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빈은 입단 동기인 두산 진야곱과 LG 정찬헌 그리고 SK 모창민 선배와 신인왕을 놓고 경쟁할 것 같다고 말했다.(사진 이휘영)
KIA 김선빈(19)은 고교 시절 ‘작은 거인’으로 불렸다. 164cm의 작은 키지만 시속 140km가 넘는 빠른 볼을 던지며 화순고의 에이스로, 4번 타자로 부지런히 뛰었다.
뛰어난 재능으로 2006년 9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는 유일하게 2학년생으로 대표팀에 뽑혔다. 4-3으로 승리한 미국전의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명성과 달리 김선빈은 지난해 가까스로 프로무대를 밟았다. 2차 6번으로 KIA에 지명됐다. 그의 손에 쥐어진 계약금은 3천만 원.
김선빈은 “저평가된 것 같아 대학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프로 진출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프로 선택은 옳은 결정이었다. 김선빈은 시범경기에서 3할9푼1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더니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어느새 KIA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4월 16일 현재 타율 2할9푼2리를 기록하고 있는 김선빈은 올 시즌 가장 돋보이는 신인이다. 현재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신인왕도 어렵지 않다.
최근 작은 키와 관련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를 읽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잠시 생각하다)사실 KIA에 입단한 뒤 이름 앞에 늘 ‘프로야구 최단신’이라는 문구가 따라붙어 몇 번 기분이 상하기는 했다. 계속 읽다 보면 내가 진짜 작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 어느 기자에게 ‘최단신’이라는 말을 좀 빼달라고 따로 부탁했다.
팀 동료들도 이름보다 별명으로 부르던데.
프로에 들어 온 뒤 선배들이 이름을 불러준 적이 거의 없다. 이름 대신 ‘어린이’‘딴또’‘꼬마’라고 부른다. 김종국 선배는 ‘작은 거인 전병관’이라고 한다. 고교 시절 별명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한데.
아까도 말했지만 별명과 관련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 화순고 1학년 때 아버지께서 “너는 언제 키 클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셔서 면역이 된 것 같다. 아무튼 키가 컸으면 하는 바람은 접은 지 이미 오래다(웃음).
작은 키 때문에 야구할 때 불편하진 않나. 4월 13일 사직 롯데전 3회말 롯데 가르시아의 땅볼 때 1루 주자 이대호를 태그하지 못해 주자를 모두 살려줬다.
팔이 짧아서가 아니라 생각을 잘못해 벌어진 일이다. 태그 대신 2루 커버에 들어간 유격수 윌슨 발데스에게 송구했어야 했다. 그날 선발 서재응 선배에게 많이 미안하다. 서재응 선배가 출전한 경기에서만 실책을 두 차례나 저질렀다. 막내라서 따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어렵다.
당신이 실책을 할 때마다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던데.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다른 선배들이 그럴 경우에는 잘 넘어가던데. 선배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어제(4월 16일)는 수비에 신경이 쓰여 그라운드에 나서기 전 ‘실책만큼은 절대 하지 말자’고 몇 번을 속으로 다짐했다. 다행히 실책이 없었다.
매사에 무관심한 듯 하지만 야구만큼은 아닌 것 같다.
실책만 그렇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경기가 끝나면 모두 잊는다.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원래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외모에도 신경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을 텐데.
일 년 동안은 죽어라 야구만 할 생각이다. 야구로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여자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겠나(웃음).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버지 김종중 씨가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하던데.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와 이혼하셔서 홀로 나와 동생을 키우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아버지가 신경 써주신 덕에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아버지 덕에 프로무대를 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광주에 있는 고모집에서 생활하고 있어 자주 뵙지 못한다. 여유가 생기면 많이 챙겨드릴 생각이다.
동생 김선현도 야구선수인데.
모교인 화순고에서 유격수로 뛰고 있다. 나와 키가 비슷하다(웃음). 프로에 온 뒤 동생 얼굴을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동생에 대한 걱정은 없다. 나보다 더 야구를 잘한다. 나중에 KIA에 입단해 함께 내야를 봤으면 좋겠다.
화순고의 야구 환경은 어떤가.
어떤 형태의 지원도 없다. 모든 걸 개인 돈으로 해결한다. 실내연습장도 없다. 모든 면에서 서울에 있는 팀에 비해 열악하다. 그래서 더 많은 연습으로 부족한 면을 채운다. 밤 9시에 훈련이 끝나도 팀원 모두가 따로 개인운동을 했다. 나 역시 3학년 때 그랬다.
고교 시절 투수로도 이름을 알렸는데.
팀에 뛰어난 투수가 없어 내 이름이 알려졌을 뿐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시속 145km를 던졌지만 키가 작아 타점이 낮았다. 투수로서 성공하기 힘든 체격이다. 고교 1학년 때부터 투수를 하면 프로에 가서 얻어맞을 게 뻔해 보여 타격에 더 신경을 썼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아예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투수와 내야수를 동시에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고교 1학년 때 유격수를 맡았는데 실책을 저지르면 선배들에게 크게 혼이 났다. 그라운드에 나갈 때 저절로 긴장감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수비가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한 경기에서 혼자 아웃카운트 11개를 잡은 적도 있다.
