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가상 유서] 내 인생의 조기 종료를 고하노라
- 다음 생애가 또 있다면 여자로 태어나게 하소서 -
※ 본 유서는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상태였더라면, 오늘 당장 자살한 후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을 유서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오늘부터 2009년 설 연휴가 시작되었고, 가끔씩 휴대폰 문자가 들어오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얼어붙어 있다. 아니 심장이 멈추고 싶다.
마누라가 이혼하자며 현재 고2 딸, 중3 아들을 데리고 처제 집으로 갔고, 명절에 시댁, 본가에도 가지 않겠다고, 양가에 이 사실을 전화로 통보만하고 말겠다며 30여분 전에 나가버린 것이다.
이 순간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처절한 고독과 인생의 절망을 유서 쓰고 죽은 사람이나, 쓰고 차마 죽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내가 이 나이에, 이 따위 사유로 이혼 소리나 듣게 되다니 한심하고 못나기 그지없다. 어릴 땐 시골 초등학교에서 늘 1등하고, 전교어린이회장까지 한 나인데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한심스럽다.
그러나 지금 죽는다 해도 큰 후회는 없다. 이미 나보다 먼저 간 친구들도 몇 있는 것이 위안이고, 이제 인생이 어떤 것인지 살만큼은 살았기 때문이다. 다만 약간의 미련,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조금 아쉬울 뿐이다.
조금 아쉽다고 해서 생명을 이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여기서 끝내는 것이 남자답고, 나답고, 나를 그렇게 증오하는 마누라와 마누라를 추종하는 두 녀석들을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누라와 아들, 딸이 똘똘 뭉쳐서 나를 협공하다니...??? 지금까지 벌어서 먹이고 키워놓았더니 이제 나에게 돌아온건 집안 왕따에, 이혼 대상자란 말인가???
내가 어릴 때에 비하면 요즘은 그야말로 여자들 세상인 것 같다. 세상 너무 좋아졌다. 나의 1/3밖에 벌지도 못하면서 자기도 직장생활 한다고 큰 소리 치질 않나? 말다툼 시작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우유컵을 씽크대에 던져 박살내질 않나?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중고 티코차에 매달려도 뿌리치고 가버리지 않나? 처제 집에 갔을 것 같아서 미리 가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겨우 만나서 티코에 탔는데 큰 소리 치며 팔로 내 가슴을 가격하질 않나?
요즘 내 성질이 너무 많이 죽어서 그렇지 옛날 같았으면 마누라 제삿날은 이틀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성질을 너무 안 부려서 마누라가 나의 폭력성을 잊었나? 요즘 갑자기 남성호르몬이 활성화된건가???
애들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엄마와만 찰떡궁합이 되어 돈 벌어주는 아빠는 이웃 집 개 취급이다. 내가 좀 잔정이 없고, 오락은 하루 한 시간(주말은 2시간)만 하라고 채근했기로서니 자기가 그 시간 넘겨서 하고 있는건 생각 안하고 그만하라는 내 소리만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아들놈이 있는가 하면, 내가 뭐 한마디만 해도 틱틱거리면서 입닥치라는 식으로 나오는 딸년도 있다.
애들 엄마가 십여년 정도 화장품 가게를 하는 동안 시간 나면 자기네들을 데리고 신천 고수부지 놀이터에 가서 놀아주고, 장난감도 맘대로 갖고 놀게 하고, 학원 다 보내주고, 학교 다 보내주고, 사달라는 옷 거의 사주고, 공주, 왕자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건만 사춘기 행세 다하고, 자기 엄마랑 짝이 맞아서 나를 왕따 시키다니... 내가 그리도 자기네들을 윽박지르고, 숨 못쉬게 하였던가??? 자식 키워서 호강할 생각은 아예 없었지만, 이렇게 나의 가슴에 못을 박다니...그래도 대학, 아니 박사까지 그리고 시집, 장가까지는 보내주려고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허무하다...
그동안 내가 마누라 고생 시킨 점은 인정하지만, 나는 뭐 고생 안하고 자기만 고생했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마누라가 배가 불렀나? 나만 공부했나? 자기도 마흔 넘어 전문대 졸업했으면 됐고, 편입도 해보라고 까지 했으면 되질 않았나? 나는 뭐 박사과정 수료하고 놀면서 박사학위 못땄나? 사람 일이 자기 생각대로 다 되고, 교수는 자기 하고 싶다고 다 되는가???
