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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기절기인 하지(夏至)의 뜻은 "여름에 이르렀다."다. 하지는 1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때로 낮 시간이 매우 길고 밤 시간이 짧아진다. 태양 횡경이 90도가 되는 때로 날짜는 양력 6월 21일경이다.
하지 무렵에는 과일들이 맛있게 무르익고, 모든 동물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그야말로 길게 드리워진 햇살 아래 모든 생명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절이다.
농촌에서는 하지 무렵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여겼기 때문에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24절기란 태양이 지구를 도는 시간을 상정하고, 15도씩 옮겨갈 때마다 절기 한 개씩을 넣은 것을 말한다. (시간을 산정하기 위해 개발한 ‘개념’인 것이지, 물리적으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옛날 학설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그려진 원의 아래와 위에 동지와 하지를 그려 넣고, 왼쪽에는 춘분, 오른쪽에는 추분을 표시한다.
나. 동지란 (북반구에서) 태양이 가장 낮게 뜨는 날이다. 즉, 일 년 가운데 정오에 해의 그림자가 가장 긴 날이며, 그것은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긴 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 둥글게 그린 태양의 길, 즉 황도를 시곗바늘 도는 방향을 따라가면, 제일 위쪽이 하지가 되고 90도씩 돌아가며 추분, 동지, 춘분이 된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했다. 이렇게 점 네 개를 만든 다음 이들 네 점의 가운데에 점을 찍고, 각 지점마다 ‘입(立)’이라 써둔다. 시곗바늘이 도는 방향의 순서대로 이 네 점이 각각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 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의 문턱이 바로 이들이고, 24절기에서 그들의 자리는 바로 동지, 추분, 하지, 추분의 중간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24절기 가운데 8절기는 아주 쉽게 생성해 보았다.
라. 24개의 절기 중 8개를 만들었으니, 16개가 남았다. 8개의 점 사이에 2개씩의 점을 찍어 채우면 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절기 이름이 이들 가운데 어디에 들어가는 게 적당할까를 궁리해 보면 24절기가 모두 머릿속에 들어올 것이다. 우선 소한(小寒), 대한(大寒)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옛말도 있으니 대게 소한 때가 한 해 가운데 가장 추운 때다. 그렇다면 원 안에 소한과 대한을 표시할 자리는 겨울인 동지와 입춘 사이가 될 것이 뻔 하다.
마. 추위를 논했으니 그 반대인 더위가 남았다. 소서(小暑)와 대서(大暑)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소한과 대한의 반대 위치에 있다. 이쯤 되면 소설(小雪), 대설(大雪)이 들어갈 위치도 뻔해진다. 눈이 오는 때는 겨울이다. 우수(雨水)와 경칩(驚蟄)도 마찬가지다.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으니 우수, 경칩의 자리는 봄 언저리다. 이제 애매한 것들만 남았다. 청명(淸明)과 곡우(穀雨), 소만(小滿)과 망종(芒種), 처서(處暑)와 백로(白露),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다. 이것도 이들을 둘씩 묶어 차례대로 알고 있다면, 그 뜻을 보아 어느 자리에 속할지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 절기란 무엇인가?
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1년을 365일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365.2422일이 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으로 한 달은 29.5일이며 1년으로 환산하면 약 354.37일이다. 음력과 양력이 11일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 이렇게 해마다 차이가 쌓이는 것을 방치해두면 16~17년 쯤 지나면 음력 1월이 여름이 되는 사태가 발생 한다. 즉 월과 계절이 아예 어긋나버려 일상적인 농사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공식에 따라 몇 해 마다 한번 씩 윤달을 집어넣어 오류를 바로 잡는다. 즉 양력과 음력이 늘 정교하게 맞지 않아 때때로 한꺼번에 ‘정산’한다는 말이다.
라. 농사를 주업으로 했던 옛날에는 양력과 음력, 즉 계절의 변화와 날짜를 셈하는 것이 항상 정교하게 일치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음력을 기준으로 하되, 양력의 성질을 삽입해 계절변화를 정확하게 예상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절기’가 등장하게 된다.
마. 24절기 원리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 동안 360도 돌게 된다. 이 궤도를 황도라고 한다. 절기는 이 절기를 24등분하고, 추위나 더위, 기후변화 등 그 시기의 특징에 따라 24 절분 하나하나에다 의미 있는 이름을 넣은 것을 말한다. 이렇게 대략 15일 간격으로 나타낸 달력이 바로 절기다.
3. 24절기는 언제 도입 됐을까?
가. 달력은 시간을 계산하고 표준화하여 생활과 생산(특히 농경)에 이용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추워지고 더워지고 하는 것이 반복하는 기후변화에 뭔가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의 자연스러운 과학적 호기심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나. 그런 의미에서 음력 또한 자연스럽다. 태양은 언제 봐도 동그란 모양이지만, 달은 찼다 기우는 모양이 워낙 눈에 띄고 하루하루 그 변화가 역동적이다. 옛날 사람들은 그 변화가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달을 일종의 시계로 이용했을 것이다. 그것을 기록해 둔 것이 달력, 즉 음력이 된 것이다.
