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희룡 의원의 무지가 애국 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는 지난 3월 7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도를 만나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가족 중 하나가 그래도 연쇄 살인마를 만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축복이냐고 말하는 것’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망언이다”이라며 한승조 교수를 비판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더욱이, 그는 한승조 교수의 글을 찬찬히 끝까지 읽고 그 진의를 파악한 분들에 대해서는 “맞아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막말까지 한다. 항일 독립 투사 안중근 의사와 정치외교학자 한승조 교수는 동일한 사실을 관찰하고 동일한 갈등을 피력하였다. 그러면 원희룡 의원의 눈에는 한 시대의 선각자 안중근 의사도 매국노로 보인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원희룡은 한교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지 않은 듯하여 여기 한 단락을 소개한다.
<그 당시의 국제정세와 열국과의 관계를 잘 알게 되면 한국이 당시에 러시아에게 점거 倂呑(병탄)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만일 러시아에 合邦 병탄되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생기며 어떻게 되었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하여 한국은 공산화를 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스탈린이 집권하자 그는 1930년대에 그랬듯이 대규모의 民族移住政策(민족이주정책)을 강행하여 한국민들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奧地(오지)로 移住시켜서 마구 분산 수용하였을 것 같다. 그에 앞서서 스탈린은 러시아에서 농업집단화 정책을 강행하였는데 수천만명의 러시아농민을 학살하였다. 이런 통치행태로 보아서는 한국민의 저항을 짓밟아버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어떠면 일천만명? 이상)이 학살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때 시베리아, 연해주, 사할린의 한인들을 시베리아 각지로 移住(이주) 시켰다면 한국인들은 오늘 시베리아의 高麗族(고려족들처럼 실향민) 신세가 되었을 것이 아닌지? (http://independent.co.kr/news/n_view.html?kind=main&id=7368 )>
요컨대, 한승조 교수는 당시 지정학적 상황이 당시 노일전쟁의 승자가 어느 나라가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정해져야 했던 상황이었으며, 노일전쟁 100년이 지나 돌이켜보니 만약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합병되었으면 해방은커녕 민족 자체가 소멸되었을 수밖에 없음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는 사회과학적 사실, 정치외교학적 진실을 말하였다. 누가 명의인가? 병의 근원을 바로 파악하는 자가 명의이다. 그렇다면 원희룡의 논리에서는 명의의 진실한 말은 망언이라는 말인가? 한승조 교수는 백 년 전에 슬픈 민족이 처절한 갈등에 처해 있음을 말하였다. 비록 그가 시인이 아니었기에 듣기 좋게 포장한 말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진실을 말하였다. 그렇지 아니한가?
당시 약소국이었던 우리 민족이 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민족적 생존을 위해 겪었던 갈등을 꼭 백 년 전인 그 당시에 항일 독립 투사 안중근도 말하였다. 5.16군사혁명 후에 박정희 의장이 가장 먼저 서두른 일들 중 하나가 독립운동가들을 보살피고 항일 투사들에게 서훈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 받은 안중근 의사는 누구였다. 그는 그 시대의 정치외교학자 급에 해당하는 지성인이요 “동양평화론”의 저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의병 부대의 참모장이 되어 일본국과 싸웠으며, 이듬해 뜻을 함께 하는 11명의 동지들과 죽음으로써 구국 투쟁을 벌일 것을 다짐하였다. 그 해 10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일제 침략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체포되어 이듬해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하였다.
