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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좌(26)】 ‘결국은 마지막에는 옳은 게 이긴다" 信天함석헌
요한복음 261)
이 세상에서는 그 관계는 늘 이렇게 봐요. 지금 이제는 물론 여기가 생각할 점이에요. 맨 이런 얘기하면 그래요. 선생님 그러면 가망이 있습니까? 될 것 같습니까? 그래요. 난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사람이에요. 될 수 있고 없고는 그건 둘째 문제고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 할 일이냐 안 할 일이냐 그래요 할 일이란 다면 가망을 묻지 않아. 될 가망이 있고 없고 묻지 않고 하는 게 옳은 사람이지. 무엇을 될 수 있냐 없냐 그건 왜 묻나? 그러니까 가망으로 하면 미리 아시오. 이 세상에서 영 마지막까지 세상은 바로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에 저 요한계시록의 기자도 마지막까지 죄악이 자꾸 이긴다는 거 아니요.
그래 그 종말론에 그래 그러다가 아마겟돈 싸움에서 이긴다고 그러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이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더 악해진다. 악해질 건데 그러다가도 결국은 마지막에는 옳은 게 이긴다. 어떻게 이긴다는 말없어. 그건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지 종말론적으로 되는 거지. 그런데 그러니까 혼동을 해서는 못써요. 혼동을 해선, 인제 이세상의 역사가 이 앞으로 가려면 몇 천 년이던지 몇 백 년 이후에 정말이지 메시아라는 사람이 무슨 예수님이 다시 저 구름위에서 내려와 가지고 이런데 헌것 다 고쳐야겠다. 아주 합법적인 법을 만들어 가지고 세상을 바로 만든다든지 그적에 예수를 믿던 사람들이 정말 참 아주 흰옷을 입고 거기 나와서 무슨 그런 따위의 생각을 하면 천만에 그건 아주 크게 낙망을 할 거예요. 미리 아시오. 절대 안 올거라구. 내 절대소리는 내가 하는 높은 거지만 안와. 그런 아주 혼동이야 세상 그렇게 안될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이겨서 결과를 얻을 줄을 목표하던 사람은 어서 물러 어서 공화당으로 가세요. 뭐 지금 그런 생각했다면 아예 원 밑질 거니까 현실에 이기는 걸 목표를 할 생각 있으면 될수록 악한 놈의 편에 들어서 철저하게 비양심적으로 하는 델 들어야 이기지 그건 못 이기게 마련이에요.
미국에서 조차도 어느 의견이 이기냐? 그건 군벌의 의견이 이기지 뭐 민편의 의견이 이깁니까? 그건 미리 알아야 되요. 그럼 어떻하는 거냐. 그러는데 그러면서 이게 역사가 진행이 되가는데 그 의의는 늘 이김으로가 아니라 자기가 폐하므로 자기가 의가 의됨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런데 이면에서는 어떠냐 이 안쪽 이 메시아의 세계에서는 어떠냐 그러면 그런 것은 아니야 그건 시간 공간을 떠난 거 영원의 그건 이 순간에 있어요. 재림은 지금 벌써 지금 이 시간에 해요. 어저께도 재림했고 오늘도 재림하고 시시각각 무한 번이라면 무한 번, 한 번이라면 한 번 그런 거지 말야 뭐 언제 올랍니까? 언제 오는거 아니야 언제 왔다면 어저께도 지금 자꾸 오는 거야 그래 거기서는 벌써 우리가 이기고 있어야 돼. 세조의 모가지는 벌써 잘라 내가 다 잘랐어야 돼. 뭐 누가 잘라주기를 기다릴 것 아니라 나쁜 놈은 벌써 내손으로 다 지옥에 다 보냈어야 돼.
내가 누굽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지. 내가 내손으로 보냈어야 돼. 내가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 믿는 것 있으면 보낼 권리가 있어야 돼. 아 예수님인데 그래 “너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질 거다 땅에서 풀면 너가 풀 거다.” 거기가 우리 도덕적 우리가 옳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도덕적으로 판단을 하면 지옥에 보낼 수 있고 천당에 보낼 수 있다. 지옥, 천당이 딴 데 있는 거 아니야. 우리 마음에 도덕적으로 판단이 어디를 보내나 하는데 있는 거지.
