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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7일 화요일 덴마크
*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도착
베르겐에서 1시간 30분 소요되어 오전 8시 15분에 도착했다. 꿈속 같은 시간이며 꿈속 같은 나라의 여정이다.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먼먼 나라에 내가 온 것이 대하여 환희, 뜨거운 기쁨이다.
작은 나라듣, 큰 나라든 상당히 세련된 유럽, 공항도 작든, 크든 세련된 자태다. 덴마크는 나라도 작고, 특히나 수도 코펜하겐은 섬에 있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고 아름다운 여정이다.
* 섬의 도시 코펜하겐
덴마크의 수도인데 섬에 있다. 405개의 섬으로 구성된 덴마크는 크게 3개 주요 섬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 하나 시엘란 섬에 코펜하겐이 있다. 상인의 항구라는 뜻을 지닌 코펜하겐은 사위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시가지를 돌다가 바다가 보이고, 항구가 보이고, 도심에 들어온 바닷물이 보인다. 바다와 함께 공존하는 도시다.
그런데도 코펜하겐은 스칸디나비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다. 많은 공원과 푸르스름하게 산화된 중세의 구리 지붕으로 Green City로 불린다. 유럽과 분리되지 않은 덴마크, 유일하게도 독일 영토와 이어져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다. 그래서일까. 코펜하겐은 중세 향기가 물씬 나며, 바다와 접하여 비경의 도시다.
* 약의 나라 덴마크
한국의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의 아주 작은 나라다. 인구는 530만 명, 그중 코펜하겐에 520만 명이 모여 산다. 해저 터널 길이 있어 남쪽 끝까지 8시간이나 다려 간다. 신기한 나라다.
덴마크는 약의 나라라고 맨 먼저 전해준다. 도심에서 전원의 들녘 가운데에서 제약회사 건물을 수시로 만난다. 특히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을 생산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노보나인 인슐린 생산 공장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인슐린을 만들고 나온 찌꺼기와 물은 말이 먹는다.
또한 인슐린 만드는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사실은 공장보다 중간 사무실이 많은 나라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말로 칭하고 있다. 내가 본 것은 가장 큰 공장이 제약회사이며, 의약품 센터였다. 케펜하겐 도심에서는 길고 높은 건물,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길게 이어진 고층의 거대한 건물이 의야품 센터였고, 초지의 한적한 곳에 오롯이 앉은 인슐린 공장을 보았다. 깨끗한 이미지의 나라에서 제약의 향기까지 맡으니 행복하다.
6.25 후 한국과 수교를 맺었는데 유틀란트호 병원차를 인천에 보낸 것이 시작이다. 그때 남은 물자, 특히 약을 모두 을지로 메디칼 센터에 기증했는데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센터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약의 역사로 깊은 역사를 지닌 나라다.
* 쓰레기도 버리지 않는 나라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는 완벽한 나라 덴마크, 쓰레기 조차 버리지 않는다 하니 나의 두 눈이, 나의 두 귀가 크게 열린다.
GNP 34000달러의 부자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쓰레기로 전력을 생산하고, 약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가축을 기르고 대단한 발상으로 국력을 튼튼히 하고 있다.
한국의 마포, 창원의 쓰레게 소각장도 덴마크에서 기술을 배워 갔단다. 쓰레기 조차 버리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소각 기술까지 수출하지 않는가. 북극의 먼 나라에서 아주 가슴 따스한 이야기를 들으며 꼭 배워 가야겠다고, 내 조국의 곳곳에 전하며 우리도 이런 정신으로 삼자고 외쳐야겠더고 다짐했다.
* 산이 없는 나라
노르웨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나랃. 거도가도 사니 보이지 않는다.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뚝 떨어진 작은 덩이의 나라 덴마크, 지도상으로도 애련하지만, 풍경도 애련하다.
우람한 산이 사위를 제압하던 노르웨이와 이토록 다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들녘과 평원, 그리고 간간이 아득한 바다가 땅을 에워 싼 것이 전부다.
