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의 글도 여러 생각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보천보 전투가 소규모 전투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일어난 독립투쟁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신문사들이 이를 대서특필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하여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중국에도 일부 알려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과장 보도된 것입니다.
대서특필된 연유는 아마도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점된 한반도까지 침투했다는 점이 인상깊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당시는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기 이전임)
어쨌든 보천보 전투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김일성이라는 인물을, 광복 후 누군가가 가장하고 등장했을 리는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에는 아마도 그의 이름이 여럿 있다는 점에서 온 혼란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소련을 세운 레닌이나 구 유고 연방의 티토는 원래 가명이며, 그들이 지닌 가명만 해도 수백개 된다는 점으로 볼 때 김일성이라는 이름도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 등 항일투쟁을 벌이고 있을 당시 그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보천보 전투 자체도 소규모 전투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 그가 해방 후 정권을 잡을 생각을 미리부터 했을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가 소련으로 건너간 1940년 이후의 행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해방 후 그의 집권은 그의 항일 투쟁상보다는, 소련이라는 강대국을 등에 업은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독립군의 활동무대 부분은 지금 읽어보니 제가 잘못 지적한 것 같습니다. 아마 위에서 이미 답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것은 한반도 강점보다 이후인 중반의 일이었고, 중국 대륙을 잠식한 것은 후반의 상황이므로 일제 강점기 우리의 활동무대를 일괄하여 한 나라(일본) 안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댓글보천보 전투가 대규모였냐 소규모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큰 의미없는 논란은, 과거 박정희나 두환이 같은 역도들이 이념대립적 시대상황을 자신들의 영구독재에 이용하기 위하여 무작정 부정하거나 깍아내리기 식으로 일관했던 때에 보천보가 보잘 것 없는 소규모였으니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으로 평가절하하려고 하던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제대로 된 객관적 교육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죠... 보천보전투가 일제경찰 몇마리를 죽인, 사소한 소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도시락에 폭탄을 장착했지만 미수로 그친 윤봉길의사가 그리 크게 주목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기타 여러 독립투사들의 활동도 규모가 크냐 작으냐에 따라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물을 진짜 죽였냐,몇마리를 죽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중들에게 독립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었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남쪽에서 일제압잡이들을 내세운 인물이 통치자가 되었던 사실과 그 이후 일본군 장교가 십수년 간 통치를 했던 부끄러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북쪽만 욕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첫댓글 보천보 전투가 대규모였냐 소규모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큰 의미없는 논란은, 과거 박정희나 두환이 같은 역도들이 이념대립적 시대상황을 자신들의 영구독재에 이용하기 위하여 무작정 부정하거나 깍아내리기 식으로 일관했던 때에 보천보가 보잘 것 없는 소규모였으니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으로 평가절하하려고 하던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제대로 된 객관적 교육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죠... 보천보전투가 일제경찰 몇마리를 죽인, 사소한 소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도시락에 폭탄을 장착했지만 미수로 그친 윤봉길의사가 그리 크게 주목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기타 여러 독립투사들의 활동도 규모가 크냐 작으냐에 따라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물을 진짜 죽였냐,몇마리를 죽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중들에게 독립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었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남쪽에서 일제압잡이들을 내세운 인물이 통치자가 되었던 사실과 그 이후 일본군 장교가 십수년 간 통치를 했던 부끄러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북쪽만 욕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당시 신문들이 대서특필하여 보천보가 유명해졌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당시 그것 뿐만이 아니라 크고작은 의거들은 대개 신문들의 대서특필에 의해 선전되고 사실 이상의 포장으로 일반 민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며 독립의 의지가 전파되었던 언론적 투쟁의 한 방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