박정희를 천당 보내고 싶으면 보내고 지옥에 보내고 싶으면 내게 있는 거야 내 판단에 있는 거야. 내 개인이 아니라 민중전체의 판단에 있다. 그 민중의 전체가 무어냐 그 민중의 전체가 도덕의 판단에 있다 그 말이야. 그건 지금 해야 돼. 이제 이따가 상황이 그런 소리를 기다리고 있어. 이제 이따가 투표기간이 오면 지금에 벌써 결정해서 그거는 현실에 나타난 그건 이제 어느 때에 가서 몰라. 어떤 씨는 심으면 사흘이면 된다지만 어떤 씨는 한 이십일 들어나는 거 있고 인삼씨 같은 거는 몇 달이 있다 나는 수가 있지 않아요. 몇 해가 있다 나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모르지 그거야.
내가 판단해서 판단한 결과 언제 날는지 모르지만 믿은 사람은 내가 판단해서 틀림없으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판단했으니깐 틀림없이 그 판결이 이제 고대로 집행하는 날이 올거다. 그러고 육체가 있거나 육체가 살았을 때 지금 오라지 이제 육체가 없어진 다음에 지금 올 수도 있어요. 상관없어요. 그런 걸 믿는 게 정말 믿는 참 믿는 거 난 그렇게 믿어요. 난 그 점에 있어선 까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계엔 있어선 시간이 없어요. 지금에 벌써 판단했어야 돼. 그걸 안하고 있는 게 둘을 구별해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별을 하면서 혼동을 해요. 섞어져 가지고 혼동을 해서 우리 민중들 우리 신자가 언제 가서 이길까? 언제가서가 아니라 벌써 다 이기고 있는 건데, 또 이 세상나라 언제? 바로 되긴 바로 돼, 그건 안 망가져 늘 그럴 거다. 네가 그것도 모르냐. 그런 가운데 있어서 지금에 있어선 이 내적 영원한 문제에 있어선 벌써 이기고 있기 때문에 그러해 이긴 그 마음이 역사를 해가는데 그게 반영이 돼 가 그게 돼.
그러는 것이 이 역사의 운전이 돼 가는데 말로하기 어려운 무슨 신비랄 신비 아직 이담엔 이제는 어떻게 뭘로서 우리가 체험이 되갈는지 모르지만 지금에 걸 그 이상을 말할 수가 없어요. 꼭 우리의 판단대로 뭐 결과가 다 도덕적인 판단으로 일치해서 좋고 언짢고 결과가 나지를 않아. 그런 데가 인간이야. 난 그렇게 난다면 좋을 것 같지 하지만 그런 게 난다면 그건 물질에 세계지 인간에 그런다면 의미가 없어요.
불 때면 말이야 아무가 와서 땠어도 고만한 온도 올라가지 아무가 물을 끓여도 100도 되면 틀림없어 끓어 식모가 아무 천치 바보였던지 간에 대학졸업생 와서 끓였던지 물 100도부터 끓는 거 틀림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세계는 좋아요. 허지만 인간의 세계도 그런다면 도덕이란 거 있을 거 없지. 어떤 땐 되나오기도 하는데 어떤 땐 안 돼 나온다. 되긴 되는 건데 안 되나오는 것같이 뵈는 게 거기가 굉장히 복잡하게 현실의 세계와 믿음의 세계가 얽혀서 어려워.
이제 이런 것 때문에 차차 깨가는 과정에 있는 이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라고 하는 이 세상까지도 저 세상에다 이렇게 붙여가지고 이곳에 복잡한 의미를 인정을 안하고 거저 비가 오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아무개가 폐병이 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럼 죄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지. 그렇게 설명하면 옛날에는 간단해요. 좋았어요. 그런데 그런 거 아니거든 옛날에도 그런 거 아니에요. 이건 이것 때문의 법칙 있어 되가는 거 있어요. 근본의 관련은 여기에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것대로 돼가는 거, 폐병 난 것이 결코 그 사람이 악독해 난 것도 아니고 얼굴이 이쁘게 난게 그 사람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뭐 더 선한 행위 때문에 곱게 난 것도 아니고, 해를 많이 졌기 때문에 이쁘게 날수도 있고 그런 거 알 수 있어요.
