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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음식'만 찾는 세상
중앙일보ㅣ송정, 김경록 기자ㅣ2014.09.17
식품 불신 키우는 식품회사
無, Free, Zero ?
혹시 ‘착한 음식’에 속고 있는 건 아닐까
바른, 자연, 건강, 착한, 무(無), 프리(free), 제로(Zero)….
백화점이나 마트 식품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포장지엔 저마다 화학첨가물은 빼고 몸에 좋은 유기농 재료를 썼다고 자랑한다. 어디 이뿐인가. 한 종합편성채널은 아예 조미료를 넣지 않은 식당을 ‘착한 식당’이라고 칭찬하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끌기도 한다.
식품회사가 알아서 몸에 좋은 것만 골라서 주겠다는데, 또 TV가 착한 곳을 힘들게 찾아서 알려주겠다는데, 이 찜찜한 기분은 뭘까.
촬영협조=이마트
글루텐 프리(Gluten Free). 먹거리에 큰 관심이 없어도 한번쯤 들어봤을 단어다. 동네 베이커리에서부터 대형 식품회사까지 이 문구를 넣어 손님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아워홈은 쌀로 만든 면 광고에 ‘글루텐 프리! 아직도 몰라? 귓방망이 짝짝!’이라며 밀가루 먹는 남성의 뺨을 때리는 광고까지 내보냈다. 글루텐은 밀가루에 든 단백질 성분으로, 장내 염증과 소화장애·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글루텐 없는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글루텐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글루텐은 셀리악병이라고 불리는 일부 특이 체질에게만 설사와 장염증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밀가루가 주식인 미국에서조차 국민의 1% 정도만 이 병을 앓을 정도로 희귀병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왜 이리 민감할까.
먹거리는 시대불문 지역불문 늘 관심의 대상이다. 먹을 게 귀하면 귀한 대로 흔하면 흔한 대로 주목하는 요소만 달라질 뿐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식품은 소비재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이고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점잖은 말도 필요없다. 생존을 위해, 그리고 혀의 쾌락을 위해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에 그 누구라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신뢰 수준이 높지 않은 사회에서는 먹거리 안전만 확보되면 된다. 불과 몇 년 전 화학제품에 쓰이는 독성물질인 멜라민 섞인 분유를 먹고 영아가 사망했던 중국의 분유파동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엄마들은 그저 멜라민 없는 분유를 찾아 홍콩으로, 한국으로 분유 사재기에 나섰다.
한국은 사실 이런 단계를 이미 뛰어넘었다. 최근 벌꿀 아이스크림을 둘러싸고 파라핀 함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업체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해프닝 수준에서 잠잠해졌다. 최경태 동서식품 홍보팀장은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만큼 깐깐하게 관리하는 곳이 없다”며 “가공식품 안전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점점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커져만 간다. 201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소 조사 당시 국민의 80%가 식품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체 왜일까.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강재헌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음식이 과거엔 생존의 조건이었지만 이젠 건강을 챙기는 주요 수단이 되면서 식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저 안전하게 배만 채우면 되는 게 아니라 음식물 섭취를 통해 건강관리까지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최형민 세종사이버대학 외식창업프랜차이즈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을 땐 먹거리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지만 다들 잘 살게 된 요즘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선택할 여지가 많아졌다”며 “조금이라도 건강을 저해하는 식품이나, 그런 걸 취급하는 식당을 전보다 더 불신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엄마들은 전보다 더 깐깐하게 먹거리를 고른다. 심지어 과거엔 아무렇지도 않게 즐겨 먹었던 것조차 외면한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게 있다는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되는 순간 말이다. 대신 건강에 좋은 재료에 훨씬 더 많은 돈도 아무렇지 않게 지불한다.
전 교수는 “정보가 과거보다 훨씬 많은데 정확한 정보인지 가려내기는 더 어렵다”며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한번 받아들이면 그후 이를 뒤집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나와도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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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 무조건 나쁘다?
