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와서 운다. 파란 하늘이 티 없이 맑아 기분 좋은 아침이다. 창을 열고 녀석들의 아름다운 비상을 바라본다. 쫙 편 날개 사이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집 근처에 늘어선 벚나무 가지에 날아와 노니는 까치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멋이 있다.
그들 무리는 아름답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방 꽁지를 까닥까닥하면서 "깍깍"하며 우는 소리는 밝고 명랑하다. 예로부터 까치를 길조로 치며 우리나라 국조国鳥로 삼았던 이유를 알 만하다.
까치가 와서 울던 날 아침, 금방 배달된 조간신문을 펼치니 반가운 소식이 실렸다. 안 되는 일도 되고 될 것 같은 일도 안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요즘 신문 읽기가 다소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신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그렇잖아도 경제가 어려운데 덩달아 원유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른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소리를 아침저녁 계속해서 듣다 보니 눈도 귀도 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러자니 무얼 알고 싶지도 않던 차에 중동 사태에다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에 관한 기사는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한 탓에 다소 관심을 가져 봤다.
그런 참에 기름 한 방울 넣지 않고도 3천8백 킬로미터나 달릴 수 있는‘태양광 차’를 미국의 한 공과대학생이 개발했다는 뉴스가 신문 지면의 잉크 냄새만큼이나 상큼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최대 어려운 숙제를 해결할 길이 열리겠지.
우리는 그동안 자원부족 때문에 한없이 위축되어 살아오지 않았던가. 새로운 대체 에너지가 실용화되는 시대가 온단다. 그런 반가운 소식을 신문기사에서 읽도록 빅뉴스를 물어다 준 까치가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지는 아침이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까치야! 까치야!"하고 불러 봤다. 그러고 보니 까치는 높은 나뭇가지에다 둥지를 트는 그 주거문화도 멋이 있다. 구질구질한 땅 위의 삶을 훌쩍 떠나 초연하게 살겠다는 초월의지 같은 것이라 할까. 아니면 요즘 사람들이 자꾸만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는 세태를 닮은 것일까.
예전에는 2층 주택도 높다고 하더니 요즘에는 탑을 쌓듯이 자꾸 하늘높이 치솟으려 한다. 50층은 고사하고 그보다 더 높은 100층짜리 삶터가 등장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값도 비싸진다고 하니 사람이 까치를 닮는 것인지 까치가 사람을 닮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까치란 녀석은 모양새도 단정하고 깜찍하다. 다른 새들보다도 외모가 그러하니 주거생활까지도 호사를 누리는 것일까. 까치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나뭇가지에다 둥지를 틀었으므로 바람이 불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나뭇가지 위의 까치집은 흔들리는 집이므로 동산動産이고 아파트는 고정된 것이니 부동산不動産 이란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사람이 견고하게 지었다는 아파트는 툭하면 가격동향에 쩔쩔매고 석유파동이 닥치고 기름 값이 치솟을 때마다 가슴 졸이게 하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지어낸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하기야 까치가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다 집을 짓는 건 먼 장래를 내다볼 줄 안다는 증거다. 천적들 접근이 어려운 곳에다 보금자리를 틀어 스스로 생명을 지키고 종족유지를 하려는 것이리라. 아무리 보아도 그들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다. 날씨가 추워지면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고.
이사철이면 전세금이니 해서 주거 환경이 끊임없는 불안의 연속이다. 그런데 비하면 까치는 소박한 보금자리에서 걱정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인간들 어리석음을 비웃지는 않을지.
오늘 아침에도 까치는 맑은소리로 울었다. 그들만의 사랑의 속삭이는 영롱한 신호 같았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라는 기상나팔 소리 같이 들렸다. 우리도 저 까치처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추위도 더위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오늘따라 산 너머로 흘러가는 하얀 솜털구름을 향해 날고 있는 저 까치가 부러워지는 희망찬 하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