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로 했네』(작사 정두수, 작곡 김영광)는 1980년 발매한
「조용필」2집 앨범(타이틀 : 축복)수록곡으로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사랑 받는 곡 중의 하나 입니다.
「조용필」(1950년생)은 1968년 서울 경동고를 졸업하고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69년, 미 8군 무대에서 데뷔하였습니다.
1971년, 3인조 음악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락 음악
으로 전환하였으며 1974년 쯤 에서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26세가 되던 1975년에 솔로 가수 로 전향하여 발표한 트로트
음악,〈돌아와요 부산항에〉이라는 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처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76년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4년 간의 공백기를 갖게 되고,
해금(解禁) 조치 이후 지구 레코드와의 전속으로 1979년에 공식적
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정규 1집 음반 타이틀 곡 〈창밖의 여자〉라는
곡을 발표했습니다. 이 곡이 수록된 「조용필」의 정규 1집 음반은
대한민국 최초로 100만 장 이상 팔린(밀리언 셀러) 단일 음반입니다.
「조용필」이 데뷔했을 때의 가요계는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친 가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단독으로 음악 작업을 하면서 여러 히트곡을 발표
하고 1980년대 대중 음악계 영웅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조용필」은 락 음악과 발라드 음악, 트로트 음악 또는〈강원도 아리랑〉
처럼 한국 민요를 '리메이크' 하는 등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해 내며 다양한 연령 층을 확보 하였습니다.
또한 「조용필」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오빠 부대로 불리는 젊은 여성
팬 층을 이끌고 다니기도 했으며, 「조용필」 등장 이전에 대한민국의
최고 인기 가수로 호평을 받던 '남진'과 '나훈아'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았습니다.
홀로 대한민국 가요사의 한 획을 긋기 시작하던 「조용필」은 1986년
일본에 진출하여 발매한 앨범 〈추억의 미아 1〉이 100만 장이상 판매
하는 대 성과를 거두어 그 해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장르를 섭렵한 가수로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조용필」을 "엔카의 황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1988년에는 10집 음반을 발표했는데 수록곡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여러 가수와 경쟁을 하였습니다.
이 중 〈서울 서울 서울〉은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 때 방송에서
전파되면서 부터 인기를 얻었는데 「조용필」은 당시 인터뷰 때
"올림픽이 끝나면 우리 사회가 우울해 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용필」은 1994년에 대한민국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00만 장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앨범 판매량 역시 공식적으로 600만 장이
넘어 한류(韓流)의 시초로 평가 받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오가며 활동을 해오고 있고, 지금까지
총 18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 하였으며, 가장 최근의 앨범은 2003년에
발매한 18집 《OVER THE RAINBOW》(비정규앨범은 2009년에
발매한 《2008년 조용필 40주년 콘서트 기념 앨범 "THE HISTORY
킬리만자로의 표범"》)입니다.
「조용필」이후로 가요의 음반 판매량이 외국 음반 판매량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데뷔 이래 현재까지 「조용필」의 히트곡은 다른 가수들
보다 더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83년에 미술 교사 '박지숙'과 결혼
하였으나 5년 만에 이혼하였고, 1994년 재미교포 '안진현'과 결혼
하였지만 결혼 9년 차 2003년, 급성 심근 경색으로 부인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2011년까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전국 투어 콘서트를 마치고
2012년에는 약 10년 만에 정규 19집 앨범을 제작하는데 매진했으며,
드디어 2013년 4월 23일 발매 예정이었던 정규 19집 앨범 "Hello"의
수록곡 중 하나인 "Bounce"를 4월 16일에 먼저 선 공개했습니다.
음원이 선 공개 되면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다시 한 번
「조용필」의 귀환을 알렸으며, 일주일 뒤인 4월 23일에 는 타이틀 곡인
"Hello"와 나머지 8곡을 모두 공개 하였습니다.
공개 후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당일 오프라인 발매를
시작한 음반 판매도 아침 시간부터 「조용필」의 정규 19집 앨범을 구매
하기 위해 「조용필」 팬들 뿐만 아니라 10, 20대들까지 모두 1천 여명의
팬들이 음반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등 침체된 음반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 연출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2009년 '서태지' 이 후로 4년 만에 일입니다. 당일 오후 8시에는
데뷔 이 후 갖는 첫 '쇼 케이스'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 후 선 공개
되었던 "Bounce"는 빌 보드 K-Pop 차트에서 1위를 차지 하였으며,
4월 26일 방송된 뮤직 뱅크에서 5위에 올라서는 등 다시 한 번 그의
저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일주일 뒤 5월 3일에는 23년 만에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올라서게 되었고, 11월 22일에 개최된 엠 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3개 부문 대상에 속하는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12월 20일 방송된 뮤직 뱅크에서 2013 연말 결산 차트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현재 「조용필」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역사, 전설, 가왕 (歌王),
국민가수 등으로 불리며 한국 대중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
받습니다. 또한 다양한 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다른 작곡가에게
받은 곡일지라도 대부분의 곡을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 하였으며,
앨범 프로듀싱까지 하여 대한민국 가요계에 싱어 송 라이터 라는 개념을
확립 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자신의 단독 콘서트 활동을 통해 각종 진귀한 기록들을 낳고
있으며 한국의 콘서트 문화를 정착 시킨 인물로도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인천 아이러브색소폰클럽 대표 윤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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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알수가 없네
나 그대 믿을수 없네
나 그대 알수가 없어
나 그대 잊기로 했네
좋았다가 싫어하니 나는
싫어하다 좋아하니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서 믿나
나 이제는 단념할거야
나 그대 알수가 없네
나 그대 믿을수 없네
나 그대 알수가 없어
나 그대 잊기로 했네
좋았다가 싫어하니 나는
싫어하다 좋아하니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서 믿나
나 이제는 단념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