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㉒
승천 기념교회(예루살렘)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누가복음 24:50-51) 감람산 봉우리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랍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그 바위에 나는 단 1%의 동정심마저 보일 수가 없다.
예루살렘 동쪽에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감람산은 마치 예루살렘 동편을 가로막고 있는 병풍과 같다. 감람산 가장 북쪽 봉우리(스코프스산)에 지금은 히브리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산(모리아산)과 마주 보고 있는 곳이 아랍 사람들이 “엣-투루”(et-Tur)라고 부르는 감람산의 세 번째 봉우리다. 그리고 가장 남쪽에는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네 번째 봉우리가 다윗성과 마주 보며 위치해 있다. 대부분 성경의 사건들은 셋째와 넷째 봉우리와 관련되어 있다. 가장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는 솔로몬왕이 이방신을 섬기도록 산당을 세웠던 곳으로(왕상11:7), 성경에서 ‘멸망산’이라고 불렸던 곳이다(왕하23:13).
예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봉우리는 성전산을 마주 보고 있는 세 번째 봉우리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사역을 하기 위해서 감람산 동쪽 기슭에 있는 베다니에 숙소를 마련하셨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오셨으니 성 내에서 방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성 가까이에 있는 베다니 마을에 머물렀다.
예수님은 엣-투르 마을이 있는 세 번째 봉우리를 넘어,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성전으로 출근하시고, 저녁에는 다시 감람산을 넘어 베다니 마을로 퇴근하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출퇴근길이었던 셈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는 이 세 번째 봉우리에 남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감람산’하면 이 세 번째 봉우리를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이런 연유로 비잔틴 시대에 감람산 봉우리에는 무려 25개의 기념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 가운데 몇 개의 기념교회만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뿐이다.
감람산의 기념교회 방문은 대부분 아침에 이루어진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성전산의 황금 돔에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을 이때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이면 이곳 기념교회들은 단체 순례 객들로 만원을 이룬다.
평온하고 한적한 시간을 원한다면, 오후에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혼자 성경책에 물통 하나 옆에 차고, 감람산을 올랐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념교회 한적한 구석에서 예루살렘 시가지를 마주 대하고 앉아 성경을 묵상하는 맛은 참으로 달콤했다. 벌써 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맛만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성지답사 때는 감람산에 있는 기념교회들은 반드시 방문하게 된다. 봉우리 가장 높은 곳에 예수님 승천을 기념하는 장소가 있다. 처음 이 장소에 기념교회가 세워진 것은 주후 384~392년 로마의 귀부인 포이메니아에 의해서였다. 이 교회는 승천을 기념하기 위해 지붕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교회는 파괴되었다가 670년 또다시 조그마한 교회가 세워졌으나 1009년 술탄 엘 하킴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폐허가 된 자리에 1152년 십자군이 다시 조그만 교회를 세웠지만 결국은 1198년 살라딘이 이 교회를 빼앗아 아랍인에게 주어 지붕을 덮고 회교 사원으로 개조해 버렸다. 그 후 지금까지 아랍인이 이 기념 장소를 소유하고 있으나, 현재는 이곳을 순례하고 참배하는 회교 사원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다만 상업적으로 이용할 뿐이다.
문을 통과하면 정 중앙에 조그만 건물이 하나 보인다. 건물의 하부구조는 십자군이, 그리고 지붕은 아랍 사람들이 덮은 것이다. 건물 내부의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있는데 바위가 일부 드러나 있다. 바위에 움푹 파인 곳이 있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만들어진 발자국이란다. 필자에겐 이 바위는 ‘미운 바위’다.
승천기념교회 안에 있는 바위.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만들어진 발자국이 있다며 순례객을 미혹한다.
이유는 이렇다. 발자국에 관한 이야기는 비잔틴 시대 순례객들의 기록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때는 흙에 선명한 발자국들이 많아서 순례객들이 기념으로 가져갔을 정도였단다. 그런데 어떻게 흙에 있던 발자국이 바위로 옮겨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묘한 일이 십자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순례객들의 마음을 잡아보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바위가 아랍 주인에게 더 없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해마다 수백만의 순례객들은 입장료까지 꼬박꼬박 지불하며 이런 것들에 현혹된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라도 보고, 만져야만, 믿음이 가고, 직성이 풀리는 우리들의 얄팍한 신앙심 아니겠는가?
사실 이 감람산 봉우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너무나 중요한 장소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발자취가 스며있는 곳이 여기 ‘감람산 봉우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마지막 승천하신 곳이 이 산봉우리라는 사실도 확실하다. 누가는 주님의 승천 장소를 베다니 근처(베다니는 감람산 동편 산기슭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눅24:50-51). 또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행1:12). 그러니 기록된 정황을 살펴보면, 감람산 봉우리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랍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그 바위에 나는 단 1%의 동정심마저 보일 수가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부터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높은 탑과 함께 세워진 러시아 정교회 소속의 승천 기념교회가 훨씬 누가복음의 기록과 일치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찌 된 영문인지 이곳에는 항상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외국에서 감람산까지 왔는데 이곳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마치 무슨 중요한 것을 못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데는 그놈의 바위가 톡톡히 한몫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곳에 찾아간다. 하지만 우리를 미혹하는 바위보다는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하신 주님의 마지막 당부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나 주님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었던 사명보다는 그 못생긴 바위가 우리의 마음과 눈과 생각을 온통 빼앗아 가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