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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슈아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요한복음17장3절 말씀)
샬롬. 우리 구주 예슈아 그리스도안으로 있는 진리와 믿음에서 난 새 생명으로 한 지체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우리가 함께하여 한 주 안으로 살아 있는 유다 형제의 손을 빌어 말세지말을 살고있는 우리에게 경계로 주신 주님의 편지를 대하고 있습니다.
※ 유다서 18절 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 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유다서18절)
ὅτι ἔλεγον ὑμῖν· ὅτι ἐν ἐσχάτῳ χρόνῳ ἔσονται ἐμπαῖκται κατὰ τὰς ἑαυτῶν ἐπιθυμίας πορευόμενοι τῶν ἀσεβειῶν
첫번째 헬라어 단어부터 보자면 ὅτι [hŏti] 호티 로 그 뜻은 우리말 '곧''그래서' '왜냐하면' 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다음 단어로는 헬라어 ἔλεγον [élegon] 엘레곤 으로 뜻은 '그들이 말했다' 또는 '그들이 글로 말하다'의 뜻이랍니다.
그리고 다음 ὑμῖν [hümin] 휘민 으로 그 뜻은 '너에게' '너희에게'입니다.
그러면 위의 '호티 엘레곤 휘민' 세가지 단어를 이어보면,
곧 그들(성령의 권고를 받은 사도들)이 너희에게(성경으로) 말하기를 이 되겠습니다. 그가운데 ὑμῖν [hümin] 휘민 이라는 '말하여' 진리 단어가 가리키는 여덟곳 관주들을 간추려 함께 살폈고,
번역에서 사라지고 헬라어 성경 일부에서 까지도 사라진 '호티 엔 에피'를 통하여 종교중 하나로 행하는 종교기독교가 성전밖 마당만 밟고 뛰노는 자들이요.
그 받을 심판에 대하여 우리 각인이 찾아 살폈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에'라는 단어속에는 그 종교적 섬김들이 이세벨의 음란(하나님이름은 크게 불러대나 실은 세상을 얻고자하는 술수) 맘몬과 바알을 향한 제사가 종교기독교의 행사였을지라도 마지막 한사람까지라도 '회개하여 진리로 하나님을 알아 섬기기를 기다려' 심판을 지체하였음과 이제는 세상끝 마지막날 마지막 시간임을 알리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시간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이란?
영생얻게 하는 그리스도의 계명인 "진리(그리스도 예슈아 구주와 성령)안에서 '하나님(진리본체)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는 경건'을 버린 그들" 즉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버린 자들' 종교기독인들 이라는 말씀이 됨을 알았습니다.
이시간도 이어서 '정욕대로 행하며'부문 말씀을 함께 살피겠습니다.
'정욕'이란 단어 앞에 두 단어가 먼저 있는데 τὰς ἑαυτῶν [tás eaftón] 타스-애프톤 으로 '자신의(정욕의 발원)'로 번역된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욕대로'에서 그 정욕의 발원(시작점)이 다섯가지 '속임', '현혹', '사기', '기만', '허위'등을 뉘우침 회개 없이 그대로 가지고, 말씀(복음)을 받는 마음 밭이 문제요.
그 쓴물 마음샘에서 악함이 발원해서 짜고 쓴물을 만들어 흘러 '쾌락', '육욕', '정욕'을 다시 좇게하는 것들임을 함께 살폈습니다.
한글성경 다음단어는 "행하며"부문인데, 얼마간 딱딱한 음식(영적인말씀)이 되겠습니다.
헬라어 단어중에 오늘 본문에 사용된 πορευόμενοι [porevómenoi] 포레보메노이 를 성경사전이나 일반의 사전등 모두에도 번역을 맡기면 '행함' '여행하다'를 뜻하는 다른 단어 πορεύομαι [pŏrĕuŏmai] 포레우오마이 를 줍니다.
그런데 왜? 같은 단어를 쓰지 아니하고 다른 일반의 여러 번역단어장에도 없는 단어를 굳이 채용 하셨겠는고! ?
하여, 단어의 어원을 끝까지 좇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단순해보이는 단어 '행하며' '여행' '여행하다'이지만 이곳 말씀가운데 '행하며'는 숨겨진 '어떤 삶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1차로 πορεύομαι [pŏrĕuŏmai] 포레우오마이 의 뜻은 <가자, 여행하다, 계속하다, 죽다, 살다, 걷다>입니다. ㅡ>παραπικρασμός, οῦ , ὁ [parapi-krasmŏs] 파라피-크라스모스 ㅡ> παραπικραίνω [parapikrainō] 파라피크라이노 ㅡ> πικραίνω [pikrainō] 피크라이노 ㅡ> πικρός, ά, όν
[pikrŏs] 피크로스 ㅡ> πήγνυμι [pēgnümi] 페그누미 입니다.
