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처음 들어가서 보니 우리 과( 의예과)에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한 해 여름 삼천포 시에 사는 한 친구와 약속을 하고 혼자서 기차를 타고 삼천포에 갔다. 시라고는 하지만 중심가는 당시 비교적 작은 곳이라 한번 빙 둘러보면 될 정도의 소규모였다. 근처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고 그 집에서 회를 사주어 잘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약을 먹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친구의 안내로 해변에 위치한 경치 좋은 다방으로 갔다. 마침 다방에서는 김추자의 무인도가 흘러나왔다.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지켜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기운이 없어 탈진한 상태에서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쏟아져 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으니 가사 한 구절구절이 마음속에서 울려퍼져 메아리가 되었다. 평소 방학에는 집에 붙어있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집 밖에서 한 번도 집이 그리운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고생이다.’라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하였다.
진짜 여행은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한다. 학생 때 남해안의 섬들을 한 달 정도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쓸쓸한 마음을 잘 견뎌 낸다면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혼자서 남쪽 지방을 두 번 다녀보니 혼자 다니는 여행이 나 자신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이후로는 섬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석양리(石陽里)
최 갑 수
비빌 데 없는
내 젊은 날의 구름들을 불러다
왁자지껄 모래밭에 앉히고
하늘 한켠에서
일박이일(一泊二日)로 민박하는 초저녁달에게
근대화슈퍼 가는귀먹은 할머니한테 가서
진로소주 몇 병 받아오게 하고
깍두기도 한 종지 얻어오게 하고
그런 날 저녁
외롭고 가난한 나의 어느 날 저녁
남해 한 귀퉁이 섬마을에서
바람이 나를 데리러 왔다가는
해당화가 피었대,
엽서만 전해 주고 그냥 돌아간 후
마을회관 옥상에 놓인 풍향계는
격렬하게 어스름 쪽을 가리키고
어디까지 왔나,
밤하늘은 금세
온갖 외로움들로 글썽거리고
시인은 아마 혼자서 바닷가를 찾아 머물고 있는가 보다. 이 시에는 외로움이 많이 묻어 나온다.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어 구름을 불러다 앉혀놓고 술을 마시려고 한다. 소주 몇 병을 사면서 돈이 없어 안주는 깍두기를 얻어다 먹는다. 해당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듣고 마을회관 옥상의 풍향계를 바라보고 있다. 점차 어둠이 밀려와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내 눈에는 밤하늘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으로 보여 진다.
‘비빌 데 없는 젊은 날’ 구름을 ‘왁자지껄 모래밭에 앉혀놓고’ ' 1박2일로 민박하는 초저녁달, (저녁 무렵부터 밤늦게까지 달이 보이니까) 의 표현이 돋보인다.
아래에서 3번째 줄 ‘어디까지 왔나’는 문맥상 시인이 '어스름이 어느 정도 내렸나'라고 혼자말로 이야기 하는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에 ‘ 스스로에게 묻지만’을 넣으면 내용이 더 분명하여 진다. 넣어서 다시 읽어 보기로 하자.
비빌 데 없는
내 젊은 날의 구름들을 불러다
왁자지껄 모래밭에 앉히고
하늘 한켠에서
일박이일(一泊二日)로 민박하는 초저녁달에게
근대화슈퍼 가는귀먹은 할머니한테 가서
진로소주 몇 병 받아오게 하고
깍두기도 한 종지 얻어오게 하고
그런 날 저녁
외롭고 가난한 나의 어느 날 저녁
남해 한 귀퉁이 섬마을에서
바람이 나를 데리러 왔다가는
해당화가 피었대,
엽서만 전해 주고 그냥 돌아간 후
마을회관 옥상에 놓인 풍향계는
격렬하게 어스름 쪽을 가리키고
어디까지 왔나,
스스로에게 묻지만
밤하늘은 금세
온갖 외로움들로 글썽거리고
석양리라는 곳을 찾아보니 충남 예산군 예산읍에 있다는데 이 시의 배경은 바닷가이므로 맞지 않는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곳에 있는 것이리라.
* 해당화 : 장미과 식물-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우리나라 중. 북부 지방의 바닷가 모래땅에서 무리를 지어 자란다. 높이는 1.5미터 정도며 가시가 많고 가시에는 털이 있다. 잎은 두껍고 타원형이며 7~9장의 작은 잎이 어긋나게 나있다. 5~6월에 붉은색 꽃이 피는데 지름이 6~9센티미터 정도이고 꽃받침통은 둥글고 매끄럽다. 꽃잎은 5장으로 도란형(倒卵形)이며 끝이 오목하다. 8월에 열매를 맺는다.
* 어스름 : 조금 어둑한 상태. 또는 그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