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구시가광장
고풍스런 구시가의 중심으로 11세기부터 형성되었다.
프라하의 상징인 틴 성당(정면), 천문시계로 유명한 구시청사(왼쪽편), 얀후스동상등의 볼거리가 어우러진 지역이다.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구시청사의 탑은 1364년에 69.5m높이로 세워졌는데 독특한 디자인의 천문시계가 설치돼 있어 유명하다.
천문시계는 인형.천문시계.달력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작자는 1490년 시계의 명인 미쿨라슈라는 설과 15세기의 천문학자이자 카를대학 교수인 하누슈라는 설이 있다.
매시 정각이면 시계에서 12사도의 인형이 나와 움직이다가 창 안으로 사라지며 시계 꼭대기로 부터 닭이 나와서 올면 끝.
구시가광장
예쁘장한 삼륜자전거도 관광객에게 대여해 주고 있다.
중세의 종교개혁가로서 화형 당한 '얀 후스', 그 자리에 세워진 그의 동상
얀 후스(Jan Hus)는 오늘날 ‘체코공화국’ 보헤미아에서 1372년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그 지역의 최고 명문 프라하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얀 후스는 그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고 약관 29세에 철학부의 학장이 고 37세가 되었을 때 프라하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 학자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는 당시 교회의 도덕적 해이를 책망했고 교황이 갖고 있던 교황권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명설교가였다. 보헤미아 지역에서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로마교황청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고 그의 입을 막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1414년 가톨릭교회의 종교회의가 독일 남단에 위치한 콘스탄츠에서 개최되었다. 후스는 이 종교회의에 참석,자기의 입장을 알리고 교회개혁을 설득하기로 마음 먹었다. 독일 황제로부터 신변 안전을 보장받은 그는 콘스탄츠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콘스탄츠에 도착한 후스는 즉시 체포돼 투옥되고 말았다. 그는 당대 명문대학 총장이었고 최고 지성인이요 유럽의 유명인사였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 볼 때 그는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자’였고 ‘이단자’에게는 관용이 허락되지 않았다. 후스는 투옥된 상태에서 그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고 강요 당했다. 그러나 그는 콘스탄츠 종교회의가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지적해주지 않는 한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섰다. 독일 황제가 중재에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결국 1415년 7월 당시 로마교회는 후스를 ‘이단자’로 정죄하고 화형에 처하고 말았다. 그가 화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보헤미아 지역에 전해지자 국민들의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프라하 대학은 총장의 죽음을 ‘순교자’의 죽음으로 선포했고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오늘날도 후스는 체코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역사적 인물이며 “주님의 진리가 승리하리라!”고 하는 그의 삶의 모토는 현재 체코 공화국의 모토로 채택되었다.
후스는 루터 이전의 종교개혁가였다. 그런데 후스의 최후에 관해서 한 가지 흥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화형대에서 뜨거운 불길이 후스의 몸을 삼키려 할 때 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나는 이제 ‘거위’와 같이 불에 타 죽지만 앞으로 ‘백조’와 같은 인물이 내 뒤를 이으리라.”마르틴 루터가 역사의 무대에 출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100년전 후스가 말했던 ‘백조’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루터를 ‘백조’로 표현했다. 그러나 ‘백조’를 바라보는 당시 독일 사람들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했다. 후스가 당했던 운명을 루터가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라하 구시가광장의 얀후스 동상앞에서
프라하 구시가광장
프라하 구시가광장의 얀후스 동상
프라하 구시가광장
이날 따라 무슨 단체인지는 몰라도 집회가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다.
틴성당
구 시청사 맞은편, 킨스키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틴 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한 멋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1365년 세워진 이 교회는 금장식을 정점으로 하는 두 개의 탑이 높이 80m에 이른다. 화려한 외관은 초기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음울한 분위기이다. 이 교회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북쪽 벽에 있는 로코코 스타일의 거대한 제단과 아름다운 동북쪽의 출입문이다. 이 곳에서는 종종 클래식 콘서트가 열리며 특히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가 기막히다.
틴성당
1621년 카톨릭성당으로 개조되면서 첨텁 사이에 있던 후스파의 상징인 황금성배(聖杯)가 녹여져 마리아 상으로 만들어 졌다
틴성당
틴성당
틴성당의 야경
틴성당의 야경
니콜라스 성당
니콜라스 성당
얀후스 동상뒤로 보이는 니콜라스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