다. 24절기는 본질적으로 음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음력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음력의 역사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자.
라. 음력은 원래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에서 제작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달력은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하여 태양의 운동이 반영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계절변화는 태양의 운동에 의한 것이므로, 음력 날짜와 계절의 변화가 잘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음력에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24절기다. 이런 달력을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라 한다. '陰'은 '달'을 뜻하고 '陽'은 태양을 뜻하므로, 달과 태양의 운동을 모두 고려하는 역법이란 뜻이다. 우리가 '음력'이라고 부르는 시간의 표준은 바로 태음태양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24절기는 처음부터 음력과 함께 도입이 된 것이다. 음력이 중국 화북지방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24절기가 우리나라 기후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백제가 중국에서 들여온 송(宋)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을 사용했던 기록이 남아 있고 고려 충열왕 17년(1291년) 원나라 사신 원통에 의해 태음력이 도입되어 충선왕때 널리 사용했다. 그 후 조선 세종대왕 시기에 일종의 태음력인 칠정산 내편(七政算內篇)과 외편(外篇)의 역법을 만들었다. 이때 비로소 중국식과 차이가 있는 우리식 절기 제작에 대한 노력이 처음으로 보이게 된다.
4. 24절기는 양력인가 음력인가?
가. 우리는 음력을 쓰던 민족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음력과 관계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양의 운동이 기준인 양력과 달리 음력은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날짜를 정한 것으로,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 등이 모두 양력이 아닌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이다. 음력 대신 양력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양력 1년을 나누는 기준을, 뜨고 지며 완성된 12개의 달(月)을 의미하는 ‘12개월(個月)’로 표기하고 있다.
나. 관습으로 만들어진 언어 역시 이를 잘 뒷받침 하고 있는데, ‘한 달’, ‘두 달’, ‘지난 달’, ‘다음 달’과 같이 단위조차 ‘달’로 쓰고 있다. 우리가 날짜와 시간을 셈하는데 얼마나 달과 관계된 음력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입춘’, ‘경칩’, ‘동지’와 같이 우리의 삶과 가까이 있는 24절기를 음력으로 알고 있다. 사실과 다르다. 24절기는 음력을 기준으로 정한 날이 아니다.
5. 음력에 양력성분인 24절기를 넣은 까닭은?
가. 순 음력으로는 계절이 맞지 않고 계절이 잘 맞지 않아서는 농사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 우리가 그저 `음력`이라 하지만, 사실 엄격히 말하자면 `태음태양력`이고, 우리가 흔히 `양력`이라 부르는 것은 `태양력`을 줄여 부른 이름이다.
다. 태양력은 고대 이집트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로마에 의해 계승되고, 그것이 다시 중세 서양 사람들을 거쳐 지금 세계 공통의 역법이 된 양력은 태양 운동만을 따지는 시간 계산법이다.
라. 계절은 태양의 운동이 결정한다. 따라서 양력은 계절을 잘 맞춰 준다. 그러나 순 음력으로 달의 운동만을 기준 삼아 쓴다면 계절을 맞출 수는 없다. 따라서 날짜 가는 이치는 달의 운동을 따르게 하고, 계절 가는 이치는 태양 운동을 따르기 위해 순 음력 속에 24절기라는 양력 성분을 넣어 `태음태양력`을 만들어 발전시켰던 것이다.
6. 음력보다 양력이 더 정확한가?
가.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달은 날을 계산하는데 무척이나 편리하다. 음력을 쓴 것은 자연스럽고 정확한 날짜 계산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절의 흐름을 잘 알고 미리 대비해야만 했다. 그래서 태양의 운동을 알 필요 가 있었다. 이 둘을 섞어 쓴 것이 태음태양력, 즉 음력이다. 어떤가? 합리적이지 않은가?
나. 우리는 자칫 달의 운동을 무시한 서양식 양력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서구는 과학적, 우리 옛것은 부정적으로 인식된 유교사상과 맞물려 미신적, 단순 명분적, 비과학적이라는 선입견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이는 크나큰 오류다. 굳이 얘기하자면, 양력도 당연히 단점이 있다.
다. 2월이 28일인 것과 7월과 8월이 연속해서 31일인 것은 아무런 쓸 데가 없고 그렇게 해야하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라. 심지어 8월을 의미하는 ‘August’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데, 지기 싫어하는 그가 8월을 꽉 찬 날짜인 31일로 하라고 명령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또, 한 해를 시작하는 기준이 되는 1월 1일은, 양력으로는 자연의 변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세계가 양력을 쓰는 것은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지 양력 그 자체가 음력보다 더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