어원을 찾아 여행의 마지막 소(말씀물 샘 근원)에 다다르니 πήγνυμι [pēgnümi] 페그누미 입니다. 그리고 그 뜻 관주말씀은 '튼튼하게 하다', '확정하다','세우다', '천막(장막)을 치다', '히8:2'입니다.
※ 말씀을 살피니 각인의 심령성전과 하늘성소 참 장막 말씀입니다.
관주말씀은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8장2절)입니다.
※ 이땅 사람의 손이나 기물이 아닌, 주께서 베푸신 하늘성소 참 장막(심령성전)에 관한 말씀입니다.
¿¿¿¿¿¿¿¿¿¿¿¿¿¿¿¿¿¿¿¿¿¿¿¿¿¿¿¿¿¿¿ 믿는 각인을 산제사(봉헌된 삶)하게 하는 행함 근원(말씀권면 물샘)에 관한 말씀 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주후, 서기1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말씀)을 그들의 속(심령을 성전삼아)에 두며 그 마음을(말씀두는) 법궤삼아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 31:3, 롬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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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그리스도 대속사역과 부활 후)에 내가 또 내 신(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성령)으로 남종과 여종(진리의 영을 구하는 모두)에게 부어 줄 것이며(계22:17)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성령의 안팎 역사)에 베풀리니 곧 피(대속 은혜)와 불과 연기 기둥이(밤낮 항상 인도하시는 보혜사)라' (요엘2:29~30, 행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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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말씀영->진리영)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영광을 감사찬송)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태초부터 있는 말씀)이시니 예배(영광을 감사찬송)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말씀영->진리영)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장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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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으로”는 헬라어로“프뉴마티코스pneumatikos”인데 이 말은“영에 관한, 영으로 말미암은, 성령으로 가득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에 관한”것을 인간적 지식과 지혜의 제한을 뛰어넘고 경험과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서 하나님 편의 생각 뜻인 영적 초월로 판단 분별하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롬12:1, 27,고전2:13, 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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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내가 나의 법(말씀)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렘31:3)
'하나님의 신(성령)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1:2)
'내 신(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성령)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요일2:29)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2:4)
※ 하나님의 말씀과 신(성령)의 영광이 있는 곳이 바로 제사 곳(예배)하는 성소입니다.
유월절 성령강림 이후로 따로 예배드리러 어디로 모인 기록이나 '예배드리러 모이라' 기록도 한번 없습니다.
물론 예배당 건물건축이나 성전건축 기록은 더욱 없구요.
다만 이미 있던 건물 유대교 회당이나 옛 예루살렘성전은 다만 만나고 여러사람이 모일만한 장소로서의 필요기록이고 예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왜죠?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이 믿는 각인심령에 자리잡으니 각인 심령이 성전이되고 심령중심 성령 주관하에 십자가 그리스도를 예물로 죄사함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산제사(예배)가 매일 매순간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구주의 십자가 공로 은혜로 죄로인하여 하나님을 모실수없었던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항상 살아계신 영광을 모시게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인침받은 우리에게 심령성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천국을 미리 맛보며 이생은 나그네(육신 장막안에 하나님이 함께하여 동행하는 삶으)로 살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00예배당'또는 '00성전' '예배시간 안내' '예배들이러 간다'등등은 자기들이 거듭난 자의 증거인 심령성전을 자기안에 지어본적도 없고 자신들 안에 심령성전 실시간 제사주관자 진리의 성령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진리의 영(말씀,요6:63) 그리스도 진리와 더더욱 상관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광고(널리 알림)하는 꼴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란? '종교기독인'을 말합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8장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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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 장막에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 심령에 장막 치시고 (새 호적지 하늘로 다녀) 매일 매순간 예배 하는 자' 안으로 '영원히있는 영광'
옛 성(장)막 지성소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중심에 언약의 돌판 둘(야긴과 보아스=사랑과 공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상8:9, 대하5:10절에는 율법(하나님말씀)의 돌판 외에는 언약궤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영원으로 귀함을 뜻하는 금 언약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성분,christma)로 되어 양자 말씀아들들로 장성하는 우리)
그러므로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언약궤 곁에두어 있다는 말씀대로 해석하여야 하겠습니다.(하나님의 말씀 양식을 먹고 소성하게 하시는 성령), 택하심 기름부음 받은 일반제사장(참고, 민17:4)
“언약궤”는 헬라어로“심부름을 가다”을 뜻하는“디아코노스diakonos”에서 유래 한것으로“식사시중을 들다', '일반적으로 섬기다', '봉사하다', '시중들다', '돌보다','집사 일을 보다”의 뜻으로 일반제사장의 업무와 동일하고 장성한 아들들의 일들을 말합니다.
