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2일 물날
날씨 : 아침나절 자전거를 타는데 안전 모자를 쓴 머리가 땀에 젖어 축축하다. 점심 청소할 때 쏴악 비가 내렸지만 후덥지근함은 가져가지 못했다.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날이다.
아침 일찍 텃밭에 들렸다. 그새 풀이 많이 자랐다. 토종 고추 수비초를 심어 놓은 곳과 토종 목화를 심어놓은 고랑의 풀을 손으로 우적우적 뜯는다. 누워버린 목화 대 몇 개를 세우고 나니 손톱에 흙이 가득이다. 어설프더라도 손을 한 번 대고 나니 맘은 가볍다. 9시에 자전거를 타려 했는데 지은이가 조금 늦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화를 못 받으시니 답답하다. 너무 오래 기다릴 수 없어 자전거를 타고 나가려하는데 명희선생님이 다시 아버님께 전화를 한다. 다행히 이번엔 연락이 되었다. 명희 선생님이 지은이를 기다려 오기로 하고 아이들과 자전거를 탄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가 한산하다. 더운 날씨지만 양재천 바람을 가르니 몸은 시원하다. 뒤에 오는 한주는 줄곧 천천히 가라하고 지안이와 현서는 좀 더 빨리 달리자 한다. 한주와 본준이는 복날 닭이라도 먹여야 할까보다. 오랜만에 슝슝 달리니 가슴이 열리는 듯하다.
돌아와 아이들이 쉬는 사이 오븐을 예열한다. 두근 두근 두근, 어제 저온 숙성시켜 둔 발효종 빵 반죽이 어찌 되었을까? 성공일까? 또 실패일까? 냉장고 문을 열고 찬찬히 반죽그릇을 연다. 꽁꽁 묶은 비닐을 풀고, 아이들 얼굴 떠올리고, 또 한 번 비닐 풀며 아이들 얼굴 떠올리고. 아이들이 성공을 보았으면 좋겠는데 점점 가슴이 두근거린다. 광목 보자기를 조심스레 펼치지, 어머나~~ 반죽이 예쁘게 두 배로 부풀어있다. 정말 다행이다. 한 번 배우고 제대로 익히지 않았음에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아이들과 이것저것 시도하는 쓸데없이 용감한 선생이지만 아이들 실망은 두렵다. 성공, 반쯤 성공이다. 바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크게 불러 반죽을 보여주니 아이들 눈이 왕사탕만큼 커진다. “우와~ 반죽이 부풀었어요.” 현서네와 본준네서 빌려온 오븐을 미리 예열 해놨으니 이제 넣으면 된다. 굽는 것도 잘 되어야 하지만 이미 반죽이 잘 부푼 것으로 우린 행복하다. 잘 못 된 것이 있으면 또 거기부터 까닭을 찾아 다시 해보면 되니까. 빵이 구워지는 사이 아이들과 역사공부를 한다. 이이화 선생님의 주제마다 한국사를 같이 읽고 정리하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태로 공부를 하는데 아이들은 아직 낯설어 한다. 240°에서 30분, 덧가루로 바른 옥수수가루 냄새가 구수하다. 빵을 오븐에서 꺼내니 모양과 냄새가 그럴싸하다. “냄새가 좋아.” “와 잘 구워졌어.” “부풀었어.” 작은 성공에 아이들이 들뜬다. 한김 식혀 잘라 맛을 보니, 우와~~ 맛도 좋다. 아이들은 약간 시큼한 사워종 맛을 싫어하여 이것을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할까 고민을 하다 예전에 작은 아들 친구가 과일로 발효종을 만들어 빵을 구웠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과일종을 지금 만들 수는 없고 빵 만들기에서는 이제 기기 시작한 내가 겁도 없이 달려보겠다고 나흘째 밥을 주는 날 밀가루 밥과 더불어 설탕을 조금 넣었다. 참 용감하다. 다섯째 날에도 밀가루밥과 더불어 또 설탕을 찻숟가락으로 하나 넣어줬다. 다행히 발효종의 풍미가 깊었고 보글보글 잘 자랐다. 과일종의 밥을 당이라고 상상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설탕을 넣었던 것. 엉뚱한 시도지만 나쁘지 않다. 빵도 잘 부풀고 빵에서 시큼한 맛도 사라졌다. 빵 맛을 본 아이들은 “선생님 담에는 설탕을 더 넣어요.” 아마도 아이들은 단맛이 나는 빵을 상상한 듯하다. 빵 두 덩이를 잘게 잘라 점심 먹은 뒤 학교 아이들과 나눠먹었다. 5학년 아이들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하다. 빵을 굽는 것은 집에서 밀을 생산하는 두 번째 농사라고 친구가 말한다. 그렇지. 밥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작은 행위는 집에서 농작물을 키워 내게 하는 또 다른 생산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하는 먹거리 교육활동은 중요하고 그 곳에서 어떤 원칙을 지키냐에 따라 지구 환경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빵을 만드는 작은 행위에 따르는 커다란 의미들이 있다. 하여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가지는 내 생각, 내 태도, 그리고 실천들이 더 철저해져야 할 것이다.
작은 성공, 이뤄짐^^ 도전하고 바꾸고 이뤄내는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
한 곳에 머무르면 배움이 아니지, 배움은 배운 것 바탕으로 새로운 걸 창조해내는 것이지. 엉뚱하고 이것저것 새로이 만들기를 좋아하는 5학년 아이들, 똑같은 기질을 가진 선생과 날마다 새로움으로 살아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르고, 생각한 것과 다른 일들이 불쑥 불쑥 생겨나는 누리샘이 참 좋다. 내일을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까? 기대된다. 즐거운 상상, 즐거운 기대, 예측하고 준비했으나 달라지는 하루가 참 좋다.
낮공부는 맑은샘회의, 높은샘 안건으로 바깥문화 이야기, 밥 먹는 버릇, 놀림말 이야기가 나왔는데 모두 큰 이야기다. 바깥 문화가운데 어린이들 삶을 해치는 문화이야기를 나누고 높은 학년이 나서서 어린이 삶을 살찌우는 문화로 바꾸기로 결론이 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본준이와 한주는 요즘 낮은샘아이들이 많이 가지고 오는 야구짱? 카드를 대신해서 놀 수 있는 맑은샘 카드를 만든다. 높은 학년으로 맑은샘 문화를 책임지는 어깨가 무척 즐겁고 가볍다.
첫댓글 첫 성공 축하드려요!
아이들과 안전하게 빵을 구우셨네요.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조금씩 쉬워집니다.
빵에도 변화가 조금씩 온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