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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 국제팀)
“우리는 계속 군사기지에 의해 지배될 오키나와의 미래는 거부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희망으로 가득 찬 오키나와의 미래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고, 우리는 자유롭게 또 우리 스스로 진정한 오키나와 돌봄 사회를 건설할 모든 권리가 있다. 오키나와 현민 전체가 다시 한번 이 “전 오키나와” 기치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2013년 오키나와 ‘건백서’의 이행과 헤노코에서 강제로 진행되고 있는 신기지 건설작업의 중단을 강력 요구하는 바이다.” (2014년 7월 27일, 기노완시의 시청 강당에서 “건백서를 이행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전 오키나와 회의” 결의문: 본문 인용)
작년 11월 16일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에서 미군 기지 헤노코 이전을 반대하는 오나가 타케시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로 당선 됨으로서(관련 링크) 오키나와의 투쟁은 희망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나 한-미-일 삼각 동맹의 한 주체인 일본 아베 정권은 선거로 명확하게 표명된 오키나와 인들의 기지 반대 의사를 무시하고 미국과 함께 폭압적으로 헤노코 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카약 시위 등으로 격렬히 저항하는 오키나와 인들은 우리처럼 인권 침해를 당하면서 체포를 무릅쓰고 있습니다. '저항하는 섬-오키나와'의 공동 저자인 개번 맥코맥이 쓰고 보낸 이 글은 선거 이전, 공사가 시작된 작년 8월에 쓰여진 글이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에 읽어도 오키나와의 역동성에 관한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기지 반대와 군관사 반대 투쟁으로 끝나지 않은 싸움의 한가운데 있는 강정과 제주에 많은 영감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심혈을 기울여 번역을 해주신 김 레베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목: "오키나와의 “가장 암울했던 해”
원제: Okinawa’s “Darkest Year” 沖縄にとって「いちばん暗い年」
원문 링크: The Asia-Pacific Journal, Vol. 11, Issue 33, No. 4, August 18, 2014.
글쓴이: 개번맥코맥, 우라시마 에츠코 Gavan McCormack and Urashima Etsuko
번역: 김 레베카
“피바람이 불어올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고 아마도 오키나와의 근대사상 가장 암울한 해가 될 전망이었다.”
오타 마사히데, 1990-1998년간 오키나와 현지사, 나하, 2014년 7월 3일.
2014년 한 여름의 열기가 일본열도를 달구고 있을 때, 오랜기간을 끌어온 “오키나와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아마 결정적이라 할 만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오키나와 북부해안지역에 새로운 미해군기지를 건설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를 놓고 (워싱턴의 지지를 업은) 도쿄당국은 오키나와와 정면대립했다. 걸려있는 이해관계도 공약의 수준도 매우 높았고 어디에서도 타협하거나 양보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타 전 현지사처럼, 오키나와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은 깊은 불안한 예감을 갖지 않고는 숙고하기가 불가능하다.[i]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는 일본국가가 동원한 자원동력에 정면대결하고있는 오키나와 시민사회세력이 전하는 정의, 진실, 결단력에 적지않은 영감을 받게된다.
아래는 첫번째로 개번맥코맥이 쓴 세력, 이슈들과 관련된 분석기사와 두번째로는 오키나와에서 활동중인 활동가, 시인이자 저항을 지속적으로 기록해온 기록작가인 우라시마 에츠코의 짧은 산문이다.
2014년 오키나와전투
개번맥코맥
오키나와의 일간지 두 군데는 2014년 8월 14일 동시에 특집보도를 실었는데, 기사 제목들은 바로 오래 전에 약속됐던 헤노코 새 해군기지의 건설이 착수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일본 중앙 정부는 엄청난 자원을 동원하고 최대한의 속도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휘황찬란한 선전전을 시작했다. 두 번째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서고도 1년 반이 넘도록 사업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증명한다. 첫 번째 커다란 장애물은 오오우라만의 간척을 위해 오키나와 현지사인 나카이마 히로카즈의 재가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이 일에만 한 해가 꼬박 걸렸다.
“새 헤노코 기지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키나와타임즈], 특별호, 2014년
8월 14일.