이제 내 인생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학과 3학년에 편입해서 공부하고, 졸업 후 그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내 남은 마지막 열정을 태워 보려고 하는데 그게 이혼 사유가 된단 말인가??? 직장을 바꿔도 40대에 바꿔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할 수 있는 일 쪽으로 옮겨서 해보려는게 그리 어리석은 짓인가? 학교 다니고 직장 옮기는 것이 확정될 때까지는 현 직장을 다니고, 가능하면 아르바이트해서 학비에 보태겠다고까지 했는데 저토록 반대하면서 이혼하자고 하는가???
2년 간 학비로 천오백만원 정도 들어가고, 조금씩 드리는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는 것이 그리도 아까운가??? 돈 욕심이 너무 많고, 돈에 짓눌려 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돈 낭비한 적이 있나? 마누라 영향으로 짠돌이 된지가 언제인데...내가 하고 싶은거 거의 못하고 산지가 20년은 되었는데... 사진이 취미인 내가 27년전 장학금으로 구입한 삼성 미놀타 똑딱이 카메라로 아직 버티고 있는데... 대학강사도 10년 이상 했지만 단벌신사로 지낸지가 20년이나 지났고... 내가 담배를 피나, 술을 하나? 한달 순수 용돈이 1만원도 안될 지경인데, 직장 동료에게 술 한잔 사주지도 못했는데...
다 내가 죄가 많은 때문이리라. 마누라 고생시키고, 교통사고로 처제와 처조카가 하늘나라 가는 바람에 장인 장모님 가슴에 대못 박고, 부모님 실망시키고, 평소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잘해드리지도 못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 따뜻하게 잘해주지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지도 못하고....내가 죽일 놈이다.
그래서 지금 앞당겨 세상을 하직하려 한다. 그리고 또다시 불효하려고 한다. 마누라와 자식들은 오히려 홀가분해 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서 나는 없어져야 한다.
지금 내가 금전적으로 빚진건 없으니 다행이고, 몇푼 빌려준건 마누라가 알아서 할테고, 몇푼 없는 내 통장도 알아서 할테고, 보험도 알아서 할테고(자살해도 마누라 챙길 보험금은 있는가 모르겠네?), 나의 여러 이메일은 휴면상태가 되어 사라질테고, 다음카페와 파란 푸딩포토는 방치되어 퇴색하다가 서서히 사라지겠지...내 컴퓨터의 파일들은 컴 폐기시 사라지겠지? 내가 쓴 인터넷 글들은 언제쯤 사라질까? 잠시 동안 친구와 친척들의 입에 오르내리겠지만 곧 잊혀지겠지? 내가 좋아하던 최진실씨 자살의 경우도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모두들 깜박 잊고 지내고 있지 않은가? 장담하건대 내 이름도 서너달 후면 잊혀지리라...내 소식을 듣고 눈물 흘려줄이 몇 되겠나? 어머님, 장모님, 그 다음엔 장담 못하겠다...
이제 대충 정리된건가??? 남은 내 책들과 사진, 테이프, 옷들은 다 태워지겠지? 내 몸도 태워져 한 줌의 재가 되겠지. 고향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앞산 정상에 뿌려주면 좋겠다. 언젠가 정월 대보름이면 올라서 소나무 더미를 태우면서 달맞이하던 그 앞산 꼭대기에 올라가 고향 동네 일대를 사진으로 찍어 그 장면을 내가 어릴적 모습으로 약간 바꾸어 미니어처로 만들고 싶었는데... 그 산에 재로 뿌려진다면 한동안 흩날리며 고향 동네를 정겹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고향 집 마당에서 장마로 낀 이끼 위를 미끄러지며 놀던 대여섯살 때의 가장 오랜 기억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장례식, 초등학교 때의 기억(입학, 교회 출석, 장난치다 벌, 전교어린이 회장, 여학생 옷 칼로 찢기, 운동장에서의 놀이시간, 소풍, 수학여행, 졸업사진, 보이스카우트 대원, 부엌칼 배달사고, 폭탄 폭발로 친구 죽고, 뱀에 물려 손 잘린 친구, 논밭일 거들기, 소먹이기, 멱감기, 개구리 구워먹기, 스케이트 타기, 산딸기 등 따먹기, 동네 골목에서의 여러 놀이들, 축구하며 넣은 수많은 골들, 졸업식),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자전거 통학, 변태 친구들, 그리기 대회, 급가, 선생님들, 깡엿 군것질, 가요 책자, 단어 외우기, 