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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봉, 백두대간 투구봉 남동릉에서 바라보았다
봄 산은 그윽하고 봄 구름은 짙고 春山幽幽春雲濃
붉고 푸른 빛은 천백 겹이나 아스라한데 紫翠氤氳千百重
고목 굽은 절벽엔 새만 다닐 수 있고 老樹回岩有鳥道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엔 사람 종적 없으리 落花流水無人蹤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설잠 상인에게 부치다(寄雪岑上人)」에서
▶ 산행일시 : 2019. 5. 11.(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13명
▶ 산행시간 : 8시간 2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9.9㎞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0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09 : 05 -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 대수동 마을, 산행시작
10 : 38 - 백두대간 투구봉(1,101.3m)
11 : 22 ~ 11 : 54 - 예천문화목제체험장,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24 -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남천 마을, 2부 산행시작
13 : 20 - 815.3m봉
14 : 10 - 백두대간, 980m봉
14 : 30 - ┫자 갈림길 안부, 뱀재
15 : 08 - 솔봉(△1,100.6m)
15 : 33 - 1,045.3m봉
15 : 48 - 990m봉
16 : 58 - 임도
17 : 07 - 남천 마을, 산행종료
17 : 51 ~ 19 : 32 - 단양, 목욕, 저녁
20 : 11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21 : 3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일부 지명은 실제와 다르다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3. 산행 및 이동 고도표
▶ 백두대간 투구봉(1,101.3m)
하필 산불감시단속원 차량과 맞닥뜨렸다. 대수동 마을을 조금 지나 갓길에 버스를 세우고 내
리는 데 바로 바로 맞은편에서 트럭 캡에 경광등을 단 산불감시단속원이 우리가 하는 양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봄철 산불경방기간은 5월 15일까지이다. 일단 버스에 다시 오르고
산모퉁이를 돌아갔다. 산불감시단속원은 우리 뒤를 밟으려는지 트럭을 돌리려고 대수동 쪽
으로 내려갔다.
그 틈에 서둘러 개울을 건너 산속에 잠입하였다. 울창한 덤불숲에 뛰어들자마자 트럭을 돌린
산불감시단속원이 ‘산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시라’고 확성기를 반복해서 틀며 느릿느릿 올
라오고 있었다. 우리 빈 버스는 저수령 쪽으로 이미 가버렸는데 ……. 어쩌면 일부러 우리에
게 산속으로 잠입할 시간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떨결에 뛰어든 산속이라 뚫고 나아가기가 아주 고약하다. 이끼 낀 너덜에 가시넝쿨 덤불에
오래 전에 간벌한 나뭇가지까지 널려 있으니 때 이르게 진땀을 뺀다. 만경현구자(蔓莖縣鉤
子) 줄딸기의 꽃이 줄줄이 아름다워도 그 덩굴은 걸음걸음 사납다. 바지자락 뚫고 허벅지를
할퀸다. 한바탕 식겁하여 밀림을 지나고 대수동 마을에서 올라오는 잘난 길과 만난다.
아까의 일로 산행들머리가 약간 틀어졌던 터라 방향 틀어 왼쪽 낙엽송 숲의 가파른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너덜만 없다뿐이지 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일보전진하려다 이보후퇴를 반복하
며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도 등로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오르막이라 풋워크가
느려서 그렇지 연속으로 더킹모션하며 잡목 숲을 헤친다.
능선이 쉬어가면 우리도 쉬어간다. 잡목이 뜸한 풀밭에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살피면 눈부시
게 화려한 봄날이다. 주변 풍경이 한 안주한다. 소복한 매화말발도리 곁에 두고 입산주 탁주
나눈다. 얼근하것다 저마다 좌우사면을 누비며 간다. 고비사막을 지난다. 고비가 너른 초원
을 장악하여 더덕 등속은 보이지 않으니 사막이나 다름이 없다.