대표적인 게 사카린나트륨(이하 사카린)과 MSG(글루타민산나트륨) 같은 화학첨가물이다. 특히 MSG는 오랜 시간 논란이 지속돼 왔다. 사실 MSG는 대상 창업주인 임대홍 명예회장이 일본 오사카에서 직접 제조법을 배워와 56년 ‘미원’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가구 1 미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가호호 요리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맛이란 무엇인가』 『감칠맛과 MSG이야기』를 쓴 최낙언(소스전문회사 시아스 이사)씨는 “당시엔 미원이 김장철 최고 인기 선물이었다”며 “아예 미원 포장지에 고무장갑을 사은품으로 붙여 판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원의 인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MSG 특유의 감칠맛과 경제성 때문이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MSG 1g의 감칠맛을 내려면 쇠고기는 2.6㎏, 닭고기는 1.9㎏이 필요하다. 다시마는 50g이 있어야 한다. 가난했던 시절 값싼 조미료 덕분에 누구나 감칠맛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구택 대상 식품사업총괄 팀장은 “한국을 비롯해 어느 나라든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을수록 조미료 매출이 높다”며 “조미료 하나로 누구나 손쉽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가정용 판매가 확 꺾였다. 가정용 MSG 판매량은 매년 10% 이상 줄고 있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MSG는 90% 이상이 가정용이 아닌 식당용으로 판매된다”고 말했다. 사실 MSG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미 68년에 미국에서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계 의사 로버트 호만 곽이 중국 음식을 먹은 후 두통이나 얼굴 화끈거림 같은 증상을 보이는 걸 중국요리 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이라고 명명한 게 발단이 됐다. 그는 이 증상의 원인 중 하나로 MSG를 의심했다. 그러나 미 식품의약국(FDA)은 80년 유해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일본·호주·EU 등도 동물 실험 등을 통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도 2010년 식약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이 MSG는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이선균 식약처 첨가물기준과 연구사는 “식약처는 엄격한 동물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사하고 사용 기준을 정한다”며 “MSG 안전성에 대해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MSG는 불안하다”는 사람이 더 많다.
불안 키우는 공포 마케팅
소비자 불안을 키운 식품 광고들
① 1993년 럭키(현 LG생활건강) 맛그린 광고. MSG가 없다는 걸 강조한 이 광고 이후 MSG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
② 국내 라면 최초로 MSG를 넣지 않은 빙그레 뉴면 광고. 포장지에 MSG 무첨가 문구를 강조했다.
③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광고. 카제인나트륨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이 광고 이후 커피믹스 시장 전체가 축소됐다.
④ 아워홈 쌀 파스타 광고. 밀가루에 들어있는 글루텐이 없다는 걸 강조하며 밀가루 먹는 상대 뺨 때리는 모습을 넣어 논란이 됐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결론이 난 MSG 논란이 왜 한국에선 10여 년 뒤늦게 빚어진 걸까. 이 배경엔 기업의 마케팅이 있다.
93년 12월 럭키(현 LG생활건강)는 MSG 대신 핵산을 넣어 만든 조미료인 ‘맛그린’을 내놓으며 도발적인 광고를 했다. 당시 인기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맡았던 배우 문성근을 출연시켜 ‘맛그린에는 자연 상태의 아미노산은 함유되어 있으나, 화학적 합성품인 MSG는 넣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낙언씨는 “이 광고를 계기로 MSG가 몸에 나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됐다”며 “재밌는 건 천연에 가까운 식품이라던 ‘맛그린’ 역시 MSG만 없을 뿐 다른 첨가물을 사용한 것이라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상 김 팀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SG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강해 안전하다는 주장은커녕 MSG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다”며 “2010년 식약처의 안전성 인증 후 최소한 안전성 여부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렸던 사례는 또 있다. 2010년 카제인나트륨 논란이다. 뒤늦게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든 남양유업은 당시 시장점유율 1위이던 동서식품을 겨냥해 ‘자사 커피믹스엔 카제인나트륨 대신 우유를 넣었다’는 광고로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아니지만 소비자에게 카제인나트륨이 든 커피믹스는 뭔가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남양유업은 제품 출시 1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20%나 차지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남양유업으로선 대단히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이었지만 전체 시장엔 나쁜 영향을 끼쳤다.