그런 거 이것과 직접 요렇게 통변이 안 된다. 통역이 안 된다. 그 말이야 그런데 옛날에는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인간 역사를 풀어가니깐 많이 풀려 되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잘 안된다. 왜 이게 굉장히 이제 발달이 됐어. 발달이 되기 전엔 단순하니깐 그랬는데 그 비슷한 실례를 든다면 옛날의 살림이 간단하니깐 이 시간 이게 태양으로 되겠만도 과이 착오가 없으니까 달을 중심으로 태음력을 역서를 만들어 가지고도 모든 걸 해갈 수 있었다, 그 말이야. 그런데 아무래도 보면 그야 태양 중심이 옳지 태양력이 옳지는 않는데 어떻게 그럼 옛날에는 태음을 달을 그 표준하고도 됐습니까.
천문의 스케일이 원체 크기 때문에 저거것만 이것도 어느 막으로 되는 게 무슨 법칙 있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금씩 착오가 나면서 돼. 그 조금 착오 있는 것이 우리 생활에 직접 큰 해를 미치지 않아. 그러니까 가다가 3년 만에 1번씩 윤달이라 하는 것만 두면 그걸 고쳐갈 수 있어. 그러니까 음력가지고도 해가. 요새 어쨌든 이젠 뭐 원체 세밀해졌기 때문에 그따위 음력가지고 하다간 불편해서 안되게 됐으니깐 실상 음력은 그만두고 양력을 쓰게 돼. 그 모양으로말야.
옛날엔 잘살자고 못사는 거 하나님에게 선을 행했냐? 악을 행했냐? 그저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화 받는다. 그렇게만 하면 이 세계를 직접 요렇게 맞춰가지고 그렇게 설명을 해서 그런 신학 따위를 가지고 문제가 되가니깐 쉬웠는데 지금은 차차 인간이 이제 발달을 해가면 그게 잘 안 돼. 벌써 그 의심이 역시대에 나서 여기 그 때문에 의심 왜 의인은 잘산다고 그랬는데 나 무슨 각별한 죄짓지 않았는데 왜 우린 임금한테 하루에 벼락 맞아 죽었냐? 왜 그랬느냐? 나 하나님하고 싸운다.
그 소리 여기 있어야하니 여태까지 믿어오던 거 흔들렸다 그말이야. 그랬는데 종래적으로 하던 그 기성종교의 정통주의자들 네가 몰라 그러지 그럼 하나님이 잘못이 있겠나? 그리고 대들어도 그 욥이 머리를 숙이지 않아. “아 그 넌 모른다. 안그렇다. 내가 너 아는 것만치 모르겠냐 그렇지만 아니다.” 그래 마지막에 하나님이 어느 편을 따르겠느냐하면 욥편을 옳다 그러지 않아요? 신앙을 보면 정통주의적인 그 신앙 옳은 거 잘못 없이 옳긴 옳은데 “너 잘못이다. 욥의 말 들어라.”
그랬다는 데가 이 세상하고 이 세상을 그렇게 관계시킬 거 아냐. 그러니까 이점에는 그 많이 달라. 이게 우리나라는 상기도 그거 있습니다. 배만 아파도 나 어제 무슨 죄졌나보지. 그 마음은 갸륵하지만 그렇게 해가지고는 이 문제를 못 푼다. 구원을 못 얻는다. 그게 안타까워 근데 지금은 그렇게 특수 사람만 그렇지만 상기도 그런 게 적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대부분의 청년의 마음은 벌써 그런 말 못 듣게 생겼는데 말이야. 이 종교만은 상기도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할라고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받는다고 하는 게 틀림이 없습니까. 그 잘 그렇게 알고 그런 모양으로 이제 이 세계와 이 세계를 어떠해 관련을 이게 둘이 떨어진 것도 아냐. 둘이 서로 원수 것도 아냐 둘이 이제 하나를 이루는 건데 이 여기 다스리고 있는 원리와 여기 다스리는 원리가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 따라서 뭘 반응이 되는 그것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안 돼. 그래서 이제 마지막에는 종말관이라고 하는 얘기가 나와 무슨 일인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이 이 세상도 인제 바로 되는 때가 온다 그래. 그렇지요.