백두대간 주릉 투구봉이 가까워서는 그 북사면에 광활한 산상화원이 펼쳐진다. 얼레지와 개
별꽃이 만발하였다. 이 원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산행의 몫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지난 4월에 중국 항주(杭州) 서호에 여행할 때 화항관어(花港觀魚) 출입문 문설주
주련의 ‘靜碧軒窗聊寄傲, 軟紅塵土竟忘歸’ 대련 시구를 보았다.
송말원초 항주 사람인 구원(仇遠, 1247~1326)의 「사산(蛇山)」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한
국고전번역원에 그 해석을 부탁하였더니 노성두 선생님이 고마운 답변을 보내왔다. “안녕하
세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출근을 못하는 날이 많아서 답변이 늦어졌으니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씀과 함께. 봄날 구원이 느꼈을 감회가 이런 풍경에서가 아니었을까 하여
그 전문을 소개한다.
閒尋石澗列雲扉 한가히 바위 계곡 구름 속 사립문 찾으니
樹影生凉怯苧衣 수풀 그림자 서늘하여 모시옷이 걱정일세
靜碧軒窗聊寄傲 고요하고 푸른 창문에서 그런대로 기오하며1)
軟紅塵土竟忘歸 연홍 속세엔 끝내 돌아갈 생각 잊었노라2)
滿傾竹葉春霞滑 온통 기울어진 댓잎엔 봄 노을이 선명하고
輕折蕉花曉露晞 살짝 꺾인 파초 꽃엔 새벽이슬 말랐다오
禪意法乘俱莫問 선의와 법승 모두 묻지 말게3)
且談舊事更依依 옛 일을 말하려니 다시금 아련하다오
주1) 기오(寄傲)는 교오(驕傲)한 마음을 부친다는 뜻으로, 어디에 얽매이는 일이 없이 세상
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자기 뜻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도잠(陶潛, 365~
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가에 기대어 기오한 마음을 부치나니, 무릎만 겨
우 들여놓을 작은 집도 편안한 줄을 알겠네.(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라는 말이 나온다.
주2) 연홍(軟紅)은 관원들이 도성에서 조정에 출퇴근할 적에 타고 다니는 말과 수레에서 나
와 뽀얗게 거리를 뒤덮는 붉은 먼지라는 뜻이다.
주3) 선의(禪意)는 선심(禪心), 곧 청정하고 고요한 심경을 뜻하고, 법승(法乘)은 법이라는
수레로 부처의 말씀을 뜻한다.
4. 줄딸기(Rubus oldhamii Miq.)
5. 줄딸기(Rubus oldhamii Miq.)
6. 매화말발도리(Deutzia uniflora Shirai)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영명은 Korean deutzia이고
일본명은 チョウセンウメウツギ(조선매화나무)이다.
바위말발도리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7. 매화말발도리(Deutzia uniflora Shirai)
8. 고비(Osmunda japonica Thunb.), 고비사막이었다
9.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Balrer) Decne.)
10.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Balrer) Decne.)
11. 개별꽃(Pseudostellaria heterophylla (Miq.) Pax)
산림청 선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이다.
백두대간 투구봉에 올라선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표고점 1,101.3m봉인데 ‘소백산
투구봉, 해발 1,080m’이라고 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오늘 오전 오후 산행을 통틀어 최고
의 경점이다. 좁다란 바위에 교대로 올라 교대로 감탄한다. 미세먼지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봄빛을 다 가릴 수는 없다. 첩첩산중 안동 학가산만 분명히 가려낼 뿐이다.
백두대간은 남서진하고 우리는 용두휴게공원 쪽을 향하여 투구봉 남동릉을 내린다. 능선 길
은 백두대간 길로 착각할 만큼 잘 닦았다. 가파를만한 데는 굵을 밧줄 달았고 계단을 놓았다.
한 차례 밧줄 잡고 떨어졌다가 암릉 같은 바윗길을 간다. 오랜만에 쇠물푸레나무꽃을 본다.
섬모 같은 하얀 꽃에 이는 봄바람이 한결 부드럽다.
