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 많이 보이는 문장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소식들,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는 이상징후들 앞에서, 이제 우리는 망할 일만 남았다는 체념의 말처럼 들리는 것이 영 씁쓸함을 자아낸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반응이기는 하다. 지금은 종교가 아닌 과학이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자연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가져올 재앙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으며, 이제는 곳곳에서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그러한 위기론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인구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지방’의 인구 격차가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일으킬 것을 경고하고 있다. AI 기술의 발달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혼란을 가져올지는 아직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양한 학문 분야로부터 종말론적 경고가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고 냉소하고 체념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씁쓸함을 지워낼 수가 없다. 아무리 사회의 여러 가지 지표가 불가역적인 파국을 예견하는 시대라고 해도, 그러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며 냉소로 일관하는 태도는, 현실을 덮어놓고 허황된 낙관론을 펼치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멸과 파국의 시대에 학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던 중, 사회과학도의 길을 처음으로 택했을 때 붙잡았던, 하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지식인상(像)을 다시 한번 꺼내 보았다. 바로 손봉호 교수님께서 이야기하신 ‘선지자적 비관주의’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당대 사회에 있어서는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선지자들이 외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는 비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저지른 종교적인 죄악에 대한 규탄일 뿐 아니라, 불의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공의를 굽게 하며, 약자들을 착취하던 당대의 정치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했다. 모두가 평안하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고,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선지자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 특히 사회과학자들의 역할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역할과 맞닿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조사를 실시하고, 이로부터 얻어진 데이터를 이론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통해 시대의 숨겨진 모순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이 사회과학자의 본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만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갈고 닦아, 시대상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회과학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선지자적 비관주의’의 자세를 가진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연구자의 길에 들어설 때 가졌던 이러한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가는 한국사회의 혼란상을 보며, 내가 지금 하는 작은 연구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커져 갔다. 지방 청년들의 다양한 활동과 삶의 모습을 연구하는 나의 작업이, 이미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방소멸의 경향에 비추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회의 섞인 반응도 접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세상은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학위나 따서 먹고살 길부터 찾자는 생각에 스스로 무기력하게 지내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무기력함은 구약의 선지자들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감정이기도 했다. 패역한 당대 사회는 나아질 기미가 없고, 이미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 내려진 상황에서, 자신들의 자그마한 외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무기력함을 선지자들 역시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지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시대를 정직하게 직면하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갔다. 그리고 임박한 심판 가운데 숨겨져 있는, 만물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심을 꿰뚫어 보고, 환난 끝에 다시 도래할 희망을 노래했다. 이것이 ‘선지자적 비관주의’의 핵심이다.
많은 사람이 파국과 소멸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더 이상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 오늘만 일단 버티고 보자는 무기력함이 팽배해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일수록 더욱 ‘선지자적 비관주의’의 자세를 가진 지식인들의 자세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국을 향해 치닫는 현실을 정직하게 직면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그마한 희망의 조각을 발견하는 것이, 디스토피아의 시대에 지식인들의 역할이 아닐까?
언젠가 다시 오셔서 만물을 회복시키실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연구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