2010년에는 후텐마 기지가 폐쇄되거나 아니면 오키나와 현외이전을 주장한 반대편 지사 선거후보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현 지사이자 보수 후보인 나카이마 히로카즈마저 그것이 자신의 입장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2013년 12월까지 내내 기지의 현외이전 요구를 반복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현민들의 동의 없이 (헤노코) 계획을 이행하기란 어려울” 것이고, 문제를 해결할 “가장 빠른길”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바깥으로 옮기는 것이며, 헤노코 프로젝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예정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평가서가 측정한 바에 의하면 환경을 보호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평가서와 관련해 175가지의 중요문제를 언급했다). 헤노코 프로젝트에 대해 근 4년 동안이나 꾸준히 반대의견을 밝혀온 지사는 지난 2013년 12월 느닷없이 또한 오키나와 선거인(현민)들의 의사를 청취해보지도 않고 입장을 정반대로 바꿔 기지를 짓는 데 필요한 인허가를 내려주기로 합의했다.[ii] “정부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동원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정부의 요청이 공유수면매립법에 명시된 기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는 간단한 확인과 함께, 지사는 그의 입장을 180도 바꾼것이다.[iii]
2013년 12월에 행해진 나카이마 지사의 이러한 “굴복”(오키나와에서는 그렇게 알려졌다)을 획득한 이상, 아베정부는 황급히 서둘러 일을 진행해나갔다. 오키나와 현민들의 이해를 진정으로 추구하겠다는 기존의 공약도 저버린 채 입찰자들을 불러모으고 첫단계 공사를 위한 계약들을 발주했다.[iv] 2014년 4월, 아베는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이 “굳은 결단력으로 신속히 또한 결정적으로 ”오래 끌어왔던 그러나 번번히 연기되어왔던 프로젝트를 진척시키고 있다고 말하면서 안심시켰다.[v] 그는오키나와 현민들의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했다고는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14년 7월 1일, 아베정부는 기존 캠프 슈왑Schwab 범위의 땅을 비우고 매립을 위한 기초단계로서 오오우라만의 거의 절반이 넘는 면적(561헥타르)을 출입금지 구역으로 공표함으로써 부지공사에 착수했다. 이 해양구역은 슈왑 캠프를 둘러싼 기존의 50미터 출입금지구역에서 해안에서 2킬로 이상 떨어진 부분까지였다. 이 구역 안에서 동쪽으로는 헤노코곶을 서쪽으로는 오오우라만을 접하고 있는 160헥타르에 달하는 바다가 매립되기로 되어있었다.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가 부어져 인근 해상에서 위로 10미터 솟아오른 1,800미터짜리 활강장 두 개와 272 미터짜리 선창 하나, 아울러 각종 부대시설을 겸비한 기지가 지어지기로 되어있었다. 오키나와 현민들의 지속적으로 표출된 반발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고 그 어떠한 공청회나 심지어는 예고 한 번 없이 아베 정부는 미국의 수퍼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일본의 가장 귀중한 자연보전구역의 절반 이상을 수용해버렸다.
오오우라만 배타적 해상구역(붉은 점선 안)과계획된 건설 부지(어두운 색 부분). 후자는 현 캠프 슈왑 해군기지 주변으로 바다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헤노코항은 왼쪽 밑, “329” 표지 밑에 표시되어 있다. ([류큐신보])
공사부지는 일본에서도 가장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해안구역이 장관을 이루고있는 지역으로서, 산호초(극도로 희귀하고 중요한 청산호를 비롯해서)에서 갑각류, 해삼, 해초, 수백종의새우, 고둥, 물고기, 거북, 뱀, 포유류,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엄격히 보호받아야 할 종인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은 생명체인 듀공을 비롯한 숱한 희귀종 또는 멸종위기종 내지 보호종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생물체들의 서식처이다.[vi] 비정부기관인일본 자연보호회가 2014년 중반 두 달에 걸친 실지조사 끝에 내놓은 기지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에 의하면 듀공 “110여 개체”가 매립예정구역 한 가운데의 해구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방위성이 정부를 위해 행한 공식조사 연구상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vii] 공사는 일본전역에서 동원된 1,260척의 배(오키나와 어선들도 다수 포함됐다)가 일본 해경의 휘하에서 감독, 보호하게 될 것이었다. 공사예정구역에틈입하려드는 시위대는 그 자리에서 체포당해 매우 엄격한 (형사) 처벌에 처해지게 될 것이었다.
2014년 여름 내내 헤노코 주변에서 벌어진 대립과 작은 충돌사건들은 제2의 “오오우라만 전투”를 형성했다. 첫 전투는 10년전, 고이즈미준이치로 정부의 건설선들이 거의 매일같이 어선, 카누, 카약 등을 탄 기지 반대 시민활동가들과 대적해야 했던, 그래서 결국 기지건설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물러나야만 했던 2004-2005년 기간에벌어졌다. 첫 임기의 첫 한 해인 2006-2007년 동안에 아베는헤노코 프로젝트를 재개할 듯 한 몇가지 제스처를 취했었다. 2007년 5월에는오키나와해상으로 5,700톤에 달하는, 속사포와 중기관총을 탑재한 소해정(기뢰를 찾아내 제거하는배) ‘분고’를 보내기도했다. 이때 아베정부는 문제의 소해정을 반쯤은 은밀하게, 눈에 안뜨이도록 보내서 다이버들이 한밤중에 해저로 잠입해 사전환경조사를 진행하도록 했다(환경영향평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적요건들은 무시한 채 말이다).[viii] 2014년중반, 아베는 똑같은 전함을 똑같은오키나와 북부해상에보낼 것을 고려 중 임을공표했다.[ix]이번에는 배치가 공개적으로 진행될 것 같았다. 모호하거나 (국가에) 모욕적인 그 어떤 결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베는 가능한 한 모든 군대를 다 동원할 계획이었다.
오오우라만, 2014년 7월, [오키나와타임즈] 소속기자들이찍음.
