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탄압
어머님의 말씀을 빌리면 일제하에서 동네에 김 J 일이라는 가진 사꾸라(일본인의 앞잡이, 일본인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가 있어서 중간뜸이 사는 성(成)씨 성을 가진 자가 매를 많이 맞은 적이 있었기에 우리 집에는 쌀이 있어도 쌀밥을 하지 못하고 불빛이 새어 나갈까 밤에 몰래 부엌문에 자리를 치고서 밥을 했다니 그 당시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은 국가에서 행하는 일이고, 민간인의 경우(1942년에는 일인75만 명이 조선에 살았다)고리대금업을 했다하며 돈을 못주면 문을 못 열게 못을 박던지 아니면 매를 때리고, 계약 마지막 날은 집을 비워 변제기일을 미루어 차용인에게 크게 손해를 보게 했단다.
총독부는 민중항쟁이 자주 일어나니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의병들의 목을 자른후 나무에 매달아 일벌백계로 다스렸단다.
직접 들은 이야기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말을 전연 쓰지 못하게 했는데 동네에서 급우끼리 서로 엿듣게 한 후 종이에 적어 선생에게 보고하면 서로 마주보게 한 후 뺨을 교대로 때리게 했는데 처음에는 살짝 때리다가 나중에는 세차게 갈기는데 선생은 결국 선생은 슬그머니 빠져 버리고 학동아이 둘이서 서로 미워하게 된단다.
관솔채집은 여러 번 들어서 아는데 고령 골프 매이트(mate)의 이야기에 기름 채취용으로 아주까리열매와 도꼬마리(갈고리가 수십 개 있어서 동물의 털에 붙어 멀리 종자를 퍼뜨린다)열매를 공출 했다는 이야기는 생소 하다.
곁들여 그가 한 거짓말 같은 정말이야기를 곁들여 설명해보자
내가 계 멤버 이니 나도 몇 번 방문한일이 있어 잘 아는데 그의 집 앞에 세워진 2층높이의 데커레션 기둥은 4쪽으로 되어 있으며 속이 비어 있다
하루는 딱따구리 가 와서 둥지를 만들려고 위쪽에 뚫어진 조그만 공기구멍을 쪼아서 크게 키우는데 철사 망을 씌웠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자꾸 쫓아내다가 자기 가게에서 파는 쥐 잡는 끈끈이를 붙여 놓았는데 저녁에 와보니 새가 붙어서 죽어 있었는데 이튿날 어디서 모아 왔는지 수 백 마리의 새떼가 소리를 지르며 몰려오니 소름이 끼쳐 방에서 나가보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 지붕을 이는 판자(shingle)를 쪼아 구멍을 여러 개 내니 지붕을 갈아 치운 후 집을 팔아버렸다.
미국은 제공권장악 이치를 먼저 알아 40년 전 내가DMZ에서 본 대성산에는 땅굴이 없는 대신 마주보는 이북의 오성산 에는 남쪽으로 향한 땅굴이 보이는데 속이 아무리 넓어도 입구만 봉쇄하면 잇점과 사용가치를 상실한단다.
지금은 고공에서 세틀라이트 카메라로 24시간 북한의 ICBM이 보관되어 있는 여러개의 지하보관소 입구와 운반하는 철도를 감시를 하고 있단다.
항구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워싱턴은 정치도시이어 독립가옥이 많지만 발티모어 항구(harbor)는 공업도시이니 공원(工員)들이 많아 연립주택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우회도로인 발티모어 항구 해저터널(Baltimore harbor tunnel)은 내가 미국에 온 후에 만들었는데 1.5마일 길이의 크디큰 2차선 파이프2개를 바다에 갈아 앉히는 공법을 사용한 것이어서 통과할 적마다 크디큰 파이프의 직경과 길이에 감탄 한다.
철교는 교각마다 이음쇠가 있지만 수중터널은 한 개로 된 파이프이니 위의 터널들의 끝이 약간 휘는 것은 어쩌면 겨울에는 길이가 약간 오그라지니 당겨져 금가지 않게 일부러 그렇게 고안한 것 같다.
요금소는 한켠에 위치하는데 이곳 톨 부스(toll boots)에 ‘Wipers off Please’ 라 쓰 놓아 여러 번 오갈적마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하고 생각하던 중 하루는 케쉬어에게 물어 보니 비가 오는 날은 물방울을 튀겨 자기의 옷을 적시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사람이 근무하는 요금소가 완전히 없어졌다.
EZ-pass를 집에두고 다니는 나는 모르고 이곳에 진입을했는데 벌금은 오지않았고 그냥 '임시로 시험중'이라는 경고장만 날아왔다.
'와이퍼 사용시 전조등을 켜세요'.
바로 옆에는 시멘트(洋灰)공장이 있는데 먼지가 없고 발티모어 시내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불태우는 처리장이 있는데도 연기나 고체 탄소나 냄새가 전연 없어 옆집(next door)에는 그뢰이하운드 버스 터미널이 있을 정도이고 시멘트공장이 있어도 먼지하나 없으니 미국사람들의 기술은 내가 해아 릴 수가 없는데 단 이곳의 다른 공장들은 값싼 중국산 물건 수입에 의존도가 높아 문을 단은 곳이 많다.
----------------------------------------------------------------------------
발티모어시에는 지금도 전차가 다닌다. 적색신호등앞에서 대기중인 전차(streetcar)
4거리 신호등앞에서 멈춘 전차
식당 내부수리중에 뤤트를 한 23큐빅미터의 컨테이너(495달러)
미국식당에도 사탕수수를 빌효해서 만든 SMG '아지노모도'를 사용했던 것 같다. 1.3kg
발티모아시에는 쓰레기소각장치를 사용하는데 완전연소이니 연기가 없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수업중인데 짝꿍과 이야기 했다고 앞에 끌려 나왔어요.
늙은 김옥자라는 여선생은 우리를 마주보게 한 후 뺨을 교대로 때리게 했는데 처음에는 미안해서 살짝 때리니 선생이 쎄게 때리라고 요구하여 나중에는 서로 세차게 갈겼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둘이서 서로 분노하고 미워하게 되어 말도 안하고 지냈습니다.
이러한 벌은 상대를 단압하고 이간하는 일본인들의 악질적인 본성입니다.
그 선생 이미 고인이 되었겠지만 만나서 왜 그랬느냐고 따지고 싶고 내 인생에서 만난 최고 악질 인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