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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
교회 전례력으로 성탄 팔일 축제 마지막 날이요 새해 첫날인 1월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다. 1월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게 된 때는 1970년부터이다.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성모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했고, 동방교회에서는 이 축일을 예수 성탄 축일 다음날인 12월26일에 지내 왔으며, 로마 교회는 7세기부터 1월1일을 성모 마리아 축일로 지내 왔다.
지역마다 다른 날짜에 이 기념일을 지내 오다가 1931년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을 맞아 교회의 보편적 축일이 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라 1월1일로 결정되었으며, 명칭도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로 바꾸어 지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1987년부터 1월1일을 의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순교자 및 성인들의 축일이 부활사상에서 기인하여 천상탄일을 축하하는 것과는 달리,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의 신비와 깊이 연관된 축제이다. 옛 로마시대의 전례대로 1월1일에 지내게 되는 이 축일은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4세기에 성모 마리아께 대한 공경이 발전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에 대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人性)을 엄격히 구별하여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주장하는 이단에 대해서도 431년 에페소 공의회를 통해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을 신조로 정의, 공포함으로써 이단을 몰아냈던 것이다. 이러한 이단과의 논쟁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기념하고 가톨릭 교의를 확립하기 위해 성모 축일들이 4~5세기경에 동방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7세기 이후에 서방교회로 전파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 신비와 깊이 연관된 축제
가톨릭교회는 “구원 업적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 특별한 애정으로 공경한다”(전례헌장 103). 즉 성모 공경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점에 그 근거를 둔다. 마리아의 자유로운 수락(루카 1,38)으로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마리아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낳음으로써 인간 예수님의 어머니요 동시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 Theotoros의 신학을 확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인간이셨을 뿐만 아니라 온전한 하느님이셨으니까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느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는 자신의 편지(Epist. ad Epictetum, 5-9: PG 26, 1058. 1062-1066)에서 하느님의 말씀께서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심을 강조하여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말씀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시고자 모든 점에 있어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하고” 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셔야 했습니다. 마리아가 존재하게 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께서는 우리를 위해 바치신 당신의 육신을 마리아에게서 취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말할 때 “마리아는 그를 포대기로 쌌다.”고 하고 또 그를 젖 먹인 젖가슴은 복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육신이 외부로부터 마리아 안으로 주입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천사는 마리아에게 단순히 “당신 안에서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육신은 정말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천사는 “당신에게서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씀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당신이 우리 인성을 취하시어 그것을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우리 인성을 완전히 흡수하여 우리를 당신 신성으로 옷 입히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의 단순한 가현이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참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전인적인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구원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고 육신만의 구원도 아닙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전인 즉 육신과 영혼의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말씀대로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분은 참인간이셨고, 주님의 육신은 참 육신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이었으므로 참 육신이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월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
이렇듯 예수님의 어머니이시자 하느님의 어머님으로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신비롭게 결합된 분이시며, 우리 믿는 이들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새해 첫날 사랑과 공경으로 기리는 것은 시련과 유혹이 많은 세상살이 한 해를 시작하며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보호와 전구에 의탁하는 의미에서도 마땅하고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인 1월1일은 또한 ‘세계 평화의 날’로도 지내고 있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는 1월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하면서 “평화란 생명과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지닌 가장 높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교황은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할 좋은 기회임을 강조하였다.
[교회 안 상징 읽기] 주님 부활 대축일 그리고 부활절 토끼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셨다가 되살아나심으로써 완성되었다. 이에 교회는 주님 부활을 겨우내 죽은 듯 보이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에 기념하고 경하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생명의 낌새도 보이지 않던 달걀에서 그 껍질이 깨어지며 병아리가 탄생하고 무르익은 석류의 과피가 벌어지며 그 안의 씨앗들이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무덤에 묻히셨다가 무덤의 돌문을 열어젖히고 되살아나신 주님을 연상했다. 또한 이렇듯 주님 부활을 상징하는 것들 가운데는 토끼가 있다.
