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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중당’이라 이름 지은 살림채의 앞마당에서 본 다실.
왼쪽 살림채의 서재에서 건너다본 사랑채인 다실. 주련은 꼭 한문 시구로 써야 할까 고민했다. 현재 주련은 예나르에서 구입했지만 언젠가 아름다운 글귀를 지어서 만들고 싶다. 밤이 되면 더 그윽해 지는 조명은 뉴라이트의 윤승현 씨가 담당했다.
이 집은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수수하다. 새로 지은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있던 집을 새로 단장했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실은 새로 지은 집이다. 꽤 오랫동안 집 짓는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결국 3년을 걸려 지었다 한다. 그리고 두 개의 대문이 보이는데 위쪽은 살림채로 들어가는 작은 문, 아래쪽 문은 아래채로 통하는 대문이다. 물론 어디로 들어가도 결국 안에서는 하나로 통한다.
이 집이 있는 곳은 1981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었으나,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1991년 해제되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한옥 이외의 집이 들어서기도 하고 또 어울리지 않는 재료로 마감한 공간을 만들어 쓰는 집도 생겨난 것 같다. 집주인은 자꾸 변해가는 동네가 안타까워 10여 년 전에 땅을 사두고 언젠가 한옥을 제대로 지으리라 결심했다 한다. 이 집은 복원한다 해도 의미가 없는 집 두 채를 헐고 다시 지은 한옥이다. 다만 새로 지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한옥은 새것처럼 만드는 것은 훨씬 쉽고 싸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머금은 듯 보이게 하려면 기와, 돌, 나무 모두 고재古材를 구해야 해서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1 다실의 문을 들어올리고 본 마당.
2 아래채에서 살림채로 올라가는 계단.
3 한옥은 문살을 여러 가지 문양으로 하는 것이 멋 가운데 하나다. 이 집은 창살을 단정하게 한 대신 살림채 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창문은 꽃살문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꽃살문 제작은 여러 달이 걸리고, 미리 창호 장인과 문양을 정해야 한다.
4 최정현 작가의 수탉 조각.
가회동은 <태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 1396년 한성부 북부 가회방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하니 오래된 동네인 만큼 골목이 좁고,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의 집들은 작게는 20여 평에서 40평이 주를 이루고, 크다고 해야 60여 평 정도의 땅에 지은 집들은 이웃 처마와 이어지면서 들어섰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이 동네가 다시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줄지어 다니고 촬영 관광 명소가 되어갔다. 많은 관광객이 그저 대문과 담장만 보고 한옥을 봤다고 여기는 것이 마음에 걸려 경사진 길 아래쪽에 대문을 하나 더 만들어 개방하고, 여유 있으면 시조나 창을 듣고 가게 하려고 지하실을 만들기로 했다. 동네 이름인 가회동嘉會洞은 기쁘고 즐거운 모임을 뜻하므로 잘 어울리리라 해서 시작한 공사였다. 그러나 완공 무렵 대책없이 늘어난 관광객을 보면서 대문을 열어놓으면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한다.
이 집은 경사를 이용해 아래채에 지하를 두고 20여 명은 족히 들어갈 공간을 만든 것이 가장 독특하다. 지하에서 위로 향하는 반계단을 올라가면 대문 밖 길과 같은 높이의 마당이 있다. 북쪽인 위쪽 대문으로 들어가면 살림채가 나오는데, 이 ㄷ자 살림채 마당에서 반계단을 내려가면 아래채 대문이 있는 마당에 다다른다. 안채
마당에서 이곳에 내려설 때까지 지하가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실상은 현재 양쪽 대문 중간에 대문을 내고, 문을 열었을 때 왼쪽 반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고 오른쪽 반계단은 살림채로 올라가게 하려 했다. 그런데 기둥이 다 올라간 뒤 풍수를 잘 아는 분이 보더니 “왜 힘들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집을 만드느냐, 아래로 내려가야 옳은 법”이라 해서 위쪽에 대문을 내고, 실내 설계를 완전히 바꿨단다. 그러다 보니 기둥들을 옮기느라 새 집을 갖고 헌 집 만든 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내부에는 좁은 복도가 생기고 거실이 온전히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 보면 의도하지 않은 이런 공간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한다. 집주인은 ‘풍수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라고 믿는다. 다만 미리 신경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기꺼이 풍수 전문가의 조언을 따랐다.
