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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르쿤 계곡은 설산 속에 초원과 호수가 있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늦가을 양들이 마른 풀을 뜯고 있다.
이럴 때는 지도를 펼친다. 점과 선으로 표시된 기호들은 저 빙하 건너가, 또 높은 산 저편의 미지가 무한한 상상 속의 엘도라도로 다가온다. 다시 가슴은 벅차오르고 마음은 이미 높은 산맥을 넘어간다. 지도는 숨겨진 세계로 이끄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칠린지 빙하의 끝머리가 카람바르 계곡을 밀치고 들어와 있다. 자연히 세차게 흐르던 강물은 방향을 바꾸어 반대쪽의 산사면을 깎아 바위 벼랑을 만들었다. 목동들이 몇 개의 통나무로 발판을 걸쳐놓았다. 빙하를 끼고 있는 계곡은 녹고 어는 시기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다. 물은 이리저리 길을 찾고 그 옆으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길도 매년 변한다.
속테르라봇에서 빵 만들어 차티보이 빙하 답사
▲ 힌두쿠시와 힌두라즈 양 산맥에서 가장 긴 32km의 치안타르 빙하.
서쪽의 치안타르봉(Koh-i-Chiantar·6,416m)에서 흘러내린 무명의 빙하 말단까지 완만하게 고도를 높인다. 이곳에서부터 카람바르 계곡은 서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어 속테르라봇까지 모래와 자갈의 평원이 펼쳐진다. 아마도 예전에는 빙하 호수의 바닥이었던 듯하다. 계곡 양쪽으로 5,000~6,000m급 봉우리들로 연결된 두 개의 산줄기가 서쪽으로 달리고 있다.
온도계 붉은 색 눈금이 0℃를 가리킨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바람은 앞에서 내리쳐와 몸을 밀친다. 얼굴이 아리다. 동상 걱정보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숨을 쉬기조차 어렵다. 거리감을 상실한 희뿌연 평원은 망망대해요, 인내의 연속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이윽고 속테르라봇이 보인다. 듬성듬성 자작나무가 서 있는 완만한 사면에 움막이 있다. 행여 기대한 양떼도 보이지 않고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질러 보았다. 바람소리만 윙윙거리고 외양간에 죽어 자빠진 말 한 마리가 돌덩어리처럼 얼어 있다. 여기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 라시카르가흐 마을 앞 초원지대.
듬성듬성 쌓은 돌담과 그 위에 나뭇가지로 지붕을 얹은 대여섯 평의 움막 안은 모닥불을 피워도 온기를 품지 못한다. 오히려 지붕 위에 쌓인 눈이 녹아 뚝뚝 떨어진다. 젖은 신발을 벗어 말린다. 노인은 가죽으로 된 외피장화와 양털 천으로 만든 내피의 이중 신발을 신고 있다. 이곳 날씨에 가장 적합한 신이다. 반면 아들들은 양말도 없이 고무장화만 신고 있다. 분주히 저녁밥을 준비하면서 가끔 시린 맨발을 불꽃 속에 집어넣는다. 감자를 잘라 넣은 밥을 버터에 볶은 그들의 식사는 푸짐하고 맛있다.
땔감이 많은 이곳에서 앞으로 먹을 빵을 구웠다. 이 곳처럼 양치기집들이 있는 곳은 아궁이를 사용하지만, 없을 경우에는 주위에서 사각형의 넓적한 돌판 세 개를 주워 직접 만든다. 이 때 바람이 아궁이 입구로 잘 들도록 방향을 맞춘다. 땔감은 마른나무가 가장 좋지만 없는 곳에서는 동물의 마른 똥을 이용한다. 이 똥들을 주울 때는 무슨 보물을 얻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 야크 엉덩이에서 떨어지면서 쟁반 크기로 넓게 착 펴진 똥이 가장 좋다. 둥글고 단단한 쇠똥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불피우기는 상당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실력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 고갯마루에 다다를 즈음 나타나는 카람바르 호수. 길이 약 3km의 호수 두 개가 연이어 있다.
