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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성령이 맺게 하시는 열매들2-희락의 열매
여러분 사는 날이 날마다 기쁘십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이 기쁨이 성령의 열매인 희락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오늘날 사람들은 겉으로는 기뻐하는 것같은데 속으로는 외로워하는 고독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찾기도하고, 산이나 바다를 찾기도하고, 때로는 애완동물을 찾기도 하고, 영화를 보거나, 헬스를 하거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거나, 옛날 같은 학교에 다녔던 동기동창들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취미 활동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찾으면 일시적으로나마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잠깐 동안은 기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 헤어지고 나면 마음에 외로움과 곤고함을 갖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고독 속에 갇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은 계속해서 발달해가는 과학이나 경제와 정치가 최고의 행복을 안겨줄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상은 늘어나는 것이 정신상담자들입니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배출하는 상담심리학자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만큼 마음에 병이든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풍요롭습니까?
수많은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이 들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결여되어 있고, 그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이유는 창조주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 47-48절을 보면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을 때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한 것을 떠나 한시적인 것만을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그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그 기쁨과 즐거움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립니다. 그 뒤를 따라 육신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인 빈궁과 영적인 빈궁이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많은 적들이 생겨서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기쁘지 못하고 즐겁지 못한 원인을 사회적인 관계 속애서 찾습니다. 자기를 기쁘고 즐겁게 해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를 기쁘고 즐겁게 해줄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찾으려고 합니다. 특정 가수나 연예인들에 대하여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 역시 자기를 순간적으로 만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전날이나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젊은 이들과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이들이 행하는 행동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 마음에 진정한 것이 결여됨으로 인해 다른 것으로 대치할 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무리를 지어 그런 즐거움을 줄 만한 많은 것들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일시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줄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솔로몬도 전도서를 통해 자기를 기쁘게 할만한 것들을 다 해봤지만 내린 결론은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현대인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할 것이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의 원료인 기름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등불은 기름이 없으면 더 이상 빛을 비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열처녀 비유 가운데 다섯처녀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신랑이 더디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그냥 기름이 들어있는 등불만 들고 추가로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한 밤중에 신랑을 맞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옴으로 인해 모두들 기다리다 못해서 졸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등불을 들고 맞으려고 보니 이미 기름이 다 소진되어 등불은 꺼져있었습니다.
그들이 당황해서 기름을 추가로 준비해 온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가서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너희를 빌려주었다가 우리까지 모자랄 수 있으니 안되겠다”는 말과 함께 “얼른 가서 기름을 파는 사람에게 가서 기름을 사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왔고 신랑을 기다렸던 신부의 친구들은 그 신랑과 함께 잔치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기름을 겨우 구해온 지혜롭지 못한 처녀들은 결국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갖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잔치의 특징은 바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 다시 말해서 영원한 희락을 얻고자 한다면 결국 여러분들은 그것을 얻고 누릴 수 있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혜가 어디서옵니까? 네 그렇습니다. 바로 성령님에게서 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여러분들 안에서 해석하고 적용시키심으로써 그 희락을 누리도록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락을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하루 사는 날이 기쁘십니까? 오늘은 바로 기쁨을 표현하는 희락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자로 희락은 ‘기쁠 희’, ‘즐거울 락’입니다. 성경은 굉장히 많은 기쁨과 즐거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구약 성경 곳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하여 말씀을 합니다.
