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관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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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관식들
찰스 3세와 그의 아내 카밀라의 대관식이
2023년 5월 6일에 거행된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이 기념식은
70년 만에 처음으로 거행되는 이벤트이다.
군주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거나 수여하는 행위인 이 의식은
고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왕과 왕비는 물론 황제, 교황들이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일어난 수많은 대관식들 중에는
정말로 중요한 행사들, 심오한 종교적, 문화적 결과를
가져온 사건들이 있다.
궁금하다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관식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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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의 대관식
대관식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히브루 성경에 따르면
골리앗을 죽임으로써 명성을 얻은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이었다.
그의 대관식은 기원전 885년에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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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대관식
사진은 기원전 284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피아를 묘사한
이집트의 에드푸 신전에 있는 벽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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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의 대관식
로마 황제들은 왕족의 상징으로 보이는
장식적인 머리띠 모양의 왕관을 썼다.
이미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06년에
대관식을 마친 후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언한 최초의 로마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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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다시르 2세의 대관식
고대 페르시아에서, 군주는 대관식을 위해
고대 수도 파사르가대에 가야 했다.
사진은 379년부터 383년까지의 사산 왕조였던
왕 아르다시르 2세의 대관식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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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핀왕의 대관식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은 752년 그의 통치 초기에,
그리고 754년 처음으로 교황에 의해 두 번 왕좌와 임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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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
800년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은 교황에 의해
즉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으며,
이는 교황과 교회에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한
암묵적인 권한을 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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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못한 자, 에델레드 왕의 대관식
무능했던 통치자였던 에델레드 왕은 978년에 왕위에 올랐다.
그의 대관식은 런던 중심부에서 약 16km 떨어진
킹스턴 어폰 템즈에서 거행되었다.
충신이 없다는 뜻의 언레이드(unræd)라는 단어에 대한
희곡에서 유래한 그의 호칭은 적절했다.
에델레드가 왕이 되었을 때 그는 겨우 10살이었다.
그는 성인이 되어 바이킹들을 상대하는 데 실패했고
1013년 덴마크의 왕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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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2세의 대관식
후계자가 없이 사망한 에드워드 1세의 뒤를 이어,
해럴드 고드윈슨은 마지막 앵글로색슨계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다.
그의 대관식은 1066년 1월 6일 윈체스터 애비 수도원에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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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1세의 대관식
정복자 윌리엄으로 알려진 윌리엄 1세의 대관식은
처음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렸다.
영국의 첫 노르만 왕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1066년 크리스마스 날에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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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1세의 대관식
"사자왕 리처드"로 유명한 리처드 1세는 1189년 9월 3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국 왕으로 즉위했다.
그의 대관식은 영국 옥스포드의 보들리언 도서관에
행사에 대한 설명과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목록등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최초의 대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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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발리올 왕의 대관식
129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왕 존 발리올의 대관식은
스코틀랜드 왕들의 대관식 때 수세기 동안 사용되었던
직사각형 모양의 붉은 사암인 스콘 암석이 있는
스콘 수도원에서 거행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존 발리올은 1296년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침공 때
에드워드 1세의 군대에 의해 점령되기 전까지
이 암석 위에서 즉위한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이었다.
이 스콘 사암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마지막으로 그레이트 브리튼과 영국의 군주들의 대관식에도 사용되었다.
오늘날 이 신성한 유물은 에든버러 성에 영구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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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2세의 대관식
1308년 2월 25일, 에드워드 2세와 이사벨라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국의 왕과 왕비로 즉위했다.
이때 에드워드는 23살, 이사벨라는 겨우 12살이었다.
당시 에드워드는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선서를 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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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4세의 대관식
헨리 4세는 1399년 10월 13일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대관식 전날 웨스트민스터에서 런던타워까지,
그리고 다음날 오후에 런던타워에서 웨스트민스터까지
두 번의 대관식 행렬을 가졌다.
헨리는 영국이 노르만에게 정복 된 이후 300년동안
불어가 아닌 영어가 모국어인 최초의 영국 통치자였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잔 드 나바르는 1403년에 여왕으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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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7세의 대관식
1429년 7월 17일 랭스 대성당에서 치뤄진
카를 7세의 대관식은
잔 다르크가 참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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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6세의 대관식
헨리 6세는 9개월이라는 어린 나이에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의 대관식은 그가 겨우 7살이었던
1429년 11월 6일에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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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의 대관식
1509년 6월 24일, 헨리 8세와 그의 아내 캐서린이
잉글랜드의 왕과 왕비로 즉위하면서 성대한 행사를 열었는데,
이 둘의 행복을 염원하는 많은 열렬한 지지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밖에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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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의 대관식
엘리자베스 1세의 대관식은 1559년 1월 15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는
마지막 튜더이자 가톨릭 교회의 후원으로
영국 대관식을 치룬 마지막 군주이다.
