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 소프트♡
메일 : < sa-rang0116@hanmail.net >
팬카페 : http://cafe.daum.net/firstsoft
팸카페 : http://cafe.daum.net/skymode
[ 꼬릿말 , 감상 , 친분맺음 환영 │ 불펌 , 욕설 , 왕따-_- 삐짐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8 3 - 흑 사 전 쟁 (黑 四 戰 爭) >
더 이상 아무 말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창가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추스려 입었다.
아원에게 갈 생각이다. 꿈 해몽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런 분야는 잘 할 수 있을거란
믿음을 가졌다. 현재 서먹한 아원과의 관계는 뒷전이었다.
나에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게한 두 남자의 비밀을 알아야만 했다.
달깍-
주변 복도를 지나치던 대신들과 궁녀들의 인사를 무시한체 체면따윈 머릿속에 두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 달리기만 하였다. 그 날따라 예언실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 때. 난 바로 나의 앞에 있던 대신을 보지 못한체 부딪쳐 넘어지고 말았다.
자신과 부딪힌 사람이 나, 즉 화령(花領)임을 안 그 대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 이르켜세웠다.
대충 사과의 말을 받고선 발길을 돌리려 했는데 대신은 다름아닌 사방도(四方島)에서의 약속을
전하러 간다던 그 대신이었다. 마음은 이미 예언실에 있었는데 나는 이 대신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화령님."
"괜찮다. 그건 그렇고, 사방도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잘 성사시켜 내일 사방도로 가기로 했다네. 고맙네."
"망극합니다."
"……그런데…. …우월국(雨越國)에선 우사(雨師)님이 자리에 있더냐?"
"아, 우사님은 제가 갔던날 자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설향이라는 우사님의 개인 궁녀가 대신 허락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구나. 그래, 수고했다. 푹 쉬거라."
"예."
깍듯이 인사를 한 대신이 먼저 가도록 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은 잠깐 대신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였다.
그런데 몇 걸음 나아가던 대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저기…화령님."
"할 얘기가 더 있느냐?"
"그게 아니라,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서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이상…한…점…?"
뭔가 안좋은 예감이 든다. 듣고싶지 않은 마음도 적잖아 들었지만 이미 대신의 입은 열렸다.
"우월국으로 제일 먼저 가는 도중에는 수 많은 영혼들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만….
화월국으로 돌아올때는 달랐습니다. 시간이 경과 되었으니 더 많을거라 예상했던 영혼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지금은 전쟁중이다.
네가 날 희롱하려는 생각을 가진게냐!"
"아닙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저도 제 눈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영혼들이 활보하던 거리를 거닐고 다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연유를 물었는데, 그 사람들도 소문으로 들은 내용으로는
몇일 전, 우사님께서 한번에 해결을 하셨다고…."
"……."
"……그럼…전…이만……."
표정이 싸악 굳어버린 날 걱정스레 바라보던 대신은
지레 자신에게 저 차가운 불똥이 튈까봐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두 눈을 감았다. 이 눈을 뜨면 그 끔직한 괴물이 보일까 겁을 먹었다.
그리고…그 괴물이….
……은유일까 두려웠다.
"……당신이 흑유(黑流)라고 의심하지 않게 해주세요."
***
지하세계. 두 남녀의 웃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퍼지는 환희의 방안.
환희에게 안겨서 어느 남자라도 모두 반할만한 미소를 짓고있는 귀향은
사랑스런 눈길로 환희를 바라보고 있다. 환희는 말없이 웃으며 귀향의 머리칼을 만져주고 있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행복하기만한 시간이 유지되다가 귀향이 몸을 돌려세우며 물었다.
"우리 처음 만난날 기억나?"
"처음 만난 날요?"
"응. 내가 궁안에 있는 못에서 있었는데 네가 나타났잖아."
"당연히 기억나죠. 그 때 누나 너무 귀여웠었어요."
살짝 얼굴을 붉히는 귀향은 다시 환희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너도 마냥 어린아이 같았어. 맨 첫마디가 '양귀향 이십니까?' 였지.
난 우리 서로 같은 애인데 저런 어른스런 말투를 하니까 웃음이 나왔고."
"나도 시킨일 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알아. 하지만 그것도 네 매력이야."