피요르드의 물이 들어와 바다의 염도가 낮다. 이것은 북유럽 4개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모두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바다와 접한 나라의 여행인데도 바다 생선 요리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다. 이웃 나라인데도 자연 환경까지 다른 것, 그래서 그에 맞게 나름대로 환경을 조성하며 사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 덴마크의 문화
밤 문화가 없다. 그래서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낟. 그리스는 밤 문화가 발달하여 멋있는 나라라고 했는데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밤 문화가 없어 살기 좋다 하니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덴마크에 사는 한국 교민들은 '도 닦는 나라' 라고 명명하낟. 부부, 가족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자주 만난다. 며느리 집 갈 때는 시어머니가 도시락을 싸 간다. 모두 맞벌이 하므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자주 만나고, 같이 식사하며 가족 관계가 아주 수월한 나라다.
'어이, 너 먼저 저녁 먹어, 난 직장에서 일있어.' 이건 이혼 사유다. 동양보다 더 진한 가족 사회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대부분이 그런 문화다. 참으로 신기한 대목이다. 외로운 대륙에서 혈연으로, 가족의 띠로 뭉쳐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 철저한 자본국가
철저한 자본 국가다. 부자를 즐기도록 해주는 나라다. 돈을 잘 벌 수 있게 해준다. 520만 인구 중 80%가 도시에 집중하여 살며 바이킹의 후예로서 낙농업과 공업, 디자인 등으로 부를 축적하고 산다.
덴마크느 특히 국민들을 위한 평등, 자유, 복지가 세계적으로 으뜸인 나라다. 잘난 척을 잘 하고, 침략도 잘 하고, 작지만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인상을 준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덴마크가 아이낟. 움츠러든 구석이 하나도 없다. 건물들도, 사람들도 화사하고, 무게감 잇고, 활발하다. 어찌보면 한국의 경상도만한 영토 안에서 슬프게 살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철저하게 자유를 보장하며, 재산을 보장한다. 그 대신 세금을 비롯한 개인의 의무에서도 철저히 지키는 깨끗한 나라다.
* 덴마크의 기후
여름과 겨울의 큰 기온 차가 없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이다. 겨울에도 영하 4도~3도 사이다. 오늘은 24도 최고 더운 여름 날이다. 오늘까지만 맑고 내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다. 마로니에 가로스가 싱싱한 좋은 날씨다.
노르웨이와는 많은 기온 차이다. 위도상으로 낮기도 하지만 독일과 이어져서인지 대륙의 향기가 난다. 여름을 느끼게 한느 더위 속에서 가을이 보인다. 벌써 낙엽이 지고 있다. 들녘이 노릇하다. 파란 하늘과 화사한 태양빛, 내가 본 덴마크의 여름 날씨다.
* 덴마크의 고속도로
1950년도에 만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프레드릭스보그성에 가는 길이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코펜하겐 도심을 거쳐 전원의 도로를 달린다.
이 나라는 기술적인 면에서 독특하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가로등이다. 도로변에 잇지 않고 위에 줄로 매달아 놓았다. 공중에 가로등이 매달려 있다. 그렇게 해야 시설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란다. 배워 가고 싶은 정경이다.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다리르 만들어 왕래하고 있다. 함부르크까지도 다리 공사를 시작했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돌아 나올 때 바다와 만나고, 스웨덴으로 가는 다릴르 보았다. 해버 터널과 다리, 고속도로 등 활기찬 교통 체계로 북유럽의 작은 나라는 큰 길을 열고 있다.
* 낙농업 국가
영국 함대가 와서 침범 후 4H 운동, 계몽 운동이 시작됐다. 달가스라는 사람들이 나무를 심었다. 낙농업 국가를 이룩한 것은 쿠른투비라는 사람이다.
유럽 끝부분 별 볼일 없는 자연을 가진 나라에서 제약 찌꺼기로, 작은 면적의 초지로 낙농업을 발전 시켰다는 것에 대하여 놀랍다. 더러 방목하는 목장도 보았다. 외견상으로는 고요한데 내적으로 상당히 안정되고 알찬 나라다.