사실, 그 의식 자체는 존재했던 가톨릭 관습과
여왕이 도입하려고 했던 개신교 관습 사이의
영리한 절충안이었다.
그녀는 그림에서 대관식 예복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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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의 대관식
의심할 여지 없이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군주였던
불굴의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고 칭했고,
1654년 6월 7일 랭스 대성당에서 그의 대관식은
그에 걸맞게 밝고 화려하게 치뤄졌다.
그림 속 그는 호화로운 대관식 예복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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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나폴레옹과 황후 조세핀의 대관식
나폴레옹은 1804년 12월 2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려하고 거대하게 프랑스 황제로 즉위했다.
이 행사에서 황후 조세핀의 즉위 또한 거행되었는데,
이 모든 의식은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주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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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페드로 1세의 대관식
1807년, 포르투갈의 왕 돔 페드로 4세는
프랑스의 침략에 쫒겨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도망쳤다.
1822년 12월 1일, 그는 브라질 제국의 창시자이자
초대 통치자인 황제 돔 페드로 1세로 즉위했다.
그의 아들 돔 페드로 2세는
1841년 7월 18일 브라질의 황제로 즉위했다.
이 두 의식은 남미 대륙에서 거행된 유일한 대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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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1838년 6월 28일, 빅토리아 여왕은 버킹엄 궁전에서 출발해
대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행진한
최초의 영국 군주가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왕실의 중심적인 이미지로
궁전을 떠올리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계승되는 전통의 시작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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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빌헬름 1세의 대관식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은
1861년 10월 18일 쾨니히스베르크 성에서 거행되었다.
이 행사는 1701년 이후 프로이센의 첫 왕위 계승식이자
19세기 독일 국왕의 유일한 왕위 계승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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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대관식
1881년 3월 알렉산드르 2세 황제의 암살로 인해
2년 후 모스크바에서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와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후가 즉위하게 되었다.
새 왕은 이 의식의 도덕적 표현을 높이기 위해
행사의 속도를 늦추도록 명했는데
그 기념행사는 거의 2주 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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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1세의 대관식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1세는 1889년 10월 19일에 왕이 되었다.
1908년 2월 1일, 돔 카를로스는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루이스 필립과 함께 리스본에서 암살당하고 왕비만이 부상을 면했다.
국왕의 둘째 아들 마누엘 2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통치는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포르투갈 왕정이 몰락하면서 짧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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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대관식은 1896년 5월 26일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가
황제와 황후로 즉위하면서 거행되었다.
그 기념식은 모스크바 크렘린의 인수 대성당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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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의 대관식
1911년 6월 2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조지 5세와 메리가 왕과 왕비로 즉위했다.
그의 통치 초기에, 새 왕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무명 전사를 매장하자는 제안을 지지했는데
그 일은 1920년 11월 11일에 실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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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6세의 대관식
역사상 처음으로 중계되었던
(비록 카메라는 사원 내부로 들이도록 허락되지 않았지만)
1937년 5월 12일 웨스트민스터에서의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의 대관식은 방송 역사상 역대급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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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화려한 대관식은
1953년 6월 2일 여왕의 요청으로 전 세계에 중계방송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방송된 이 행사는 영국에서만
약 2천 7백만 명이 텔레비전으로 시청했고,
1천 1백만 명이 라디오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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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바오로 6세의 대관식
교황 즉위에 올랐던 교황들 중 교황관을 쓰는 의식을 한
마지막 교황은 1963년 6월 30일 즉위한 교황 바오로 6세이다.
그 이후로 그의 후임자들 중 누구도 의식용 교황관을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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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카를로스 1세의 즉위식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사망한 지 이틀 후인
1975년 11월 22일, 후안 카를로스 왕자가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했다.
스페인의 군주들은 16세기 중반 이후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 대관식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국왕과 그의 아내 소피아는 대관식 대신
마드리드의 산 헤로니모 엘 레알 교회에서 열린
즉위 미사에 참석했다. 그의 왕위 계승은
스페인에 입헌군주제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
(뉴욕 타임스) (브리타니카) (Medievalists.net)
(더 로열 패밀리)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