오키나와의 시위는 늘 변함없이 비폭력적이었으나, 아베정부는 2014년 엄청나게 파괴적인“충격과공포” 작전을 통해 시민사회의 항의를 위협으로 대하고, 배제하고, 필요하다면 짓뭉개버릴 단단한준비를 하고있었다. 국가자체가 폭력에 대한 독점권과 오키나와의 바램에 대한 무례한 무시와함께중국도 북한도 아닌 바로 오키나와라는 적을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물리치고자 함으로써폭력과무법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속도를 낸 이유가 있었다. 두번째 아베정부의 첫해가 그로부터 (기지건설을위한) 인허가를 받아내는데 소요되어야만 했던 현지사인 나카이마 히로카즈의 임기가 곧 끝나가고 있었다. 11월6일로 예정된 새 현지사선거는 나카이마현지사의 일방적 굴복이후 오키나와의 현민들이 헤노코문제를 놓고 자기 목소리를 낼 첫번째 기회이다. 모든 설문조사(가장 최근에는 2013년 12월, 2014년 4월에 진행된 조사)에서 헤노코프로젝트에 대한 반대의견은 70퍼센트가 넘게 나오고 있다. 정부는따라서 2014년 하반기에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었다: 11월의 선거에서 반드시 적어도 나카이마정도로는 나긋하고 협조적인 새지사가 당선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도저히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기지건설프로젝트를 진척시켜놓는것. 아베는오키나와의 반대를 물리치려면무리를 써서라도 굴복을 강제해야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압도적인 군사력을보임으로써 절망감을 유도해내야한다고 결정해버린듯하다.
해경의고속고무정이 오키나와 방위국 작업반이 쳐놓은 부표바리케이드를 지키고있다.
헤노코, 2014년 8월 14일 (사진: [오키나와타임즈])
그러나 비록 아베의 “전속력으로”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오키나와의 반대 또한 단호했다. 오키나와의 절대명령은 나카이마현지사가 2013년 12월 27일서명한, 그리하여 현전체에서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매립허가 이전으로 모든 결정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현의회와 수많은 시의회가 모두나카이마지사가 물러날 것을 결의했고 설문조사는 대중대다수가 (지사의결정에대해) 이견을갖고있음을 드러냈다. 나카이마 지사가 자발적인사퇴를 고려하기를 거부한 이상, 얼마간 오키나와인들은그를“회부”(즉, 해고)할 정식절차를 밟는 것까지고려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 연루된 절차상의어려움으로 인해 현민들은 우선은 지사를 소환해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결국 지금 당장 그를 해고하는 것 보다는 11월 선거때까지 기다려 정식퇴임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무거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결정이었는데, 현민이투표장에서자기 결정권을표할 수 있게되기 이전에 아베정부에게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11개월에 걸친 기회를 부여하게 되는 형국이기때문이다. 어찌됐든, 다가오는 11월 16일의 현지사선거는 매우 큰 함의를 띠고 있다.
11월선거전망
11월선거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패턴 또한 일찌기유례가없다. 현재까지 출마의사를 밝힌 후보는 세명이다. 현지사인 나카이마 히로카즈(74세)는 세번째 임기를 노리고 있다; 나하시 시장 오나가 타케시(63세)는 “전全오키나와”, 기지반대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모지미키오(52세)는 1996년부터 일본 중의원의원이었고 2005년부터는 무소속으로서, 2014년 7월까지는 오키나와“국민신당”대표로서, 그리고 7월이후부터는 다시 무소속으로서 활동했다.[x]
나카이마 현지사는 재임자가갖는이점, 그리고 중앙정부, 여당인 자민당의 현 단위조직, 기지측, 건설측, 도쿄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경제부문 등의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이고도덕적인 신뢰성은 이 중차대한 이슈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입장변환으로 인해 이미 큰 손상을 입었다. 그는자신이헤노코 프로젝트에 대해 단 한번도 명시적으로 “안돼”라고 밝힌 적은 없었고 여전히 후텐마는 오키나와 현외 이전이 더 좋을것이라 보지만 현재로서는 헤노코가 “가장 빠른 길”이며 아베정부가 취한 조치들이야말로 “대단히 현실적”이었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결정을옹호하고나섰다.[xi]
2014년 선거의 후보로 나선 나카이마의 신뢰성은 그가 아베 정부로부터 얻어낸, 헤노코 기지를 건설하는 대신 후텐마 기지는 앞으로 5년 안에 반환되도록 할 것이라는 약속을 끝까지 고수하는 데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한 공약을 확실히 천명해놓은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미 당국은 즉각 그러한 합의는 있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며 부인하고 나섰고,[xii] 아이러니하게도 나카이마가 지난 2014년 8월에 다시 한 번 그러한 입장을 반복하기 무섭게, 펜타곤이 미 의회에 보낸, 미 해병대가 후텐마 기지를 “적어도 2023년까지” 그리고 가능하면 2029년까지 -다시 말해 5년이 아니라 10년 아니 15년에 달하는 기간을- 계속 사용할 것임을 밝힌 보고서가 뉴스에 등장했다[xiii]나카이마가 이러한 신뢰성에 입혀진 타격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아베 정권은 재정적, 조직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오나가 다케시는 오랜 기간 저명한 자민당 인사이자 자민당 오키나와 현련県連간사장이었다. 2010년의 선거에서는 나카이마의 선거참모로 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2013년 1월의 “건백서建白書”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건백서 운동 당시, 오키나와 대표 130인(총 38개 시·군의 시장·군장, 총 41개 정·촌 의회의 의장, 29인의 현의회 의원과 일본국회 의원을 망라한)이 도쿄로 가서 다음과 같은 오키나와측의 요구를 담은 엄중한 요청서를 총리에게 전달했다: 광범위한 대중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한 해 전에 도입된 미 해병대의 MV 22 오스프레(수직이착륙)의 철수, 그리고 후텐마 기지의 폐쇄·철수와 헤노코 신기지 프로젝트의 폐기. 대표단은 지극히 형식적으로 아베를 4분 동안 접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사람들은 도쿄의 길거리에서 그들을 역적, 중국 스파이, “쥐새끼들” 등으로 호칭하며 모욕했다.[xiv]대열에 합류해 헤노코 신기지 계획을 승인하라는 전국 자민당 본부로부터의 압박에 저항하면서, 오나가는 이 국가정당에 대한 오키나와의 저항에 있어서 중심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도쿄로부터의 압박에 저항하고 “후텐마 기지의 현내이전 반대” 입장을 고수한 이들은 공식적으로 당적을 박탈당했다. 이들은 따로 모여 “신풍新風회”란 이름의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2014년 여름 재부활한 “전全 오키나와”, ‘건백서’ 운동의 추축을 형성했다.