빵은 돌과 아궁이 안쪽의 열기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다. 바깥쪽 면이 갈색으로 변할 때쯤에 떼어서 잔불 속에 묻는다. 속이 덜 익은 빵은 다음날 설사를 일으킨다. 이것에 대비하는 좋은 방법은 주먹만한 돌을 미리 달구어 반죽 속에 넣고 공처럼 만들어 굽는 것이다. 자작 껍질에 싸서 보관하면 덜 딱딱해진다.
틸만과 같은 상황 겪으며 카람바르 고개 올라
▲ 치안타르 빙하 내원에는 6,000m급 미등봉이 다수 남아 있다. 그 중 하나인 6,117m봉.
건너편에 코라보르트(Khora Bort·4,630m)로 오르는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다. 고갯마루는 파미르로 가는 길이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다. 차티보이 빙하의 모레인 언덕에 올라섰다. 빙하는 남쪽에서 가파르게 흘러 계곡 북쪽의 바위 절벽에 부딪혀 막혔다. 상류의 강물은 이 빙하 밑으로 흐른다.
선글라스를 낀 가이드가 나무 지팡이를 들고 빙하로 들어간다. 첫 부분은 눈 밑에 잡석이 깔려 있어 발 딛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말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노인은 할 수 없이 걷는다. 한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갈라진 틈새가 넓은 크레바스 지대가 나타났다. 위험을 느낀 가이드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1948년의 틸만(H. W. Tilman)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당대 최고의 탐험가이자 히말라야 등반가였던 그는 중국 신강-위구르자치구의 카시가르에서 출발해 칠린지 고개를 넘어 10월 중순 이곳에 도착했다. 차푸르산 계곡에서 고용한 포터와 빙하 위에서 밤을 세웠다. 다음날도 눈은 계속 내려 무릎까지 차고 바람은 세차게 몰아쳤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었던 그도 포터들이 “We shall all die”라며 주저앉아 우는 데에는 별도리 없었다. 틸만은 결국 되돌아서야만했다.
빙하를 벗어나 카람바르 계곡을 내려가 좀더 나은 루트를 찾아갔다. 저들이 되돌아가겠다고 결정하기 전에 얼른 내가 앞장을 선다. 눈의 굴곡을 관찰해 틈새가 있을 만한 곳은 멀리 돌아 안전하게 길을 찾는다. 표면이 드러나는 여름에는 쉽게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자칫 얼음 구멍에 빠지면 끝이다. 다지고 헤치기를 한 시간, 죽음의 지대에서 벗어났다. 서로 웃으며 축하의 악수를 나누고 그들에게 감사의 몸짓을 보였다. 그들도 고마워한다. 혼자서 시도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이드는 노인으로부터 꽤 많은 돈을 받아서 돌아갔다.
신을 벗고 얼음 강물을 건넜다. 강물을 건널 때 신을 벗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젖은 신발로 눈길을 걷는 것도 다른 위험을 안고 있다. 카람바르 계곡 상류는 U자 모양으로 부드러워지고 완만한 눈 평원이 펼쳐진다. 독방에 갇힌 죄수의 심정이 이럴까? 단 며칠을 보지 못했는데 너무나 햇빛이 그립다. 한 줄기만이 비쳐 준다면 그 대가로 며칠을 굶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싶었다. 무너진 돌담이 있는 곳에서 쉬었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빛기둥이 내려왔다. 정확히 그 둘레에만-. 배낭에 기대어 눈을 감고 따스함을 만끽한다. 단 30분 동안이었고 또 눈이 내린다.
슈인즈(Shuyinj)에 돌과 흙으로 잘 지어진 집들이 많다. 봄과 여름철에는 수많은 양떼들이 마을에서 올라오는 천연 방목지다.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렀다. 노인은 추위와 고도 때문인지 매우 힘들어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약을 주었다. 노인은 담배를 달라고 한다. 충분했던 담배는 나누어 피는 바람에 몇 개피밖에 남지 않았다. 없다는 내 말에 노인은 믿지 않았다.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노인은 내 배낭을 뒤졌고 서로간에 큰 오해를 일으켰다. 언어 소통 문제가 원인이기도 했다.
