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 석 잔의 유혹
구 활
옛날 어른들은 밥이 삶의 최대 화두였다. 가난이 몰고 온 팍팍한 생활을 부지하는 데는 밥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으리라. 어른들의 귀에 가장 듣기 좋은 소리 또한 밥이 주제가 되고 있는 걸 보면 ‘밥 퍼'란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어른들이 가장 살가워 하는 소리 세 가지가 있다. 우리 논 물꼬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첫째요, 밥상에 수저 놓는 소리가 둘째요, 셋째는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밥과 연관된 기도에 가까운 희원들이다.
요즘은 밥보다 앞서는 것이 술인데 가난한 시절에는 밥을 제치고 술을 생각하는 자체가 외람이자 불경이었다. 막걸리 한두 잔 값밖에 없는 촌로가 장터에서 설 사돈을 만나 “사돈어른, 밥을 자실랍니껴, 술을 한잔 드실랍니껴.” 하고 물었더니 “막걸리 안주에는 밥이 좋지요.”란 우스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민초들의 화두가 밥이었을 그 암울한 시절에 벼슬아치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송강 정철, 서애 류성룡, 일송 심희수, 백사 이항복 등은 나이 차이는 조금 있긴 해도 당대 석학들이어서 자주 만남을 가졌다. 어느 날 밤, 술이 한 순배 돌고 난 후 송강이 타고난 치기를 이기지 못하고 “달 밝은 누각 위로 구름 지나가는 소리보다 더 좋은 것이 있겠는가.” 하고 운을 뗐다. 그러자 일송이 “바람 앞에 잔나비 우는 소리도 일품이지.” 하고 흥을 돋웠다.
서애가 “삼 칸 초옥에서 젊은이의 시 읽는 소리도 좋지만 술독에서 술 거르는 소리가 더 절묘하지.”라고 앞선 풍류에 술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 그러자 가장 나이가 어린 데다 장난기 많은 백사가 “화촉동방에 가인의 치마끈 푸는 소리야말로 풍류의 극치지요.”라고 말했다. 네 선비의 풍류담 중에 밥은 이미 빠져 있었고 그야말로 풍류의 바람만 불고 있었다.
네 사람의 문답 중에 ‘시와 술'을 동시에 생각하는 서애의 풍류가 최상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름 지나가는 소리나 잔나비 울음소리는 너무 관념적이어서 맛이 덜하고 먼 데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는 풍류가 도를 지나쳐 자칫 난봉으로 기울까 봐 위태롭다. 그러나 저녁놀 속에 술 거르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거야말로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흡족이 그곳에 있을 것 같다.
풍류가 노니는 곳에는 달과 강과 친구가 하인처럼 따르지만 술만은 항상 상전으로 우러름을 받는다. 왜냐하면 풍류판에 더러 달이 빠질 수도 있고 장소가 굳이 강이 아니어도 되지만 호리병에 든 술이 없다면 그건 말이 안 된다. 풍류판이 아니라 멋없는 맹물판일시 분명하다.
중국 청나라 장조가 쓴 유몽영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풍류는 혼자 누리되 다만 꽃과 새의 동참은 허용한다. 거기에다 안개와 노을이 찾아와 공양을 한다면 그건 받을 만하다. 세상일 다 잊을 수 있고 담담할 수 있지만 여태 담담할 수 없는 건 좋은 술 석 잔이다.” 기가 막히는 고백이다. 어쩌면 내 생각과 그렇게 꼭 닮았는지 눈물이 핑 돌 정도다.
좋은 술 석 잔을 마신 흥취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채근담에도 “술 석 잔 마신 후 참마음을 얻는다면 단청 올린 들보에 구름이 날고 거문고를 달빛 아래 비껴 타고 맑은 바람 안고 피리를 부네.”라고 격을 높이고 있다.
술 석 잔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정말 만만치 않다.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서 야구 경기를 본 후 500CC 석 잔을 안주 없이 단숨에 마시는 그 쾌감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우리 주법의 후래자(後來者) 삼배(三盃)는 시동을 걸 때 밟는 가속 페달의 효과이거나 석유 버너의 발화를 촉진시키는 예열 단계와 같은 이치다. 석 잔, 좋은 술 석 잔은 상영 중 필름이 끊어져도 좋을 미지의 술판에 둘러쳐진 장막을 걷어내는 일이다.