토끼, 다산성과 동정성을 모두 아우르는 상징성
토끼는 중세기 이래로 주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토끼는 어떻게 해서 주님 부활의 상징이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달걀이며 토끼가 바빌론의 생식의 여신 이슈타르의 상징이었다고 말하며, 주님 부활을 경하하는 관습은 단지 이교(異敎)의 의식(儀式)에서 들어온 것일 뿐이라고 폄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상 이슈타르의 상징은 사자, 올빼미, 문(門), 8각형 별 따위였다. 그리고 유럽에서 토끼는 일찍부터 사계절의 시작인 봄[春]의 동의어로 간주되었고, 또한 30여 일의 짧은 수태 기간을 거쳐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다산 능력으로 해서 흔히 새로운 생명 또는 소생과 관련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이보다 앞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야생 토끼가 죽음과 소생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을 이어받은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은 묘비에 흔히 야생 토끼를 새겨 넣곤 했다. 그리스도인들 또한 이와 같은 상징적 맥락에서 야생 토끼를 죽음과 부활과 연관되는 동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묘비에 야생 토끼를 많이 새겨 넣었다. 나아가, 유럽 전역의 특히 독일과 영국의 교회들에서는 필사한 문서나 군인의 갑옷이며 말[馬]의 가슴받이 따위를 동그라미 안에 야생 토끼 세 마리가 들어 있는 문양으로 장식하곤 했다. 그러한 문양 중에는 토끼 3마리의 귀로 세 변을 이루는 삼각형을 만들어 삼위일체를 나타낸 것도 있다.
그리고 중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봄이 되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동식물들을 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해드리도록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보내신 것이라고 이해했다. 가령, 스위스의 장크트갈렌(또는 생갈, Saint Gall) 지역에서 9세기에 만들어진 전례서(미사경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가톨릭교회가 일찍부터 이해해 온 봄에 대한 관점을 잘 말해 준다.
“모든 피조물이 주님의 부활을 맞아 기쁨의 축제를 지낸다. 음울한 겨울이 지나갔으니, 꽃들은 피어나고, 풀들은 다시금 푸릇푸릇한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새들은 달콤한 환희에 빠져서 재잘거린다.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던 해와 달은 이제 그리고 영원히 더욱 밝게 빛난다. 대지는 그분의 죽음에 진저리치며 무너져 내린 듯이 보였으나, 이제는 되살아나신 주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초록색으로 물들어 간다.”
이러한 인식은 봄철에 한꺼번에 새끼 여러 마리를 낳는 야생 토끼에게서 더욱 명백해졌고, 이제 야생 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나아가 야생 토끼는 주님 부활 대축일, 곧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해마다 봄철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라고 생각하던 이 축일과 연결되었다. 그러한 인식과 이해의 흔적으로, 중세기의 수많은 필사 문서들과 그림들에는 야생 토끼들이 귀여운 모습으로 또는 해학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시에는 야생 토끼는 짝이 없이도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여겨졌고, 그런 점에서 토끼는 정숙함과 동정성의 상징으로도 간주되었다.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저서 ‘물리학’에서 야생 토끼는 수컷이 암컷이 될 수도 있고 암컷이 수컷이 될 수도 있다는 당시의 속설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믿음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물론 성녀는 이어서 이 믿음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대에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들에는 그분의 발치에 흰 토끼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흠결 없는 동정성을 상징하기 위한 소도구였다. 예컨대 티치아노(Tiziano, 1488~1576년)의 작품 ‘토끼의 성모 마리아’(Madonna of the Rabbit)에도 성모님의 발치에 흰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리스도교가 차츰 전파되고 이와 더불어 이러한 상징성들도 전파됨에 따라, 흰 토끼도 예전의 야생 토끼와 같은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부활시기의 풍속으로서 부활절 토끼
부활시기의 풍속으로서 부활절 토끼에 대한 첫 언급은 1500년대 독일 문헌에서 발견된다. 이는 독일에서는 토끼의 상징성이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말해 준다. 부활절 토끼의 상징성은 ‘토끼와 동정성’ 그리고 ‘토끼와 되살아남’의 관련성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해서 야생 토끼는, 그리고 흰 토끼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경하하는 부활 축제의 명실상부한 상징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 토끼가 어린이들에게 달걀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보기에 야생 토끼는 달걀(또는 새알)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야생 토끼는 풀밭이나 덤불 속에 둥지를 만들었는데, 이 둥지에 새가 와서 알을 낳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야생 토끼는 알을 낳는다는 속설로 이어졌다. 그리고 알은 이미 주님 부활을 상징하던 터였기에, 알과 밀접해진 야생 토끼 또한 부활절을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부활절 토끼 관습이 1700년대에 독일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아메리카에 전해졌고,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오히려 부활절 토끼와 부활절 달걀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은 가톨릭이 독일에서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이를테면,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룩셈부르크에는 부활절 토끼가 감추어두었다는 달걀과 초콜릿을 어린이들이 찾아 모으게 하는 관습이 있다. 이 관습은 아마도 독일계 국가들에서 중세기 말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룩셈부르크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 관습을 부활절을 경하하는 그들 나름의 행사에 접목한 것이다. 이 관습은 오스트리아, 영국, 스위스, 덴마크, 그리고 네덜란드에도 있다.
