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마25:31-46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영적인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원합니다.
본문에 어떤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느냐?
첫째,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35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하셨지요? 여기 “내가”라고 한 이분은 물론 주님을 가르치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그러면 이웃 형제들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육신의 배고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모스 8: 11절의 말씀을 보면 육적 주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주림을 말합니다.
성경은 육적 주림을 통해 영적 주림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4:34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라고 하신 이 말씀은 “너희 형제 중에 영혼이 주린 상태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을 들려주어, 기갈 상태에 있는 그 형제의 영혼을 살려내는 그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둘째, 형제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준 사람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 역시 육신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마실 물을 준 것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모스 8:11절에 “물이 없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영혼의 목마름을 말하는 것입니다.(요7:37-39)
셋째. 형제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한 사람입니다.
여기 나그네 역시 육신적인 나그네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벧전1:17절에 이 나그네는 신령한 영적 나그네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땅위에 살고 있는 모든 인생들은 영적으로 모두 타향살이하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언젠가는 다 떠나야 하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타향인 이 세상에서 유리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인도하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오른편에 세우시고 축복해 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넷째.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준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옷 역시 육신의 옷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22:12절의 말씀을 보면 천국 혼인잔치 집에는 이 세상의 육신의 옷을 입고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계19:7-8절에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 때 사랑과 덕과 인애의 옳은 행실로 저희들에게 본을 보여주어야 함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 병들었을 때 돌아본 사람이 아버지께로부터 복 받을 사람입니다.
36절에 “병들었을 때 돌아본 사람” 이 병 역시 육신의 병든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9:12-13절에 이 말씀을 볼 때 병중의 큰 병, 제일 무서운 병은 지옥 가는 죄의 병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죄 병에 걸려 지옥 가게 된 불쌍한 영육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위에 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는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본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옥 역시 육신을 가두는 감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1:6절 말씀을 보면 주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타락한 천사들을 “흑암”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옥의 종류는 두 가지입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는 육신을 가두는 저 교도소와 같은 유형의 감옥이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의 형제 중에 육신은 건강하여 자유로이 대로를 활보하고 산다 할지라도, 영혼들을 가두어 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옥이 있습니다. 어떤 감옥입니까? 물욕이라는 감옥, 정욕이라는 감옥, 권세라는 감옥, 명예욕이라는 감옥, 방탕, 허영, 추악, 교만의 감옥에 갇혀서 꼼짝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리로 저희들을 온갖 더러운 무형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서 충성되게 열심히 살아, 영육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비해 놓은 천국의 놀라운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원천의 복을 다 받아 누리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