* 접목 국가
접목 기술이 최고라는 말에 유년의 향수에 젖었다. 고염나무에 감나무 싹을 접목하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감씨가 땅에 떨어지면 고염나무가 되기 때문에 다시 감나무로 만드는 과정이다. 복숭아 나무도 그렇다. 씨를 심으면 개복숭아 나무가 되고 다시 접목해야 좋은 복숭아 나무가 되는 것을 나는 보며 자랐다.
덴마크가 접목 국가라는 말에 원시로 귀향하는, 어쩜 현대와는 먼 거리에 와 있는 느낌이다. 그것도 기술이었던가. 자작나무, 체리나무 등을 접묵한다는 것이다. 작은 기술 하나도 놓치지 않는 영롱함이다.
* 입양 국가
구교인 카톨릭을 마르틴 루터의 개종으로 개신교 국가다. 그래서 청교됴 정신이 우세하다. 돈 버는 것, 잘 ㅆ는 정신, 여자 남자 평등 정신, 결혼, 탄생에 대하여 소중히 한다.
입양아가 많은 것도 청교됴 정신이다. 입양아가 9500명이다. 청교도 정신은 입양 외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덴마크인들은 교양있고 부지런하다. 부유한 자들은 관대한 포용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는 부자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입양을 하고, 입양아를 친자식처럼 키워주고, 종교의 힘이든, 부유한 자의 관대한 포용이든 세계인 모두가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 복지 국가
덴마크의 복지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어온 터라 생소하지도 않다. 그런데 부자를 도와 부자가 되게 하고, 그에 따르는 수입의 상당한 비율을 세금으로 다시 환원한다는데 대하여 두 귀가 선다.
대부분 사회 복지가 잘 된 나라는 세금제도가 함께 잘 되어 있는데 덴마크 역시 그랬다. 보통 수입의 40%를 세금으로 낸다. 의사, 변호사는 70%의 세금을 낸다. 그래서 67세부터는 연금을 지급하고, 실직자를 도와준다. 복지 연금은 월 130만원이다. 상당히 높은 액수다.
투자 이민을 받지 않는 나라다. 깨끗하게 뭉쳐서 사는 나라다. 사회 구석구석 평등, 자유, 복지가 스며 있어 세계 복지 으뜸 국가다. 이러한 정신도 개신교가 큰 공을 세웠다. 교회는 가지 않지만 청교도 정신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금 중 80%의 십일조를 떼어 북한, 아프리카 등을 돕는다. 유니세프가 덴마크에 있다.
이토록 작은 나라에서 어찌하여 그리 잘 살며, 어찌하여 사회 질서와 복지가 그리도 잘 되어 있는가. 우리 나라에도 속히 뿌리 내려야 할 대목이다.
* 덴마크의 죄인들
EU 국가에 가입하면서 무질서 해졌다. 이민 34년 차인 교포 가이드 여인은 전과 달리 함부로 쓰레기 버리고, 함부로 돈 쓰고, 사회가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오히려 깨끗해진다며, 서양은 기울고 동양이 뜨는 추이란다.
1900년 대 초반만 해도 감옥소에 사람이 없어 죄인이 들어오면 하오 죄인이 없던 터라 하얀 깃발을 달았는데 지금은 너무 많아서 수용 불가능으로 족쇄를 채워 집에 가둔단다.
8%의 국민이 아랍인인 실정에서 죄인들은 대개 팔레스타인 난민, 이라크인이다. 그렇겠지, 라고 나는 수긍했다. 자국민보다 물결 타고 넘어온 타국민들이 감옥소를 패우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이 대목은 다시 다스려 죄인이 없는 나라로 환원해야 할 소중한 과제다.
깨끗한 이미지의 나라에서 버려야 할 마디다. 8%의 그들에게도 깊은 배려로 잘 적응하며 잘 살 수 있게 선정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 덴마크의 여자들
이 나라 여자들 모두 교육 받으며 공부 잘 한다. 의사, 약사, 판사에 여자가 많다. 국회의원도 58%가 여자다. 여자가 정치도 많이 관여하며 여자 대통령도 많이 나왔다.
