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에 대해 가볍게 알고 싶은 몇 가지들
이제 독감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그 유별났던 사스의 동시 유행이 예상되는 만큼 독감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전보다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잘 아시다시피 독감은 인류 역사와 같이 해 왔으며 매년 어김없이 찾아 왔고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온누리 유행 (pandemic)을 일으켜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였다. 독감 바이러스 자체가 불안정한 RNA 이기 때문에 수시로 돌연변이를 일으킴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2, 3년마다 새 장식으로 치장한 독감 바이러스를 만난다. 어쩌다가 우당탕탕 완전히 새 옷으로 환골탈태한 해에는 우리 인간들의 수비진에 이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관계로 온누리 유행이 오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특히 20세기의 온누리 유행은 4번이 있었는데, 1918년, 1957년, 1968년, 그리고 1977년이다. 그 중에서 피해의 정도로 보면 1918~1919년 스페인 독감이 단연 지존이다. 총 5억명이 이환되고 4천만명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다!)이 죽었으니 말이다. 물론 50년대 이후와 비교해서 20세기 초의 열악했던 의학 수준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이러한 스페인 독감의 참상이 100% 재현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감 바이러스의 RNA 는 우리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으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날지, 그리고 어떤 참상을 빚어낼 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올해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사스가 창궐하지 않고, 독감도 국지적으로만 나타났다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항상 나쁜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예지안이 없는 우리들이 어떤 방책으로 대비를 해야 할까?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과거를 되 짚어 보는 것이 가치가 높을 것이다. 매사가 그렇듯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전례(前例)라는 훌륭한 reference 를 복습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최선인 법이다. 그러한 면에서 4 차례의 온누리 유행 선례들 중에서 가장 극악무도했던 스페인 독감 만큼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이 있을까? 이 글은 바로 그 스페인 독감과 관련된 몇 가지를 가볍게 다뤄보고자 한다.
기미년 스페인 아가씨 스페인 독감의 유행시기는 1918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기미년 1919년까지 걸쳐서 창궐한 것이다. 1919년 하면 우리 한민족은 예외 없이 삼일 독립만세를 연상하겠지만 아는 게 병인지라 본인은 스페인 독감도 연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음이다. 그 당시 스페인 독감에 대한 호칭은 ‘Red Lady(붉은 아가씨)’ 혹은 ‘Spanish Lady(스페인아가씨)’ 라고 했다 한다. 아마도 좀 살살 해 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태풍에게 여성 이름을 붙이는 심리와 동일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온 게 아니다. 정말 스페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었는데, 스페인만 유유자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무슨 이벤트가 있을 때 언론 보도에 제지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스페인 국왕이 독감을 앓게 되었고, 스페인 언론들이 이렇게 좋은 왕실 근황 뉴스를 놓칠 리가 없었다. 대대적인 보도와 더불어 스페인에서 독감 유행이 본격적으로 터졌고, 이를 계기로 공식적인 명칭에 ‘스페인’이 붙여진 것이다. (괜히 나서서 첫 발표를 해 가지구선…) 그러면 어디서 왔는가? 확실한 것은 스페인은 결코 첫 기원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첫 기원지로 유력한 곳은 엉뚱하게도 미합중국이다. 당시 유럽의 전쟁에 파병할 군사 훈련 캠프가 미국에 잔뜩 부설되어 있었고, 1918년 3월에 디트로이트, 남부캐롤라이나 등에서 첫 유행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이들 군인들이 이동해서 도착한 프랑스에서 4월에 유행이 또 생기고, 지속적으로 유행이 산발 발생하다가 여름을 계기로 전역에 퍼진 것이다. 또 다른 설은 1916~1917 사이에 유럽 지역에서 독감이 병영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발생을 하고 있었다는 데에 근거해서 이런 식의 산발 발생들이 축적되어 어느 한 순간 (1918년) ‘와악~~~!’ 하고 폭발했다는 설이다. 이 설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 아무리 전염력이 무지하게 센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차례차례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한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 패션으로 세계 전역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이미 각 지역별로 축적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는 추정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도 새에서 왔을까? 스페인 독감 이후에 3 차례에 걸쳐 발생한 온누리 독감은 근원지가 조류로 밝혀졌다. 그러나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돼지로 결론이 지어졌다. (이 바이러스는 돼지 속에서 암약하다가 이 후 1976년에 잠시 반짝하고 나타난다.) 어떻게 알았냐고?