그러한 공동전선 상에서, 오나가를 지원하는 측은 옛 자민당의“신풍회”에서 일본 공산당에 이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었고, 또한 오키나와 기업들의 이해관계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초기의 “지지 집단”과의 만남에는 카네히데 그룹의 회장 모리마사 고야와카리요시 그룹의 CEO 초케이타이라를 필두로 해서 무려 1,450명이나 되는 기업계 인사가 참석했다. 고야는 기지들이“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말하면서 오키나와는 좌우를 떠난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정부는 필시 이번 선거에 돈을 퍼붓고 관권을 휘두를 것이다, 그러나 결국 현민들의 목소리를 소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선거는 오키나와의 정체성과 직결된 선거”라고 덧붙였다.[xv]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나가 또는 자민당에 긴밀히 결탁되어 있는 후보라면 누구라도 신뢰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오나카 후보측이 선전구호를 “인허가를 취소하고 (오오우라만을) 회복하자”에서 “인허가를 취소하고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막아내자는 오키나와 현민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로 바꾸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가 만일 현지사로 당선되면 오나가 역시 결국엔 또 한 명의 “나카이마”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다.[xvi]
짧게나마 2012년 민주당 정권 하에서 우정 민영화 담당대신으로 재직했던 시모지 후보로 말하자면,지금까지 기지 반대 진영에 동조의사를 표명한 바가 없는 데다 그의 집안은 기지 건설로 인해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되는 건설회사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그는 이전에는 후텐마 기지가 맡아온 기능을 현존하는 카데나 미 공군기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선호했었다.[xvii] 그런데 지금은 만약 당선된다면 6개월 이내에 이 문제를 전 현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약속하고 있다.[xviii] 그러나 그가 문제의 이 6개월 동안 현장에서 진행 중인 건설작업을 중단할 것을 명령할지, 또는 만일 당선된다 하더라도 그에게 아베 정권과 정면에서 맞서 싸울 만한 뚝심이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는 세 후보 모두가 “보수”이자 자민당과 공고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뜻이다. 한 사람은 기지 건설을 허가하겠다고 약속했고, 한 사람은 거기에 반대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세 후보가 모두 오키나와 사회의 오른쪽에 서 있고, 따라서 오키나와 복귀 이후 처음으로 뚜렷하게 “진보적”인 후보는 없게 된다.[xix] 세 후보 모두 “기지는 안돼”가 아니라 “더 이상 기지는 안돼”가 기치이다. 다시 말해, 비록 그 부담이 보다 더 공평하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세 후보가 모두 미일 안보조약과 기지 시스템 전반에 대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오나가의 “전 오키나와” 연합전선이 그나마 가장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이것 역시 아직까지는 후텐마 기지의 폐쇄와 반환, 그리고 헤노코 신기지 건설의 취소만을 내용으로 하는 본질적으로 최소주의적인 어젠다이다. 그러나 선택권만 주어진다면 오키나와 현민들은 이보다도 훨씬 더 나아갈 용의가 있다는 점이 확실해 보인다. 오스프리를 수용하게 될 다카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건설작업의 즉각적인 중단[xx], 장기적으로 오키나와의 비무장화와 전 군사기지의 폐쇄·철수에 대한 요구 같은.
성원 대다수가 여성인 한 시민단체는 “희망 새물결(New Wave to Hope)”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후보들에게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xxi]:
1. 후텐마 비행장의 이전,헤노코 신기지와 타카에 헬리패드의 건설과 관련하여:
a. 지금부터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가령 정부측이 강제력을 발동하더라도) 헤노코에 그 어떤 신기지도 건설해서는 안된다는 양보 없는 반대입장을 견지할 것.
b. 지사로 선출되어 임기를 시작하게 되면 “(2013년 12월에 전 지사 나카이마히로카즈가 승인한) “헤노코곶 매입 허가”를 취소할 것.
c. 타카에헬리패드 건설작업의 즉각적인 중단.