조선조 세종 때 문도공 윤희와 학사 남수문은 임금이 총애하던 문장들이었다. 글과 술이 서로 따라다님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듯 그들은 글만큼 술도 능했다. 세종은 그들의 재주를 술이 갉아먹을까 봐 어떤 경우라도 석 잔 술을 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어명(御命)을 어기면 누구라도 목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당시의 법도여서 비상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엄청나게 큰 술잔을 만들어 품에 품고 다니다가 주회가 있을 땐 그걸 꺼내 딱 석 잔만 마셨다. 임금은 석 잔만 마시고 대취하는 신하를 나무랄 수 없었다. 임금은 “허허허…”하고 웃는 게 고작이었다. 풍류는 이런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자주 하시던 말씀이 “술 좀 작작 마셔라.”였다. 작작에 힘을 주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한 번도 어머니의 원을 들어준 적이 없어 한이 된 지 오래다. 알루미늄 그릇 공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두 선비들이 품고 다녔던 술잔보다는 조금 작은 것을 만들어 나도 어명[母命 : 어머니의 명령]을 따를 작정이다.
술의 발동은 일찍 걸리고 효심의 발동은 이렇게 늦게 걸리다니 나 원. 석 잔, 술 석 잔, 좋은 술 석 잔의 유혹이라. 나는 이겨 낼 수가 없네.
'좋은 술 석 잔의 유혹‘을 읽고
이동민
최근에 발표하는 구활의 수필은 80년대에 발간한 수필집에 실린 그의 글과 양식에서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요약하면 해학의 요소들이 가미되어서 유희적 경향을 띄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전의 글보다 읽기가 가벼워진 느낌을 준다. 또 하나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묘사하기 보다는 패러디의 개념으로 읽어야 할 차용이 많다. 차용해온 글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읽어야 할 내용이기 보다는 사랑방에서 말작난 삼아 나누는 언설들이다
‘좋은 술 석 잔의 유혹’도 최근에 발표하는 글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글의 대부분을 유희적 경향을 보이는 언설들을 패러디하여 구성하고 있다.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람과 상류층 사람들을 대비하였다는 일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돈 어른, 밥을 자실랍니까? 술을 한잔 드실랍니껴?’ 하고 물었더니 ‘막걸리 안주에 밥이 좋지요.’란 우스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은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지만, 글의 흐름에서 언어의 유희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언어내용에서 해학적 요소가 강조되므로 ‘가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희석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동양 미학에 의하면 선비들이 묵희적이고, 유희적으로 소략하게 그리는 그림이라고 하여 무의미한 붓질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물을 철저히 관찰하고 이해해야 의미를 담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유희하듯이 가볍게 나누는 언어들을 빌려 올 때도 철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장난의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 글에서 차용한 유희의 글에는 의미를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유희와 예술은 서로 닮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 유희는 합리적인 목적을 위해서 규칙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운 자기 지향성을 지닌다. 내용에서 진지함과 대립될 뿐더러 현실에 대해서 저항적이다. 작가가 차용해온 언설은 사돈 간에 주고 받는 대화이다. 현실에서는 예의라는 규범 때문에 절대로 나눌 수 없는 대화이다. 유희적 언어는 일상의 규칙성에서 벗어나므로 진지함이 제거되어 장난기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글은 단순히 웃음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화의 뒤에는 가난이라는 숨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당대의 명사들이었던 선비들이 나누었던 풍류적이고 해학적인 언어들을 차용하여 대비점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수필에서는 자신의 경험이나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스스로 바라 본 자신의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네 사람의 문답 중에 ‘시와 술’을 동시에 생각하는 서애의 풍류가 최상이 아닌가.”
작가가 내린 결론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가 바라 본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그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풍류적인 삶’에 대한 예찬이다. 이 글의 주제가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청나라 장조가 쓴 유몽영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풍류는 혼자 누리되 다만 꽃과 새의 동참을 허용한다. 거기에다 안개와 노을이 찾아와 공양을 한다면 그건 받을 만 하다. 세상 일을 다 잊을 수 있지만 여태 담담할 수 없는 건 좋은 술 석 잔이다.’ 기가 막히는 고백이다. 어쩌면 내 생각과 그렇게 꼭 닮았는지 눈물이 핑 돌 정도이다.”
