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12월, 일본 천황궁에서 열린 아키히토 천황의 기자회견에서 아키히토 황은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쓰여 있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문화와 기술이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월드컵을 계기로 두 나라 국민간의 이해와 신뢰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천황의 혈통이 백제와 관련이 있다는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으로 당시 일본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천황은 백제계다?
- 칸무천황
칸무천황은 궁궐에 신사를 세우고 백제 조상신을 모실 정도로 백제인 어머니의 혈통을 중요시 했던 인물이다. 일본의 역사는 서기 720년 기준으로 그 전은 일본서기, 이후는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속일본기에 의하면 50대 칸무천황의 어머니인 고야신립이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은 개로왕의 아들인 곤지 일행이 일본으로 가는 도중 일본의 가까라시마 섬에서 태어나 백제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무령왕이 동성왕의 뒤를 잇기까지 근 40년 세월의 흔적은 역사서가 아닌 일본 오사카 아스카베 신사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5세기 후반 일본에는 다수의 백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토목, 관개 등 백제의 선진 기술을 전해주기 위해 이주해 간 사람들로 곤지 일행도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곤지가 461년 일본 열도에 건너 가 적어도 15년을 가와치 아스카 일대를 개척하고 무령왕도 이 일대에서 성장했을 가능성 높다.
- 죠메이 천황
1997년 2월, 일본에서 14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절터와 탑의 흔적이 발견됐다. 바로 옆에 흐르고 있는 강의 옛 이름은 백제강으로 일본 학자들은 34대 죠메이 천황이 지은 ‘백제사’ 자리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7세기 전반, 백제사에 이어 백제궁이 지어지고 백제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분위기 속에 죠메이 천황은 거처를 아예 백제궁으로 옮겼다. 그리고 641년, 생을 마감하고 잠든 곳은 왕궁 북쪽의 빈소로 '백제대빈'이라 했다. 천황의 빈소를 백제대빈이라고 한 것은 백제와 귀속적인 연계성을 충분히 엿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일본에는 백제 지명이 상당히 많다. 백제역, 백제마을, 백제천, 백제사, 백제 우체국, 백제 스포츠센터 등 백제가 일본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백제인의 강력한 힘
475년 백제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도읍을 옮길 때, 문주왕을 보필했던 목려만치는 갑자기 역사에서 행적이 사라졌다가 일본 역사에 다시 등장했다. 일본 역사에서는 '소가'씨로 나오는데 ‘소가’ 씨는 야마토 정권 왜에서 무려 백년에 걸쳐 세력을 떨쳤던 백제계 가문으로 후손 중에는 일본 최초의 절, 아스카사를 지은 ‘소가노 우마코’라는 거물이 있다. 소가노 우마코는 향응을 베풀어 백제의 왕자를 맞고, 수시로 정치 담화를 나눴는데 이런 점에서 백제인의 힘을 볼 수 있다. 또한 503년 일본 남제왕은 무령왕으로부터 '인물화상경'이란 청동 거울을 선물 받았다. 고대의 거울이 상왕이 하왕에게 주는 신임의 표시임을 감안한다면, 한때 일본에서 백제 무령왕의 입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고대 거울로 미루어 본 당시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가까운 나라였던 것이다. 백제인의 피가 흐르는 천황의 혈통과 고대 일본의 정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했던 백제인의 힘을 미루어 다시 고대 한일 관계를 이해한다면 앞으로 양국의 미래도 훨씬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천황은 백제계다?! 그 진실은? l KBS WORLD Korean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금판 한일고대사 비밀 푸는 열쇠'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612
“일본 여왕이 패망하는 백제를 위해 대군을 이끌고 큐슈로 온 것은 남편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 백제 멸망 때 일본에 등장한 천황의 팔각릉은 오늘날 일본 황실이 백제 무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비밀코드였다.”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정비과정에서 사리를 봉안한 사연을 적은 사리봉안기(금판)가 나왔다. 이를 통해 백제 무왕에게는 자신이 신라에 가서 데려온 선화공주 외에 다른 왕후인 사택왕후가 있었고, 이 탑이 639년에 세워졌다는 연대가 밝혀지게 됐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서도 왕(서명천황)이 백제천 옆에 궁궐을 세우고 절을 만들고 탑을 세운 것으로 나오는데, 그때가 익산 미륵사 서탑을 세운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백제에서는 대란이 일어나 왕의 어머니와 왕자, 공주들이 추방된다. 이후 일본에서 천황부터 증손자에 이르는 천황들의 무덤이 팔각이라는 장식을 두른, 전혀 다른 무덤이 조성됐다.
<일본 천황은 백제 무왕의 자손>의 저자 이동식 씨는 각각 별개로 생각되던 일련의 사건 속에서 의자왕의 집권, 왕의 어머니의 추방, 팔각릉의 조성 등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륵사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사택왕후와 그 아들, 공주 등이 의자왕에게 밀려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이들은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호족 소가 씨를 대신해 왕권을 차지한 이후 자신들의 출신을 장엄화하기 위해 팔각릉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무덤을 쓴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는 곧 현 일본의 천황가가 바로 백제 무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 저자는 KBS에서 역사방면 전문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으로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을 담당했다. 저자는 2009년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의 발굴기사 이후 일본에서의 움직임을 추적해 마침내 7세기에서 8세기 한일 두 나라 역사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저자는 “일본의 팔각릉이 백제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백제 역사가 올바르게 복원되면 일본 역사도 제대로 살릴 수 있고 우리 고대역사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불교신문3162호/2015년12월16일자]
전라도인과 일본 특정 지역인들과 DNA가 같은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삼국시대의 백제는 오늘날 전라도이다. 그런데 역사가 흘러 오늘 날 전라도인들은 자기들 조상(백제)들이 일본의 천황이 되고 일본의 역사의 중심적 인맥과 정치적 지평을 열어 그 영향력이 미국과 동양의 침략자로 그 만행이 하늘을 덮고 시산혈해를 이루었는데 백제의 후손 현하 호남은 역사의 무지인지, 아니면 같은 DNA 아이덴티티의 성향으로 체화되어 발현되는 것인지 백제(호남)과 일본의 리엑션이 같다.
이것을 하멜 표류기에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런 엄숙하고 위대한 대한민국 역사의 진실앞에 대한민국 어느 지역보다 앞장 서서 친일. 반일 타령으로 죽창가를 부르며 일본 배척,타도에 북괴 김일성 공산화 갓끈 전술에 최면화 된 오늘 날 호남인들은 이런 조상들의 후손으로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 조상들을 능욕하는 짓거리이다. 백제의 후손 호남인들은 이런 엄연한 역사의 진실조차 외면하고 부정하는 천하의 후안무치한 자자손들임을 스스로 고해성사하는가?
첫댓글
헐 ~ @,@'
니뽄절라 반 쟈 이 !!!!!!!!! ㅋ,,ㅋ
헐 나쁜 절라보다 더 사악한 일본을 좋아하는 윤똥
@sudo2000
아키히토일왕 :
일본천황은 백제인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Sd21V1zdz1Y
뉴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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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간직한 전라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승화되기만 하면 전세계를 아우르는 존귀한 지역으로 열방에 소문날 줄 믿습니다.
그 역량이 전라도의 좌우를 망라한 순수한 남은 자들이 결집될 때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아멘
태와 극은 반드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