2. 헌법 제9조와 집단자위권과 관련하여:
a. 자구의 변화이든 해석의 변화이든, 제9조에 대한 모든 수정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할 것.
b. 집단자위권 행사를 통해 제9조를 실질적으로 텅 빈 조항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할 것.
3. 자위대의 파견과 병력증강과 관련하여:
자위대가 오키나와, 특히 미야코와아에야마 제도로 파견되거나 자위대의 병력이 증강되는 것에 대해 반대할 것.
4. 미군기지들을 축소하고 미일 주둔군지위협정을 개정할 것.
a. 기지 규모 축소 계획, 나아가 후텐마 기지뿐만 아니라 카데나와 오키나와에 주둔해있는 미군기지 전체에 대한 궁극적인 폐쇄 계획을 마련할 것.
b. 오키나와의 인권 유린과 구조적 차별의 뿌리가 되어온 미일 주둔군지위협정을 개정할 것.
이러한 요구는 헌법에 보장된 평화, 안전한 생계, 인권이 보장되고 69년간에 걸친 미(그리고 미일) 군사지배가 종지부를 찍게 될 새로운 오키나와를 향한 현민들의 뿌리 깊은 열망을 표현하는 오키나와의 사회적 어젠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1996년에서 201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헤노코에서의 비폭력 오키나와 저항운동은 모든 기지 건설 기도를 막아냈다. 촌, 정, 시, 현 대의단위들의 결의 같은 그들에게 허여된 민주적 방법을 통해, 오키나와인들은 그들의 반대의사를 명백히 표명해왔고, 이는 2013년 1월 건백서 운동과 기지 반대 입장이 분명했던 이나미네 스스무가 그를 축출하려는 도쿄로부터의 엄청난 선전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표차로 재선된 2014년 1월 나고시장 선거에서 그 극에 달했다. 나카이마 지사의 굴복은 있었지만, 여전히 기지 건설은 오키나와 현민들의 반대, 특히 나고시 시민과 시장의 반대를 완전 기각할 수 있어야만이 계속 진행 가능해질 것이다.
기지 반대 카누 활동가들 대 일본 해경선, 오오우라만.
사진: 메도루마슌, “해명海鳴의 섬으로부터”, 2014년 8월 15일.
건설사업이 계속 진행된다면, 그 작업은 오사카만의 간사이 국제공항 건설 규모와 맞먹을 것이고, 완공까지 십 년 이상이 걸릴 것이며, 일본이 지출해야할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귀한 자연보전지역에 되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치게 될 것이고(매우 섬세한 생명체인 듀공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것이고), 국가안보라는 미명 하에 역내에서 미래에 발발 가능한 모든 군사적 충돌에서 오키나와를 최전방 타겟으로서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2014년 8월 13일 오우라만에서의 기지건설작업 재개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은 아마 다음 열 가지 문제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오키나와 현민들은 아베 정부가 그 어느 정부보다도 더 강경하게 헤노코 프로젝트를 고집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젝트에 “안돼!”라고 말하는 데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히 단결해 있다. 오키나와 시민사회의 뜻을 거역한 채 해경을 동원하고 해상자위대를 파견함으로써, 아베는 오키나와를 마치 무력을 써서 굴복시켜야 마땅한 적과도 같이 취급하고 있다.
2) 헤노코 신기지 프로젝트는 독립적이지 않았고 비과학적이며 필시 관련 법안에 명시된 규정들을 위반했다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정한 환경영향평가에 근거해 있다.[xxii]
3) 일본의 국방을 위해 오키나와에 해군이 반드시 주둔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많은 일본인과 미국전문가들이 갑론을박 중이다. 해군은 또한 병력을 오키나와에서 괌, 하와이, 다윈 등으로 역내 전역에 넓게 배치시키는 작전의 핵심에 있다. 바로 전 방위대신 모리모토 사토시가 표현했듯이, 일본의 안보를 위해 일본 내의 다른 지역보다도 오키나와에 병력이 주둔해야 할 필요성은 군사적이거나 전략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xxiii]
4) 정부가 오오우라 만의 절반도 넘는 면적을 서둘러 접근 근지구역으로 지정하고 공사현장 주변에 계엄령에 버금가는 체제를 확립해놓은 것은 바로 다가오는 (11월 16일) 지사 선거에서 선출될 새 지사가 나카이마 지사가 2013년 12월에 내린 매립 허가를 철회할지도 모른다는 촉박감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총리는 오키나와 현민들의 민주적 요구를 좌절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5) 2010년부터의 오키나와의 기지 반대 운동은 새로운 국면, 바로 전 현 단위의 저항이라는 국면에들어섰다. 이전에 보수 진보 사이에 존재했던 분리선은 ‘건백서’ 원칙에 근거한 광범위한 합의를 통해 초월됐다: 현존하는 후텐마 기지를 폐쇄하고 현 내에 그 어떤 대체 기지도 건설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이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성공 가능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6) 적어도 2014년 11월 1일 오키나와는 기지 건설에 명확히 반대하거나 아니면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새 지사를 선출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결국 현 전체를 도쿄 중앙정부와의 새로운 대결국면으로 밀어넣게 될 것이다. 오키나와 언론은 갈수록 더 “식민적인”, “독재적인”, “잔인한”, “미개한” 같은 단어들을 아베 정권과 결부지어 사용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유례가 없는 저조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전의 지사들이 오키나와인들의 분노, 원한의 “마그마”라고 표현하곤 했던 것이 이제 언제라도 폭발 가능한 상황이 됐다.