여자들의 질투심이 크다. 억척스럽다. 한국 여자 한순이를 이긴 덴마크 여자를 덴순이라고 칭한다. 이런 나라가 잘 산다. 남자와 함께 밖에 나가 돈을 번다.
1950년 최초로 한국 유학 남자들이 들어 왔다. 덴마크 여인과 결혼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귀소 본능이 강한 학눅 남자는 외국 여인과 오래 살지 못하고 아기 낳아놓고 한국으로 떠나버리기도 했다. 돌아가서 한국에다가 레고 장남감과 소세지를 전파 시켰다.
반다로 한국 여인과 외국 남자는 오래도록 잘 산다. 여자는 귀소 본능이 남자보다 낮아서다. 덴마크 여자는 착하다. 강원도 삼척인을 남편으로 둔 덴마크 여인은 연탄까지 갈며 시어머니를 잘 모셨다. 그러나 남편은 결국 삼척에 가서 한국 여자와 산다. 여자와 남자의 근원적 차이에서 파생되는문제지만 덴마크의 착한 여자들에게 미안한 이야기들이다.
여자들은 그런 일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당하고도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고 말할 뿐이다. 교민으로서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의 말을 전한다. 중동인을 싫어한다. 게으르고 지저분한 예감 때문이다. 집중력 있는 남자가 성에도 강하다고 이곳 여자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 남자를 선택하는 편이다. 판단력은 늦은 편이지만 분명 덴마크 여인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자신의 삶을 엮고 있다.
* 덴마크의 주택
집을 현찰로 사는 법이 없다. 평생 부부가 둘의 봉급을 합산하여 그것을 담보로 평생토록 집세를 내고 산다. 한사람은 주택비, 한사람은 생활비를 담당한다.
코펜하겐의 빨간 주택은 덴마크의 전통적인 집이다. 도심을 벗이나면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난다. 도심이 주택은 유럽 전통적인 주상 복합 주택이 대부분이다. 북유럽인데도 서유럽이나 동유럽에서 본 중후함이 그대로 이어진다.
바이킹족부터 시작하여 갈대로 만든 초가집도 있다. 현대에 이르러 그런 집은 고급집으로 인기다. 다양한 주택은 어떤 형태든 세련되어 있다.
* 농부들이 세운 풍력계
곳곳에서 풍려계가 보인다. 맨 처음 만난 것은 코펜하겐 공항에서 프레드릭스보그성에 갈 때다. 고속도로를 타고 코펜하겐 시가지를 벗어나 농촌 들녘을 달릴 때 나무 사이로 우뚝 우뚝 선 하얀 풍력계 바람개비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농부들이 세운 풍력계라 한다. 풍력 발전기 3개가 바람에 돌며 에너지를 생산한다. 국가에서 세운 것이 아니고 이곳 농부들이 세웠다는 것에 대하여 강한 국민성을 느끼게 한다.
코펜하겐 시가지를 돌 때 바닷가에서도 풍력계를 보았다. 모든 땅이 낮은 나라다. 산이 없어 평평하고, 바다와 육지의 턱이 분명하지 않다. 어쩌다 보면 바다가, 또 곁에는 땅이, 도시가 같은 높이로 이어진다.
이런 나라에서 풍력계 하얀 바람개비는 꽃처럼, 나비처럼 아름다운 자태다. 작은 영토, 섬의 나라 덴마크의 강한 바람이 서리어 있다.
* 프레드릭스보그성과 정원
코펜하겐에서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가서 만난 명소다. 처음 입구에 들어설 때는 보통의 성이라고 느꼈는데 차츰 안으로 들어가며 놀라운 비경에 감탄했다. 성도 아름답지만 호수와 정원은 환상적인 세계로 이끄는 서정이다.