유럽 전역에 걸쳐서 주님 부활 대축일과 관련해서 지내는 여러 가지 아름답고 매력적인 관습들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들에 근거한다. 예컨대, 성삼일의 첫날인 성 목요일 전례 이후 전례 때 타종하지 않는데, 프랑스와 벨기에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종(鐘)들이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날아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고는 부활 주일에 바구니들이나 둥지들을 만들어 정원에 가져다 둔다. 어린이들이 온갖 종류의 알들(초콜릿, 곱고 보드라운 천, 삶아서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달걀)로 그득한 바구니며 둥지를 찾아내면, 그것이 교황의 명을 잘 실행하여 착한 일을 한 어린이들에게 보내진 선물이라고 말해 준다.
이런 점에서 토끼며 달걀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경하하는 관습이 사람들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초점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어린이들이 주님 부활을 맞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체험하도록 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며, 그러기에 무엇이든 가능한 날이기에 말이다.
부활 시기 전례 안내
부활 대축일부터 50일, 주님 부활 찬미하는 ‘기쁨의 축제’
가톨릭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50일간을 ‘부활 시기’로 지낸다. 교회는 이 시기 동안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며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고 내 양 떼를 돌보라며 사목권을 주신 것과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께서 강림한 것을 기념한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쇄신에 따라 전례력에 큰 변화가 있었다. 교회는 주님 성탄과 주님 부활을 두 축으로 대림-성탄-연중-사순-부활-연중 시기로 1년을 전례주년으로 지내오고 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인들의 축일이 중심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주년의 중심은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례 쇄신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1969년부터 오늘날과 같은 전례력이 마련돼 전 세계 보편 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부활 시기를 맞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쇄신을 통해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전례의 특징과 내용을 정리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어떻게 정하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주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로 고정돼 있는데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해마다 그 날짜가 바뀌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를 어떻게 정하는지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가 해마다 바뀌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절기를 정하는 ‘유다력’에 따르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파스카 축제(과월절)를 해마다 첫째 달인 니산달(태양력으로 3~4월) 14~15일에 지낸다.(춘분 후 처음 맞는 보름) 14일 오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스카 양을 잡았고, 이날 밤(유다인들은 해가 지는 저녁부터 하루를 시작하기에 날짜로는 15일이 됨)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고, 잡은 양을 누룩 없는 빵,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이집트 탈출을 기념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준비일에 돌아가셨고(요한 19,14), 안식일 다음 날인 주간 첫날(요한 20,1)에 부활하셨다.
주님 부활을 기념해 초기 소아시아 교회는 파스카 축제 전날인 니산달 14일에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반면, 로마 교회는 과월절 다음 주일(주간 첫날)에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초기부터 동ㆍ서방 교회가 주님 부활 대축일의 날짜를 통일하고자 했다.
그래서 325년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춘분 후 처음 맞는 보름 뒤 첫 번째 주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주님 부활 대축일은 보통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들어 있다. 동ㆍ서방 교회 곧 가톨릭과 정교회는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달력이 서로 달라(가톨릭-그레고리우스력, 정교회-율리우스력)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가 차이가 난다.
부활 전례 특징
부활 전례의 가장 큰 특징은 주님 부활을 찬미하고 기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사순 시기 동안 금했던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다시 노래한다. 사제는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백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때마다 ‘부활 초’를 밝힌다. 삼종기도도 ‘부활 삼종기도’를 서서 바친다. 교회는 부활 시기 50일 동안 매일 부활 축제를 지내듯이 기쁘게 지내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특별히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첫 8일 동안 대축일처럼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낸다.