그건 영원히 영원히 언제 실현이 될는지 몰라요. 모르지만 실현이 안 되더라도 안 되면서 그걸 목표로 해 가는 동안에 이 세상에 이제 이 세상이 옳아지고 이제 우리가 거기서 악을 이기고 싸워나가는 역사의 진전이 있게 된다 하는 그러니까 뭐 이건만으로도 불충분한 줄 압니다. 나 자신의 마음으로도 벌써 아주 시원한 지경은 못 되요.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이만큼하고 어느 정도 풀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래도 대부분의 그 미해결 상태로 그저 좀 생각을 ‘아이 몰라’ 그러고 누가 아냐 그러고 그만두고 그건 안돼요.
그렇게 해가지곤 그러니까 여기 현실에 있어서 결과가 나오겠나. 안 나오겠나 그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하는 건 몰라요. 본래 더욱 이거 자꾸 말이 길어집니다. 결과 나오는대로 뭔가하니 우리 힘대로 만이 아니에요. 사람의 이 세계의 일에는 우리 힘이 참여하는 부분 있고 참여하지 않는 부분 있어요. 내가 모를 때에는 내가 할 일은 요것이 먹을 거냐? 안먹을 거냐? 요것 단백질이 얼마 있고 전분이 얼마 있고 지방이 얼마 있고 요거 관해서 배합에 먹는 거는 내가 할 수 있는 거지만 그 담에 들어가서 그거 섭취가 되는 거는 내 힘대로만 안돼요.
이 안에 있는 뭐 소화작용과 순환작용 이거 다 내 뜻대로 그건 또 그렇게 되지를 않아. 또 설혹 그게 그렇게 됐다하더라도 그 다음에 더 모를 건 뭔고 하니 살이 반드시 찌지 않아. 똑 같은걸 먹었는데 밤낮가도 빼빼로 있고 말이야 또 조금 먹었는데 살찌는 사람도 있고. 그건 맘대로 되지를 이 앞으로 연구를 하면 그것도 어느 정도 사람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줄 압니다만 그래도 또 그 다음에 또 무슨 문제가 남을 거예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그러면 우리의 일에는 우리의 힘이 가 닿는 부분이 있고 아니가 닿는 부분이 있어.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할 부분만 하면 됐고. 이러면 결과가 나오겠지 다른 요소가 합작을 해가지고야 나오는 결관데 공부만 잘하면 출세한다. 그렇게만 돼. 공부 잘해가지면 대개는 출세할는지 모르지만 해가지고도 출세하는 수 있고 못하는 수도 있어. 아이 뭐 사람이 양심적인이면 잘산다 못산다. 그런 더구나 뭐 이제는 물을 것도 없어. 옛날에는 양심적이면 성공한다고 그러지만 지금은 양심적이면 틀림없이 성공 못할 거다 그러게 말하는 거 낫게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달라지잖아.
그러니 우리의 노력할건 하지만 그담에 결과가 나오는 건데는 우리의 노력이라는 건 딴 요소가 또 들어가 그걸 운명이라 해도 좋고 하나님의 섭리라 해도 좋고 불가항력이라 뭐라 했던지 간에 하여간 다른 요소가 들어가서 된다는 건 하나인데 그러니까 그 점에 관해서는 내 욕심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야 돼요. 겸손하게 그래 난 나 할 것을 했으면 그건 어드런거 주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거 주어도 받으렵니다 나쁜 거 주어도 받으렵니다.
그 마음에 준비가 필요해 그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이 세계가 이 안세계가 여기가 옳게 돼. 여기가 옳게 돼야 전체적으로 하는 저 세계에 이제 옳은데 거기를 옳게 돼있는 인제 이런 관 이거 복잡한 관련입니다만 그런 거 있어놔서 이일에 무슨 할 때로 하면 곧 결과가 좋은 결과가 나오려니 그 기대 없이 누가 일하겠어요. 그렇지만 높은 정도의 사람 그 기대를 아니 하고 하는 것 기야요. 좋은 결과가 나올 줄 알면야 일을 안할사람 누구 어디 있어요.