7) 미 정부, 특히 해군이 아베 정부의 노선에 강한 지지를 표명한 상황이긴 하지만, 건설이 계속되면 해군과 오키나와 시민사회 간의 대결국면은 결국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의 전망이다. 이러한 대결은 오키나와에서 현내의 모든 기지를 폐쇄시키고자 하는 투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젖힐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미일 안보동맹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8) 오키나와의 항의를 못들은 척하고 오키나와를 지속적으로 차별해온 정부에 대한 분노는 오키나와인들이 일본 국가 내에서의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독립은 당장 선택할 입장은 아니지만, 현민들 사이에 하나의 합의가 생겨나 있다는 것은 식별 가능하다. 즉 근대 일본으로의 무력 합병(1879)[xxiv], 1945년 섬을 휩쓴 죽음과 파괴의 참화로 그 극에 달한 차별과 억압, 이후 27년간 버려졌다가 다시 (1972년 본토 복귀 이후부터) 오키나와인들의 감정은 철저히 무시된 채 영속적인 미군 특권 구조 아래 복속된 오키나와 자체가 가진 역사가 불만감, 차별, 착취에 대한 분노 등을 일으키고 있고 또한 공공을 가능한 모든 선택지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선택지 가운데 하나는 독립인데, 그 첫 단계는 류큐 민족의 이름으로 유엔에 구호 호소를 보내는 일 정도가 될 것이다.
9) 듀공을 비롯한 오오우라 만에 서식 중인 생명체들 또한 결과에 따라 발언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현재 환경에 대한 영향이 극미할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근거 없는 확신만 받아들여 멸종위기종인 듀공을 보호해야할 미국법에 따른 의무를 펜타곤이 위반한 것은 아닌지를 두고 재심 중이다.[xxv]
10)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지 오오우라만의 미래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민주주의(민주주의는 자결권을 비롯한 권리들을 부정해가면서 한 민족의 목소리를 마구 짓밟는 시스템을 갖고는 방어될 수도 구축될 수도 없기 때문에), 미일관계,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이다.
저자:
개번맥코맥Gavan McCormack은 호주국립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아시아-태평양 저널–재팬 포커스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의 편집자이다. 본 웹싸이트에 올라있는 것을 비롯해서 다수의 기사, 저서를 썼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는: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가 일본과 미국에 맞서다Resistant Islands: Okinawa Confronts Japan and the United States (사토코오카노리마츠Satoko Oka Norimatsu와의 공저, 국역본은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미국과 일본에 맞선 70년간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창비에서 나왔다), Rowman and Littlefield, 2012,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이 호리츠분카샤와창비사에서 2013년과 2014년에 나왔다], [전환점에 선 일본 – “팍스 아메리카나?”“팍스 아시아?”](존 W. 다우워John W. Dower와의 공저), NHK 부쿠슈, 2014년 (일본어판) 등이 있다.
2천 여명이 모인 가운데 “전全 오키나와”가 형성되다
“All-Okinawa Conference” Formed at Meeting of Over 2,000 People
우라시마 에츠코 Urashima Etsuko
지난 7월 27일, 기노완시의 시청 강당에서 “건백서를 이행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전 오키나와 회의”를 창립하기 위한 대중 집회가 열렸다. “헤노코 신기지 강제 건설 중단하라 – 오키나와는 단호히 단결한다”라고 쓰인 현수막 아래에는 오키나와 전역(심지어는 나고에서도 몇 대의 버스로 참석했다)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헤노코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첫 번째 수순으로 해저면에 대한 실측조사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는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방위청, 그리고 이들의 움직임을 막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 양측간에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그들은 일종의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1,200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강당에 총 2,075명이 모이는 바람에 강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로비 아니면 뜨거운 뙤악볕 아래 바깥 길바닥에 서 있어야 했다.
강당 안의 분위기는 격렬했다. 연단 위에는 현의회와나하시의회의자민당“신풍” 조직 단위의 다양한 집단에서 온 5명의 대표와 11명의 연합대표[xxvi]가 서 있었다. 연사마다 각자 다양한 관점에서 해결책을 발표했다.
식료품, 소매, 건설, 리조트 호텔 경영이 주종인 ‘카네히데’ 그룹 소속의 고야 모리마사는 “우치난추(*오키나와 방언. 오키나와인들은일본 본토인(야마톤츄)과구별지어 자신들을 ‘우치난추’라고 부름)의 존엄성과 평화로운 삶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데 ‘카네히데’ 회사도 함께 하고자”“기업부문에서 온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책에 대해 얘기했다.
