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1세기 초반 즈음, 유대교 에쩨네파 공동체 내에 코드명이 '진리'인 진리 사제가 있었습니다.
헌데 이 젊지만 총명하고 촉망받던 진리 사제께서 에쩨네파의 폐쇄성과 확장성 없음, 원로들의 꼰대성을 까대면서
기존 원로들과 심히 마찰을 빚었고,
결국은 본인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대거 바깥으로 독립해 나가버리는 일이 발생하고야 맙니다.
때문에 에쩨네파 공동체 내부에는 저 철없고 망할 '진리'사제에 대해 온갖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기록이 남았고.....수천년 후에야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집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시기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 시기와 겹치죠.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는 에쩨네파에서만 내려오는 고유 가르침과 개념이 꽤 많이 나타나는 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까지 하셨죠?
때문에 저는 예수님이 그 진리 사제 아닌가....하고 몇 년 전 글을 올린 적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더 들여다본 결과, 저 진리 사제는 아무래도
세례 요한이었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결국 몇년 전 제가 헛소리한거죠. ;; 물론 머 저도 당시에도 확신할 수가
없어 말을 흐리긴 했지만 내심 진리 사제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만 받고 말고 이런 게 아니고, 아예 세례 요한의 제자였을 개연성이 크다고 하네요.
학자들이 중요하게 지적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복음서 자체의 역사적 사료성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지만,
거기 적힌 내용 전체가 다 문자 그대로의 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 반기독 빠돌이들과 기독 광신도들 모두가 게거품 물고 부정할 내용이지만 진지하게 역사를 논한다면 알아두어야 할 내용입니다.
일단 루카복음의 엘리사벳과 마리아 사이 일화는 사료로서의 중요성은 거진 없는 편이고, 또 아무래도 예수님 제자들 중
일부가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 탓에 세례 요한의 중요성 자체를 낮추고 싶어했을 개연성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당대에 예수님보다는 세례 요한이 유대-팔레스타인-로마 당국이나 식자층에선 훨씬 인지도가 높았고, 평판도 좋았던 게 사실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과는 달리 토라의 이런저런 금기 자체에 도전한 바는 없었고, 예수님보다는 좀 파루쉬파나 짜독파와의 키배가 덜했던 게 원인인 것 같지만 아무튼.....
일단 뇌피셜을 좀 더 해보면, 세례 요한이 에쩨네파에서 이탈한 후에 예수님을 제자로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예수님도 에쩨네파 전통에 대단히 해박하고 파루쉬파적 개념과 교리도 다 꿰뚫고 계셨던 걸로 봐선 배움이 그렇게 짧은 세월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세례 요한과 함께 에쩨네파에서 배우셨을 개연성도 아주 부정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첫댓글 예수님도 '광야에서 훈련받은 일화'가 복음서에 적혀 있죠.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살았다는 말은 에세네파와 직결해버리면서 예수님은 절대로 연결시키지 않는 묘한 습관이 있는데 말입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을 보면 세례요한 휘하의 제자들과 예수님 휘하의 제자들이 상호간 인적교류까지 있을 정도로 매우 친밀한 사이였죠. 둘의 활동지역도 보면 세례요한은 가나안 남부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인근에서 활동했고 예수님은 북부지방의 도시에서 활동했죠. 또한 세례요한이 처형당한 이후 예수님이 예루살렘 주변 지역으로 자주 오가는 것이 포착됩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같은 종교결사조직을 지도하는 사람이었고 남쪽과 북쪽에서 활동했으며, 세례요한의 사망 이후 그 조직을 관리할 책임을 예수님이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 흐름입니다.
다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예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는 겁니다. 다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설교 내용에는 찬성했지만 그걸 실현하는 방식이나 금욕적 삶의 방식에 상당한 이의가 있었습니다.
"진리"사제가 꼰대들의 외부 확장성을 비판했지만 에쩨네파 특유의 정결이나 금욕 우선주의를 버리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은 아예 그것까지 초월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때문에 파루쉬파하곤 마찰이 더 잦아지게 되었죠.
현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아타나시우스의 제자들인데 역사적 팩트적 접근을 할수록 아리우스의 제자가 되버릴 수도..
그건 어느 경우든 불가능합니다.
이런글 엄청 재밌어서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와 신학적 "예수님"의 괴리는 당연한 것인데, 여기의 미싱링크를 찾아보려는 노력들이 역사든 신학이든 더 재밌게 느껴지게 만드네요. 마활님 글에선 역사와 종교, 실존과 믿음이 불가분의 관계인게 자연스레 느껴져서 정말 좋네요.
그런데 의외로 역사적 예수와 "신학적 예수"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가까운 편입니다. 하지만 평균적인 한국 개신교인들 대부분은 괴리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며, 가톨릭인들 대부분은 이 중요한 주제에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반기독 빠돌이들은 아예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일단 크로산을 비롯한 예수 세미나측이 반세기 넘게 주장하고 연구했던, '신학적 예수와 무관한 역사적 예수 탐구'는 이미 모든 면에서 논파당한 옛날 학설이 된 것이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설들이 이른바 '주류'에서 내려온 게 이미 20년 전인데....국내에서 젠체하는 분들이 여전히 이 옛날 학설 붙들고 잘난척하고 있는 게 참 개탄스러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