가벼운 입맞춤을 한 귀향은 홍조띤 발그레한 얼굴로 환희를 쳐다보았다.
눈부터 하나하나 마음속에 담았다. 하지만 그를 갖기란 쉬운일이 절대 아니였다.
그래도 귀비가 아닌 자신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환희가 마냥 좋기만 한 귀향이었다.
그 안에 숨겨있는 '진짜 의미' 를 알리가 없었다.
"……누나."
"응?"
귀향의 머리칼에서 손을 뗀 환희는 귀향과 손을 마주잡은체 진지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웃음만큼은 지우지 않았다. 미소는 그의 일부였다.
환희는 한번 주위를 둘러보듯이 시선을 빙- 돌리다가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언제까지 귀비누나의 밑에 있을꺼에요."
"……."
"이젠 그런거 그만 하세요."
"……하지만 난…."
"…누나가 화령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있어요."
< 8 4 - 흑 사 전 쟁 (黑 四 戰 爭) >
언제 웃었냐는 듯 귀향은 싸악- 굳은 표정으로 변하였다.
잠들었던 무언가의 욕구감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귀비가 '주작의 성복'을 입었을 때가 그려졌다.
환희의 옷깃을 부드럽게 쥐고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지 못했다가도 이렇게 누군가에 의하여 정곡이 찔려졌을 때,
항상 귀비를 향한 증오의 마음을 감출 수 없어진다.
환희는 이런 귀향의 세세한 감정 하나를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귀향을 이용하기가 그 어떤 사람들 보다 가장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
……환희에게만 해당한 소유권이었다.
"…그…방법이…뭔…데…?"
"……비밀이에요. 하지만 곧 알게 될꺼에요."
떨리는 귀향의 눈가를 쓰담으며 차분하게 말하는 환희를 다그칠 수 없었다.
귀향은 환희 자신이 말하기를 기다리를 마음으로 욕심을 접은체, 두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누나."
"…응."
"난 누나에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어요. 누나도 잘 알죠?"
"…그럼."
"…그러니까…. 누나도 내게 진실만을 말해주셔야 해요. …나 처럼."
"……그래."
대답을 하며 환희를 향하여 몸을 돌리려던 귀향은 속이 두텁게 찝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곧 그 기분나쁜 느낌은 목을 넘어 나올 것 같았고, 차마 환희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귀향이었기에 서둘러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선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순간이동을 하여 화궁(花宮), 자신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을 찾아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우욱!! 우욱-!!"
참은 만큼의 고통이 그대로 밀려왔다. 눈물샘이 고장나 맑은 액체가 수없이 쏟아졌다.
환희에게 알려줘야 할 사실 이지만.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하지만.
…귀향은 덜컥 겁이 났다. …환희가 이 사실을 받아드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환희 앞에서의 애정표현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웃어주며 입맞춤을 해주는 일이 다였다. 하지만 요즘은 입맞춤 조차도 자제를 해야했다.
"…으흐흑. ……흐읍.!"
매일 꿈속에서 시달리곤 했다.
환희에게 자신 안의 또 다른 생명체의 존재에 관하여 밝히는 귀향.
그러면 환희는 언제 웃음이라도 한번 흘려보았는 듯 무뚝뚝한 얼굴로 이 말을 내뱉으며 떠나버린다.
[ ……당장 지워요. ]
귀향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선 울음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귀향은…. ……아이를 지키고 싶었기에.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아이니까.
"……."
종화와의 전쟁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예언실로 돌아가던 아원의 발길이 멈춰섰다.
마치 구슬픈 곡조라도 듣듯이, 귀향인 듯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원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문고리를 잡았다.
"…흐으읍."
인기척에 눈물을 훔치던 귀향은 아원을 보더니 평정을 되찾은 척, 일어났다.
"……볼일없이 온거라면 나가거라."
"…양귀향."
"너도 양귀비랑 똑같아. 그래서 내가 꼭 죽일꺼야.
내가 화령(花領)의 자리에 서서…세상 그 어떤 죽음보다도 가장 비참하게 죽일꺼야."
충혈된 눈빛으로 아원을 바라보던 귀향을 일어나 아원을 스쳐, 나가려 하였다.