2000년 10월12일, 카람바르 고개를 넘는 날이다. 날씨도 맑았다. 딱딱하게 언 신발을 신고 바지자락를 신발 목에 두르고 단단히 묶었다. 눈은 점점 깊어진다. 당나귀에 짐을 싣고 빈 몸으로 걷는 그들을 쫓아가기도 벅차다. 슈인즈에서 4시간을 걸었다. 하늘은 푸르고 대지는 흰눈 천지다. 첫번째 하늘호수가 나타났다. 물새떼가 날아오른다. 호수를 지나치는 데 1시간이 족히 걸린다. 두번째 호수를 지났다. 호수의 물들은 모두 동쪽으로 흘러 카람바르강이 되고 인더스강으로 흘러간다. 옛 빙하의 흔적이 남은 평평한 둔덕에 섰다. 바위 위에 돌탑이 카람바르 고개(Karambar An·4,343m) 정점을 표시한다.
배낭을 벗고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눈을 감았다. 히말라야를 알고부터 다른 어느 곳보다 바로 이곳에 오고 싶었다. 10년 동안은 지도 위에서 수십 번을 걸었고 외국 책에서 보는 몇 장의 사진으로만 만족해야 했었다. 여기는 한국인 히말라야 진출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 혜초의 고독한 구법여행이, 그리고 고선지 장군의 대원정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그래서 더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눈을 떴다. 서쪽으로 힌두라즈 산맥의 최고봉 코요좀(Koyo Zom·6.872m)이 솟아 있고, 그 앞으로 장군이 군사들을 데리고 넘었던 다르콧 고개(Darkot An·4,575m)와 진디카람 빙하(Zindikharam Gl)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카람바르 계곡 양쪽 설봉 너머로 파미르가 펼쳐진다. 호수 봉우리 주이사르(Jhui Sar)에 매달린 빙하가 호수 속으로 떨어진다.
7~8월 여름 시즌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광활한 초원이 펼쳐질 것이다. 낮에는 황금 마못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저녁에는 주위에 지천으로 자라는 야생파를 뜯어 양고기 찜을 만들어 먹는다. 며칠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양귀비 팔아 아프간에서 무기 수입
고갯마루에 머무를 이유가 없는 동행자들은 사라지고 없다. 이 계곡과 치안타르 빙하(Chiantar Gl) 합류점까지는 눈 쌓인 대관령 목장을 걷는 것 같다. 그들이 길을 만들어놓아 편하게 따라간다. 라봇(Rabot)부터는 고개에서 발원한 물도 많아져 유유히 흐른다. 발밑은 말라버린 풀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어 푹신하다. 30kg이 넘는 배낭에 강행군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 날은 보리메르기치(Boree Mergichi)에 캠프지를 마련했다.
밤새 몸살감기로 앓았다. 빨리 눈이 없고 포근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톱카나(Top Khana·3,690m)는 바로 그러한 곳이다. 또 침입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돌과 흙으로 만든 요새가 있다. 폭 50m 정도의 바위언덕 위에 조망대가 있고, 주위의 참호는 허물어져 있다. 747년 고선지 장군이 진디카람 빙하로 오른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 해에 다르콧 고개를 북쪽에서 남쪽에서 넘으려고 시도했지만, 눈에 막혀 실패하고 다음해 2001년 9월 말 이곳에 다시 찾아왔다. 그 때는 카람바르 고개를 오른 후 되돌아 내려오면서 치안타르 빙하 사이의 북쪽 능선을 올라 내원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힌두쿠시와 힌드라즈를 합쳐 가장 긴 32km의 치안타르 빙하가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다. 해발 6,000m 초반대의 몇몇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등반가의 발길을 기다린다.