신명기 16장 15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정한 기간 동안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지 말고 레위인들과 여러분들 가운데 거류하는 객과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26장 1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하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기지 않을 때 이웃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각해도 자기를 위해서 이것저것 해주다가 어느 시점에 가면 실망하고 분노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이웃과 나누던 기쁨과 즐거움을 잃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신명기 28장 47-48절입니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결국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온전해질 수 있다는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해주고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주님, 물과 성령으로 여러분들을 거듭나게 하신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온전한 기쁨을 가지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기쁨을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라는 것은 예수님 안에 기쁨이 있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영생 안에 있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죽은 자들을 살리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기쁨입니다. 그것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멀어진 죄인들을 다시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하나로 연합시키십니다. 예수님은 그 기쁨으로 충만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파송을 받아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마을 마다 동네마다 전파하면서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보고 예수님께 돌아와 좋아하고 신기해하면서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은 “그런 능력이 나타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더 기뻐하라”고 하시면서 자신 역시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게서도 그런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성령을 받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능력보다 생명책에 기록할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데 더 중점을 두라’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까? 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에 이를 때 하나님 아버지와 천국에 있는 모든 영들이 하나님이 구원하신 생명으로 인해 크게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누가복음 15장 7절과 10절에 연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먼저 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리고 1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하나님의 기쁨은 이미 심판의 판결을 받은 이 세상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선한 상태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통해 그 일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다음에 말씀드리는 로마서의 세 구절은 이를 보여줍니다. 먼저 로마서 3장 25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아들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아들이 없는 믿음은 그래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 영생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들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아들의 피로 세우신 언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드린 피의 제사를 통해 죄인들에 대하여 길이 참으시고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않고 자기의를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의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로마서 5장 10절을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하시면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의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증거로 인한 구원의 확신과 마음의 기쁨을 갖지 못하고 어떤 종교를 믿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면서 마치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는 것처럼 떠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종교협의회인 WCC이며 그 지부가 바로 KNCC입니다. 이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절대적인 구원의 해결자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이 있을 수 있겠으며,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고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인 성령을 받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위한 선한 일을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입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5장 11절을 보면 구원받아 하나님과 함께 화목하게 된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결국 성령으로 맺게 되는 열매인 희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 구원으로 인해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에서 갖는 위로부터 오는, 그리고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이 주시는 확신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크게 기뻐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성령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세상 사람들이 갖는 기쁨과 여러분들이 갖는 기쁨이 어떻게 다를까요? 세상 사람들의 기쁨은 육체적인 어떤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간간히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 널려 있는 것을 정신적으로 깨달았을 때 갖는 기쁨을 갖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주시면서 여러분들 안에서 맺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밖으로 표출되고,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산제사로 드리게 만들며, 그로인해 그 기쁨이 진정한 기쁨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22절을 통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자신을 떠나 보냄으로 인해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될 때 그 마음이 기쁠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기쁨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원히 여러분들과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기쁨이 여러분 안에서 계속해서 생수의 강이신 성령에 의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그 기쁨을 누가 빼앗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은 여러분들 안에 계신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사람들은 그 근원적인 기쁨 위에 아버지와의 온전한 관계로 인한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로 인한 기쁨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을 때가 다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기쁨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쁨으로 나가서 기쁨으로 구하게 될까요?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도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만나주시며 친밀한 교제의 잔치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들으신 여러분들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해주실 것을 약속하시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기도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강한 용사로 세우셔서 마귀와 이 세상과 자신의 정욕에 대하여 맞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리자로써 갖는 기쁨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럴려면 여러분들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때때로 인내의 마음을 훈련시키십니다. 이 인내의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주시는 강한 확신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희락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을 잃지 읺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쁨과 즐거움을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쁨에 대한 최종적인 강조점은 이것입니다.빌립보서 4장 4절입니다.“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이 여러분들에게 맺게 하시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감사와 기도와 함께 동반되는 열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갖기를 즐거워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매일같이 나누십시오. 새벽같이 일어나 맑은 정신을 갖기 위해 씻은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펼치고 순서대로 읽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시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약속으로 받고 기뻐하십시오. 그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여러분들이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구하십시오. 아침부터 시작된 기쁨이 저녁까지 계속될 것이고 저녁에 하나님 앞에 하루를 동행하시면서 인도하시고 복주신 것을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달라지고 삶이 활력을 얻으며 여러분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로인해 사망과 어두움에 있던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당신의 삶이 그렇게 기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화목하기 위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그 분과 매일 같이 만나고 함께 동행하다보니 이렇게 기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증거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8절을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하는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 실제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시는 성령으로 인한 희락의 열매가 언제나 풍성하게 맺히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