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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의 <가는 세월>이라는 노래가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노래다.
듣는 사람도 그렇지만...한참 부르다보면 무슨 찬송가 부르는 느낌도
풍기는 지극히 종교적인 풍취에 하염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곡이다.
목사님들은 기독교적으로 듣고...스님들은...불교적으로 듣는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 슬픔과 행복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짜~잔....그다음 후렴이 죽인다......
<하지만~ 이 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하늘을날아서~>
옛날에...선배 덕분에 귀에 못이 배기도록 이노래를 들으며 살았다.
술 몇잔 들어가면...어김없이 나오는...."가는~세월"....이다.
나중에는 이노래를 안들으면 그날 술자리는 마치 <파투>난 듯한 느낌이었다.
어떤 술이 과한 날은 심지어 두번도 들었다.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부분은 모두들 취한 눈 크게뜨고 목이 쉬도록 따라부른곤 했는데....
벌써 그시절도 조금 있으면 수년이 되어간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서유석님도 벌써 60세 후반(65세) 나이란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아니 95세 된 노인분이 제게 글을 남겼어요....
그간 자식교육 잘시키고...다 출가시키고...65세 되던해에 사회생활 청산하고
물러낫었는데...95세 생일 맞던 날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보면서 지난 30년간
내가 뭐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드셨데요.
돋보기도 안쓰고 책도 보고, 지팡이 안짚고 산에도 오르고그랬는데 30년을 지내보니
지금 사회에서 격리된 것같은 느낌때문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노했었데요....
그래서 그분이 새로운 결심을 하셨는데...
다음 10년후인 105세 생일날 아침에는 결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서유석님이 다시 부언했다....
"저 말이지요...그분때문에 30년 벌었어요.
그분이 절 깨워주신거에요. 그래서 지금 아침마다
95세 어느 청년을 위해 기도하는게 일과가 되었어요"
노인분들을 위한 노래도 만들어보겠다고 의욕을 불태운다.....
세월따라 아름답게 흘러가누나~
<엄마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엇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밤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하얀 팔뚝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그옛날 내 18번 <목로주점>의 카~수 "이연실"이 부른 <찔레꽃>이다.
에~ 그 갑자기 그 옛날 생각이 나네.....
이곡은 워낙 15살 나이에 그 유명한 <고향의 봄>을 지은 "이원수"님의 동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하는 동요....
이역시 이산가족 상봉장의 "지정곡"이었다.
그런데 "이원수"님의 오리지날 <찔레꽃>은 상당히 심각한 노래다.
<찔레꽃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길에 피었다오 /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좋지/ 남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깨는 누나 맞으러 /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먹었다오/ 우리누나 기다리며 따먹었다오>
이 동시속에는 일제시대하에서 식민지 여성의 고달픈 현실이 그대로 녹아져 들어가 있다.
이렇게 시대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토해내던 "이원수"님도
1942년 8월 조선금융조합 연합기관지인 <반도의 빛>에다가 <지원병을 보내며...>라는
글을 게재하여....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게 되니....세상이 무상할 뿐이다.
1911년생인 이원수님의 탄생 100주기에 고향인 창원에서는 시끌시글한 모양이다.
<꽃반지 끼고>로 유명한 "은희"는 51년생인데....뉴욕주립대 출신의 재원이었다.
<뚜아에 모아>의 "박인희"는 이화여대 불문과 출신....52년생 용띠로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양희은"....은 한나라당 전대표인 "박근혜"와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이연실"은 1950년생이다.
고향이 전북 군산으로 기억되고 홍익대학교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러고보니 "이연실"도 작년에 환갑을 지냈겠다.....참....세월이....
<목로주점>은 1981년에 발표된 곡이다.
나도 젊어서 술만 먹으면...죽으라고 이노래만 불러제꼈다,,,,
음이야 맞건말건...가사야 일절이던...이절이던....
대부분의 경우...끝까지 부르는 적이 별로 없었다.
술기운에 부르다가 쓰러져 자기 일쑤니....
마지막부분에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하는 부분이 하일라이트인데....
그쯤되면 그네를 타는건 백열등이 아니고 바로 내 알딸딸한 술정신이다.
완전히 하늘로 날아간다.......크~
이노래는 원래 노동시인인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을 개사하여 곡을 붙인 것이다.
<새벽 쓰라린 가슴위로/ 찬소주를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벽 깨뜨려 /
솟구치는 거친 땀방울/ 피눈물 녹여서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분노~(생략)>
원래의 노동시속에는 짓밟힌 민중의 자조적인 정서가 역설적으로 배어져 있지만.....
가사를 일부 바꾸니....
더욱 기가 막힌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주당들의....명곡!
"이연실"의 노래 하나를 더보자
<어디에 있었니~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시골길 황톳길을 걸어다녔었다오/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다오/ 시퍼런 바다위를 떠다녔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이곡은 "밥 딜런"이 1963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에 들어있던
<A Hard Rain's A Gonna Fall>의 번안곡이다
처음에는 국내의 저항가수였던 "양병집"씨가 불렀던 곳이나 1973년 '이연실'이
불러 유명해졌다.