‘카리유시’ 호텔 체인의 타이라 쵸케이는“관광은 평화산업이다. 오키나와의 상황은 엄청나게 변화했는데, 오키나와인들의 의견은 한 번도 제대로 고려되어본 적이 없다. 오키나와로부터 일본 전체를 바꾸자”고 당당히 밝혔다.
기지와 기타 여성에 대한 군사적 폭력에 반대한 인권 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타카자토 스즈요는“오키나와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이번 대회에서, 이번엔 정말로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중단시키자는 우리의 결의를 다시 한 번 굳게 다지자!”고 말했다.'
기지건설노조를 설립해 “우리를 해고하면, 기지 반환을 요구할 것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투쟁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토모요리신수케는“새 기지가 들어서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건백서’의 내용이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싸우자!”고 말했다.
카데나시에서 지난 20년 간(5선) 시장으로 재직했던 미야기 토쿠지츠는 “문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이다. ‘건백서’의 중요성을 진심과 열의를 다해 설명해줄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오키나와인들의 감정은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 부시장 요시모토 마사노리는“이 나라가 오키나와를 차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독립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당과 기타 정치단체에서 온 대표단들은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오키나와의 인권, 자치, 땅, 바다, 하늘을 되찾아오자.”
“’건백서’에는 오키나와인들의 감정이 총집약되어 표현되어 있다. 지금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 오키나와’의 총화이다.”
“오늘날 정부가 하는 일은 60년 전 총칼, 불도저를 앞세워 (미군 기지를 위해) 우리의 토지를 몰수해버린 일이나 하등 다를 바 없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당장 중단하라.”
“11월 총선에서 승리해서 도쿄는 물론이고 워싱턴도 뒤흔들어놓자!”
자민당 내 ‘신풍’회의 회원이자 만장일치로 나카이마 지사의 오오우라 만 매립 허가에 항의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나하시의 의원이기도 한 킨조토루는자민당 오키나와 현 자민당 지부의 작태가 심히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후텐마 기지는 반드시 “현외이전”시킬 것이라는 공약을 어기고 있으며, 공약을 지키려는 ‘신풍’회의 회원들은 당에서 축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청중의 폭소마저 자아냈다:
“우리를 쫓아낸 이유가 오나가 시장에게 현지사로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이 ‘전 오키나와’ 집회에 참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막아냅시다!”
이 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문은 아래와 같은 말로 끝난다:
“우리는 계속 군사기지에 의해 지배될 오키나와의 미래는 거부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희망으로 가득 찬 오키나와의 미래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고, 우리는 자유롭게 또 우리 스스로 진정한 오키나와 돌봄 사회를 건설할 모든 권리가 있다. 오키나와 현민 전체가 다시 한번 이 “전 오키나와” 기치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2013년 오키나와 ‘건백서’의 이행과 헤노코에서 강제로 진행되고 있는 신기지 건설작업의 중단을 강력 요구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현의회의나하시 대표 의원이자 대회의 서기인 타마키요시카즈는 말했다:
“지난 1995년 미 해군들이 오키나와의 한 어린 아이를 강간한 사건이 벌어졌던 때로부터 지금까지 지금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대중집회를 가져왔습니다만, 상황은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이 땅에서는 그 어떤 ‘항의시위’도 없었었다는 양 ‘오스프레’들이 우리의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있고, 헤노코에서는 신기지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공통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만 임시(특별) 위원회를 두어 투쟁해왔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문제를 항구적인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저마다 모두 참여하는 항시적인 현내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언급한 것은 “헤이세이 오키나와 봉기”에 버금갈 만하게 ‘건백서’에 포함된 오키나와인들의감정을 일본 본토에 알리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만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지금부터 해야할 일은, 그의 제안에 따르면:
“헤노코를 막아내기 위한 전국민적 의견을 형성하기, 매스미디어와 기타 대중소통을 통해 오키나와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유엔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이를 위해서는 특별위원회들을 만들어야 하고 초기 회원수 만 명 정도를 목표로 잡아야 한다.”
나고시의 시장 이나미네 스스무 역시 대회에 참석했고, 사회자의 소개를 받아 단상에 등장하자 큰 환영을 받았다. 나카이마 현지사의 대항마로서 총선에 출마할 것이 확실시 되는 나하시 시장 오나가 타케시는 아마 이번 집회가 사전 선거운동으로 오해되리라는 우려 때문에였는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전 행사 때 비디오 화상을 통해 그가 ‘오스프레 반대 전 오키나와’ 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이 나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와, 그에 대한 현민들의 기대가 아직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가오는 한 주일 동안 정부는 헤노코만에 해저 조사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쫒아내기 위한 부표들을 강제로라도 설치하려고 하고 있다. 상황은 극도로 긴급하다.
우라시마에츠코,
2014년 7월 28일
저자 약력:
우라시마 에츠코는 지난 20년 간 독립 저널리스트, 오키나와(특히 헤노코와 오오우라 만) 시민·주민 사회운동에 동참해온 활동가, 역사가, 기록자로 일해왔으며, 크게 호평 받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키나와 문제들에 관한 수 편의 저서(일어)를 펴냈으며, 일본 월간지 [밀착 (Impaction: 충돌이라는 뜻도 있다)]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해왔다. 지금의 이 에세이는 8월호에 실렸다. 이 싸이트에 번역된 우라시마의 이전의 글들을 보고자 한다면, 인덱스를 참고하라.
