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전역이 처음부터 백제였다는 오해다. 그런데 영산강 유역이 백제에 편입된 것은 6세기 중반이다. 그 전까지 마한은 다른 세력의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강신욱 교수님의 이 말씀은 결정적으로 틀려 있습니다. 영산강 유역만이 마한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한이 다른 세력의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우선 익산 건마국 및 천안 목지국이 중심이었고, 경기-충청-전라 전체를 망라했던
"진짜 마한"을 기준으로 두고 말합니다.
1. 마한은 다름아닌 삼국지 시대의 위나라와 큰 전쟁을 벌였습니다.
문헌 기록에도 나오고, 이는 고고학 기록으로도 뒷받침됩니다.
물론 마한이 먼저 선공했을 개연성이 다분합니다만, 결과적으로는 패배했고
이 일로 임진강 일대의 마한 거수국 신분활국이 없어졌으며, 목지국을 위시한 마한 주축 세력은 큰 물질적 손실을 봤을 개연성이 큽니다.
2. 한성백제가 목지국을 3세기 중후반에 급습해서 큰 타격을 주고, 그 이후에 마한의 새로운 영도국을 자처했습니다. 그런데 '마한이 다른 세력의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다?
물론 이 당시에는 한성백제 또한 마한 거수국 중 하나였으니 '침략이 아닌 마한 내부 자체 주도권 다툼'으로 볼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강신욱 교수님처럼 백제와 마한을 별개로 보는 워딩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3. 근초고왕 당시에 영산강 세력을 대대적으로 정벌한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고,
이는 고고학적으로도 신미국 세력으로 비정되는 해남 군곡리 세력이 완전 증발하는 걸로
입증되었습니다.
4. 4세기 중후반 근초고왕 당시에 영산강 세력이 백제에게 복속되었고, 때문에 영산강 세력은 바로 옆인 전라도 동부에 그 진출을 원천 차단당하며 부장품도 초라해질 정도로 공납을 무겁게 요구받습니다. 이러한데 6세기 중반에 편입? 아닙니다.
'그러니 부여의 후손임을 표방하는 백제인이 마한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절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 전에 세운 글에서도 말씀드렸으나, 한성백제는 고구려 유민 그리고 다름아닌
영산강 유력 세력 주축과 동일한 토돈분구묘제 세력이 연합해서 세운 걸로 드러나 있습니다.
부여 어쩌구는 건덕지도 없습니다. 물론 부여화된 이후의 고구려에서 온 건 사실이니 부여와 연관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한성백제는 애초부터 영산강 세력과 매우 비슷한 세력이었고, 역시 당초부터 마한 수장국 자격으로 마한을 통합해나갔습니다. 편하고 자시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