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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고향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한다. 제 아무리 좋은 집과 경관이 좋은 곳에 살지라도 내 고향 초가집만 못하니 말이다. 조상이 뭍혀 있는 땅,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고향 땅은 죽을 때까지도 있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그 곳에 나도 뭍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70년 초에 서울에서 직장 생활할 때의 추억이다. 당시는 동대문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다. 명절 때가 되면 고향에 내려가는 귀성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곤 하였다. 새벽에 일찍 집을 나서도 터미널에 도착하면 구름 때와 같이 많은 사람이 몰려 들었는데 밀려들어가다 보면 나중엔 빠져 나올 수도 없을 정도였다.
등에 업힌 애는 울어대지 짐보따리는 챙겨야지 나중엔 몸만 겨우 차에 올라탔는데 한참 후에 보면 짐 보따리는 온데 간데도 없었다. 고향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가져 갈 선물을 샀는데 그 당시 해태, 봉봉, 선물세트와 보해 정종이 귀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6.25 전쟁 때 피란민 행렬이 그랬을 것 같다.
열차 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짐칸에도 사람이 들어갈 곳이 없었고 심지어는 짐 싣는 선반 위에도 사람이 올라 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경부선과 타지역 사람들은 우리가 겪는 고통보다는 덜 했으니까 호남 푸대접이란 말은 고향 사람끼리 만나면 단골 메뉴처럼 등장 하곤했다.
당시는 호남인으로서 서울 생활이 쉽지가 않았던 시절이었다. 생활 환경도 힘이 들었지만 공·사직 직장인들에게는 지역 차별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아픔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는 그 당시 본적지가 전라도면 진급도 안되고 출세길이 막힌다고 아예 족보를 옮긴 친구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고달픈 객지 생활을 하다 보면 고향사람처럼 반가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퇴근 길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다가도 고향 사투리가 나오면 금방 이웃 사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던 그 시절. 동대문야구장에서는 군산상고, 광주일고 야구가 잠실야구장에서는 해태 타이거즈 야구가. 여의도 광장, 한강 고수부지에서는 DJ 대통령을 지지하던 열성 호남인들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호남을 고립시키고 차별하려는 군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호남인 들은 뭉칠 수밖에 없었다.
가슴속에 있는 한과 울분을 풀 길이 그 길 밖에 없어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한 덩어리가 되어 목포의 눈물을 외쳐 부르며 울고 웃던 그 시절이 이젠 아스라니 추억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공직사회에선 지역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호남 사람을 괄시하고 천대하는 분위기는 많이 호전 된 것 같다.
이렇듯 고향은 힘든 객지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겐 어머니의 품과 같이 항상 편안함을 주는 곳이다.
무안에서 태어났지만 생활 터전을 서울과 경기일원에 두고 사는 향우들의 수가 2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향을 지키며 사는 사람보다 무려 3배나 많은 향우들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몸뚱아리 하나 아니 쌍방울 두 개만 달랑 차고 올라와 성공한 향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사회 각 처에 수많은 향우들이 국가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재경 무안군 향우회를 재건하기 위해서 서울과 경기 일원에 거주하고 있는 향우들과 자주 만나 고향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낙후되어 있는 고향을 위해 무언가 역할을 해야 되겠다는 향우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무안인들이 힘을 모을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도청과 국제 비행장, 한·중 기업도시 프로젝트 등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 힘만 모으면 어느 시, 군 보다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번 6.2 지방 선거 당선자 모두는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사심 없이 일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군 행정을 맡으시는 군수님께서는 출향 향우들을 활용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그리고 황토골 무안이 가지고 있는 농·수산 특산품과 향토, 문화를 발굴해서 향우들이 고향 방문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해주길 바란다.
특별히 우리 고장에 좋은 언론사가 있어 매주 지면을 통해 고향 소식을 접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동네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심하게 전달해 주는 무안신문이야 말로 고향 발전에 큰 힘이 되리라 확신한다. 앞으로 향우들에게 무안신문 보기 운동을 확산시켜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생각이다.
귀사에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일로의 품바는 이미 고인이 되신 김시라님의 작품으로써 미국의 카네기 홀 공연까지 했던 작품이다. 함석헌 옹께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천재 김시라님의 품바연극이 충북음성이 원조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무안의 대표적인 뻘낙지 무안 양파도 그냥 놔두면 타 지역의 특산품으로 둔갑되어 버릴까 걱정이 된다.
함평의 나비 축제같은 아이디어 공모도 해봄직하다.
40여년 동안 서울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내 고향 무안을 잊고 산 적이 없는 나로서는 황토골 무안이 살기 좋은 고장, 인심 좋은 고장으로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고장으로 발전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무안신문이 그 역할의 일선에서 크게 활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향우 이수찬씨는 일로 출신으로‘재경 무안군향우회 총회 준비추진위 사무총장’ 및 UN/NGO 국제보건환경감시단 부총재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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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안신문에 고향를 기리는 마음으로 기고했던 글입니다.나에게 고향은 어머니니의 젖 가슴같은 곳입니다.
고향를 떠나 사는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을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갑니다.
고향의 역사를 글로써 담아 내는 작업이야 말로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참여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고향은 어머니 품과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