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당구대회에서 세계적인 당구 스타 자넷 리와의 맞대결로 시선을 모은 차유람 씨(19세). 아직 10대인 그는 꿈도 욕심도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큐를 잡고 당구를 시작한 그는 중 2 때 학교를 그만뒀다. 당구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다. 학교를 가진 않았지만, 하루 종일 당구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데, 여기저기 시합을 다니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가네요. 계속 기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요.”
서울 서초동 유니버설 코리아의 당구 연습장.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조금 지쳐 보였다. 키 차이가 많이 나는 자넷 리와 대결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카리스마를 내뿜던 시합 장면과는 달랐다. 투명한 피부에 커다란 갈색 눈이 깊어 보였다. 생각도 깊었다. 무얼 묻든 한참 생각한 후 조용조용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게는 갑작스러운 대중의 관심이 ‘폭력’이 됐던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어떻게 왜곡될까?’ 걱정하는 듯 말을 아꼈다.
9월 중순 우리나라에서 열린 예술구 대회 ‘트릭샷 매직 챌린지’ 결승에서 자넷 리와 맞붙으면서 그에게 카메라 세례가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10대인 소녀가 최고의 당구 실력을 갖춘 데다가 눈에 띄는 미모라는 게 대중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단번에 인터넷 검색 1위에 오르고, 그의 미니 홈피에는 하루 1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간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스타 탄생’을 질투하는 악플도 달렸다.
‘어린 여자가 당구를 하느냐’는 편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가면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당구를 열심히 하면 언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지’라는 바람도 컸다. 그런데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 그는 편치 않아 보였다. 당구 실력이 아니라 자신의 외모로 관심이 집중되면서 자신의 껍데기만이 사람들 사이에 공유돼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 자신을 지키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직접 보니 더 예쁘다”는 말에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대회 때 화장을 하고 나가 그 모습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으니, 이제 계속 화장을 하고 다녀야 하지 않는가 하는 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은 그의 맨얼굴이 화장한 얼굴보다 훨씬 매력적인데도 말이다. 스타덤에 오르면서 느끼는 갈등과 부담…. 그는 지금 그 ‘통과의례’를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깊이 생각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 갈등은 더 큰 것 같았다.
중 2 때 학교 중퇴하고 당구선수의 길로
그 가운데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말할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열세 살 때 학교 울타리에서 벗어나 또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학교는 당구 시합 다닌다며 자주 결석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다는 그는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까 무척 궁금하고 흥미로웠다”고 한다.
당구 선수가 되기로 한 이상 그의 목표는 ‘세계 챔피언’. 그러나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데생 연습을 할 때는 “연필 하나로 뭐든 묘사해 낼 수 있다는 데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드럼도 바둑도 배우고 싶다. 열심히 드럼을 쳤는데, 팔에 근육이 뭉치면 당구 치는 데 장애가 된다고 해 포기해야 했다. 공부는 요즘 ‘심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게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당구를 앞서지는 못한다.
“7년 동안 어떻게 버텨 왔는데, 당연히 당구가 우선이지요.”
2003년부터 각종 국내 대회에서 1~2위를 차지한 그의 다음 목표는 세계 랭킹 앞쪽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 오는 11월 중순에는 ‘월드 주니어 챔피언십’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하고, 12월에는 카타르에서 열리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8볼 포켓과 9볼 포켓의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외국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그가 처음 큐를 잡은 것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전라도 완도에서 ‘달리기 선수’로 유명했던 아버지는 유람이와 그의 언니, 두 딸을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었다. 처음에는 두 딸 모두 테니스를 시켰다. 좋은 선생님을 찾아주려 완도를 나와 전국을 다녔다. 이사만 10여 번. 엄마는 가는 곳마다 식당을 하며 아이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러다 당구로 전환했다. 자넷 리가 활약하던 때라, 여자 운동으로 당구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 유람이는 실업팀에서 관심을 보일 정도로 테니스 선수로도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딸들은 아버지 뜻을 따라 당구학원에서 함께 연습하기 시작했다. 2년 전 언니가 호남대에 입학하면서 유람이 혼자 길을 가게 됐다. 여자 선수가 귀한 곳이라 더 외로웠다고 한다.
최근 열린 당구대회에서 자넷 리와 대결하는 차유람(왼쪽). | 연합뉴스 제공 |
5년간 유람이를 지도한 ‘유니버설 코리아’의 박석준 사장은 “밤늦게까지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체력 소모를 해 속상할 때도 많지만, 시합 때면 독기를 내뿜으며 평소보다 더 실력을 발휘하는 타고난 승부사”라고 그를 평가했다. 자넷 리와 2005년 2006년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자인 김가영. 쟁쟁한 선배들과 대회를 하면서 떨리지 않았을까? 그는 “별로 신경 안 썼다”고 한다. 한 큐 한 큐, 내 것만 생각했다고.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경기를 할 때마다 ‘신 앞에 예배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당구 시작할 때는 공을 치지도 않으면서 자세 연습만 1000번씩 반복하면서 기초를 닦았다. 3년 전부터 국내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그의 별명은 작고 파워풀하다고 ‘미키 마우스’. 그러나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일단 올해 목표대로는 되어가고 있어요.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면 지금보다 2배 이상 실력이 향상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더 집중해서 연습을 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져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다 된 것처럼, 저를 대단한 사람처럼 보려고 하니 솔직히 부담스럽고 두려워요. 아직 자랑할 시기도 아닌데.”
그는 ‘네티즌’으로 대표되는 대중이 한꺼번에 관심을 퍼붓다 갑자기 돌아서거나 작은 일에도 비난을 퍼부을 수 있다는 생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당구 연습장을 나서며 속 깊은 그가 더 이상 ‘얼짱 신드롬’에 휘말리지 않기를, 그래서 자신의 계획대로 한발 한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진 : 이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