살림채는 ‘휴중당休中堂’이라 이름 붙였다. 바쁜 일상을 사는 주인이 한옥에서 쉬면서 지내보려는 의지였다 한다. 한옥은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또 나무끼리 이어 붙이는 것도 가능해 그 흔적이 현대 작품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오래된 집을 헐 때 나온 고재를 구입해 이어 붙였다. 어차피 고재를 짜 맞춘 기둥은 불가피한 것이기에 음양으로 생긴 흔적을 즐긴다. 살림채에는 방이 두 개 있다. 각 방은 모두 작다. 그러나 좁아서 몹시 고민해 설계한 흔적이 있는 옷장과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다.
1 김종훈 작가의 빗살 무늬 찻상과 찻주전자. 도자기지만 꼭 쇠나 고목 같은 느낌이다.
2 이승희 작가의 청자 무늬 유광 도자기 부조. 아주 얇은 판에 표현한 실험작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다. 이 작품은 다실에 앉아 있을 때 시야에 들어오도록 기둥 사이 벽면에 낮게 달았다.
3 다실의 남쪽으로 보이는 담과 뒷집 대나무.
4 다실은 이 집에서 사랑채 역할을 한다. 전주의 한지 발 장인과 진효승 디자이너가 작업한 대나무 발 등燈, 주저앉기가 너무 힘들어 살짝 높여 만든 다탁과 다구. 문에 사용한 한지는 장지방 제품. 마루는 전통 우물마루 모양으로 시공했다. 서재와 사랑채의 마당쪽으로 면한 창문은 들창이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이 부분은 한옥 창호 장인 이성국, 심용식 씨의 솜씨다. 나머지 외부로 향한 모든 창호는 이건창호 제품이다. 이건창호는 좌우로 열거나 안팎으로 미는 것이 가능하나 위로 올릴 수는 없다. 이건창호는 최근 한옥에 어울리는 장석(손잡이)의 디자인을 개발했는데, 손으로 두들긴 수공예의 멋은 덜하지만 나름 적절한 느낌이다. 한옥은 문이 많아 장석이 중요하다. 특히 들문인 경우 달아매는 장석도 멋 가운데 하나다. 방문 장석 장인 박문열 씨 작품.
아래채의 대청마루. 월석의 흙담이 보이며 열 명쯤 둘러앉을 만한 여름 공간이다. 천장의 들창문은 손님방의 문이다. 아직 집주인은 이렇게 멋진 시간을 갖지 못했다. 다만 계획은 있다고. 소반은 봉산재 나성숙 씨, 방석은 소유 성낙윤 씨 작품이다. 소반 위에 놓은 접시는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의 이기조 작가 작품, 가운데 백자는 우일요. 식물 장식은 지플레르 이지연 플로리스트 작품. 면으로 만든 발과 전체 스타일링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김지영 씨가 멋지게 완성해주었다.