"…자매는 자매구나."
멈칫-
"……그런 소리 할 자격없어, 입 다물어."
"둘 다 웃는 것보다 우는 걸 좋아하니까…닮았어."
"입 다물라고 했어."
"아무는 것 보다 상처받는 걸 더 잘하니……."
"니가 우리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귀향의 올라간 팔은 아원의 손에 잡혔다. 뿌리치려해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아원은 약간 언성이 높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네가 뭘 위해 사는지, 그게 이뤄지긴 하는지. 잘 생각해봐, 양귀향."
"……."
"넌 절대 귀비를 죽이지 못해.
귀비를 남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우리'라는 말을 하니까.
그건 누군가를 죽인다는 그런 섬뜩한 생각이 전혀 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
아원은 발갛게 손자국이 난 귀향의 팔을 놓아주고선 방을 나갔다.
그리고선 들었다. 아주아주 작았지만…그의 귀에선 100배 큰 목소리로 들렸단걸.
'고마워'라는 세 글자를….
아원은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예언실로 향하던 중, 문 앞에 서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화령의 기를 받기라도 한듯한 빨간 눈으로 아원을 바라보는 여자였다.
"……아원아."
"내 이름 부르는 시간에 이미 들어왔겠네. 들어와."
귀향을 설득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곧 실감하게 되었다.
…자매는…자매란 사실을.
< 8 5 - 흑 사 전 쟁 (黑 四 戰 爭) >
"……미안해…아원아."
아원이 먼저 들어선 후, 느릿느릿 들어와 문을 닫은 귀비는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상황이 무척 혼란스럽겠지만 아원은 귀비가 귀엽기까지 하였다.
철부지 동생같은 느낌이 들어 차를 따라 탁자위에 올려놓고선 의자를 살짝 뒤로 물러놔두었다.
"알았으니까, 이제 웃으면서 앉아-"
귀비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빈자리를 체웠다. 그리고 아원의 정성이 담긴 차를 마시고서야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굳어지며 앞에 마주앉은 아원을 보고선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쟁 문제?"
"…응."
"그럼 주저할 거 없잖아. 말해봐."
"……꿈을…꿨는데…. …괴…물이 나왔어. …그런데…그 괴물이……."
"……."
"……은유…같아…."
귀비의 심각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보통 악몽도 전쟁기간인 만큼 마음에서 쉽게 떨어뜨리지 못할 텐데,
은유와 관련된 꿈이라면 얼마나 신경쓰였을지 상상이 되었다.
더구나 딱히 귀향처럼 터놓을 사람도 없으니 끙끙 앓고 지냈을 귀비가 안타까웠다.
몇 분전,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던 귀비가 지금은 귀엽게 보여지진 않게되었다.
"꿈 얘기를 설명해 볼 수 있겠어?"
"……그런 꿈을 두번 꿨어. …한번은…전쟁을 시작하기 전….
…사방신들이 영혼들과 싸우는 꿈이였어. 그런데…현무. 주작. 백호 모두 있는 자리에….
……청룡만 없었어."
"……."
"난 그 점이 이해할 수 없었을 때에……그 끔찍한 괴물이 나타났어.
……미안. 이 다음부턴 생각하기 싫어."
"…그래. 괜찮아. 그럼 두번째 꿈은 어떤 내용이었는데…?"
귀비는 한번 큰 심호흡을 하였다.
아마 그 괴물의 향이 지금 주변에서 나오는 착각에서 였을것이다.
아원은 귀비가 생각나는 부분만 띄엄띄엄 들었지만 대충은 그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두번째는…얼마 전에 꿨어.
…내가 화령(花領)의 자격을 받은 후, 화월국(花越國)을 떠나던 날.
은유를 처음 만났던 그 때가 반복되는 거였어.
그런데……."
그 꿈이 되살아난 귀비는 차를 한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 전에 꿨던 그 괴물이 은유로 변했어.
……눈빛은 날 순식간에 죽일 기세였는데….
…날…죽이지 않았어. ……그냥 가버렸어.
…그런데….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그래서 붙잡았는데….
……그 괴물이…. …다시 은유가 되어있었어."
"……."
귀비는 이제 아원이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생각만 해도 철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차를 마셨다.
