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박명제 의원의 파독 광부, 간호사 예우와 지원에 관한 입법 공청회
어
제 예의 입법 공청회에 초청을 받아 가보았다. 그냥 일반 공청회와 같이 또 모였다 헤어지는 공청회 인줄 알았다. 그러나 뭔가 좀
달랐다. 우선 첫째 동 공청회를 주관한 박명제 의원이(행자부 장관 출신 -포항이 지역구) 솔직한 자기심정을 표출하였다. 본인이
지난 80연대 유학차 화란으로 유학을 가서, 김다현 씨 등으로부터 체험한 이야기를 하였다. 김다현 씨는 내가 처음 Bonn 에
갔을 때인 지난 72년도에는, 그곳에서 회란으로 떠난 뒤였고 2번째 Bonn 에 갔을 때인 85년도에는 대사관 근교에서 동양
식품점을 하고 있었고 안광은 빛을 발하여, 처음부터 예사 인물로는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점심을 하고 오니, 난리가 났다.
김다현 씨가 이디서 가저 왔는지 ‘도끼’를 들고 와, 당시의 외신과장이던 이OO과장 방 입구에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질
않은가? 나는 하도 놀래, 정신을 못 차릴 지경 이었다. 맨 처음엔 “도끼‘를 휘두르는 김다현 씨를 보고 ”저게 사람인가“하고는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교포들을 잘 아는 참사관도 같이 있었단 이야기가 돌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여 내가 맨 처음으로 용기를
부렸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 잘난 도끼로 사람을 처 보라고 ’도끼‘에 맞선던 것이다. 이러고도 태권도 2단이란 말인가? 하는
비아냥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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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는 대사 때이고 이미 Berlin 에 이사 와서 대사관 짓고, 관저를 사느라고 돌아다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두 분
모두를 잘 아는 나로서는 우선 동인의 솔직함에 신뢰가 갔다. 그래서 두 분 모두를 믿기로 하였다. 김다현씨는 최근에 와서
아이들도 변호사사로 잘 컸고, 유럽 총연합회란 단체를 만들어,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그때는 참 미웠다.
대사관 분위기도 나쁜 쪽으로 흘러, 나는 고생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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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공청회는 내가 박 장관과 김 회장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주 성공적이었다. 근래에 보기 힘든 공청회였다.
내용면에서도 하태경 서울 Glueck Auf 회장이 물러나고 이재명, 김호식, 옥천봉, 김순희, 김점봉, 최희석 씨 등 반대파
사람들이 잡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박장관도 어디서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한 말씀을 하셨다. 조직이란 것을 만들면, 왜 그리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는 새로운 조직을 앞으로 이끌 세대에게 한 말씀하셨다.
‘제발 싸움은 고만하라고!“ 그리고 그의 보좌관은, 혼자만 남고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는 하태경 회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격리로, 회의를 조용히 하려고 그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잡고 있었다고, 추후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랬다. 그래서 회의 내내
조용하였구나 하고는 생각 하였다. 이 반대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화회장이 정부에서 출연한 회관의 문도 엊그제 안 열어
주었다고 우르락붉으락 하였다.
참
고로 나는 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들의 하는 행동을 개인적으로 찬성을 하면서도 이들과 산(산악 반)에 가는 것이
좋아, 합류는 하면서도 이들의 행동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고, 첫 대사로서 aloof 하려고 처음부터 노력하였다. 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나는 처음부터 하 회장을 빗대, 비방하지 말라고, 독일에서 만약 서울의 Glueck Auf 임원진이 서로 비방을
하드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느냐고 하며, “싸움을 말도록!” 설득하여 왔다. 그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내 앞에서 하 회장 파를
비방해온 사람이 없다. 이점을 나는 높이 산다. 그 짧은 시간에 박 장관은 하 회장 찬성파와 반대파를 간파한 것으로 감지되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회의 준비는 물론이고 국제시장을 감독한 윤재균 감독이 회의 전날 외국에서 촬영하다가 귀국하여
인사를 하였고, 회의 발제 및 좌장을 한 경상대의 이영석 교수의 회의 준비도 완벽 하였다. 유사한 포럼을 준비하였던 나는 공청회
준비를 한, 박 장관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토론자로 나선 4명(권이종 박사: 퇴직광부이자 현 교원대 명예교수)도 그 연령이나
경력 면에서 잘 골랐다. 우선 연합통신의 강성철 기자는 3-40대를 잘 반영하였고, 국회에서 입법조사를 하는 한인상 박사도
2-30대의 유학파로 잘 골랐으며, 이진영 교수도 5-60대를 대표하고 또한 우즈케스탄 등 교도문제를 연구하여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인쇄물도 좋았으며 모든 준비가 꼼꼼하게 완벽하여 나도 하도 오래간만에 봐서, 처음에는 저 양반이 맞나 어떤가로, 아리까리
하게 느껴졌던 분인 박 장관께서 고생이 많으셨다는 이야기가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리고 함께 잠깐 배석하였던 (국회 외무전체 회의가 열려) 새누리당의 당대표이신 김무성 의원 및 원내대표이신 유승민 의원이
다녀갔고, 세월호 사건 당시 담당주무장관이시던 이주영 장관 등 4명의 분과위 워원장 등 34명의 국회의원이 다녀가 그 인기도를
절감하게 하였다. 이는 박장관의 언급대로 10명의 국회의원이 법안 1개를 발의할 수 있는데, 그 인기가 그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배석하였던 강남갑의 심윤조 의원은 동 의원이 외교부 출신답게 나를 독일광부 관련사항이라 하여, 추켜세워 소개하여, 박명제
장관께서 나에 대한 확신이 생겨, 그분의 소개로 인사를 하였고, 이에 토론자로 나선 권이종 교수와 Floor 에서 질문을 하던
분들도 나를 언급, 내 존재를 분명히 하였으리라! 이래서 나를 안내하였던 분들도 내가 대사 출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재인식
하였으리라. 회의가 끝나자 나는 아픈 몸을 끌고 4시간 이상 나왔다는 피로가 겹쳐, 화회장의 반대파로써 나를 초청한 사람들에
합류하지 못 하고 회의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향하였다. 이점을 끝내 아쉬워 한다. 그들의 눈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추웠을까? ,
끝.
첫댓글 애쓰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나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