부활 제2주일부터 부활 제7주일까지는 주일 복음과 제1독서의 주제가 일치한다. 제1독서는 사도행전을, 제2독서는 전례력으로 나해인 올해엔 요한의 첫째 서간을 읽는다. 주일 복음은 요한 복음(부활 제3주일은 루카 복음)을 봉독한다. 한국 교회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 의무 축일로 지내지 않고 다음 주일 곧 부활 제7주일에 지낸다.
부활 시기 주요 주일
▲ 파스카 성야와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는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예식, 성찬 전례로 구성돼 있다. 빛의 예식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왔음을 드러낸다. 사제는 이때 부활 초에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인 알파(A)와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Ω)를 새기는데, 이는 ‘시작이요 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내일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대축일이다. 말씀 전례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사도 10,34. 37-43)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증언하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콜로 3,1-4)가 선포된다. 또 복음은 빈 무덤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요한복음(20,1-9)이 봉독된다.
▲ 부활 팔일 축제
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첫 8일 동안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낸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이 기간에 부활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어 ‘백색 주간’이라고도 불렀다. 교회는 이 축제일 동안 세례로 새로이 태어남을 기념한다.
▲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특별히 기억하자며 새천년기를 여는 2000년 대희년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제정했다. 교회는 이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며 기념하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전쟁과 폭력, 살인, 기아, 낙태 등 전 세계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자비뿐”이라며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간을 보살피는 하느님의 자비를 청할 것을 권고했다.
▲ 성소 주일(부활 제4주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4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제정했다. 이날은 사제와 수도자, 선교 성소 증진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다.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불린다.
▲ 주님 승천 대축일ㆍ홍보 주일(부활 제7주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간 지상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후 당신 구원 사업을 완성하시고 하느님 나라로 올라가셨다. 교회는 이날을 기념해 주님 부활 대축일로부터 꼭 40일째 되는 날 곧 부활 후 여섯 번째 목요일에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낸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의무 축일인 이날이 공휴일이 아니기에 전례력 지침에 따라 부활 제7주일을 주님 승천 대축일로 지낸다.
이날은 또 마지막 날에 세상의 심판자와 구원자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억하는 날이다. 아울러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 언제나 우리 안에 현존하고 있음을 기념하는 날이다.(마르 16,19 참조)
교회는 또 주님 승천 대축일을 ‘홍보 주일’로 지낸다. 교회가 이날을 홍보 주일로 제정한 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사도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하신 것을 새기고, 특별히 현대 사회의 다양한 홍보 매체들을 올바로 사용하여 복음 선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날이다.
▲ 성령 강림 대축일
교회는 부활 시기 마지막 날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오순절)이 되던 날에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을 기념한다.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설립된 날이기도 하다.
부활 시기가 성령 강림 대축일로 끝나는 것은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구원의 신비가 성령과 함께하는 교회를 통해 세상 마지막 날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 시기를 지내는 신앙인은 부활의 신비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를 희망한다.