아원은 귀비의 꿈 얘기를 다 듣고선 정리를 하기 위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앉아있는데
스쳐가듯이 머릿속에 예언되듯 무언가가 연상되었다.
[ ……은유가…. …은유가 어디있는지 알려줘요. 알려주라구요!!!!!!!!!!!!!!!!!!!!!!!!
나 그 사람 없으면 이제 죽어버릴거란걸 알았어요. 그러니까…그러니까 제발…알려줘요…. ]
눈물로 얼굴을 메웠다 하여도 거짓이 아닐 귀비의 모습뒤로, 어떤 괴물이 보였다.
아원은 다신 떠올리곤 싶지 않은 모습에 눈을 감았다.
아원의 표정을 살피던 귀비는 근심있는 기색으로 아원에게 묻고싶었지만 참았다.
그 때, 아원은 입을 열었다.
"……생각해봐도…. …그 분은 괴물이…아닌것 같아."
뜸들이며 말하는 아원에게서 거짓의 냄새가 풍긴 귀비는 미심적은 말투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말아줘.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지금 이 시점에선 거짓말로 널 속일 상황이 아니란거 네가 더 잘 알아."
"……."
"내가 해몽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첫번째의 꿈은 그냥 말 그대로 예지몽일 뿐이야.
청룡이 없던 이유는 그만큼의 우사(雨師)님은 전쟁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는단 뜻이겠지.
그리고 두번째는 네가 너무 옛날을 그리워 하는 것 같은 마음에서 생겨난 꿈일거야.
괴물은 단지 네가 무섭게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에 현재 마음의 공포감을 나타내준거고."
아원의 해몽을 귀비는 굳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받아드리려는 눈치가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원은 귀비에게 다가가 어깨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선 말했다.
"크게 마음에 두지마. 앞으로는 오늘처럼 쉴 수 있는 날도 없을꺼야.
내일은 사방도(四方島)에 간다는 말 들었어. 이럴때 푹 쉬어야해.
꿈 때문에 기분 망치면 전쟁터에 나가서도 기를 모으지 못 할 수도 있어."
"…으응. 고마워, 아원아."
"자- 그럼 내일 해가 뜰때까지 눈 붙여. 내가 궁녀에게 말해둘게."
"그래."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간 귀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원은 귀비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죄책감과
앞으로 전쟁에 대한 많은 일이 나타날 예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쉽게…끝나지 않을꺼야."
< 8 6 - 화령(花領)이 지켜주는 자 >
"와아앗- 가슴이 두근거려요."
"……."
하루가 지난 아침. 아원을 대신하여 귀비와 함께 사방도(四方島)로 떠나게된 민생은
매일 궁에 얽혀살다가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방방 뛰며 즐거워한다.
전의 귀비라면 함께 웃으며 좋아서 배 위가 가라앉을 정도로 돌아다녔을 테지만,
자신도 어느샌가 알게된다. 많이 변한 모습. 화령의로서의 모습.
자유인을 꿈꾸던 소녀는 자신의 옛 추억으로 남게되었다.
이젠 양귀비라는 이름보단 화령(花領)이라는 명칭이 걸맞게 된 그녀였다.
그걸 깨닫은 민생은 귀비의 눈치를 보며 화재를 돌렸다.
"…귀비님. 전쟁은 언제 끝날까요?"
"……글쎄."
"흐음. 근데 물이 참 맑아요. 안이 다 보이는데요? 귀비님도 한번 봐보세요-"
귀비는 그냥 웃기만 하였다. 자신이 설월국(雪越國)에 처음 가던 날.
서연의 제안으로 천신도(天神島)에 가게 되었을때 민생과 같이 맑고 투명한 물을 보고선
감탄을 하였을 때, 지금의 자신의 모습처럼 서연은 미소를 지었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비슷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땐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회상을 하던 귀비의 신경이 자극되었다.
어디선가 좋지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귀비는 민생이 눈치체지 못하도록 금강실을 조심스레 손에 감긴 후,
시간이 조금 흐르도록 기다리더니 배 위에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물 속에선 영혼이 나타났다.
"꺄아아악~!!!!"
"도도(濤掉)!"