타임머신으로 오랜 恨이 풀리다.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가까운 미래에 타임머신의 제작은 가능할 것인가라는 논란이 꽤 활발했는데, 일단은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우리 인류는 이미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 다름아닌 분자 생물학적 기법이라는 것이다. 1918년 당시에야 적의 정체와 영문을 모르고 당했었지만 60여년이 지나 일단의 학자들이 미군 기관에 포르말린 처리되어 보관되어 있던 그 당시 사망자의 부검 조직들을 꺼내어 유전자 분석을 시도하였다. 총 80 명의 조직들을 꺼내서 검토하고 28명이 추려진 후 결국은 14명의 조직들이 분석 대상이 되었다. (대다수가 폐렴으로 죽어서, 주로 폐 조직이었다) 조직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그 당시 바이러스는 조류형이라기 보다는 인간/돼지 형에 합당함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밝혀낸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형은 다음과 같다: H1N1 A/South Carolina/1/18 A/New York/1/18 A/Brevig Mission/1/18
왜 주로 영계들만 괴롭혔을까? 스페인 독감이 여러 독감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스타인 이유는 일단은 너무나 많이 살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난히 젊은 사람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상식적으로 노인들이 많이 희생되면 되었지 젊은이들이 더 많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너무나 괴이한 현상이 아닌가? 그 당시 독감 바이러스가 워낙 세서 나이를 불문하고 많이 살상을 했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만약 그런 설명이 맞다면 나이별 사망률을 가지고 꺾은 선 그래프를 그리면 선이 꺾이지 않고 한 일자로 뻗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그래프 모습은 W 형이다. 또 최근에 그 W 형의 그래프에 대해 재차 정밀 분석한 논문에 의하면 1912년부터 1917년까지의 연령별 독감 사망률을 기준으로 1918년 당시의 연령별 독감 사망률을 뺀 수치인 과잉 사망률을 따져보면 오히려 노인층에서 1918년의 사망률이 더 떨어졌다는 보고도 나온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으로 봤을 때 노인들 조차도 1918, 1919년에 젊은이들 보다 덜 죽었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자체의 병독성이 강해서 그랬다는 식의 설명은 완전한 넌센스이다. 이에 대한 가설은 몇 가지가 있는데 : 첫째, 유달리 군인들 집단에서 유행이 많았다는 점에 이유를 두는 설이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 참전하지 않은 젊은이들도 많이 죽었다는 점에서 이 설은 기각! 둘째, 워낙 젊은 사람들이라 노인네들에 비해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이 가열차서 그랬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또한 타당하지 않은 것이, 만약 그런 가설이 맞다면 면역 능력이 하루 아침에 저하하는 것이 아니고 4, 50대까지 걸쳐서 서서히 약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령별 사망률을 볼 때 15~35세 사이에서만 최고치를 보이기 보다는 15~50대에 걸쳐서 완만한 커브를 그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부검 소견을 보면 극심한 염증 소견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현재로선 가장 타당해 보이는 가설은 노인층이 이미 면역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이다. 실제로 1850년대에 H1에 의한 온누리 독감이 크게 한 번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살아남은 이들이 이에 대한 면역능을 가지고 1918년경에 노인으로서 같은 유전형의 바이러스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얘기한 과잉사망률에서 노인층의 사망률이 오히려 마이너스였다는 보고와도 일맥상통하는 가설이다. (사실은 이 설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유럽만 당했나? ‘온누리’라는 호칭에 걸맞게 스페인 독감은 다른 대륙도 예외없이 휩쓸었다. 아시아 뿐 아니라 아프리카도 무사할 수 없었다. 요즈음 그 당시의 피해 상황에 대한 뒤늦은 보고들이 학술지에 속속 게재되고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나이지리아 등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이란이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불과 6개월의 기간동안 1,800만명 인구 중에서 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은 아마도 그 당시에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일 것으로 인정된다. 이란의 독감 양상은 좀 특이한 것이, 주로 노인층이 많이 사망했다는 점인데 이는 사전 면역이 안 되어 있던 것보다는 그 당시 이란을 강타했던 기근, 만성 질병, 아편 중독 등이 주 요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당시 조선은…?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어땠냐는 것이다. 1918년은 안 그랬다 쳐도 1919년에는 독립만세 운동을 하는 와중에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운집하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기에 만만치 않게 독감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공식적인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정말 궁금한데…. 다만 우리나라 감염학계의 원로이신 전종휘 교수님의 회고록에서 잠깐 언급이 되어 있는데, 그 당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이는 구전(口傳)에 의한 것이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훌륭한 거울, 스페인 독감. 이상으로 겉핥기식으로나마 스페인 독감과 관련해서 좀 가볍게 다루어 보았다.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는 생물과 같아서, 비단 이번 해가 아니더라도 그 어느 해라도 온누리 독감은 다시 올 수 있는 것이기에 스페인 독감은 이에 대비한 우리들을 위한 훌륭한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추가 : 훌륭한 거울, 스페인 독감.
1918~1919 당시의 조선에서의 스페인 독감 양상은 어땠는지 매우 궁금하여서 여러 곳을 수소문 하다가 드디어 1918년 조선에서의 스페인 독감 보고 논문 (JAMA 1919년 4월 vol 72 No 14, 981~983)을 구했습니다. 비록 일제시대였지만 한국이 유수의 국제 의학 학술지에 언급된 것으로는 아마도 사상 처음이 아닐까 하는 역사적인 논문입니다. 소장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해서 올립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가장 궁금해 했던 사망률은 정확히 집계가 안 되었다고 나오네요. 그냥 '많~~이' 사망했다는 언급만 있습니다. 다만, 이환율은 최대한 잡아 전 인구의 반이었다고 하니 거의 참상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TIF 포맷으로 스캔한 그림 파일입니다. (출력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홀수 페이지가 화질이 안 좋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화질이 좋은 짝수 페이지만 취하시면 되겠습니다) |
첫댓글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독감 별명이 스페인 레이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