전례 탐구 생활 (43) ‘신앙의 신비’ 안에서
성체성사가 세워진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1코린 11,23)부터 이어지는 극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성찬례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사건들을 단순히 상기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성사적으로 재현합니다. 베네딕도 16세는 성체성사에 깊숙이 스며든 그 신비를 이렇게 풀어 말씀하십니다.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의 생각은 파스카 성삼일로, 곧 성목요일 저녁의 사건들, 최후의 만찬과 그 이후의 일들로 되돌아갑니다. 성체성사의 제정은 게쎄마니 동산의 고뇌를 시작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성사적으로 앞당깁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다락방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로 내려가시어 올리브 동산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지금도 그 동산에는 매우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있습니다. 아마 이 나무들은 그날 그리스도께서 고통 중에 기도하시며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질 때”(루카 22,44) 그 나무 그늘 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전에 성체성사를 통하여 교회에 구원의 음료로 주신 그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피 흘림은 해골산에서 우리 구원의 도구가 됨으로써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당신의 시간 앞에서 도망가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해 주기를 바라셨으나, 외로움과 버림받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오직 요한만이 성모님과 충실한 여인들 곁에서 십자가 아래 남아 있었습니다.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고통은 성금요일의 십자가 고통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시간, 세상 구원의 시간. ……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는 모든 사제는 마음으로 그곳, 그 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 그러고 나서 교회는 부활 시기 동안 이렇게 선포하며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도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도다. 알렐루야.”(「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3-4항)
그러므로 사제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두고 제정하신 말씀을 읽음으로써 부활하신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실제로 현존하시게 되는 축성의 순간에는 파스카 삼일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분도 채 안 되는 저 짧은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삼일의 신비가 압축되어 있고, 또 바로 그 신비가 세기의 흐름을 건너뛰어 오늘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비, 그리고 그 신비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다는 신비, 이 이중의 신비 앞에서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 하고 외치고 신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고자 모인 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놀라움에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성찬례를 거행하는 집전자는 더욱 이러한 놀라움에 가득 찹니다. 성품성사에서 받은 권위로 축성을 이루는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제들이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1티모 3,9)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성체성사가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기를 요구할 정도로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신앙의 신비라면,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갖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성모님 밖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여주신 어머니다운 관심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내 아들의 말을 믿어라. 그가 물을 술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빵과 포도주도 그의 몸과 피가 되게 하고, 이 신비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부활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 줌으로써 ‘생명의 빵’이 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4항)
[미사의 모든 것] (35 · 끝) 강복
신자들에게 하느님 강복 빌고 미사를 마치다
나처음: 신부님들은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시면서 왜 신자들에겐 성체만 주시나요?
라파엘 신부: 성체와 성혈을 모두 모시는 것을 ‘양형 영성체’라고 해. 12세기 때까지만 해도 신자들도 사제와 똑같이 모두 양형 영성체를 했지. 그러다 13세기 들면서 유럽 교회에 성체 공경 신심이 퍼지면서 성혈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대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신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꺼리는 경향이 늘어났어.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비롯한 당대 저명 신학자들이 “성체와 성혈 안에 그리스도께서 모두 온전하게 현존하신다”고 주장하면서 성체만을 영해 주는 ‘단형 영성체’가 교회 안에 확산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교회 일부에서 이에 반대해 양형 영성체만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성체를 멀리하고 성혈만을 모시려고 하는 이들도 생겨났지. 교회는 이러한 행위 모두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평신도에게 성혈을 영하게 하는 것을 공식으로 금지했단다.
양형 영성체가 평신도에게 부분적으로 허용된 것은 불과 60여 년 전 일이란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개혁을 단행하면서 양형 영성체가 성찬 잔치의 표지를 더욱 완전하게 드러낸다면서 신자들에게도 이를 허락했어요. 교회가 신자들의 양형 영성체를 아직 완전히 허용하지 않고, 혼인성사 등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하는 이유는 사목적 어려움 때문이야. 결코, 교리나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그러는 게 아님을 염두에 둬야 해.
나처음: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려면 영성체를 많이 할수록 좋겠네요.
조언해: 미사에 온전하게 참여하면 하루에 두 번까지 영성체할 수 있어.(교회법 제917조) 왜냐하면, 처음이 너처럼 영성체를 많이 하면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에 같은 날 여러 대의 미사에 온전히 참여한 사람이라도 두 번만 성체를 영할 수 있도록 교회법으로 정해 놓은 거야.
라파엘 신부: 언해가 교리교사답게 잘 설명해 주었구나. 교회가 영성체 남용을 막는 이유는 성체에 대한 그릇된 신심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야. 양형 영성체를 부러워하거나 크기가 큰 성체를 모셨으니 몇 배로 은총을 더 많이 받았다고 여기는 게 성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하나이지. 영성체를 하루에 몇 번 하는지가 결코 중요한 게 아니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리라는 결심을 다지고, 자비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자기 쇄신이 중요한 거란다.
조언해: 저는 성체를 씹지 말고 녹여 먹으라고 첫영성체 교리 시간에 배웠는데 신부님들은 성체를 씹어서 영하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성체를 씹는 입 모양이 너무 크고 아그작 아그작 하는 소리를 내 경건함이 없어 보여요. 어떻게 성체를 영해야 하나요.