1967년 독일의 린스바우어(Alfred Linsbauer) 대장이 이끄는 대원 3명이 치안타르봉(Koh-i-Chiantar·6,416m)과 차티보이봉(Koh-i-Chhatiboi·6,150m)을 초등했다. 당시 이곳은 외국인 접근이 금지된 곳이어서 이들은 외교적인 노력까지 동원했다. 등반활동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최근 이탈리아 트레킹팀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시카르가흐(Lashkar Gah)는 야르쿤 계곡에서 사람이 상주하는 가장 높은 마을이다. 여자아이들은 강한 햇빛에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검은 색을 칠했다. 이것은 염소뿔을 불에 태워서 갈아 만든다. 담벼락에 기댄 아낙네들은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결같이 붉은 색 옷을 입고 큼지막한 목걸이를 걸치고 있다. 촬영을 부탁했다. 겉옷을 벗으려다 그만 젖가슴을 드러낸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냥 웃는다.
2001년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직후였다. 몰래 피해서 이곳까지 왔다. 마을을 지나쳐 카람바르 고개로 향했다. 뛰다시피 가고 있는데 뒤에서 한 명이 쫓아왔다. 입에 거품을 물고 뭐라고 소리치더니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친다. 여러 번 맞았다. 그의 풀린 눈동자는 하시시(마약류)를 핀 것이 틀림없었다. 부들부들 떨며 꾹 참았다. 마을로 돌아갔다. 치트랄 경찰서로 잡혀가도 어쩔 수 없다. 마을로 돌아가서 진짜 미친 놈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었다. 그 경찰은 결국 도망갔다.
야르쿤 계곡은 예전에 양귀비 생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불법이어서 유통되지는 않고 각자 집에 약재로 조금씩 키운다. 바로 산 너머 아프가니스탄쪽에는 무기를 사들이는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라시카르가흐부터 가르힐(Garhil)까지는 넓은 평탄면에 작은 언덕이 솟아오른 지형이다. 그 사이에 많은 연못들이 있고 길도 여러 갈래로 찾기가 힘들다. 날이 어두워지고 집 몇 채 있는 틴유프크(Thin Yuphkh) 마을을 지나친다. 흰둥이와 검둥이 개 두 마리가 짖으며 쫓아왔다. 허연 이빨에 침을 흘리며 달려든다. 나무지팡이로 겁을 주어도 소용없다. 동네 사람들은 이 모습에 재미있다고 즐기고 있다. 틴유프크 직전에는 멀리까지 계란 썩는 냄새를 풍기는 유황온천이 흘러나온다. 온도계를 집어넣자 30℃가 넘고 수량도 많다. 그 물이 모여 형성 된 호수는 김이 피어오른다.
밤이 되어 길옆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에게 하루 머무르기를 청하자 시내의 고급호텔 비용을 요구한다. 이 계곡은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다. 다시 길을 나서 언덕에 붙어 있는 가르힐 마을로 들어갔다. 개 짖는 소리로 동네가 울린다. 하얀 색으로 벽을 칠한 집에서 방 하나를 내주었다. 오랜만에 음식다운 저녁을 먹었고 편안히 잠을 잤다.
아침에 본 코요좀 산군의 일출은 장관이었다. 2시간만에 칠마라봇(Chilma Rabot)에 도착했다. 내려오는 길에 외국인 출입신고를 한 번 더하고 국경 경찰이 한 명 동행했다. 모스크와 초등학교가 있는 30여 호의 마을이다. 1시간 거리에 브로길 고개(Broghil An·3,804m)로 연결되는, 지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중국 서역과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대상들의 캐러밴루트였고, 옛날 중국 승려들이 구법여행 중에 통과하던 루트로 힌두쿠시를 넘어오는 가장 낮고 쉬운 고개다.
단돈 2,000원에 브로길 고개 답사 허가
치트랄 정찰대(Chitral Scout) 소속의 이시카르와즈(Ishkarwaz) 국경초소에서 제복을 입지 않은 군인 한 명이 또 달라붙었다. 통신선이 없는데도 이들은 내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브로길 고개에 가려면 빨리 이 곳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눈치와 잔머리 작전이 필요하다. 먼저 들고 온 장부에 인적사항을 기재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길기트에서 고개를 넘어-.”
