촉하는 릭)
이 영화는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불멸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자랑해 왔습니다.
우수와 냉소를 가득담은 눈빛, 컬컬하면서도 특유의 저음, 고독이 철철 흘러넘치는 카리스마로 당대를 주름잡았던 험프리 보가트와 뭐라고 한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의 스웨덴 출신 잉그리드 버그만을 세계적 명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카사블랑카>, 이 영화는 두 배우 외에도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와 멋진 대사, 수준 높은 영상미와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수작 중의 수작입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백미는 특히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의 이별장면이 꼽힙니다.
흑백필름특유의 클래식한 유려한 촬영기술이 빚어낸 라스트신으로 말미암아 <카사블랑카>는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불멸의 고전’이 돼 버렸습니다.(사진,릭의 카페에서 가수로 일하고 있는 샘)
극의 무대인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는 당시 전쟁(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현지 로케이션이 불가능했던 마이클 커티즈 감독은 결국 할리우드에서 스튜디오 촬영을 감행했습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세트장의 배경을 감출 목적으로 안개장면을 연출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카사블랑카>의 라스트신은 로맨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커티즈 감독은 또 여신처럼 아름다운 잉그리드 버그만의 눈동자가 더욱 반짝거리게 보이도록 그녀의 눈에 매우 작은 조명을 따로 비추는 기법도 선보였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영화 속 명대사가 그래서 더 빛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극중 카페의 가수 샘(돌리 윌슨 분)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부르는 삽입곡 ‘As Time Goes By(세월이 흐르면)’ 역시 영화를 한층 멋지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사진,일자와 남편 라즐로)
이 영화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극히 도식적이고 평범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때로는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일깨우고, 각박한 세상을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아련한 낭만의 시절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한편의 고전이 주는 선물치고 그 보다 값진 것은 또 없을 것입니다.
* 주연 배우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험프리 보가트는 이 작품 이전에는 주로 갱스터 영화에 출연하며 싸늘한 눈빛으로 냉혹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악역 전문배우였습니다. ‘필름 느와르(아래 설명)’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비정하고 암울한 도시의 정서를 대변하는 음영 짙은 역할을 그만큼 잘 소화해낸 배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카사블랑카>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나오지만 무한한 관용을 베푸는 멋진 남자로 변신하면서 일약 로맨틱한 남성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깃을 세운 트렌치코트, 중절모와 비스듬히 꼬나문 담배, 나비넥타이와 매치를 이룬 흰색 연미복(사진,공항에서의 마지막 이별)
패션을 선보이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던 겁니다.
이 영화를 빛낸 또 한 명의 스타는 잉그리드 버그만입니다. 뛰어난 외모와 우아한 자태, 지적인 분위기와 흔들림 없어 보이는 고결함을 지닌 그녀는 우리가 흔히 접했던 할리우드 여배우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배우였습니다. 그녀는 이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가스등>, <아나스타샤> 등의 히트작을 통해 남성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매우 지적이며 눈부신 미모로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녀였지만 사생활에서는 온갖 스캔들을 몰고 다닌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세 번의 결혼과 그 밖의 혼외 애정행각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는데 이탈리아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벌인 불륜행각은 단연세기의 화제였습니다. 당시 이 두 사람은 유부남 유부녀 상태였음에도 결혼을 감행했고 훗날 배우가 된 딸 이사벨라 로셀리니를 낳기도 했습니다. “내가 한 일에는 후회가 없다. 차라리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한 그녀는 유방암으로 1982년 67세 때 세상을 떠나 영원한 별이 되었습니다.
* 뒷얘기
잉그리드 버그만은 험프리 보가트와 촬영에 돌입하기 전에 보가트의 대표작 <말타의 매>를 수십 번도 더 보고 험프리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독이 문제였습니다. 윌리엄 와일러가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어렵사리 대타로 구한 감독이 바로 마이클 커티즈였습니다.릭 역에 원래는 로널드 레이건(미국 대통령 역임)이 내정되었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 7명이 마지막까지 싸우느라 잉그리드 버그만은 영화의 엔딩을 모르고 연기했다고 합니다.
