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2코스는 광치기 해변에서 출발하여 대수산봉, 혼인지를 지나 온평포구까지 이어진다
물빛 고운 바닷길부터 잔잔한 내수면 들길, 호젓한 산길까지 색다른 매력의 길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우리는 체력을 고려하여 내수면 둑방길 순환코스를 빼고 걷기로 하였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제주 동부의 풍광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숨겨져 있던 제주의 속살로 깊이깊이 들어가 그들과 동화되려 노력하였다
올레 2코스는 지금 제주2공항 예정부지로 결정되어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다
우리는 내수면둑방길과 식산봉을 거쳐 마을길까지 돌아오는 길을 빼고 걸었다
내수면둑방길은 조선 말기에 보를 쌓아 만든 논으로 만들었던 곳이다
그뒤 새마을사업으로 숭어양어장이 조성되었는데 역시 거의 버려진 상태로, 독특한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다
올레 1코스의 시작이자 동시에 2코스의 시작인 광치기해변에 다시 섰다
역시 바람은 거세게 불어왔고, 우리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세 여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 하여 남자들은 슬슬 뒤로 물러나버렸다 ㅎㅎ
올레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독특한 문화를 천천히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25개 올레에는 제주의 여행지가 대부분 포함되며, 제주를 대표하는 바다와 포구, 해안 절벽, 오름, 마을 등이 이어져 있다.
유배의 흔적, 일제강점기와 4.3사건 등 슬픈 제주 역사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그냥 눈으로 둘러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내수면둑방길로 가는 길을 외면하고 곧바로 성산하수처리장 방향으로 돌아섰다
15.6km의 2코스는 우리 체력으로 한나절에 걷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이영 바당이영 몬딱 좋은게 마씀'이란 제주어를 곱씹으며 걸어갔다...<산이랑 바다랑 모두가 좋다>
마을 어귀에 노오란 귤이 탐스럽게 열린 감귤밭이 있었다
다른 농장과는 달리 올레꾼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열어놓은 주인장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윽하고 깊은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율리아나님의 미소가 넘넘 아름답다 ㅋㅋ
대수산봉으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엔 우람한 소나무 세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었다
예전에 이 오름에 물이 솟아나 못이 있어서 물(水)이 있는 산이라 해서 물뫼라고 불렀다
이 오름의 동북쪽에도 작은 산체가 있어 대소(大小) 개념을 붙여 큰물뫼와 족은물뫼로 구분해 불렀다.
큰물뫼의 한자어로 대수산봉으로 표기했는데, 옛 이름에 더 매력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대수산봉
대수산봉 정상에 서면 제주올레 1코스 시점인 시흥리부터 종점인 광치기 해변까지 아름다운 제주 동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수산봉은 전체적으로 소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한 오름이지만 정상부에는 다른 세상이다.
얕게 파인 굼부리가 아담하고, 무엇보다 주위에 나무가 없어 최상의 조망권을 자랑한다
2코스부터는 유승현 마리오 신부님께서 동행하여 더욱 행복하다
마리오신부님은 금년 8월까지 전주교구에서 교정사목을 전당하시었다
9월부터 선너머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옮기셨는데, 신부님과의 특별한 인연은 하늘이 맺어주셨다
오랜만에 대수산봉 지킴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분은 조선시대부터 이 망루를 지켜왔는데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가끔은 속세로 내려와서 우리와 함께 산에 가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막걸리도 마신다 ㅎㅎ
산담
산담은 말이나 소의 방목으로 인한 분묘의 훼손을 막고, 산불을 막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 지역의 돌담은 어떠한 장소에 사용되는가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전통 초가의 외벽에 쌓은 ‘축담’이 있고, 큰길에서 집으로 출입하기 위한 골목을 따라 쌓은 ‘올렛담’
그리고 밭과 밭의 경계를 짓는 ‘밭담’,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성처럼 길게 쌓은 ‘잣담’ 등이 있다
올레의 길잡이 간세
올레길 위에 파란색의 철 조형물인 ‘간세’가 있는데, 갈림길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원래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의 이름이다.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인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갈림길에서 길을 안내한다.
