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인자무적75
    2. 윤성오
    3. 박부원
    4. 디오
    5. 백종국
    1. 김챔프
    2. 스퀴드
    3. 나뮤초기
    4. 송선희
    5. jiae
 
 
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Re:이육사의 ‘광야’와 김일성
신농 추천 0 조회 142 06.07.16 14:17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6.07.17 07:48

    첫댓글 보천보 전투가 대규모였냐 소규모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큰 의미없는 논란은, 과거 박정희나 두환이 같은 역도들이 이념대립적 시대상황을 자신들의 영구독재에 이용하기 위하여 무작정 부정하거나 깍아내리기 식으로 일관했던 때에 보천보가 보잘 것 없는 소규모였으니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으로 평가절하하려고 하던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제대로 된 객관적 교육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죠... 보천보전투가 일제경찰 몇마리를 죽인, 사소한 소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도시락에 폭탄을 장착했지만 미수로 그친 윤봉길의사가 그리 크게 주목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기타 여러 독립투사들의 활동도 규모가 크냐 작으냐에 따라 가치

  • 06.07.17 07:01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물을 진짜 죽였냐,몇마리를 죽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중들에게 독립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었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남쪽에서 일제압잡이들을 내세운 인물이 통치자가 되었던 사실과 그 이후 일본군 장교가 십수년 간 통치를 했던 부끄러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북쪽만 욕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 06.07.17 07:41

    그리고 당시 신문들이 대서특필하여 보천보가 유명해졌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당시 그것 뿐만이 아니라 크고작은 의거들은 대개 신문들의 대서특필에 의해 선전되고 사실 이상의 포장으로 일반 민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며 독립의 의지가 전파되었던 언론적 투쟁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