왜 신민당은 신민당 저 꼴이냐. 결국은 나머지 그걸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저것 그것 밖에 못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해서 이게 그러니까 삶으로 정말 어음을 생각하면 사람이라면 결과 앞에 결과에는 벌써 하는 그 자체가 결과다 여기서 벌써 오늘 이 시간에 내가 예수 재림하는 예수를 만난다. 여기서 벌써 지옥 천당에 판결이 났다. 그러지 이따가 언제 하나님이 해줘. 그런 생각 여기하면 그걸로 만족해요 그걸 만족하는 것이 이게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까 말이 기본적인 조건이 뭐냐 지배 피지배의 관계 그러니까 이제 어제 했던 말을 또 하나 첨부할랍니다만 그건 저번에도 우리 그런 얘기한 건데 또 다시 내가 합니다. 이렇게 모이는 건 어느 의미론 소용이 없어 난 그 생각을 어디서 했냐 그러면 요새 워 캠프 하는데서 워캠프가 그 사람들보고도 그말 한번 하게 될겁니다. 좋긴 참 좋아 8 나라에서 와서 남자애도 오고 여자애도 오고 그랬는데 뭐 밉다는 사람 하나도 없고 탱큐 탱큐 그저 만나기만하면 탱큐. 그저 지내가고 그러면서 아주 친한 척 형제같이 요새 나눠먹고 나눠주고 잘 살고 또 노래 부르고 춤추고 좋다 좋다 그래 참 좋아요 그럼 천당 같아요.
하지만 과연 저거 어느 만치 깊이 들어갔겠나? 난 옆에서 내가 아까 난 그거만 보고 과연 어느 만치 깊이 들어갔겠나? 대체로 봐서 대단히 좋습니다. 금년에 인상은 대단히 나도 좋게 생각을 해요. 좋게 생각을 하지만 역시 그래도 아직 속고 싶지 않아. 그거 어느 만치 왜 어째 그러냐? 그러면 그 온 사람들이 다 뭔고 하니 좋다 좋다 그러고 그래 한 가지 여건 변경이 돼서 그렇지 딱 마음에 아주 변할 수 없는 걸로 결정을 하고 대하는 것이 있어 그게 뭐이겠소.
제 나라라 암만 친절하다 해도 자긴 인도사람이고 나는 한국 사람으로서 저 사람은 뭣사람 그게 이걸 안변하고 만나니 그 만난 것하고 어느 만치 깊이 들어갔겠나? 해마다 대개 한 쌍씩에 국제결혼이 납니다. 만났다가 연애를 해가지고 혼인하는 수도 있긴 그 사람들에겐 상당히 변동이 오긴 온 셈이지만 그거 하나인들 그래 단단히 뭘 국제결혼 했다고 뭘 별 변동이 있겠어요. 그래 그 다음에 사람은 더구나 좋다 좋다지만 그게 뭐 어드레2) 내 한국사람 그러니까 제국민이라 국가라 하는 것이 딱 변할 수 없는 걸로 결정이 돼 있는 한은 무슨 소릴 했어도 그게 어느 정도의 문제지. 결코 내 인격 전체를 변동시키는 데까지는 안 간다 그 말이야. 그게 최종 마지막에 결정은 그게 나라라는 게 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 어떡할 건가?
이 성경으로 이런 사람은 저거 예수의 말씀이야 우리 국제위원은 나 우선 하늘나라 백성이고 그 다음에 대한민국의 백성이고 난 모가지 자른 데도 그거 말하렵니다. 뭐 대한민국의 백성이고 그 다음에 그따위라면 난 예수 안 믿는다고 예수도 안 믿고 이 나라 백성노릇도 안하고 이 백성이 된다면 하늘나라의 백성노릇을 하며 하면서 하늘나라 백성노릇을 우선 하므로 말미암아 이 나라가 될 수 있다. 것과 것이 믿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러지 말이야 둘이 관계가 될 때는 난 이놈을 하나 내버리기도 하고 하늘나라 백성 노릇을 하지 뭐 이거 위해 내 종교 깨버리진 않습니다. 난 그것만은 여러분 앞에 공증을 해.
그러한 태도로 임하지 않는 한은 소용이 없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뭐 공산주의가 있는 한은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전쟁은 아무래도 불가피 합니다. 목사도 그런 소리를 해. 그런 게 예수와 무슨 그럴 때 말이야 거 너는 하겠으면 하지만 말이야 이 불쌍한 나사렛 사람 예수만을 제발 끌고 다니지 말라. 그 사람 자기주의에 철저하기 위해서 평화주의 해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인데 그건 왜 끌고 다니면서 말야. 예수에 대해서 미안하지 예수 이름만은 팔지 말고 철저하게 국민노릇 국민주의 하려면 국민주의 해요. 좋아요.
