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8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06, 이마고)
2016.3.23
이춘아
최근 책 읽은 순서는 조이스 캐롤 오츠, [그들 them] (2015, 은행나무), 미야모토 테루, [금수](2016, 바다출판사),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지만 책이야기 대표 제목으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올렸다. 언뜻 상상이 되지 않으면서도 호기심을 일으키는 제목이기도 하고 내가 읽기 시작했던 시점이 알파고와 이세돌 바둑대결 이후여서인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책이기도 해서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학전문의이자 작가이기도 한 올리버 색스가 접한 수많은 임상사례 가운데 24개 사례를 엮은 것이다. 하나하나 사례가 마치 단편소설처럼 전개되고 있으면서도 신경학전문의로서 해석과 소감이 있기에 일반인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올리버 색스의 글은 문학, 연극, 영화 등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24개 사례 중 첫 번째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인데, 안과적 진단은 아무런 이상은 없으나 환자인 P씨는 특징적인 형태만을 기억하는 시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림도 잘 그렸던 P씨는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을 집에 전시해두었는데, 그림이 사실화에서 점점 비구상으로 추상화로 변화하고 있었고, 전문의인 작가가 보기에 그것은 추상화가 아닌 핵심이 빠진 상태의 형태만 남겨져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고 제목을 붙이게 된 계기는 환자인 P씨가 아마도 아내가 모자 형태의 머리 스타일하고 있었기에 모자를 쓴다고 한 것이 아내의 머리를 잡게 되는 웃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문의인 저자가 보기에 P씨는 사물을 보긴 하되 특징적인 형태만을 기억하는 경우였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시각전달이 잘못되면서 추상적인 형태로만 기억하게 되었다. 문제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부분만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P씨 뿐 아니라 사람들 대다수가 기억장애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한다. 똑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르다. 내 경우 청소년기에 보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를 성인이 되어 다시 보았을 때, 아니 저런 장면이 있었나 하며 놀랬다. 청소년기에 영화도, 소설도 보고 읽었지만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중심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성인기에 영화를 다시 보니 거대한 격동적 시대상황을 겪고 있는 과정이 거대한 서사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러브스토리만을 본다는 결론이다. 한 개인의 연령기마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다르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아도 기억하고 있는 대목은 서로 다르다. 이러한 것들 역시 기억 장애가 아닌가? 이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개성으로 또는 지능이 좀 다르다고만 보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더구나 알파고와 이세돌,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는 인공지능은 기억을 그대로 축적한다는 것이고 인간은 기억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변형된다는 것이어서 이제 지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억만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집단지성’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개인의 지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들이 의견을 조율하면서 합의한 것을 이행해가자는 것인데 어쩌면 시대를 내다본 단어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저자인 올리버 색스가 2015년 8월30일 타계하기 전후로 여러 팟캐스트에서 소개된 책이다. 문학, 비문학을 소개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 과학팟캐스트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에서도 다루었고, 최근(2016.2.19.)‘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에는 이 부분을 읽어주었다. 그런데 책으로 임상사례로 생각하며 내가 읽었던 대목들이 작가 김영하가 읽어주니 마치 소설을 듣고 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임상사례리포트를 소설로 착각한 여자’라고나 할까. 올리버 색스의 탁월한 문장력 때문이다.
[그들 them] (2015, 은행나무)을 쓴 조이스 캐롤 오츠, 장편50편, 단편 등 100여편을 쓴 미국여성작가이고 노벨문학상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팟캐스트 소개로 작가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내가 다 알아야할 이유는 없지만 그런 유명한 작가를 이제껏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니 스스로에게 분개하면서 책을 사서 읽었다.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책이 무겁기 때문이다. 717쪽 분량에다 재생용지도 아니어서 더 무겁게 느껴지는데 내용도 버겁기까지 하다. 소설책인데도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 오래전 읽었다고 생각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떠오른다. 검색해보니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해가는 과정을 다룬 것이고, J.C.오츠의 [그들]은 1937년부터 1967년 미국 디트로이트가 배경이다. [분노의 포도]는 경제대공황과 자연재해로 터전을 잃은 소작농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은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지역 노동자들이자 주민들인 한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 오츠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역사’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두 책의 번역자가 동일하다(역자 김승욱).
이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던 것은 책 속의 인물들인 ‘그들’이 겪고 있는 환경이다. 나에게 각인되어 있는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는 미국인들’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그들의 상황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각자가 보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들. 왜 소설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지. 한계적 기억을 갖고 있는 인간이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느끼고 이해하고 알아야만 한다고, 그것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라고 스스로에게 설득하기도 했다.
미야모토 테루, [금수] (2016, 바다출판사), 감정을 자극하는 소설이 역시 내 취향이다. 이혼하고 10년이 지나 전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고 주고 받는 서간문 형태의 소설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인 미야모토 테루, 하루키도 못받은 아쿠타가와상, 시바 료타로 상을 받았다고 하며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여러 권이지만 나는 작가 이름을 처음 알았다. (뭐 내가 다 알 이유도 없지만)
이혼하고 10년 지나 솔직히 그동안 묻어놓았던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각자의 길을 담담하게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일본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면서 동양적인 사유체계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부부들이 서로 담담하게 솔직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편지로 보낼 수 있다면 죽기 전에 이혼하기 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해해서 뭐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막혀있는 관계로 인해 자유롭지도 않고 독립적이고 당당하지 못하게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이 책에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는 모차르트 라는 커피집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근데 올리버 색스가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두 책의 공통점을 나름 찾아 기뻐하며 나도 모차르트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작가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한 본질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나는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누군가는 신경전문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거나 행동으로 옮긴다. 나는 오늘 도서관에서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와 미야모토 테루의 [파랑이 진다]를 빌려왔다.
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아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바쁘신 와중에 언제 이 많은 책들을 읽으셨을까 ^^
대표님은 못 말리는 책벌레
다른 이에게 아직 가지 않았다면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 좀 빌려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