작가는 장조의 글에 의탁하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었다. 이 글이 묘사하고 있는 정경은 중국의 사대부들이 자연 속에 숨어서 은일의 삶을 즐긴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산수화에는 이런 정경을 그린 것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술의 의미는 다르다. 속세와 인연을 이어주고 있다. 또 흥취의 상징으로서 풍류를 의미한다. 왜냐면 은일의 삶과 풍류는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옛날 선비들이 이들을 찬미한 것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었던 자신의 욕망을 언어유희로 표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은일이 삶의 방식이라면 풍류는 삶의 태도이다. 현실의 삶을 지키면서도 유희적인 요소가 강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둘 다 현실적인 삶과는 대립적이고, 대칭적이다. 그러나 풍류는 현실의 삶을 살면서 행하는 태도이다. 작가는 유희적 요소가 강한 풍류를 욕망하고 있음은 현실 삶의 끈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유희는 목적성이 없는 자유로운 행위이고, 감성적인 요소가 변형되어서 형성된 것이다. 유희하는 자는 의도없는 질서를 형성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상상을 통하여 정서 활동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술 석 잔이 주는 풍류적인 삶에 대한 작가의 찬미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작가의 욕망으로 보아야 한다. 욕망은 속성상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인간 심리상의 결핍이다. 작가는 풍류의 삶을 욕망하는 자신을 드러내었다. 속세의 고달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의 표현이기도 하다.
수필가 구활은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 보듯이 인간의 욕망을 적절하게 풀어내는 능력 때문이다. 욕망이란 일반적으로 금지된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는 무의식의 한 형태이다. 의식 세계에서는 표현하기 쉽지 않는 언어들이다. 금지된 언이이기 때문에 그의 수필은 독자의 심리적 욕구를 채워준다.
그가 글로 풀어내는 방법론을 보면 옛 사람의 글을 패러디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패러디란 이미지의 차용이다. 차용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타인의 이야기에서 이미지만 차용함으로 작가는 금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에 차용과 언어 속에 숨어버리는 작자는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남길 수 있다. 언어의 유희 단계에서는 이성적인 비평에 의해서 억제되었던 쾌락을 허용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유희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독자에게 쾌락을 선사한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술 좀 작작마셔라.’였다.”
술 석 잔은 작가에게 금지의 언어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수필을 교과서적인 수필론으로 다시 점검해 보자. 주제는 글을 통일시켜 주는 고리이다. 단락은 주제를 살려내기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글은 발단과 종결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 글은 구성에서 서두의 가난한 자의 언급과 상류층 계급의 대비가 결론을 유도해내는 도식이 아니다. 타인의 언설을 짜깁기 하듯이 과도로 모방함으로 자신의 모습은 매몰되어 버린다. 내면의 고백이라는 수필의 정의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글의 서두와, 중간의 여러 단락들, 그리고 어머니의 등장까지 다양한 서술을 펼치므로 주제를 드러내는 일관성이 부족하다. 따라서 수필의 교과서적 도식에서는 벗어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 오늘의 수필이 너무 도식화함으로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수필이 이런 문제들을 타개하는 방법론으로 예술의 유희론을 수용하여 수필의 ‘가볍게 글쓰기’는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사회적 검열과 심리적 검열로 자신의 내면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못 한다. 그러나 수필에서는 내면의 표출을 강요하고 있다. 수필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유희적 요소를 활용하고, 페러디나 차용을 하나의 탈출구로 응용할 수 있다.
차용이나 패러디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필 작가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적절한 내용을 적합한 장소에 차용해 올 수가 있다. 풍부한 지식은 구활의 수필에서 하나의 장점이고, 버팀목이 되어 있다.
문학 평론가인 손탁의 글로서 끝을 맺을까 한다. ‘저는 문학은 지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에도 문학의 앎은 중요한 방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남수필 40집
구활의 좋을 술 석 잔의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