그렇지만 이 뭐 예수를 믿는다면 그건 예수가 봤던 그게 진리고 옳다. 우선 하늘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다 그 의를 그게 옳은 말이다. 그때 한마디로 그저 왜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겠나?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 그 점에 철저히 믿겠나? 그래 그 점을 철저히 믿기나 한다면 삼선이고 뭐고 있을 리가 있어요. 어디다가 감히 그 따위가 나온 짓이에요. 비겁한 건 크리스천이에요.
크리스천의 삶 참, 불교는 또 몰라요. 고렇게 분명하게 말해준 예수 괜히 그 예수 불쌍하게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 이게 무슨 사람들이야 도대체 이게. 다른 점 뭐 생활면이 다른 다야 말하겠습니까만 이 정치에 관한한 정치면에 관한한 그 비교적 말로야 쉽지 않아요. 아이구 거기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연애의 관계라 뭐 가족 그건 더 복잡해 그건 내가 감히 단순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지배 피지배 이 관계야 말로 이건 비교적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지 않냐. 환하게 보이는데 역사에 이건 대단히 급하겠는데 그러니까 좀 잘 멍청하고 있지만 말고 단단히 생각을 우리가 해보자 그 말이야. 그래야 한다면 우리 맘에 결정이 내리도록 하도록 다른 사람에게도 그걸 말씀해 줘야 돼요. 멍청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게 뭐냐 운명이 갈릴 때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한나라 백성이냐 정말 저게 백성이냐? 갈리는 간두(竿頭)에 우리가 섰다. 우리의 판단에 따라서(녹음이 끝나고 다음 강의로 이어진다)
오전 예배시간에 앉았다가 느낀 걸 하나 말씀을 하렵니다. 퀘이커들은 예배가 일정한 형식이 없고 또 어느 누구 한사람이나 혹은 몇이 예배를 주장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누구나 똑같이 모여 앉아서,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온 것도 아무것도 없고 준비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 주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저 침묵 아무소리 없이 고요하게 앉았다가 물론 그저 그렇게 한 시간 지내도 좋지만 또 그러는 가운데 누가 마음속에 이렇게 움직임을 받았다고, 성령의 움직임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그것을 뭘로 말로 하든지 노래로 하던지 뭐 성경을 뭘로든지 그걸 발표를 해서 감화라고 감화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만 하여튼 그 감화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나라엔 퀘이커가 생긴 지 이제 몇 해 되지도 않고 우리가 다 아직도 다 모두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렇겠지만 우리 모임에 앉았으면 감화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오늘도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이 지냈습니다. 이따금 말을 한댔자 내가 할뿐이지. 별로 감화하는 사람이 없어요. 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자신도 많이 인제 의문되는 때가 많이 있어요. 미국엘 갔을 때에 아주 퀘이커들의 제일 중심지라는 데서 하는 느낀 건데, 본래는 그 시간에 성령에 감동을 받은 것이 있으면 말한다고 그러는데, 있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글쎄 저 정말 감동을 받은 걸까? 제 마음속에 그저 한 소감 정돈가? 그렇게 의심되는 점이 많고 나 자신으로 혹 가만 앉아 무슨 생각이 나는 때 있지만 확신이 오지를 않아요.
이것은 내 생각인지? 성령의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 그래 주저 주저 해서 말을 아니 하고 그만두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 거긴 이제 오늘도 그래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러다가 그런 생각 사실은 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나부터도 되질 못해 그러지 참 바로 됐다면 그런 걱정 안 해. 말을 해서 걱정할 것도 없고 아니해서 걱정할 것도 없고. 믿음에서는 우선은 걱정이 떨어져야합니다. 걱정부터 우선 떨어져 걱정을 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돼요. 예배라고 그러는데 아무 사람도 말을 안 하면 어떡하나? 그것도 일종 걱정인데 그런 걱정 할 것 없어요.