전통을 존중하고 생활은 편리하게
휴중당에서 가장 넓은 곳은 식탁과 부엌이 함께 있는 열린 구조의 공간이다. 서쪽의 인왕산과 그 아래 보이는 기와지붕이 조금만 보 이도록 가로로 긴 창을 낸 것이 이 집의 가장 비싼 그림이라고 한다. 창을 가리지 않으려고 허리춤보다 조금 높게 찬장을 만들어 수납 공간을 약간 희생했다. 식탁에서 서쪽 창을 바라볼 때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천장에서 내려오는 가스레인지 후드를 설치하지 않고, 고깃집 설비처럼 바닥으로 연기를 빼도록 했다. 또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할 때 그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조리대 앞면은 책장을 만들어 가리개처럼 연출했다. 이 높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여러 번 수정했다고 한다. 열린 공간과 이웃한 다실. 아래채에서 반
계단을 올라와 바로 왼쪽 댓돌에 신발을 벗고 올라오면 다실인데, 이곳이 말하자면 이 집의 사랑채 역할을 한다. 부엌과 다실의 목재는 장백산에서 2백 년 넘게 자란 물푸렛과 나무로 들메나무라 부르는 재목을 중국을 통해 사 왔다. 국내에서 구하는 목재 값보다 적은 금액이라 시도해볼 만했는데, 막상 켜서 들여오는 바람에 비용적으로 손실이 컸다. 하지만 이 나무는 배나 악기를 만들 때 쓰는 재목이라 그 색과 결이 곱고, 피부에도 좋다고 하여 마음이 놓였다. 살림채를 구성하는 모든 공간은 저녁때가 되면 한층 그윽해진다. 천장에 조명등을 잘 숨겨서 간접적으로 빛이 나오게 했기 때문이다. 살림채는 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있다. 서재와 다실의 창문을 들어 올리면 마당과 실내는 한 공간이 된다.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은 문을 열면 그 뒤가 바라다보이고 공간의 켜가 통하는 것이다. 마당의 바닥은 순전히 흙을 다져서 만들었다. 원래 한옥 마당에는 왕마사토가 어울리는 법이지만, 이 집의 경우 비가 오거나 발길이 잦아지면 왕마사토가 동쪽 아래채로 향하는 계단으로 쓸려가는 바람에 이 방법을 택했다. 아래채로 내려가는 작은 돌계단에는 중문이 있다. 커다란 꽃문양을 달아 애교가 있다. 이 꽃문을 통해 위채에서 아래로 내려가거나 또는 아래쪽 대문을 통해 들어오면 반 층을 더 내려가 지하 공간에 다다른다. 이때 시선을 잡는 것이 지하를 파느라 생긴 높고 긴 담이다.
1, 2 식탁과 부엌. 식탁과 그 위에 나뭇가지로 만든 조명등은 홍동희 작가 작품. 책장은 그 뒤에 있는 가스레인지, 설거지 싱크 볼 등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연기를 빨아들이는 레인지 후드를 설치하지 않고 연기를 아래로 배출하는 설비를 했는데, 이 작업 때문에 주방 가구 브랜드 보피의 오경호 대표가 고생을 많이 했다. 빨간 수납장은 부엌 찬장으로, 위쪽에 긴 창문을 만들어 인왕산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키를 낮췄다. 찬장의 빨간색은 옻칠이다. 우리나라 옻칠 중 주칠은 궁에서 많이 사용한 색이지만,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과감한 색상이더라도 꼭 시도해보고 싶었다 한다. 일본에 가서 옻칠을 널리 알린 전용복 선생이 수납장 문 위에 옻칠 입히는 작업을 했다. 부엌에 옻칠을 사용하면 벌레나 습기 방지에 좋다. 아일랜드 탁자 아래 세탁기를 두었다. 이 사진에서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벽면으로 냉장고가 있다. 아일랜드 탁자 아래 보이는 간단한 삼발이 나무 의자는 박종선 작가 작품으로 집주인의 애장품.
3 부엌에서 방과 서재로 가는 복도 진입부. 철제 가구에 한국 전통 문양 장석을 붙여 마치 루이비통 가방같이 패러디한 느낌이 나는 수납장은 하지훈 작가 작품
4 냄비, 주전자, 추 그리고 숟가락과 포크로 만든 병정은 최정현 작가 작품.
5 조약돌이 붙어 있는 나무 쟁반은 최병훈 작가 작품.
6 나무에 채색한 그림은 나점수 작가 작품.
이 부분을 두고 가장 고심했는데, 표면 처리를 잘하는 예술가의 의도대로 순전히 우리나라 흙을 써서 색과 패턴을 달리해 멋진 회화 작품이 되었다. 특히 담의 아래쪽은 예전에 낙산사에서 본 둥근 월석담을 언젠가 꼭 써보리라 하는 기 억을 되살렸다. 다만 둥근 월석을 패턴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현대적 흙의 질감을 살려 지나치게 전통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을 자제했다. 그 아래 길고 좁은 연못 또한 현대적이다.
1 천장에 설치한 오디오는 금속을 잘 다루는 오디오 작가 유국일 씨가 한옥에 어울리도록 연꽃잎과 연밥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2 아래층 화장실에 놓은 오줌 누는 여인 청동 조각은 캐나다에 사는 조각가 이원형 작품.