귀비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뻗어나간 실은 한순간에 영혼들 휘어잡았고, 영혼은 사라졌다.
안정적으로 배에 착지를 한 귀비는 영혼의 출연에 놀라서 쓰러진 민생을 쳐다보았다.
아까 말했던 민생의 물음처럼 전쟁이 언제끝날지….
어제 아원의 해몽이 떠오르며 귀비는 머리가 아파왔다.
***
"……."
사방도에 제일 먼저 도착한 나는 간단하게 유금과 인사를 나눈다음
민생의 안색을 살핀 뒤, 혼자 텅 빈 회의장을 메우고 있다.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무심코 옮긴 시선에는 우사(雨師)의 지정석이 들어왔다.
저 곳에 맨 마지막으로 앉은 사람이 바로 환희였었지.
흑유(黑流)라는 이름으로…. 앉은지 얼마 않지나서 지성의 말에 떠났었다.
……오늘 은유가 올 수 있을까.
[ 양귀비, 너 한은유 미치는 꼴 보고싶냐? ]
"……?"
고개를 자연스레 뒤로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잘 못 들었다고 단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히 들린 소리였다.
난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는데 또 다시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지금 한은유. 같은 용으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야.
우리들은 한은유의 자리를 빼았어야 하는데 도저히 불쌍해서 못하겠다고.
이 자식이 동정표를 얻을 정도로 미쳐있어. 누구 때문인지는 잘난 네가 잘 알겠네. ]
"누, 누구야!!!!!"
자리에서 일어나자 끼익- 하는 문소리가 들렸다.
"…귀비님."
"……안…녕하세요."
…사방도에 두번째로 도착한 지성이었다.
***
같은 시간. 우궁(雨宮)안 우사의 방안에 있는 은유와 언제나 그렇듯 설향이 있다.
지금부터 사방도로 출발해도 늦을 시간인데 안가기로 마음먹었단 뜻과 다를바 없는
은유의 모습은 가만히 서있던 설향의 입을 열리게 만들었다.
"…사방도에 안가실 건가요?"
"……."
설향은 대답없는 은유를 향하여 한발자국 다가섰다.
"……귀비님…때문인가요?"
"……."
"…만약 그런거라면 피하지 마세요.
잊지도 못하시면서…마음에 담아두는건……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
은유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설향은 지금 은유가 미간을 좁히고 있다는 것도 모른체,
자신의 말에 동요되고 있단 착각을 하며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잘 설득한다면 사방도에 데려갈 수 있는 희망감이 들었다.
"영혼들을 풀어 놓은 것부터 잘못된 행동이였어요.
힘들겠지만 지금이라도 모두 거둔뒤,
사국이 다시 안정되면 제게 흑유를 물려주세요.
그러면……."
"손 올라가지 전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마."
"……우…사님."
설향을 향하여 돌아선 은유는 그 어느때보다도 화난 표정을 하였다.
"난 지금 나하나 이겨내지 못하니까 사사건건 참견하지마.
…하아. 너한애 보면 볼수록 질리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당장 사라져."
"……."
차라리 소리를 치는게 설향은 더 좋았을거란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모든걸 다 포기한듯한,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싶지 않단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설향은 더 가슴이 미어지기만 하였다.
그래서 대꾸조차 못한 체, 눈물 흘리는 것보다 더 아픈 심정으로 방을 나섰다.
"……미안하다. 백설향."
***
서연도 도착한 사방궁의 회의장.
맨 처음 모두들 정기적인 전통으로 인하여 모였던 그 때처럼
오랫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인사만 주고받은 후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체,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그저 가만히 있기를 몇 분, 귀비가 입을 떼었다.
"……이제…설향님도 오셨으니…."
끼익-
누구랄것도 없이 문으로 시선이 쏠렸다.
유금이 나와서는 인사를 하자, 귀비는 은유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붙잡고 물었다.
"……은유…님께서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흑유(黑流)님께서 오셨습니다."
허탈한 기분도 잠시, 모두들 경직되었다.
유금이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조금 더 열리면서 암흑의 기(氣)를 풍기는 흑유가 들어왔다.
< 8 7 - 화령(花領)이 지켜주는 자 >
"안녕하십니까. 흑유(黑流)입니다."