라파엘 신부: 성체를 씹어서 영하든 녹여서 영하든 그 방식 역시 중요한 게 아니야.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그에 합당한 존경의 예로 영성체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거지. 사제와 성체 분배자뿐 아니라 성체를 모시는 신자들도 동작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다해 영성체 예식에 임해야 하지.
평신도가 직접 성체를 집어 들거나 성작을 들고 성혈을 모셔서는 안 돼. 또 평신도끼리 성체와 성혈을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 안 돼. 언제나 집전 사제의 손에서 성체와 성혈이 담긴 성합과 성작을 받아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해야 해. 교회법은 사제를 거치지 않고 평신도가 직접 성체와 성혈에 접촉하는 모든 행위를 금하고 있단다.
조언해: 영성체 후 기도로 영성체 예식이 끝나는 거죠.
라파엘 신부: 신자들의 영성체가 모두 끝나면 사제는 성반과 성합, 성작을 닦은 다음 자리에 앉아 교우들과 함께 잠시 침묵 가운데 감사의 기도를 바친 다음 영성체 후 기도를 해. 이를 ‘감사 예식’이라고 하지. 중요한 것은 사제는 물론 신자들도 영성체 후 침묵 중에 성체성사를 통해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가끔 영성체 후 신자들이 성당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는데 이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야. 모든 신자가 경건하게 자리에 앉아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침묵의 시간을 꼭 가졌으면 해.
침묵 기도 후 사제는 영성체 후 기도를 바쳐요. 이 기도는 미사 본기도와 예물 기도와 함께 주례 기도에 속해. 다만 본기도와 달리 끝 부분이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성부께 바칠 때),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성부께 바치지만, 마지막에 성자에 대한 말이 있을 때),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성자께 바칠 때)라고 짧은 마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이 기도로 ‘영성체 예식’ 그리고 ‘성찬 전례’가 모두 끝나지.
나처음: 드디어 미사가 마쳤군요.
조언해: 아니지. ‘마침 예식’이 남아 있잖아. 신부님께서 공지하시고, 인사와 강복을 하며 신자들을 파견하는 예식 말이야.
라파엘 신부: 하하! 처음이는 미사를 빨리 마치길 바라는구나. 예비 신자 입장에선 미사가 지루할 수도 있지.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사목에 필요한 당부나 공지를 짤막하게 할 수 있단다. 가끔 본당이나 단체에서 이때 축하식 등 여러 행사를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아. 사목상 필요한 행사들은 미사가 온전히 끝나고 사제가 퇴장한 후 별도로 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이후 사제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신자들에게 강복한단다.
나처음: 강복과 축복은 뭐가 다른가요
라파엘 신부: 축복은 ‘하느님께 복을 비는 것’(祝福)이고, 강복은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는 것’(降福)을 말해. 전례 때 사제가 강복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하는 것이란다.
조언해: 강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라파엘 신부: 언해의 질문은 강복 양식을 말하는 것이지? 강복 양식에는 ‘보통 강복’과 ‘장엄 강복’, ‘백성을 위한 기도’ 세 가지가 있어. 보통 강복은 사제가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하면서 크게 십자가를 그리는 양식이야.
장엄 강복은 「로마 미사 경본」에 20가지 양식이 제시되어 있단다. 이 양식들은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시기 등 특별 전례 시기와 대축일, 연중 시기 양식으로 구분돼 있어. 장엄 강복 양식은 모두 주례 사제가 신자들을 향해 두 팔을 펼치고 외는 3번의 강복과 신자들이 “아멘”으로 응답하는 양식으로 구성돼 있단다. 그리고 언제나 주례 사제가 십자가를 그으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복을 기원하는 보통 강복으로 끝난단다. 장엄 강복을 받을 때는 지역 교회에 따라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면서 받는단다.
백성을 위한 기도는 미사 경본에 26가지 양식이 수록돼 있어요. 이 기도는 사순 시기 평일 미사 끝에 바치던 기도가 발전한 것으로 장엄 강복 형식과 같단다.
나처음: 강복을 마치면 드디어 미사가 끝나는 거죠.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사제가 외치시잖아요. 우리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면서요.
라파엘 신부: 그래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는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되지. 이 파견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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