3 아래채의 지우헌이라는 옥호. 신영복 선생께서 이름을 지어주고 글씨를 써주셨다. 대문에는 이무규 작가가 문패를 잘 만들어주었는데, 아쉽게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4, 5 아래채의 지하 공간. 맨 끝 벽면 위는 천장이 외부로 뚫려 있어 햇빛과 바람이 드나들도록 했다. 덕분에 어둡지 않고 식물도 자랄 수 있다. 방석은 까사미아 제품. 내부 벽 쪽은 수납장으로 하되 흡음판 문을 사용해
오디오의 소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했다. 수납장 두 폭 안쪽으로 간이 부엌을 설치했다.
6 아래쪽 대문을 들어서면 2층 구조로 된 한옥이 한눈에 보인다.
7, 13 좁고 긴 연못. 그 뒤로 보이는 월석을 박은 벽과 담은 홍동희 작가의 흙 표면 작업. 조경은 김용택 씨가
맡았고, 이번 여름 지독한 가뭄에 식물이 많이 죽어서 조경 포레 전은정 소장이 다시 손을 봤는데 연꽃이 피어 운치가 더해졌다. 8 북쪽 위쪽 대문 입구. 휴중당 옥호는 강순형 씨가 이름 짓고 글씨를 써주었다.
9 지난겨울 선물 받은 풍경은 정연식 금속 작가 작품.
10 구름 문양을 더한 합각 박공지붕. 정태도 대목수의 재치 있는 표현이 거의 아티스트 수준이어서 흡족하다.
11 서촌을 걷다가 허름한 가게에서 산 작은 의자. 앉는 부분의 짜임새 솜씨가 눈여겨볼 만하다.
12 오채현 작가의 호랑이 석상. 정말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 볼수록 귀여운 작은 호랑이다.
14 친구가 집에서 쓰던 오래된 맷돌을 주었다. 빗물은 여기서 넘쳐 자갈 아래의 파이프로 내려간다.
15 아래채에서 살림채로 올라가는 계단의 중간에 설치한 작은 꽃문은 홍동희 작가 작품.
서재. 강원도 소나무를 통으로 사용한 책상은 두 사람이 사용할 만큼 길다. 책상 앞의 문을 열면 마당이 보인다. 문은 들창으로 올릴 수 있다. 책장은 낮게 만들어 답답하지 않게 했고, 책장 높이는 그대로 현관 진입부의 신발장 높이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동양화가 직헌 허달재 씨의 포도 그림을 두 폭으로 표구해 기둥을 사이에 두고 걸어 벽면 나무 기둥을 살렸다.
1 좁지만 어엿한 거실. 소파는 오세환 작가, 그 앞에 놓은 세 개의 원형 소반은 하지훈 작가, 창문 위의 흰색 집 모양 작품은 종이 작업으로 배삼식 작가 작품.
2 북쪽 위쪽 대문으로 나가는 복도. 책장과 같은 높이의 신발장 문은 한지로 도배했다. 그 앞의 낮고 긴 의자는 장수홍 작가, 그 위의 흰 도자기 합은 김윤동 작가, 벽에 건 ‘푸른 화원’이라는 제목의 서양화는 김선형 작가 작품.
3 신발장 위 벽면에 설치한 한옥의 지붕 선을 닮은 금속 조각은 집주인이 진작에 사둔 것으로 백승호 작가 작품이다.
4 모필을 섬세하게 만드는 유필무 작가의 붓.
5 백윤기 작가의 금속 조각으로 ‘명절’이라는 제목의 소녀상과 김백선 작가 작품인 한지 노트가 담긴 문방구.
6 도끼질을 하다가 튀어나온 나무 형상에서 집을 발견한 조각품은 건축가 최승원 씨 작품.
1 아래층에 있는 손님방. 대청마루와 높이가 같은 쪽마루를 두어 좁은 방에서 가구 역할을 하도록 했다. 작은 옷장 겸 이불장, 욕실도 있다. 침상은 전통 가구 장인 권우범 씨, 이불과 보료는 소유 성낙윤 씨, 횟대에 건 전통 의상은 차이 김영진 씨 작품.