귀비가 가장 놀라했다. 흑유와 처음 마주치던 그 날.
환희와의 사랑을 나눈 부풀었던 그 마음을 아주 쉽게 짓밟고선 두려움을 심어주었었다.
[ ……화령이신가 보군요. ]
[ 이마의 문양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시는건 아닐텐데. ]
[ …처음뵙겠습니다. ……흑유(黑流)입니다. ]
[ 못볼거라도 본 듯한 그런 눈빛 보기 거북하군요.…그럼 전 이만. ]
귀비는 한 마디, 한 글자라도 그의 입에서 나왔던 모든걸 잊을 수가 없었다.
"……여기는 무슨 일 이십니까."
흑유가 바뀐 사실을 모르고 있던 지성은 놀라기도 잠시,
아니꼽단 말투로 흑유…. 다시말해 은유를 내보내려는 생각이 보였다.
"전쟁에 관한 회의를 하신다 들었습니다."
"아하하. 전쟁을 일어나게 하신분이 이 회의에 동참을 하시려 한다니.
죄송하지만 농담 그만하시고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저희가 하는 회의는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하려 온 것입니다."
가면을 쓰고있는 남자의 눈빛하나 보이지 않는 지성, 서연, 그리고 귀비는
흑유란 남자의 마음 한구석 조차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갑자기 이 긴박한 상황에 나타나 제안을 내세운단 점으로 보아서 흑유는
전쟁을 전쟁같이 생각안한단 마음을 나타낸다는 말만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에겐 장난인걸 따지기 보다는 이 전쟁을 잠재우는게 더 중요한걸 아는
그들은 그 제안에 귀기울려야 했다.
"어디한번 들어보죠. 그 제안을."
"그런데 사람을 이렇게 세워두고 다그친단건 아무리 제가 싫더라도 너무하시군요."
"그럼 제가 유금을 불러……."
"아니, 그럴필요까진 없습니다."
지성과 은유의 대화를 잠자코 들고있던 서연이 유금을 데려오려 일어나는데
은유는 그것을 뿌리치고선 어디론가 자리를 옮겼다.
사방신 중, 지정석이 비워져있는 자리로. 자신의 또 다른 계급의 자리로.
"우사(雨師)님은 오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여기에 앉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곳은……!!"
이번에는 귀비가 막으려 하였지만 은유는 못들은척,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선 살짝 비웃음을 지닌체 멍하면서 허탈해하는 귀비를 보았다.
하지만 곧 시선을 피했다.
귀비를 오래볼수록 그녀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기만 해야하니까.
지성과 서연도 우사의 자리에 앉은 은유를 막으려 했지만 시간을 끄는 일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안에 관한 말을 이어갔다.
"일 분, 일 초가 급한 상황 입니다. 어서 제안의 내용을 말하시지요."
"……."
"……."
은유는 자신을 다그치는 지성에게서 귀비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치 귀비를 보고 말하는 듯 더 커진 비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저와 화령님이…."
"……!"
"……!"
"……?!"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 8 8 - 화령(花領)이 지켜주는 자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성을 일어나서 소리치듯 은유를 바라보았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기분나쁘기만 한 지성이었다.
같은 계급의 두 남자가 셋 중 하필면 모두 귀비를 택하여 고문을 준다는 일이.
귀비는 은유의 말을 듣고 나서는 정신의 반은 허공에 맴돈다 해야 옳은 것이다.
저토록 무섭고 두려운 남자와 자신이 칼을 겨누어야 한단 말만 들었는데도 등엔 땀이 한가득해졌다.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무릎위에 올려진 손이 덜덜 떨렸다.
귀비의 옆에서 그 모습을 묵묵하게 지켜보던 서연이 은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령을 결계를 이용하여 귀비와 했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 …환희는…. ……환희는 흑유가 아니에요. ]
[ ……그게…무슨…. ]
[ 제가 오늘…. 아니, 방금 진짜 흑유를 봤어요. 그런데…. ……문제는……. ]
[ ……. ]
[ 그 분이…. ……은유…같아요. …우사(雨師)님…. ]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은유를 그리워하는 귀비의 마음에서 생겨나온 착각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 말이 어쩜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는 태도나 말투를 약간 바꿔서 모를수도 있지만
여러면에서 우사와 흡사하단걸 파악한 서연이었다.