영화 내내 버그만은 "제가 누구와 사랑에 빠져야 하나요? 남편인가요, 릭인가요?"를 질문했지만 그때마다 마이클 감독은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냥 두 사람을 갖고 놀면 돼요"이 영화에서 나치를 연기 한 많은 배우들은 자진해서 영화에 출연했는데 실제로 나치로부터 탈출한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들은 영화 속에서 독일 노래 '라인강을 바라보며,Die Wacht am Rhein'를 부르는 장면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험프리 보가트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키를 맞추기 위해 키높이 신발을 신고 연기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 릭의 술집은 물론 할리우드에서 특별힌 준비한 세트였습니다.(사진,릭의 카페에서 릭과 샘)
험프리 보가트의 아내였던 여배우 마요 메토트는 영화 촬영 내내 졸졸 따라다니며 남편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관계를 의심했으며 험프리 보가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촬영 내내 험프리와 잉그리드는 점심시간 외에는 따로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훗날 가수 마돈나가 자신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대줄테니 자신을 여주인공으로 <카사블랑카>의 리메이크를 제안하고 다녔지만 모든 영화사에서 만장일치로 거절당했습니다. 거절 이유가 웃깁니다. "그것은 카사블랑카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라고 했답니다. 마돈나가 머쓱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 필름 느와르(Film Noir)
암흑가를 무대로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를 일컫는 말. 일명 다크 필름(Dark Film), 또는 블랙필름(Black Film)이라고도 합니다. 1950년대 프랑스 비평가들이 명명한 ‘필름 느와르’는 어둡고, 냉소적이며, 음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르의 영화를 상징합니다.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는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지하세계를 배경으로 범죄와 부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당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습니다.
초창기 갱 영화들이 오직 자신들의 목적 달성과 생존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순수 악당’들의 이야기였다면 느와르 시대의 갱 무비는 허무와 퇴폐적인 인생관을 가지고(사진,<말타의 매>에서 보가트)
출구없는 세상에 반항하는 영웅내지 악당의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느와르 영화는 ‘욕망’과 ‘허무’속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에 도전하며 범죄를 저지르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주인공의 모습을, 밝은 희망을 상징하는 ‘흰색’의 반대편 서 있는 ‘검은(Noir)’ 또는 ‘어둠’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필름 느와르 영화로는 존 휴스턴 감독의 1941년 작품 <말타의 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울한 흑백풍의 화면과 허무를 상징하는 극단적인 명암의 대비, 불안한 미래와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 주인공의 흔들리는 심리와 혼돈, 그리고 음모와 배신 등 ‘어둠의 자식들’이 가진 모든 것을 그린 필름 느와르는 스토리 못지않게 스타일 또한 중시했습니다.
비 내리는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 희뿌연 안개와 담배연기, 멋진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그리고 불을 뿜는 연발 기관총, 스타일리시한 모습의 주인공은 비록 악당일지라도 죽을 때조차 관객의 공감을 얻습니다. 이 같은 스타일의 영화는 1980년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등에서 그대로 재현돼 홍콩 느와르로 불렸습니다.
* 간략한 스토리
영화의 무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북아프리카 프랑스령 모로코의 항구도시카사블랑카. 독일의 유럽점령이 기세를 떨치자 사람들은 전쟁 공포가 없는 미국으로 이민할희망을 품고 이곳 카사블랑카로 몰려듭니다. 미국인 릭 블레인(험프리 보가트 분)이 운영하는(사진,공항에 나타난 스트라사,릭의 총탄에 저 세상으로)
‘릭의 카페, 아메리카나’에는 미국행 비자를 얻으려는 난민, 범죄자, 재력가 등이 몰려들고 이를 막으려는 독일 게슈타포, 친 독일 비시 정권 하의 프랑스 치안경찰까지 뒤섞여 늘 어수선합니다.
어느 날, 릭의 카페에 체코 출신 저항운동 지도자 빅터 라즐로(폴 헨라이드 분)와 그의 아내 일자(잉그리드 버그만 분)가 찾아오게 되고, 이들의 뒤를 쫓는 독일군 스트라사 소령(콘라드 베이트 분)은 프랑스 치안책임자 르노 서장(클로드 레인 분)과 함께 릭의 카페를 감시하기 시작합니다.(사진,공항에서 릭과 르노)
라즐로 부부는 자유통행증을 손에 넣기 위해 릭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릭은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알고 보니 릭과 일자는 과거에 연인사이였으며 두 사람은 프랑스 탈출 당시 헤어지게 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던 것. 릭은 단 두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통행증을 가지고 있었지만과거 자신을 배신한 일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통행증을 사용한다 해도 릭과 라즐로 부부 셋 중 누군가 한 명은 탑승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진한 옛사랑의 추억에 괴로워하던 릭은 마침내 결단을 내립니다. 안개 자욱한 카사블랑카 공항. 르노 서장을 인질로 앞세워 라즐로 부부와 릭은 공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뒤늦게 달려온 나치인 스트라사 소령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릭의 총구는 불을 뿜습니다. 다음 순간 짙은 안개 속을 뚫고 라즐로와 리자를 태운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합니다.(사진,공항을 떠나는 릭과 르노,둘이 우정이?)
총소리를 듣고 뒤쫓아 온 경찰들에게 르노 서장은 범인을 잡으라고 경찰들을 딴 데로 돌려 보냅니다. 릭은 라즐로와 리자의 탈출을 돕고 르노 서장은 싱글벙글하면서 스트라사를 사살한 릭과 팔짱을 끼고 공항을 빠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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