본래 정말 퀘이커에 정신대로 하면 말이 없으면 없는 데로 그거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받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잘한 말대로 그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 받고 또 보통상식으로 해서 어그러지는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어찌해 그래 그런 말씀을 우리에 주셨을까? 그것이 뜻이 무엇일까? 역시 하나님의 주신 걸로 그걸 내가 깨닫도록 힘을 쓰고 그러는 게 그게 옳은 태돕니다. 사실 그런데 그런 줄을 나도 알면서도 역시 마음에 걱정이 됐어. 이렇게 아무 사람도 나 자신이 생각할 때도 과연 이것이 하나님에 영에 감동인가? 내 한 사람의 생각인가? 물론 그렇게 갈라진 생각이 있을 때에는 그건 말 안하는 겁니다. 안하는 게 옳은 거죠. 만일 참 정말 그 영에 감동이 왔다 그러면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분명 한문식으로 하면 자명(自明) 스스로 밝을 겁니다. 스스로 환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말씀일까? 아닐까? 그럴 필요 없어요. 자연히 그때 정말 참 하나님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거라면 뭐 확신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길까? 아닐까? 미리 걱정할 거 없을 거예요. 그러나 또 일이 다 반드시 그렇게 늘 순 그렇지만 않아요. 그런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교회에서 말을 하면 말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야. 자기 사람의 소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러고 자꾸들 하는데 걱정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말씀이 그렇게 늘 있겠어요? 그런데 썩 잘한데도 무슨 목사님이 성경 본다든지 참고서 본다든지 그러고 우리말 들은 거라든지 그래서 준비해 가지고 나와서 하고는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러지만 그건 이 현대교회는 확실히 그래서 폐단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인데 말을 많이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러는 데가 가짜가 있는 데가, 그런데 그것과 반면에 말을 또는 너무 아니해도 걱정이야. 의심을 해서 내가 이거 생각이 나긴 나지만 이거 내 생각일까? 하나님의 말씀일까? 그래서 인제 그러고해서 너무 말을 아니 해도 또 아니 말을 많이 해도 못쓰게 되지만 말이 너무 없어도 아무도 증거를 하는 증거 아니하는 마음은 거 좋은 마음이에요. 뭐 이런 따위 말을 가지고 무슨 남한테 유익이 될까? 그런 생각에 그러지만 그런 것도 얼핏 생각하면 대단히 좋은 생각이야요. 주책없이 일어서서 저 여기 정치사회엘 가면 그래요 그건 되지도 못할 사람 따위도 아닌 것들이 일어서서 야단으로 떠드는 게 정치계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기에도 그렇지 않아요 인간으로 보면 형편이 없는 것들인데 그게 국회의원이 됐다고 그러고 정부에 무슨 장관이 됐다고 그래 이래가지고 하는데, 나라꼴이 자꾸 이렇게 돼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거기선 확실히 되지 못한 것들이 떠들어대는데 남의 자유를 꺾고 남을 막 억지로 이끌고 가서 그래. 그러니까 그런 점으로 생각한다면 적어도 종교모임이라고 하는 이 속에 정신위한 모임이라고 하는 데서는, 뭐 된소리 못된 소리 그렇게 제 속에 좀 소감 좀 왔다고 떠들어대고 그러는 것보다는 좀 신중하게 생각해서 이것이 과연 남한테 은혜가 될까?
그리고 말이 나오기 전에 우선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만 너무 그렇게 생각을 하면 또 잘못에 빠져 왜 그런고하니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되겠는지 안 되겠는지는 내가 모르는 거예요. 내가 모르는 거야. 어떤 때보면 우리 생각 같은 걸로 하면 버스간에 들어와서 예수 믿으시오 그러면 저것가지고 무슨 전도가 될까 그러지만 또 어느 경우에는 그걸로 인해서도 또 깨워지는 사람이 더러 많지 않지만 더러 있데요 있데니까 반드시 그것도 하지 말라고 그럴 수 없어요.
그런데 사람인지라 일반적으로 대체 이렇다하는 판단을 물론 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말하지 말라고 말 안 해 버릇하면 점점 그 해 가지고 생기가 없어져가요. 사실은 내 이런 따위 말도 남에게 은혜가 될까? 그 생각은 퍽 이렇게 겸손하고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한 번을 뒤집어 생각을 하면 그게 그 자존심이 굉장히 속에 깊이 들어서 하는 생각입니다. (녹음26, 3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