만약 흑유와 우사가 동일인물이면….
……흑유에게 유리하게 보이는 제안은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쪽에 기울어질거란 걸 알게되었다.
"……흑유(黑流)님께서 만약 화령(花領)님과 대결하여 패하신다면….
…이 전쟁의 끝을 내주시는거. 어떠십니까."
"서, 설화(雪花)님. 지금 무슨 소리를!!"
"…좋습니다. 하지만 화령님께서 패하시면….
……전 사국을 지배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지성과 귀비에겐 그야말로 어이없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은유의 뒷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다.
'전쟁의 끝' 과 '사국의 지배'의 중대한 대결을 두 남녀의 가벼운 농담식의 대화로 결정짓는 것부터가
말이 될 수 없었다. 더군다가 승리에 가득찬듯 웃고있기까지 하는 서연의 표정은 지성과 귀비의
화까지 나게할만한 모습이었다.
"……서연님은 도대체 어떤 자신감으로…. 전 흑유님을 이길 수 없어요."
"이길 수 있어요."
"서연님 그건 억지 입니다!"
"아니요. 이건 억지가 아닙니다. 흑유님께서 제 무덤을 파신 일 입니다.
……흑유님이 그 사람임이 맞다면요…."
"……그…사람…요?"
서연의 표정에서 귀비는 읽게 되었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서연도 흑유를 은유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기실 꺼에요. …무슨일이 있어도.
승패는 귀비님 손에 달렸어요. 전 믿을게요."
귀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때 만큼은 서연이 싫었다.
만약 정말 은유라면 귀비는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그를 이겨야 할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
유금의 허락을 얻어서 나와 흑유는 사방도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의 위에 자리잡았다.
보통 사람같으면 바로 물 속에 빠졌겠지만 조금의 기(氣)만 잘 잡으면 물 위에 서는건 별 어려움이 없다.
흑유를 바라보는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국을 위해선…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아마 지금 생길 일 때문에 나와 그는 다신 볼 수 없다고 해도….
난 자유인이 아니니까. 한낯 평범한 여자가 아닌 한 나라를 지킬 신이니까.
…정에 치우칠 어린애가…아니니까….
손에 쥐어진 검을 꽈악 잡았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당신이 은유가 아니였으면 좋겠어요.
< 8 8 - 화령(花領)이 지켜주는 자 >
챙 - 챙 - !!
한동안은 나와 그의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서 약간은 어색한 나의 칼놀림에 비하여
그의 칼솜씨를 내가 몇번 막아낼 수는 있게지만 이길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정식적인 싸움으로선 난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챙 챙 -!!
사방도의 끝자락에서 우릴 바라보는 지성과 서연의 눈길이 의식되어졌다.
살짝 내 입술을 짓누르고 있던 중…. 나는 검을 떼어 떨어지며 입가를 넓혔다.
눈웃음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가소롭다는 듯이.
"……!"
그 때, 흑유는 흠칙하며 놀라는게 눈에 띌 정도로 보였다.
나는 이때다 하는 생각으로 그를 향해 검을 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피한 그는 몸이 둔해진듯 싶었다.
난 그럴수록 마음이 편칠 않았다.
그리고 빨리 이런 기분나쁜 싸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화령(花領)의 이름아래 그들을 거느리로다, 여화령(女花領)!!!"
내 등뒤로 붉은 빛깔의 주작의 성복을 입은 여자의 형상이 흑유를 향해 돌진했다.
"흑유를 거역한 자 마땅한 벌을 받으리, 사살형(死殺刑)!!"
그가 쥐고있는 칼과 같은 검은 형상의 수십개가 나의 여화령을 향하여 돌진하여 싸웠다.
둘의 싸움이 계속 될수록 나와 흑유는 그 기술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나는 말을 하기가 가장 좋을때라 판단하여 미간을 좁히면서오 아무렇지 않은척, 말했다.
"…어릴적부터…지금까지 흑유란 존재에 대해서……생각해왔어요…."
"……."
"그리고…얼마전……. …한가지 결론을…내렸어요."
"……."
"……세상에서…흑유라는…존재가……제일…싫다는걸…."
