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저/ 다산책방> 초판발행일: 2016년 11월 21일
생긴 것만 보면 너무 말끔하게 잘 생겨서 부잣집 아들에다 책하고는 담을 쌓고, 성격도 조금 거만할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나의 편견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인 건 잘 모르겠고, 책과 정말 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 젊은 청년배우, 신동욱...
그가 첫번째 장편소설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줄거리를 얘기하는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괴퍅하지만 유머감각과 사업 수완이 뛰어난 남자 맥 매커천(미국인)이
한국인 물리학자 김안나를 만나면서 그의 어렸을 적 꿈이었던 화성 이주 계획을 바꿔
우주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소행성 포획을 하러 떠난다는 이야기.
그 와중에 조난 당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지구에 돌아온다는 이야기.
작가의 우주 입문기를 읽어보면, 신동욱이라는 젊은이를 더욱 잘 알게 될 것 같아 올려놓아봅니다.
<작가의 우주 입문기>
나의 이름은 신동욱이다.
대한민국 배우이며 책을 좋아하며 <콘텍트>와 <아폴로 13><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무한 반복해서 즐기는 30대의 '우주덕후'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군필이며, 조금 아프다.
사실 조금 아프다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니, '저주받은 질병'이니 하는 말들이, 내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동정을 받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걱정과 위로를 들으면 억울하고, 거친 증오가 증기처럼 뿜어져 나오고, 지독한 한기인지 지옥의 불꽃인지 모를 악마의 열기가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위로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과도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인생 망쳤네'하는 슬픔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왜 꿈을 꾸다보면 그런 악몽을 꿀 때도 있지 않은가. 어디선가 갑자기 천 길 낭떠러지가 나타나 그 어두운 심연의 구렁텅이로 추락하는 악몽 말이다. 그래, 내가 딱 그 느낌이었다. 적어도 나를 치료해주시는 분당서울대학교 병원의 이평복 교수님이 나에게 장애 등급을 알려 주실 때에는 그러했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데 장애라니, 이 무슨 개 같은 상황인가.
나는 웃으면서 그 장애에 대한 진단을 거부했다. 이미 중증 환자로 등록은 돼 있었지만, 새로운 장애 등급은 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단어의 무게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멀쩡해 보이는데 장애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때 나는 느리게 걷고 있었단 말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나는 배우답게 최대한 태연한 척하는 표정으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 진단을 정중하게 거절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위로를 받지 않기 위해서, 버텨내기 위해서 사람들을 피했다. 내 자신을 나만의 우주에 가두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좆된 줄 몰라야 슬픔이 덜하지 않겠는가. 나의 5년간의 우주 유영은 그렇게 시작됐다.
때문에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분위기를 바꿔보자. 나는 지금부터 내가 우주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활당한 이유지만 사실이니 그러려니 하길 바란다.
2006년인가 2007년도에 유럽에 화보 촬영을 하러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파트너는 아름다운 여배우 박시연 씨였다. 우리는 다른 비행기를 타고 떨어져가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게 됐는데, 그때 나는 박시연 씨를 처음으로 보게 됐다. 고백하건데,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장미같이 화려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배우를 보면서 긴장했다. 순전히 외모만 보고서 말이다. 아무튼 그 정도 미모이심을 미리 밝여두는 바이다.
그렇게 나는 긴장을 했고, 또한 초면이라 더욱 어색한 비행이었다. 나는 창가 좌석, 박시연 씨는 복도 쪽 좌석이었다. 중간에는 좌석 팔걸이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삼팔선처럼 느껴졌다. 어찌나 어색했는지 나는 창문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창칼처럼 험준한 알프스산맥 위를 비행 중이라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므튼 나는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은 그 험준한 산맥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 산맥 위로 은색 점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은빛을 띤 타원형 물체였는데, 처음에는 전투기가 비행기, 뭐 그런 것인 줄만 알았다. 그 비행체가 낯선 움직임을 보이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UFO를 본 것이다.
지금이야 내가 잘못 봤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었다. 나는 좌석에서 반쯤 일어나 이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기내를 둘러봤다. 하느님, 알라님, 부처님 맙소사. 아무도 없었다. 식사 시간이라 다들 기내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옆에 앉아 있던 박시연 씨를 마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마음속에선 "시연 씨도 외계인 보셨나요? 보셨죠?"하며 외치고 있었지만, 마주 본 그녀는 그런 말을 듣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러니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 후로 나는 외계 생명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천문학, 물리학, 항공 우주학, 우주 생리학, 그리고 칼 세이건으로 이어져 아이작 아시모프, 킵 손, 브라이언 그린, 미치오 카쿠, 리사 랜들, NASA 등으로 확장되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 타이거 우주에 심장이 뛰듯,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메시에 심장이 두근거리듯,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드래곤이란 단어에 심장이 뛰듯, 나는 '우주'라는 단어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의 심장은 책에 담긴 '우주'라는 단어들을 빨아들이며 전율했다. 나는 이렇게 우주에 매료됐고, 이렇게 우주 이야기를 쓰기에 이르렀다.
이야기를 쓰는 동안 굉장히 즐거웠다. 다만 맥 매커천이 우주에서 사고를 당해 표류하는 장면은 잘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이미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맥 매커천보다는 덜 좆됐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실감나게 고립시키기 위해서 나 자신을 더욱 고립하기로 결정했다. 만남은 물론이고 전화 통화, 문자메시지까지도 통제했다. 스스로를 맥 매커천이 처한 상황에 최대한 몰아놓고 그처럼 철저히 고립시켰다. 이는 글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해 씻는 것, 먹는 것, 텔레비전 보는 것, 산책 등 거의 모든 생활로 이어졌다. 맥이 느낄 상황과 최대한 비슷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나를 통제했다.
그렇게 나만의 1인 표류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점점 벙어리가 돼가는 느낌이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혼잣말을 쏟아냈다. 고립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극도의 불안감과 공허감, 공포를 번갈아 느꼈고, 이것이 내가 지녔던 질병과 상호작용을 해서인지, 결국엔 치아가 뒤틀리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는 점점 심해졌고, 맥 매커천의 시련이 커질수록 나 역시 증상이 심해졌다. 결국 탈고를 얼마 낲두곤(아마 마지막 시련을 쓰던 중이었을 것이다) 앞니 하나가 부러질 지경에 이르렀다.(어찌나 몰입을 했던지, 얼마 후 담당 편집자에게 전화해서 이랬더랬다. "편집자님! 이 섹시한 영구 상태를 영상으로 찍어서 홍보에 활용하자고요! 북트레일러로 딱이에요!)
결국 나는 소설을 탈고했고, 1년 만에 맥 매커친과 함께 지구에 착륙했다. 마치 미래에 온 것만 같이 황홀한 기분이다. 몇몇 오류를 해결하지 못했지만(예를 들어 소행성의 회전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나 치올코프스키의 생일을 맥이 착각한 것 같은)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일지의 날짜도 내 생각보다 5년에서 10년가량 앞당겨 썼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2020년 달 탐사에 대한 나의 애정이다. 소설 내의 시기는 2025~2030년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누군가가 후회와 슬픔에 사로잡혀 침묵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거대한 장벽은, 달리 생각하면 커다란 도약일 뿐이다"라고. 그 때문에 글을 썼고, 복귀는 꼭 소설로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해낸 것을, 누군가도 해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시련은 얼음과도 같아서 언젠가는 녹기 마련이니까.
내가 당신을 응원하겠다.
2016년 11월
신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