"밥 딜런"이 부른 이곳의 배경에는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지속된
쿠바 핵미사일 위기가 놓여져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핵전쟁의 공포에 대한 사전경고가 이곡의 배경이다.
원곡에서는 아주 암울한 전쟁속의 참화가 그려져있고...
핵전쟁에 따른 공포와 참상이 그려져 있다.
<뚝뚝 떨어지는 피로 얼룩진 검은 강줄기를 보았지/
손에 피범벅이 된 쇠망치를 들고있는 새나이들로/
가득 찬 방과 하얀 사다리를 보았지/
혀가 찢어진 만명의 수다장이들과 어린이들 손에 쥐어진
총과 날카로운 칼도 보았지.....>
이곡은 그래서 "오릴버 스톤"감독의 반전영화인 <7월 4일생>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었다.
요사이 비가 미친듯이 퍼부을 때면...
이제는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져 연락이 두절된 채 살아가는
"이연실"의 소낙비가 생각난다. <끝없이~비가 내리~네.....>
<화려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제가~ 아디선가~/
본~듯한 모습인데~/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잃어버~린 이야긴가~/대답하지 않네요~>
"태진아"의 "옥경이"라는 노래다....
대한민국에서 이노래 모르면 거의 "간첩"이라는 소리듣는다.
이곡의 원래 이름은 <고향여자>였다.
이곡의 작고가인 "임종수"씨와 작사가 "조흔파"씨가 아는 후배와 함께
서대문 화양극장옆에 있던 맥주홀에를 들어갓던 모양이다.
남자들이 들어가니 아가씨 3명이 들어오더랜다.
각자 옆에 앉은 아가씨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딱히 "조흔파"씨 여유에 앉은 아가시가 유독 말이 없어...나중에 사연을 알고보니..
"조흔파"씨는 잊었지만...어린시절 "조흔파"씨와 소굽장난까지 하며
놀던 고향여자였다고 한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그여자가 울면서 사연을 털어놓은 것이다.
본인의 처지가 하도 서럽고 "조흔파"씨에게 미안한 감도 잇어서 그랬으리라....
30년만의 만남이었다.
그날밤 "조흔파"씨가 집에 돌아가 날을 꼬박 새우며 만든 노랫말이 바로 <고향여자>였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인데...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
그리고 이가사에 그날 같이 술을 마신 "임종수"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곡은 원래 <나훈아>에게 준 곡이다.
그런데 "나훈아'가 너무 바빠서 그후 8년간 작곡가의
책갈피에서 잠자게 되었다. 세상일이란 다 이런건가 보다...
연일 히트곡을 만들어 내던 "나훈아"는 이곡을 부를 여가가 없엇던 모양이다.
미국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지내던 "태진아"가 한국에 돌아와서 "임종수"를
찾아가 살려주는 셈치고 노래하나 만들어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그래서 이곡이 "태진아"것이 되었다.
이미 세월이 흘러 <고향여자>라는 것이 좀 촌스럽게 느껴진 두사람이 고민하던 중에
"태진아"가 "선생님! 옥경이가 어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사실 제가 아내 잘만나 여기가지 살아온거지요...아내 아니었음 저 거지됏을지도 몰라요"
실제 "태진아"의 부인이름은 "옥형이"다
발음하기 쉬운 "옥경이"로 부른거다.
이후 "태진아"는 완전히 살아나 이제 "트롯"계의 대부가 되었다.
작곡가 "임종수"는 1942년생 전북 순창사람이다.
이리(지금 익산)의 남성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매년 추석이면 마치 지정곡처럼 전국에 울려퍼지는 "나훈아"의
"고향역"은 그가 만든 것이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곱분이 ~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무명시절 "임종수"씨가 이곡을 만들어 "나훈아'에게 주겠다고 3개월이상을 쫓아다니다가
처음으로 취입하게된 곡이다.
"나훈아"가 부르겠다고 한 그날 집에 가서 마누라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단다.
이곳의 배경이 된 곳은 지금 전북의 <익산역>과 지금은 <역건물>만 남아있는
<황동역>이다.
작곡가가 고등학교시절 이곳을 철도로 통학하던 기억을 곡으로 만들었는데...
작을 할 당시에는 월남전에서 귀국하는 병사들을 생각하며 지은 곡이라고 한다.
"임종수"씨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만들었다. "하수영"이 부른 노래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1976년에 이노래가 부려지면서 장안의 사람을 받기 시작하자
전국의 <카바레>들이나 모든 술집들이 난리가 났다......
남자들이 술을 마시다가도 이노래만 나오면 주섬주섬 보다리 싸들고 일어서서
집으로 달려갓던 것이다.
그래서 금지곡이 되었다....술집에서는....
이노래는 원래 작곡가가 암으로 죽은 아내와 자신의 어머니 두사람을 위해 만든 곡이다.
보살펴 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이곡의 처음 제목은 <이대로 영원히...>였다.
이것을 "조흔파"가 제목을 변경한 것이다.
오늘은 어디들 새지들 마시고...집에들 일찍 들어가 와이프 손이라도 잡아주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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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네...
그런 저런 사연들이 있었군요.알고 들으면 더 실감날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