즉 “자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나 희생적으로 봉사하다”를 뜻하는“디아코네오dikoneo”와“심부름을 가다” “자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나 희생적으로 봉사하다”를 뜻하는 말과 “상자, 궤”는 뜻하는“키보토스kibotos”의 합성어 라고합니다.
●“언약궤”는 기본으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친히 기록한 율법(말씀)의 돌판이 하나님 임재의 위엄과 보호영광안에 항상 담겨있는 궤"를 말합니다.●
이를 또한 단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유월절 피의 대속으로 살린 "자신의 백성과 친히 맺은 언약에 대해 증언 하므로 다른 말로 증거궤"라고도 합니다.(출25:22, 34:29),
궤의 뚜껑은 두개의 그룹이 놓이고 그 그룹이 날개를 펴서 궤를 덮어서“긍휼의 자리, 또는 은혜를 베푸는 자리를 뜻하는“시은 좌”(위엄과 영광)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그분이 지으신 땅에서의 영광이 바로 이곳에 계시며(왕하19:15, 대상13:6), 이곳에서 백성들에게 경배를 받으시고, 말씀 하셨으며(민7:89, 눅1:10~23), 대제사장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고(행7:38, 롬3:4, 히5:12, 벧전4:11).
매년 한번 이곳(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희생을 드렸음을 옛 약속과 사도들의 성경이 증거합니다(히9:7)
※ 하나님의 사랑과 예슈아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긍휼을 입은 우리가 아가페토스(최고의 사랑, charity)를 받아 하나님의 아가페토이(사랑덩이 아들들)가 된것처럼.
역시 하나님의 언약의 언약궤를 심령에 두는 것인 심령성전을 순응하고 구하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항상일하는 역사가 있고,
처음 창조 로고스(말씀)의 믿음,소망,사랑이 만든 말씀아들(로고스토이)들이 되어 말씀의 주(그리스도)와 함께 영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태초(베레쉬트, 품안의 뜻)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구주의 십자가 죄사함 사역이후 승천하시고 명령하신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심령성전안에서 언약궤의 효력과 정결케하고 거룩하여지며 장성하게 하시는 역사가 있고,
우리안에서 매순간 그리스도 대제사장과 상의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실행하는 것들이 일반제사장된 우리의 날마다 봉헌이고 산제사가 되겠습니다.
이제 또한 우리가 곧 있을 주의 공중강림의 날에는 우리가 또한 육신장막을 벗고 영원한 새장막을 입는 날에는,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새몸입는날)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11:19)
곧 몇날 후면 육신의 장막도 벗고 우리안에 있던 하나님언약이 영원으로 살아있음인 산자의 신실한 행실 내면들이 밖으로 드러나며 빛으로 화하고 빛을 옷처럼 입는 빛의 아들들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짐승이 이를 시기 질투하므로 하늘로도 다녀있는 심령성전 산제사자(봉헌된 자)우리를 훼방하는 시기입니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종교기독교 지도자들의 입을 빌어)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계13:6)
※ 심령성전 보혜사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십자가 주 예슈아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로 말씀을 길 밟아 사는 자는 육신은 아직 이땅올 나그네로 걷고있으나 "그 영은 이미 하늘성소 참 장막을 다녀 예배하는 자"들 입니다.
● 오는 말씀 "행하여"의 원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한진리로 함께 하시고자" 하셔서,
친히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에 성령으로 장막을 치시고 언약궤 안의 말씀비처럼 우리 마음판에 영원한 말씀을 새기는 심령성전에서 매일 매순간 산제사자로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뜻에 기뻐 순응함이 하나님의 원함이고,
※ 정욕대로 행함이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방법의 뜻과는 정반대인 따로 예배(제사)할 곳을 세상어디에 두고 사람간 시간과 여의를 서로 맞추고 항상 분주하나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종교로기독인의 행함을 말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