2006년 쿠바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2학년생으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에 뽑혔다.
그 대회에서 많은 걸 얻었다. 이전까지 시속 150km의 공을 쳐 본적이 없었는데 그 대회에 출전한 투수 대부분이 시속 150km 이상을 밥 먹듯이 던졌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과 상대하다 보니 배트스피드도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그런 공을 치면서 자신감도 얻었고. 경기에 나설 때 여유도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명성과 달리 KIA에 2차 6번이라는 다소 낮은 순위로 지명을 받았다.
고교 동기들에게 “너는 프로에 가겠구나”라는 말을 줄곧 들어서 부담스러웠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서 프로행을 망설였다. 그 무렵 서울에 있는 대학 두 군데서 영입 제의까지 받아 고민이 더 됐다. 아버지는 내게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차피 프로에 갈 거면 빨리 가는 게 낫겠다 싶어 KIA에 입단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야구하는 스타일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아마추어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뛰었는데 프로에서는 내게 필요한 것만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더 효율적으로 운동하고 발전 속도도 빠르다.
프로에 와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나.
이종범 선배와 그라운드에 섰을 때다. 대선배와 함께 야구를 한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이종범 선배가 말을 걸면 매번 당황스러웠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흘러 괜찮다. 선배들에게 내가 먼저 상대 투수의 특징에 대해 물어본다.
자신이 뛴 경기를 TV 등을 통해 다시 보기도 하나.
TV나 인터넷을 통해 하이라이트를 챙겨 본다. 주로 타격자세를 눈여겨본다. 안타를 쳤을 때 자세와 그렇지 않았을 때를 비교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사실 이런 영상을 보면 아직도 내가 프로에서 뛴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종범, 장성호 선배와 같이 뛰는 내 모습이 가끔 낯설기까지 하다.
고교 시절 즐겨보던 일본프로야구를 시청할 시간은 없겠다.
가끔 재방송으로 본다. 고교 시절에는 일본프로야구를 보면 모든 게 신기했다. 그런데 프로가 된 지금은 한국프로야구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점은 있다. 일본은 점수차가 크게 나도 자주 역전이 나오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분위기가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경기 도중 벤치에서 응원을 많이 한다.
타석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스프링캠프에서 조범현 감독에게 밀어치기만 하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는데.
전지훈련에서 배팅훈련을 할 때 당겨치기만 해 파울도 많이 나오고 헛스윙도 자주 했다. 그래서 조감독님에게 혼도 많이 났다. 그 후로 계속 밀어치기만 했다. 어쩌다 몸쪽으로 공이 올 때만 당겨 쳤다. 지금까지 7안타를 쳤는데 타구가 모두 오른쪽으로 갔다. 앞으로도 밀어치는 연습만 계속 할 거다. 그러다보면 당겨치는 것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라 믿는다.
김동재 코치는 손이 작아 공이 빠지는 실수가 잦다고 하던데.
손이 작아 그런 건 아니다. 발빠른 주자가 나왔을 때 빨리 처리하려고 서두르다가 실수를 했을 뿐이다. 경험을 쌓으면 괜찮아질 거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하는데 피곤하지는 않나.
잠은 충분히 잔다. 이동하거나 여유가 생길 때마다 눈을 붙인다. 선배들은 피곤하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젊어서인지 그런 거 못 느낀다. 사실 잠은 많다. 경기가 끝나면 자고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차에서도 잔다. 얼마 전 대구에서는 오후 7시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오전 8시30분에 일어났다. 잠 잘 때가 행복하다.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뭔가 잊고 싶은 문제라도 있나.
그런 건 없다. 주전으로 뛸 때마다 행복할 뿐이다. 사실 힘들어도 지금까지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야구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불안한 상황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친구다. 그런 야구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
어떤 선수들은 문제가 있을 때 술로 달래기도 하는데.
술을 마실 기회는 많은데 좋아 하지 않아 한두 잔만 먹는다. 선배들이 마시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보다.
좋은 체격은 아니다. 프로무대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노력밖에 답이 없다. 남들보다 더 달리고 더 쳐야 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하루에 적어도 40분 이상 한다.
벌써부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경기를 뛸수록 욕심이 난다. 신인왕 수상 여부를 떠나 2할8푼 이상의 타율을 시즌 내내 유지하는 것이 올해 목표다. 장성호 선배처럼 9년 연속 3할 이상을 치는 타자가 되고 싶은데 올 시즌은 배우는 단계라 목표를 이 정도로 잡고 있다. 내 꿈은 이종범 선배처럼 오랫동안 야구하는 거다. 올해는 나의 프로 첫 시즌일 뿐이다.
인터뷰 내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꺼냈는데.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다(웃음). 이유는 없다. 무엇을 할 때 특별히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주변에서 “어리버리하다”고도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인생에 뚜렷한 목표가 있다. 경기할 때 생각 없이 뛰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나. 타석에서 투수가 무엇을 던질까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생각이 많으면 욕심도 많아진다. 욕심이 많으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 덜 웃으면 어떤가. 그만큼 걱정이 없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프로에서 오래도록 활약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