2 살림채의 안방. 한 칸의 방을 늘리느라 방 안에 기둥이 있다. 침대 왼편 벽 사이에 이불장을 만들었다. 침상을 두려고 고민하다가 웰즈 양영원 대표가 기획한 우리나라 젊은 가구 디자이너 작품 중 하나인 침대를 선택했다. 이불보는 하이 핸드 코리아에서 구입한 것.
3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부엌문을 가지고 만든 TV 하부 선반.
4 자투리 공간도 수납장으로 만들었다. 한옥은 그림을 걸 공간이 적어 예부터 한지를 도배한 벽장 문에 그림을 붙이곤 했는데 이를 적용해봤다. 이 수납장은 서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기 때문에 강은영 민화 작가의 작품을 프린트한 그림으로 도배해 일종의 화면을 만든 셈이다.
5 욕실이 좁은 대신 깊이를 10cm 더해 몸을 충분히 담글 수 있게 만든 욕조. 히노키라 부르는 편백나무로 현장에서 제작했다.
6 방짜는 두들겨 만드는, 품과 공이 많이 드는 전통 기법이라 언제나 마음이 갔다. 담양의 카페 대담이라는 곳에서 유기를 세면대로 만든 것을 눈여겨본 터, 이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미리 이형만 장인에게 물이 빠지는 구멍 있는 유기 대야를 의뢰했다.
7 통영의 자개장 송방웅 선생의 기술과 현대 작가 마영범 씨의 디자인 결합으로 탄생한 작은 자개함은 서울 리빙디자인페어에서 몇 년 전 구입.
아래채에서는 넓은 대청마루가 인상적이다. 이곳은 여름을 즐기는 명당으로, 지인을 초대해 작은 연회를 하면 좋을 것 같은 공간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위채만큼의 공간을 파내 만든 지하 공간이 있다. 입구 공간을 중심으로 손님이라도 오면 머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안쪽에는 스무 명은 족히 앉 을 수 있는 강당이 있다. 위채의 입구가 이 지하의 안쪽 천장이 되는 데, 이 부분을 뚫어 공기와 빛이 들어오게끔 해 어둠과 습기를 없앴다. 음악을 크게 틀 수 있을뿐더러 소리가 튀지 않도록 양쪽 벽을 수납장으로 만들고, 그 문을 흡음판으로 처리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예상치 못한 규모와 용도에 놀랐고, 이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집주인의 의지 가 이렇게 표현된 것에 감탄했다.
“이 집은 지하를 판 것을 빼고는 온전히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지었습니다.한옥은 짓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여러 번 수정을 요구했는데도 불평 없이 다 들어준 분들을 만났어요. 실력도 있고 무엇보다 진정성이 있는 분들이죠. 작은 부분을 두고 최소 세 번쯤 다시 만들면서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스스로가 한 번쯤 이 땅에 살면서 우리 전통적인 집 짓기를 진하게 경험하고 싶었기에 모든 애정을 다해 지켜보았습니다.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음양을 짜 맞추는 우리나라 한옥 짓기는 참으로 미래적인 방식이니까요.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매주 일요일 모눈 종이를 꺼내놓고, 그 공간에서 어떤 행동들이 일어날까 상상하면서 수백 장의 스케치를 한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집은 ‘지금 이 시대’를 살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짓는 방식은 전통 그대로지만, 골동품은 한 점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의식 있는 젊은 작가들이 한국적 느낌으로 해석한 작품들로 꾸몄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통은 그대로 잇는 것보다 적어도 그 원칙은 살리되 현대화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생활 방식도 한층 진화했습니다. 예전에는 방 안에 삼층장 하나면 족했지요. 겨울 누비옷 한 벌, 여름 모시옷, 춘추복. 또 이 옷들은 평면 재단의 옷 아닙니까? 이들은 그저 얇게 접어 넣어둘 수 있었지요. 신발도 한두 켤레. 그러나 요즘은 상황에 따라 신는 신발의 가짓수가 얼마나 늘어났습니까? 이를 무시하고 예전 방식 그대로 설계하니까 한옥 생활이 불편하다고 할 수밖에요. 또한 이제 냉장고 없는 부엌은 생각할 수조차 없지요. 그래서 큰 원칙은 따르되 생활의 불편은 수정하는 것이 진화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스타일링 서영희, 김지영 플라워 이지연(지플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