쇠물푸레나무 꽃가지를 젖히면 천주봉이 둥두렷이 솟았다. 천주봉은 언제 어디서나 바라보
아도 가경이다. 천주봉을 기준하여 좌우로 공덕산 국사봉을 짚어낸다. 오늘은 그 앞 능선이
녹상(綠裳)인 듯 화사하다. 안내판 들여다보아 낙타바위와 병풍바위, 굴바위를 지난다. 내리
막 잘난 길은 966.0m봉에 잠깐 멈칫하고 한 피치 밧줄잡고 내리고는 오른쪽으로 방향 틀어
직하한다.
그간 가물어 낙엽 쌓인 등로에는 앞사람 줄달음 뒤로 먼지가 뽀얗게 인다. 먼지 안전거리 유
지하며 내린다. 데크로드가 나오고 예천문화목제체험장 구내에 들어선다. 이 아래 용두휴게
공원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릴 두메 님을 부른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나무그늘에 둘러
앉아 점심 도시락 편다. 라면의 계절은 끝났다. 얼음물에 밥 말아 먹는다.
사람이 그리웠음에 틀림없다. 예천문화목제체험장에서 근무한다는 묘령의 여인이 나와 살갑
게 맞이한다. 산나물을 뜯으려 오셨는지, 얼마나 뜯었는지 말을 건네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
거니와 우리를 떠보려는 단속원의 유도심문 같기도 하여 처음에는 어색하였으나, 우리의 탁
주 권주에 자기가 벌목지대에서 뜯었다는 산나물을 갖다 주기까지 하니 금방 친해졌다.
이 근처의 백두대간 남쪽 지능선들은 투구봉 남동릉처럼 하나같이 돌길이거나 가팔라 식생
으로는 열악한 험지인 줄 알게 되었다. 2부 산행지를 대폭 수정하여 단양 남천에서 백두대간
솔봉을 오르기로 한다. 그 들머리로 버스 타고 이동한다. 산굽이를 구절양장으로 돌아 오르
는 저수령(低首嶺)이 준령이다. 해발 927m. 고개가 ‘몹시 높고 길어서 머리가 저절로 숙여
진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오늘 이후로 저수령의 유래가 약간 바뀌지 않을까 한다. ‘기해(己亥) 무신(戊申) 서울에서
온 일단의 오지산행 일행들이 아침에 우연히 만난 봄철 경방기간 산불감시단속원을 이 영마
루에서 다시 만날 것을 염려하여 머리를 낮게 숙이고 넘었다고 한다.’ 대수동 마을을 내릴 때
도 머리 숙이고 지나간다. 멀골 마을에서 바닥 치고 남조천을 거슬러 오른다.
12. 백두대간 시루봉 근처
13. 백두대간 시루봉 연봉
14. 아래 동네는 예천군 상리면
15. 멀리 가운데는 안동 학가산
16. 천주봉과 공덕산(오른쪽)
17. 천주봉과 공덕산(오른쪽)
18. 쇠물푸레나무(Fraxinus sieboldiana Blume)
목재는 재질이 단단하고 견고하여 건축재나 가구재, 기구재, 운동구재로 사용한다. 물론 소
백 님 말씀대로 오함마 자루로도 쓰인다. 나무껍질은 秦皮(진피)라 하며 약용한다.
19. 큰점나도나물(Cerastium fischerianum Ser.)
20. 병꽃나무(Weigela subsessilis (Nakai) L.H.Bailey)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21. 백두대간 주릉에 오르기 전 815.3m봉을 넘어오는 일행들
▶ 솔봉(△1,100.6m)
남천리 남천 마을이 솔봉 서쪽 산기슭에 준봉들로 둘러싸인 첩첩 두메산골 마을이다. 워낙
고지라서 우리 버스도 힘겹게 오른다. 좁다란 농로 옆에 주차할 공터가 있어 멈춘다. 농로는
산자락 도는 임도로 이어지고 임도 병꽃터널을 지나 통통한 지능선을 골라잡는다. 흐릿한 인
적이며 잡목 숲이며 오전 산행 때와 똑 닮았다. 좌우사면에 풀숲이 나오면 들락날락하며 오
른다.