명절날 노래부르며 놀기, 고교 통학버스, 자취방, 고교 행군, 고교 등교시 교문 통과), 대구에 예비고사 보러왔고, C대 행정학과 낙방, 재수(대구에서의 3개월 학원과 독서실, 전축 듣고 놀람, 대중목욕탕 처음 입장, 껌 씹기, 예비고사 당일 허겁지겁), 대학생활(면접 때 만난 친구와 아직도 친구, 단과대 수석을 뒤늦게 앎, 입학 환영회 막걸리, 기숙사 2년 생활, 월 25일 정도 술마시기, 장학금, 음악감상과 사진찍기, 학과 데모 참여 및 주동, 학과 학회장, 하이킹, 등산, 축제, 복학후 첫미팅에서 마누라 만남, 복학후 5:30~23:30까지 도서관 공부, 친구들, 교수님들), 군대생활(삭발, 논산훈련소, 102 보충대, 버스로 75훈련단 이동, 205연대 본부대 배속, 중대장, 고참들, 행정반 근무, 행군, 라면 끓여먹기, 무장구보, 유격훈련과 가스실, 동원훈련과 이동막걸리, 우리 내무반과 동료들, 진벌리 문구 구입, 사격 1위, 휴가, MS와의 펜팔, 회식, 제대), 농협 취직(아가씨들 많은 예금계 근무, 나이트클럽의 황제, 월말 마감, 한 학기 동안 대구의 G대 야간 대학원 통학), 마누라와 3년 연애(여행과 등산, 시내 커피숍과 식당, 두류동 갔다 막차 타고 자취방에) 후 결혼(결혼식과 피로연, 제주도 신혼여행, 10평 주공아파트 신혼생활, 대구 두류2동 언덕 단열처리 부실한 집으로 이사), 연구소에 10년 정도 근무(Y대 도서관 룸, 15만원~150만원 월급, 네 번의 연구소 이사, 시군계획 수립, 포럼, 출장, 연구원들과 원장님), 대학강사(방송통신대, Y대 강사, S대 겸임교수), 딸 낳고, 아들 낳고, 신문배달 몇 달 해보고, G대 박사과정 행정과 입학 및 수료(입학시험 준비, 수업 준비, 논문 준비), 화장품(문구)가게하면서 살고(칠성시장 장보기, 대봉동 교재, 밖 화장실, 연탄 갈기, 부엌이 욕실, 단칸방, 조기축구회 총무, 교통사고 충격, 방 2개, 김서방과의 술, 간판 제작, 광고지 제작, 비교되는 두 주인), 우리 집 계약, 빚 갚기에 총력(IMF로 이자 상승)을 기울이다 5년만에 우리 집에 입주(집들이, 벽지와 장판 손수 교체, 벽보 붙이기, 방 놓기, 몰래 도망간 놈년들), 2000년 8월 6년여의 긴 방황을 끝내고 교회에 출석(맹집사님 전도, 제자훈련, 사역훈련, 소년부 교사, 순장, 훈련위 회계, 전도회 총무 및 회장, 새가족부 사역, 전폭훈련, 신문 편집)하고, 2003년 시간강사 그만두고 연구소에 취직(총무, 기업지원, 상조회장, 웍샵과 출장)하여 현재까지 다니고 있으니...
중요한 기억들이 한 페이지로 다 정리가 되는구나... 저 세상 가서 넌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고 묻는다면 위에처럼 길게 늘어놓아야 하나,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해야 하나 모르겠네? 길게 하라면 그대로 하면 되고, 간략하게 하라면, “공부하고, 결혼하고, 애키우고, 직장생활하다가 왔습니다”라고 해야 하나? 더 줄이라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 왔습니다”.
아우 모르겠다. 이후의 일은 모르겠다. 편하게 하직하자. 미련없이 남자답게 하직하자. 그동안 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면서 조금은 아쉽지만 나는 떠날 뿐이다.
즐겨 듣던 노래들, 개그콘서트, 몇 드라마와 영화들도 이젠 안녕 !!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몇년전 집나간 애완견 프리모도 안녕...
이 세상의 외로운 한 점이었던 나는 사라지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전쟁과 살인은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 좀 더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 겨울을 힘들게 살아가고 계신 분들께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한게 아쉽다. 나로 인해 마음 아팠던 모든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나와 인연이 되었던 모두들이여, 이제 영원히 안녕 !!
하루 속히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사시길 진심으로 기도해 봅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원히 .....
2009. 1. 24(토) 20:53 CI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