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전호준
의대생 증원을 둘러싸고 보건당국과 전공의들의 갈등葛藤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 제고提高와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감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정부 당국과 급격한 증원으로 인프라 확충과 의료 질이 떨어진다는 의사들의 반발로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의 파업에 의료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국민을 위해서라는 목표는 같은데 생각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니,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는 없다. 와중에 애꿎은 국민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 안방에서 들으면 시어미 말이 옳고 부엌에서 들으면 며느리 말이 맞다 는 옛말과 같이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여 어쩔 줄 모르는 환자들과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만, 애간장이 탄다.
인류의 역사는 갈등의 역사다. 국가와 국가 민족 간의 갈등으로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사회 곳곳에도 갈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인간관계 또한 갈등의 연속이다. 여야 갈등 노사갈등 빈부갈등 고부갈등 남남갈등 개인사적 갈등까지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이다.
갈등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그러한 상태라 정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갈등의 원인은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이기주의적 산물이다.
내 생각은 언제나 옳고 정의로우며 나의 만족이 곧 너의 만족이란 착각 때문이다. 만족滿足이란 발목까지만 채우라는 경구警句임을 깨닫지 못하고 머리끝까지 채워도 성에 차지 않는 불만不滿이란 욕심 때문이다.
갈등의 어원은 칡넝쿨과 등덩굴이 얽히고설키어 풀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비유한다. 한여름 갈葛과 등藤의 기세는 대단하다. 갈葛은 산야에 자생하는 덩굴 식물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칡넝쿨이다. 모든 식물을 가리지 않고 놀라운 기세로 옆 식물들의 몸통을 옥죄며 머리 위로 기어올라 넓은 잎으로 햇볕을 독식하는 무법자다.
등藤나무 역시 그 기세가 칡넝쿨에 못지않다. 아파트 단지나 어린이 놀이터 혹은 공원 등 파고라에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만들기 위한 조경수로 심을 만큼 줄기와 잎의 기상은 옹골차다. 이 또한 부근의 식물들을 칭칭 감고 올라서서 타와 공생을 허용하지 않는다. 두 무법자가 만났으니 어쩌라 성장하려는 목표는 같은데 가는 길이 서로 다르다. 우갈좌등右葛左藤 칡덩굴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藤 넝쿨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는 두 종족이 엉켜져 빚어지는 현상을 갈등이라 한다. 결국 갈등이란 모든 동, 식물들이 나름의 생존을 위해 겪게 되는 경쟁이다. 식물은 생존을 위해 햇빛이 필요하다. 칡덩굴과 등나무는 스스로 높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햇빛을 가리는 나무가 있으면 생존을 위해 그 나무의 줄기를 감고 올라가야 한다. 원래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던 두 식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다 지쳐 어느 날 갈葛이 말했다.
나는 오른쪽으로 올라갈 테니 너는 왼쪽으로 그냥 올라가라고 타협했다. 둘의 갈등이 해소된 듯했지만, 마주친 두 식물은 오히려 더 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둘은 얽히고설키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막무가내 애매한 주위의 식물들만, 갈등葛藤의 횡포에 노출되었다. 사실 칡이 무성한 지역에는 등나무는 없고 등이 무성한 곳에 칡은 잘 자라지 않아 갈葛과 등藤이 뒤엉킨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되레 지혜롭게 살아가는 두 식물만도 못한 인간들이 지어낸 어원語源이다. 하나 사람들이 겪는 갈등은 둘만의 상대적인 경쟁만이 아니다. 갈등으로 인해 주변으로 파생되는 사회적 혼란과 끼치는 파장이 더 큰 문제다.
갈등의 해소는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데 있다.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먼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찾은 실마리는 잡아당기기만 하면 안 된다. 당겨도 보고 뒤로 밀어도 보며 풀어나가야 한다. 내 생각만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한 발짝 물러서는 양보와 타협이 갈등 해소의 지름길이다.
갈등은 결코 파멸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며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견해도 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무미건조하고 살아가는 맛이 없다. 사회는 언제나 의견 대립과 갈등 속에 변화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어쩌면 끝없는 갈등 속에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며 삶의 현실이 아닐까?
정부도 의료계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하루속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생사의 갈림길에선 환자들이 내 가족이라는 심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갈등 해소에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타협으로 이른 시일 내 의료 갈등이 해소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