줄곧 오르던 능선은 나주 임씨 무덤과 창녕 성씨 무덤을 차례로 지나고 815.3m봉에서 잠시
주춤한다. 키 큰 나무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조망 또한 없다. 815.3m봉을 내렸다가 둥굴레
가 초원을 이루고 있는 개활지 무덤 위에서 휴식한다. 오늘은 소백 님이 개안(開眼)한 날이
다. 산행 발걸음은 나는 듯 가볍고, 사면 풀숲 쓸어 더덕을 분별하는 눈썰미는 예전과 판이하
게 예리하다.
울창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는 불임인 억센 철쭉 숲을 벗어났는가 하면 미역줄나무덩굴 숲
이 진을 치고 기다린다. 빙 돌아 허술한 데를 골라 오른다. 백두대간 990m봉에 올라서야 길
이 풀린다. 백두대간 종주도 한때인가, 산꾼들을 통 만날 수가 없다. 지난주 갈전곡봉에서도
그랬지만 오늘도 가도 가도 한 사람을 볼 수 없다. 한갓져서 좋긴 하다.
잠시 휴식하고 나서 줄달음한다. ┫자 갈림길 안부인 뱀재-누군가가 돌에 ‘뱀재’라고 써놓았
다-를 스치듯이 지나고 석문 옆을 돌아 1,061.5m봉을 대깍 넘는다. 헬기장에서만 하늘이
트이는 짙은 숲길이다. 긴 오름길 끝이 솔봉이다. 정상 표지판 앞에 있는 삼각점은 ‘단양
460, 2003 복구’이다. 아무런 조망이 없어도 주변 나뭇가지에 달린 산행표지기 수로는 명산
이다.
우리는 솔봉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나 사뭇 장쾌한 서릉을 간다. 솔봉 서릉에 잇달아 첨봉으로
솟은 1,045.3m봉과 990m봉으로 오르는 것이 자랑이다. 솔봉을 막 벗어날 때에는 인적이 뚜
렷하여 남의 길인가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인적 드문 우리의 길이다. 한 차례 겁나게 떨어졌다
가 곧바로 대차게 오른다. 다리가 뻐근하여 1,045.3m봉 정상이다. 잡산이다. 사면 쓸어도 빈
눈이고 사방 수렴에 조망도 가렸으니 하릴없이 그저 걸을 수밖에.
990m봉 오르내리막은 사납다. 간벌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풀숲에 널렸으니 걸음걸음이 조
심스럽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녹상이 무척 고와 보이더니만 다가가면 이렇듯 험로일색이다.
990m봉에서 왼쪽으로 방향 틀어 남서진한다. 덤불숲 가파른 내리막길을 뚝뚝 떨어져 내린
다. 아무렴 길 없는 우리 길이라 예의 살펴간다. 산자락 엄나무와 두릅은 쇠었다.
임도에 내려서고 고개 들어 도열한 백두대간 준봉들을 바라보며 간다. 밭두렁에 노란 애기똥
풀 꽃이 화초로 만발한 농로를 돌아가면 우리가 2부 산행을 시작한 남천 마을 언덕배기다.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프를 힘차게 나누고 이 근방의 대처인 단양으로 간다.
22. 멀리 왼쪽은 흰봉산 연릉, 그 앞은 솔봉 서릉
23. 쥐오줌풀(Valeriana fauriei Briq.)
24. 솔봉 정상에서, 솔봉 표지판에 쓴 높이가 잘못 되었다. 해발 1,100.6m이다.
25. 홀아비꽃대(Chloranthus japonicus Siebold)
26. 멀리서는 고와 보여도 다가가면 덤불숲이다
27. 남천리 남천 마을 주변
28. 남천리 남천 마을 주변
29. 애기똥풀(Chelidonium majus var. asiaticum (H. Hara) Ohwi)
상처를 내면 등황색의 유액이 나오기 때문에 애기똥풀이라고 한다. 전초를 백굴채(白屈菜)
라 하며 약용한다.
30. 뒤쪽이 백두대간 투구봉
31. 남천 마을에서 바라본 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