누가 안중근 의사를 감히 매국노라 부를 수 있겠는가? 안중근 의사는 누구나 인정하는 항일 운동가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또한 그 시대에 우리 민족이 처해 있던 슬픈 갈등을 남보다 일찍 느낀 선각자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러시아가 한반도를 침략하게 되면 한국의 처지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그가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남하하여 만주 일대를 점령하고 여순항을 군항으로 삼아 한반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는 한국이 자력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내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한국분할을 제의하게 되고 또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러시아에 대한 위기 의식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러시아가 의화단 토벌을 이유로 한국 북부지방에 침투를 기도하자 한국 지식층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한일 양국의 제휴 내지 연대를 통한 방어를 적극 모색해 갔다. 안중근은 러시아를 부동항을 얻기 위하여 동양을 넘보는 침략세력으로 규정하였다. 즉, 항일 운동가 안중근은 아이러니하게도 노일전쟁 때는 일본의 승리를 지지하였었다. 아마 한승조 교수 비판자들은 1905년 노일전쟁 때 일본의 패배를 바라는 것이 항일운동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안중근이 반대한 것은 을사보호조약이었지, 일본의 근대화가 아니었다. 한승조 교수 비판자들은 일본의 근대화가 우리 민족의 근대화 설계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반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안중근의 생각을 달랐다. 그는 우리 조국도 서둘러 근대화되어야 함을 내다 보았던 선각자였다. 안중근 의사와 박정희 대통령과 한승조 교수 같은 진정한 항일 운동가들은 조국의 근대화의 중요성을 남보다 깊이 인식하는 선각자들이기도 하다. 한국이 자력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내기 어렵다고 보았던 안중근은 러일전쟁(1904~1905)을 일본이 한국을 대신하여 러시아와 싸운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러일전쟁 중 러시아가 일본에 한국분할을 제의하게 되고 또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러시아에 대한 위기 의식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러시아가 의화단 토벌을 이유로 한국 북부지방에 침투를 기도하자 한국 지식층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한일 양국의 제휴 내지 연대를 통한 방어를 적극 모색해 갔다. 러일전쟁 때 일본이 동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남으로 하얼빈까지 혁파하여 러시아를 완전히 굴복시켰어야 했다고 주장하였을 정도로 안중근은 노일전쟁 때 일본을 지지하였다. 그러면 안중근 의사가 친일파 매국노인가? 아니다. 노일전쟁 때 일본의 승리를 기뻐하였던 그였기에 또한 항일 투쟁을 몸소 실천한 자였다. 그리고 백 년 전의 안중근 의사와 동일한 발언을 지금 한승조 교수는 하고 있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와 한승조 교수의 그 시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한승조 교수 비판자들은 기우라고 여기는가? 1896년 6월, 당시 제정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일본 외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와 러시아 외상 로마노프(Romanov)와의 회담에서 이미 러시아는 한반도 합방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었다. 이때 일본외상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남․ 북을 나누어 갖자고 제의한 것이다. 1903년 9월, 당시 주일본 러시아 공사인 로오센이 일본측에 제시한 한반도 분할 안에는 <북의 39도선을 경계로 분할하되 그 이남에서 일본의 특수이익을 누리도록 한다는 내용> 이 담겨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문제가 둘 더 있었다. 1917년에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1930년대에 스탈린은 소련에 합병된 민족들의 대이동 정책을 실시하였다. 만일 러일전쟁 승자가 러시아였다면 그 운명을 우리 민족이 피해갈 수 없었음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공산주의 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와 같은 진정한 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의 침략을 경계하였지만, 여운형과 박헌영 등 그 시대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조선이 러시아 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도우면 그 대가로 조선의 해방을 돕겠다고 조선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 약속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지원자금을 우리 민족에게서 거두어 레닌에게 전해 주었다. 레닌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러시아 혁명 4년 만에 갑자기 죽었으며, 스탈린이 그 후계자가 되었다. 1930년대의 스탈린의 민족 대이주 정책은 만약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합병되었더라면 1945년 해방을 기대하기는커녕 민족 자체가 소멸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 친노파와 공산주의자들의 선택은 현명하였는가?
그 시대 이후 줄곧 진정한 독립운동가들은 안중근 의사와 동일한 갈등을 겪었으니 그들을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라고 부른다. 일제시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우리나라를 러시아에 갖다 바치는 것이 독립운동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안중근 의사의 진정한 독립정신을 이어받은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한편으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와 싸워야 했다. 해방 정국 때 공산주의 계열 인사들을 좌익이라고 불렀는데, 항일 운동을 실제로 실속 있게 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좌익이 친일청산을 요란스럽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친일청산을 장기집권에 이용하려고 하는 노무현의 꼼수를 한승조 교수가 지적하기 전에 이미 애국 시민들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친일청산을 정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한승조 교수의 정치외교학적 통찰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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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사학도님, 너무 오랜만입니다. 자주 들러 고견을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회원 여러분, 역사학도님을 아시는지요. 이 분의 글은 이성적이고 날카롭습니다. 찬/반을 떠나 찬찬히 음미해 보셨으면 합니다.
카페지기님, 그간 너무 바빠서 이제야 들렀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저 같이 역사지식이 짧은 사람으로서는 아주 고맙게 읽은 글입니다. 혹시 참고할만한 서적을 같이 적어 주시면 혼자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정말 오늘 큰 깨우침을 얻었읍니다...문외한이라서.아마 다대수 국민들도 나와 비슷할겁니다.원의원에게도.요즘 정치인들 한건주의로 거두절미하고 터트리다가..
역사학도님 글에 글쎄......머리가 꺄우뚱하네요
카페지기님 냉정을 찾아야하지 않나 생각이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