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칼부림
출처: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titleId=602916&no=97&weekday=wed
칼부림의 이 장면을 보고서 조선에서는 아무리 역모에 연좌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성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하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양씨(楊氏)·자개(者介)·조유례(趙由禮)........는 교수형(絞首刑)에 처하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며
세조실록 2권, 세조 1년 11월 9일 경진 1번째기사
저 양씨라는 사람이 누구냐면.
혜빈(惠嬪) 양씨(楊氏)는 한남군 어와 영풍군 선의 어머니로서, 단종에게 젖을 먹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자가 한꺼번에 죽었다.
연려실기술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나 세종의 젋은 후궁이었던 혜빈양씨가 어린 단종을 양육했습니다. 후궁이라 대비 or 대왕대비도 아니었지만 어린 단종을 양육하였었기 때문에 특별히 세종과 문종사후에 궁궐안의 일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던 것이죠. 만약 문종이 왕위에 있을때 중전을 새로 맏아들였다면 모르겠지만 그러지도 않았고.....
어쨌든 단종이 어머니처럼 궁안에서 가장 믿고 신뢰하던 사람이었지만,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조정을 장악한 뒤 단종으로 부터 선위를 받아내기 위해 단종의 주변사람들 (매형 금성대군 등)과 함께 귀양보내라면서(귀양다음에는 당연히 세트로 사사까지) 압박하면서 건드린사람이 혜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혜빈까지 건드리자 단종은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판단,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아마 자신이 물러나면 혜빈을 귀양보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지 않을까하고(나만 물러나면 주변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없겠지)판단한 것 같습니다. 왕과비에서 처럼 물러나면서인지, 물러나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씨(楊氏)와 박씨(朴氏)는 그 죄가 마땅히 죽여야 하나 내가 상왕(上王, 단종)의 죽이지 말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에 행하지 못할 뿐이다"
세조 1년 8월 23일 병인 1번째기사
이와같은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볼때 세조가 단종과 서로 혜빈을 죽이지는 않기로 약속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인(舍人) 조효문(曹孝門)이 당상(堂上)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전하께서 상왕(上王)의 양씨(楊氏)·박씨(朴氏)를 죽이지 말라는 부탁을 허락하신 것은, 조신(朝臣)들이 논쟁하기 전에 있었던 사사로운 허락에 불과합니다.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처음에 법에 의거해서 죄를 단정하는 것은 곧 공법(公法)인데, 어찌 자그마한 신의에 얽매여 대의(大義)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
세조실록 2권, 세조 1년 8월 27일 경오 1번째기사
그리고 정확히 3개월 뒤에 혜빈은 위에서 처럼 목이졸려 죽임을 당하고 말죠.
사실 혜빈양씨는 역모연좌가 아니라 가담이라는 죄목이라 좀 다른 케이스 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단종에게는 양육지은(養育之恩)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었기때문에 아마 세조로써는 살려둘 이유가 없었겠죠.
세조가 선위를 받고 1년도 아니고 정확히 반년 만에 혜빈 양씨가 죽은것을 보고 과연 단종이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그리고 혜빈이 죽고난 뒤 7개월뒤 사육신의 상왕복위모의가 발각됩니다.
첫댓글 인조는 참수라는 새로운 예를 만든거네요. 세조도 참수는 안했는데요
배우분.. 효빈, 혜빈, 궁예마눌.. 비극적인 왕의 여자역들을 연기했군요.
그렇군요. ㅋ흑
그리고 기황후~
이유가 개백정은 개백정이였네요.
혜빈 양씨의 죽음이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