번역자:
개번맥코맥
[i]맥코맥과의 대담 중, 오타의 발언, 나하, 2014년 7월 3일.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웹싸이트의 에세이들을 보라. 또한 2012년까지의 “에세이”들과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개번맥코맥, 사토코오카노리마츠, 2012년, [저항하는 섬들 – 오키나와가 일본과 미국에 저항하다(Resistant Islands – Okinawa Confronts Japan and the United States)], Rowman and Littlefield 출판사.
[ii][류큐신보]의 한 사설은 나카이마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 결정은 미국,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를 군사기지로 변모시키려는 것을 승인한 것이다. 이는 현재 생존해 있는 오키나와인들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전쟁으로 숨진 모든 이에 대한, 또한 앞으로 올 미래 세대에 대한 극단의 모독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어마어마한 범죄행위이다..나카이마 지사는 물러나야 한다.” 개번맥코맥의“오키나와인들이 마시기에는 쓴 탕국– 나카이마 지사의 연말 배신(Bitter soup for Okinawans – The Governor’s year-end betrayal)”에서 인용,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 2014년 1월 6일.
[iv]4. 행정구역 상으로 나고시에 속하는 헤노코 항 같은 곳들에서의 건설작업까지 포함해서. 나고시는헤노코 기지 건설에 대한 허가를 강력 거부하고 있다. “헤노코 계약 비공개, 재입찰 즉시 중단하라,” [류큐신보], 2014년 8월 11일.
[vi]듀공을 보호하고자 하는 최근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요시카와히데키, “오키나와 헤노코, 오오우라 만에서의 긴급 상황: 캠프 슈왑에서 기지 건설이 시작되다”,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 2014년 7월 8일. 또한 ‘생물다양성센터’(Tucson Az), “변호사들이 멸종위기종인 오키나와 듀공의서직지를 파괴하게 될 미군기지 비행장 건설을 막으려고 노력하다”, 보도자료, 2014년 7월 31일. 또한오오우라 만에서 찍은 같은 저자의 유튜브 현장중계 클립을 참고하라, 2014년 7월 2일.
[viii]2007년 5월 11일 요코수카에서 오키나와로 배가 가서 해저 조사를 실시했고 조용히 철수했다.
(개번맥코맥, “아름다운 나라 일본에 오키나와를 적응시키기(Fitting Okinawa into Japan, the beautiful country)”, [Japan Focus], 2007년 5월 30일.)
[xi]개번맥코맥, “지사, 후텐마 해결 방향, 헤노코 이전 용인할 자세 강조”, [류큐신보], 2014년 8월 2일. [오키나와 타임즈]지는 나카이마의 입장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갔는지 자세히 보도함으로써 일관성이 전혀 없음을 밝혔다: “지사 발언의 변천, 선거를 통해 널리 검증을”, [오키나와 타임스] 사설, 2014년 8월 3일.
[xv]15. “매립 승인을 철회한다”에서 “승인 철회를 원하는 현민의 소리를 존중하여, 헤노코 신기지를 만들지 말자”까지. (“Onaga-shi e asushutsubayosei ‘hokaku’ koetarida’ keizaiyushi”, [오키나와 타임즈], 2014년 8월 7일.)
[xxi]“오키나와 현지사 선거 후보자에 대한 요청”, 헌법 9조 프로젝트 오키나와 (대표: 시로마에리코), 2014년 7월 11일. 더 자세히는 “오키나와 지사 후보는 헤노코 매립 승인을 철회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를 볼 것, [평화철학], 2014년 7월 12일.
[xxii][저항하는 섬들] 중에서 환경과 관련된 챕터를 볼 것, 또한 전 오키나와대학 총장이자 저명한 환경평가법 전문가인 사쿠라이쿠니토시가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에 올린 여러 문건을 볼 것.
[xxiii]사쿠라이쿠니토시, “법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매립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나고 주민과 오키나와인들이 지지한 시장의 의견”,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 2013년 11월 25일.
[xxiv]류큐 왕국의 소멸, 이어 오키나와는 1879년 일방적이고도 무력동원에 의한(“처벌”) 일본법에 의해 1850년대의 서방 강대국들과 조약들을 맺고 국제적으로 승인받은 국가가 됐는데, 이는 거의 확실히 국제법에 대한 위반이었다.(“조약들은 일본의 류큐 왕국 병합이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류큐신보] 사설, 2014년 7월 12일.)
[xxv]요시카와히데키, “헤노코와오오우라 만의 긴급한 상황: 캠프 슈왑에서 기지 건설이 시작되다”,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 2014년 7월 8일.
[xxvi]오시로 키요코, 오시로 노리오, 고야 모리마사, 타이라 초케이, 타카자토 스즈요, 토모요리 신스케, 나카자토 토리노부, 미야기 토쿠지츠, 유이 마사코, 요시모토 마사노리. 미야자토 세이겐은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