시작점에서 종점을 향해 정방향으로 걷는 경우, 간세 머리가 향하는 쪽이 길의 진행 방향이다.
세상이 아무리 담배 끊기를 권해도 이분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좋은 맛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연기를 길게 들여마시고 내쉬는 두 분의 모습에서 우리가 모르는 천국의 향기가 느껴진다 ㅠㅠ
혼인지 婚姻池
제주의 옛 신화 ’삼성신화’에 나오는 고, 양, 부 삼신인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혼인한 이야기가 깃든 연못이다
이곳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못은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탈바꿈하는 과정과 씨족형성의 실마리를 말하여주는 신화상의 근거로서 흥미를 가진다.
제2의 신혼을 맞이한 이분들의 얼굴에 그윽한 행복이 묻어난다
이곳 전통혼례장은 삼 신인과 세 공주의 혼례와 신혼 밤을 보낸 의미 있는 장소로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토마스와 도로테아님의 첫날밤을 지낼 보금자리는 금호훼미리호텔 605호에 마련되었다 ㅎㅎ
그런데 신랑과 신부의 위치가 바뀌었네 ㅠㅠ
한번쯤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서 살아보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될듯....
마을안길을 걷다보면 이랗게 아름다운 집들을 볼 수 있다
주인장 스스로 돌을 깎고 세우며 꽃을 심어서 천국처럼 꾸며 놓았다
마당 안쪽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는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아마 지나가는 올레꾼들에게 하도 말을 많이 들어서 귀찮아하는 게 아닐까?
올레의 길잡이 리본
제주의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제주 감귤을 상징하는 주황색의 리본 두 가닥을 한데 묶었다
리본은 주로 전봇대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므로 리본만 잘 따라 걸어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환해장성(環海長城)
1998년 1월 7일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바다로부터 침입해 오는 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쌓은 것이다.
제주도는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들이 상륙하기 좋은 곳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방비로 해안선의 접안할 수 있는 곳을 돌아가면서 돌로 성(城)을 쌓아 놓았다.
고려 때 삼별초가 대몽항쟁을 위해 처음 쌓기 시작했고, 조선 때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보수됐다.
온평포구
드디어 2코스의 종점이자 3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한 온평포구에 도착하였다
온평포구는 과거에는 주민들의 터전으로 자리했지만, 현재는 서쪽에 규모가 조금 더 큰 항을 만들었다
지금은 올레길을 찾아오는 올레꾼의 조그만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바람은 바닷물을 재우거나 흔들어 깨우거나 미쳐 날뛰게 한다
물위에 고기바늘같은 잔주름이 잡히면 실바람이고,
작은 파도가 생기면 남실바람이고,
파도의 대가리들이 부서지고 흰거품이 일어나면 산들바람이고,
파도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옆으로 연대를 이루면 건들바람이다.
물보라가 심해져서 시야가 흐려지고 파도의 대가리가 휘어지면 큰센바람이고,
흰거품이 덩어리를 이루어 물 전체가 뿌옇게 보이면 노대바람이고,
큰 파도가 작은 파도를 때려 부수면서 달려들면 왕바람이고,
물거품과 물보라로 수면 전체가 뒤덮이면 싹쓸바람이다.........................................김훈 <자전거여행2> 중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저 바다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저 파도 일제히 일어나
아우성치고 덤벼드는 것 보면.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인가
그 성난 물결 단번에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
씻어내리리 생각하면.............................신경림 <파도> 전문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냥 즐기고 먹고 마시는 걷기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었다
신부님은 강론에서 '거짓말 하는 양치기소년을 탓하지만 말고 그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자'고 하셨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제주늘봄' 식당으로 옮겨서 흙돼지를 구웠다
율리아노 형님이 첫번째 바람을 잡으시고, 신부님께서 두번째 바람을 일으키셨다
두 번의 바람이 밀려가자 참이슬과 한라산 소주가 한라산 만큼 쌓였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