매년 성장하던 커피믹스 시장은 남양유업이 뛰어든 2010년을 기점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동서식품 최 팀장은 “카제인은 우유에 함유된 전체 단백질의 80%를 차지하는 성분이고 카제인나트륨은 물에 잘 안 녹는 카제인을 잘 녹게 만드는 식품첨가물로, 외국에서는 사용 방법을 논의할 뿐 안전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남양유업 광고비의 두 배 이상을 써야 소비자에게 카제인나트륨의 무해성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당시 대응하지 않았지만 만약 광고를 집행했다면 제품 가격에 반영돼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낙언씨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그는 “만약 논란이 빚어진 첨가물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소비자는 이제 안전해졌다고 생각하기보다 역시 나쁜 것이었다고 더 강하게 인식한다”며 “또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는 그런 성분을 쓰겠거니, 라고 추측하며 지레 불신한다”고 말했다. 해명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더러 효과도 크지 않다는 얘기다.
플리시보 효과와 정반대인 일종의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나 믿음이 약의 실제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다. 전 교수는 “기업들이 뭔가를 뺐다고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실제로 그게 그다지 몸에 나쁘지 않는 것이라도 소비자 반응이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점에 있어서는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잠잠했던 MSG 논란을 다시 일으킨 것도 한 종편채널의 외식업 관련 고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번 ‘착한 식당’을 찾아 소개하는데, 선정 기준 중 하나가 MSG 사용 여부였다. 이미 정부 기관이 안전성을 검증한 식재료를 쓰지 않았다고 ‘착한 식당’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며, 시청자를 호도한 셈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영돈 PD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SG는 사용량 제한이 있는 유해물질은 아니다”면서도 “그렇다고 건강에 영향을 아예 안 끼친다고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조미료를 치면 재료가 신선하든 상하기 직전이든 맛이 다 비슷비슷해진다”는 이유를 들었다.
‘착하다’는 허상
최근 ‘착한’ 음식의 조건은 MSG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빼기’, 다시 말해 무첨가다. 2006년 식약처는 제품 포장 전면에 원료 당류와 트랜스지방·콜레스테롤 함량까지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때부터 각 식품업체의 고민이 시작됐다. 소비자가 꺼리는 화학첨가물을 넣고 이를 포장에 그대로 표기하느니 차라리 뺄지 여부를 놓고 저울질을 했다는 얘기다. 사실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는 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하다. 장현아 CJ제일제당 비비고팀 부장은 “10여 년 전부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공 과정과 넣는 재료를 줄여 원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게 유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무첨가 식품에 대한 선호는 시장 판도를 바꿨다. CJ제일제당은 2010년 기존에 많이 쓰던 화학첨가물 다섯 가지를 뺀 ‘건강한햄’을 내놨다. 다른 식품업체도 앞다퉈 무첨가를 내세운 프리미엄 햄을 선보였고 1년 만에 프리미엄 햄 시장이 40배 이상 성장했다. 반면 일반 햄 시장 규모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조금이라도 덜 먹으면 좋은 화학첨가물을 뺀 프리미엄 제품의 등장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준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무분별한 무첨가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식약처가 지난해 소비자 1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가장 많은 34.5%가 식품첨가물을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는 세균·바이러스 등에 의한 식중독을 꼽은 미국·일본과 대조적이다. 또 한국 소비자는 가장 피하고 싶은 식품첨가물로는 이산화황(20.8%)과 아질산나트륨(18.1%), 식용색소류(16.1%), L-글루타민산나트륨(15.7%)을 꼽았는데 2009~2010년 우리 국민의 이산화황과 아질산나트륨의 1일 섭취량은 허용량 대비 각각 5.2%, 11.5%에 불과했다.
최근엔 싼 음식에도 ‘착하다’는 타이틀을 달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당대 유행하는 먹거리는 사회상을 담는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는 한 줄 1000원짜리 김밥과 한 판 9900원짜리 피자가 나왔다. 싼 음식은 주머니 얇은 서민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음식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도 한다. 싼 소비자가격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싼 재료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피자는 모조치즈라 불리는 원치즈함량이 낮은 치즈를 사용해 원가를 줄이는 식이다.
그런데도 파격적으로 싼 식품이나 식당을 ‘착하다’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싼 재료 쓰는 건 무조건 거부하면서 가격만 낮추라는 모순되는 요구를 하는 셈이다. 전미영 교수는 “착하다는 표현이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며 “먹거리에선 선악 개념이 아니라 내 몸에 좋은 게 좋은 음식 아니냐”고 했다. 최형민 교수도 “꼭 ‘착하다’는 표현을 쓰려면 어떤 재료를 얼마에 파느냐보다는 정도(正道)로 만든 음식에 붙이는 게 맞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