카람바르 고개와 다르콧 고개는 주 경계선이다.
“혼자입니까?”
“예.”
이 한겨울에 넘어 온 사실에 놀란다.
“이곳은 작년에 허가지역에서 개방지역으로 법규가 바뀌었습니다만,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선 상에는 접근하지 못합니다. 어디로 갑니까?”
“다르콧을 넘어 야신(Yasin)으로 갑니다.”
그들의 관할 구역이 아닌 지역으로 벗어나는 루트를 얘기했다.
“눈이 많이 쌓였는데 가이드와 포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들이 차를 대접한다기에 대여섯 명이 난로가 피워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며 여러 얘기가 오갔다. 내가 가야할 곳은 정해져 있다.
“브로길 고개에 가는 외국인도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그곳은 중앙정부로부터 정식 허가서를 받아와야 합니다. 또 공인된 가이드가 동행해야 합니다. 당신은 절대 그 곳에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말은 완고했고 더 이상 브로길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1시간 정도 흘렀다.
“군인인 당신이 동행해서 잠깐 다녀오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안내료는 원하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안됩니다.”
반드시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의미가 없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그들 말로 얘기하는 동안 시간이 흐른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묻는다.
“얼마를 주겠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만큼.”
그는 100루피와 더불어 촬영은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2,000원에 허가서를 얻은 셈이다. 방안에 세워둔 배낭 위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올려놓고 그들이 방안을 나설 때 작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지퍼를 턱까지 올렸다. 군인은 캠프지로 가고 18살 마을청년이 동행했다. 1시간 후 나는 브로길 고개에 서 있었고, 고선지 장군이 티베트군과 전투를 벌인 아프가니스탄 와칸 계곡의 연운보(지금의 Sarhad)를 내려다보았다. 보따리에 중국제 신발과 옷을 지고 4명의 보부상이 고개를 가고 있다. 타지키스탄으로 간다고 했다. 2,000년 전의 실크로드는 지금도 이용되고 있었다.<계속>
트레킹 가이드
카람바르 고개~야르쿤 상류 계곡
파키스탄 북부 트레킹 코스 중 백미
▲ 강까지 밀려내려와 무너지는 얼음빙하. 히말라야에서도 야르쿤 계곡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트레킹허가는 2000년부터 필요없고, 길을 잘 아는 현지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것이 좋다. 교통편은 길기트~가구치 구간은 대중 버스를 이용하고, 가쿠치~보르트 구간은 전세지프를 이용한다. 7~8시간 소요된다. 여름철 지프 길은 유실되는 구간이 많다. 야르쿤 계곡에서는 동네 개들을 조심해야 한다. 일반적인 트레킹은 6일 행정으로 계획하는데, 1~2일 당길 수도 있다.
제1일 보르트~카람바르빙하~마트람다스 4~5시간 소요. 장벽 사이의 깊은 계곡을 따라 걷는다.
▲ 이시카르와즈에 주둔하고 있는 치트랄 군부대. 반드시 이곳에서 신고해야 한다.
제3일 칠린지~차티보이 빙하~슈인즈 5~6시간 소요. 차티보이 빙하 흐름이 심하여 매년 바뀐다. 속테르라봇에서 길을 아는 목동을 고용하는 것이 좋다.
제4일 슈인즈~카람바르 고개(4,343m). 4~5시간 소요. 설봉 사이의 초원을 걷는다.
제5일 카람바르고개~보리메르기츠~톱카나. 4~5시간 소요. 완만한 풀밭길이다
제6일 라시카르가흐~틴유프크~가르힐~칠마라봇(3,570m). 낮은 언덕 사이를 오르내리는 쉬운 길이고, 틴유프크에서 캠프지를 마련하여 설봉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김창호 서울시립대OB·쎄레또레 등산아카데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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