"……!."
난 금강실을 다른 한손에 휘감어 흑유를 향하여 날렸다.
싸악- 하는 기다란 소리와 함께 그의 가면은 대각선의 방향하여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잘린 가면의 밑 부분이 강 안으로 빠지면서……보게되었다.
……흑유의 실체를.
< 9 0 - 화령(花領)이 지켜주는 자 >
"……."
"……."
그는 눈가가 찟겨져선 빨간 피가 세어나왔다. 난 그게 피눈물 처럼 느껴졌다.
증오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그를 쳐다보기 싫었다.
여화령과 대적하던 칼의 형상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얼굴에 걸린 나머지 반의 가면을 벗어 던진 그의 목소리는…. 목소리는…….
"……이런…거였어. …날 가지고 노려는 것…."
"……은…."
"내 이름 부르지마. …넌 환희가 되가고 있어.
……잠시나마…내가…미친거였어….
……너란 여자….
……사랑했던 내가 미친놈이였어."
흑유의 망토를 벗어던진 그…. …은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청룡(靑龍)의 신전.
온 세상이 황금빛인 이 곳에서 방황하듯 돌아다니던 은유는
갑자기 멈춰서서 자신의 안에있는 여덟마리의 존재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나와."
[ 뭐? 너 미쳤어? ]
[ 아하암…무슨 일이야아…. ]
[ 나오라니요? 어딜요? ]
[ 으음…귀찮은데… ]
[ 으흑흑, 안나갈래요~~! ]
[ ……. ]
[ 야!! 너 진짜 미쳤냐? ]
[ 무슨일 있었어? ]
모두들 한마디씩을 거들며 은유를 다그치기도 했지만….
그의 안에 살며 함께 동화되어왔기 때문에 다혈질의 화룡을 제외한 나머지 용들은
아무도 귀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화룡 역시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귀비를 사랑했다.
"…입닥치고 나와."
은유와의 말싸움만 길어질 것을 판단한 몇몇 용의 영혼이 빠져나와
청룡의 신전 바닥에 자리잡아 누웠다. 그렇게 모두들 나오자 마자….
은유는 두 손을 모았다. 바로 우사(雨師)의 기(氣)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물론 흑유로서의 기를 더 많이 사용한 은유로서는 우사의 기를 모은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애쓰는 은유의 모습을 보다못한 용들이 제각각 눈을 감아 자신의 기를 함께 모아주었다.
그제서야 점점 은유의 주변에 빛을 발하는 기는 그의 손으로 이동되었고,
은유는 그 손을 벽쪽으로 내밀어 작게 중얼거렸다.
여덟마리의 용들은 그가 어떠한 말을 할 지를 알고 있었다.
"…용(龍)의 결계."
푸른 빛이 크게 일렁이더니 은유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용들을 향하여 바라보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고맙다. 나란 놈이랑 같이 있어줘서."
그리고 그가 완전히 사라졌을 땐…. 그 빈자리엔 질퍽한 느낌의 진흙과 악취가 남겨져 있었다.
……되버린 것이다. ……'봉인(封引)'이.
***
"…갑자기 왜 도망간 것입니까."
"……."
지성은 은유가 사라져버린 이유를 물었고, 서연은 아무말 않지만 지성과 같은 생각인거란걸 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기엔……내가 더 나빠지는건 상관없지만….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 ……이런…거였어. …날 가지고 노려는 것…. ]
아직도…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그의 음성. 그리고 배신감이 가득한 말.
……아마 내가 졌더라도…. …그는 좋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냥 날 시험해 본거였다고 화령의 실력이 이 정도 였냐며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난 그를 너무나…….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도 미안할 따름이다.
내가 그를 버린 것이다.
…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나 자신에 의하여….
"……절 봐줬어요. 저에게 진 사람처럼 절 봐줬어요.
그리고 전쟁을 곧 끝내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간 것 뿐이에요…그것…뿐이에요…."
"…다 보여요, 귀비님."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내 손에 쥐어진 그가 입던…흑유의 망토엔 눈물방물이 떨구어졌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많아지면서 목메인 나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퍼졌다.
"……나…는…. ……나쁜…여자에요…."
첫댓글 담편빨리 나왔음 좋겠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