1602년에서 1630년 사이에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독일 르네상스의 이 성은 '덴마크의 베르사이유'로 알려져 잇으며 호수 바로 윗쪽에 자리잡고 있다.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숲과 호수 그리고 백조들이 이 성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200여 년 동안 7명의 국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릴 정도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유명한 성으로, 1859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 되었을 때 왕실에서 재건할 경제적 여유가 없자 당시 맥주 재벌 '칼스버그 야콥센'의 기부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역사 박물관으로 덴마크의 유구한 역사를 알게 하는 각종 자료와 회화, 가구, 보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호수에 이르기 전 구왕실 주변의 건물과 첨탑이 우람했다. 포세이돈, 물이 신 동상도 장관이다. 쓸데없이 여자와 가까이 하지 말라는 의미이 동상이다. 화재 당시 유일하게 불이 나지 않은 교회도 보았다. 그런 건물을 벗어났을 때 드넓은 호수가 또 다른 정경을 선사한다.
호수 곁에는 잘 다듬어진 나무와 숲이 있다. 서늘해서 저 숲에는 뱀이나 모기가 없다 한다. 고사리, 참나물, 영지 버섯 등이 많다고 하니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호수 끝에서 만난 정원은 어느 예술가의 조각 전시처럼 잘 다듬어져 있다. 꽃도, 나무도, 대단한 조형이다. 코펜하겐에서 먼 거리에 있어 그렇까. 사람이 많지 않다. 많이 걸었어도, 행복한 걸음이었다.
프레드릭스보그성과 호수와 정원은 자연보다 유적지를 본다는 덴마크에서 첫 선물이며,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 덴마크의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차도 곁에 구분되어 있다. 네덜란드가 연상된다. 덴마크에도 그런 풍경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잘 사는 나라에서 보는 것이라서 남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조국에도 담아가고 싶은 정경이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사람이나 차가 들어가면 벌금을 낸다. 도시에서 시골까지 완벽하게 이어진 자전거 보호 구역이다. 그래소 자전거를 타고 역에 가서 맡기고는 시골에 다녀온 후 다시 자전거로 고속도로를 타고 오기도 한다.
자전거와 유모차는 세금을 안 붙인다. 자동차 밧데리 4개가 2만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다. 자동차에 관련된 것은 비싸다. 버스기사의 월급이 한국보다 3배 비싸다. 하루 일당이 1500유로다. 그렇게 비싼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 세금이 비싸서 그렇다. 버스기사의 한달 운전비로 한화 3백여 만원, 자동차세의 무거운 비중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만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아니리라. 국회의원들이 타고온 자동차도 있었다. 큰 건물 주변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검소하고 착한 국회의원이라고 칭찬한다.
황제 다이어트는 덴마크의 대표 다이어트다. 여자가 날씬한 것은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다. 길가에 자전거를 매어두고 일반인이나 외국 관광객에게도 대여 해준다. 더러는 이용하는 여행객도 있다.
퇴근 길에 가득 메운 자전거 잔용도로, 흐망의 물결이다. 덴마크를 복지 나라로 작은 애국, 큰 충성이다. 국가의 정책도 대단하지만 잘 따라주는 시민들도 대단하다.
* 비싼 음식값
한국에서 김밥 한줄에 1천원 하는 값은 이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값이다. 덴마크에서 1개당 한화 4천원이란다. 도착하던 날 점심에 일식 김밥 집에 갔는데 김밪이 나왔다.
김밥 15개 , 연어, 참치를 넣어 만든 그 김밥이 비싼 값이라는 말에 곱씹으며 비싼 입맛으로 억었다. 양을 중시하는 한국 음식과 원래 일본식은 차이 나지만 덴마크에서는 더욱 양이 적어 보였다. 살기 좋은 우리 나라다.
덴마크의 주요 채소는 보리, 밀, 감자다. 월계수 기름에 볶아서 먹는다. 그외 무 같은 채소도 나온다. 농촌 들녘이 우리 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채소와 곡식이 보이지 않고 초지의 목장이거나 그냥 초지의 빈들이거나 그렇다. 유럽이 대개 그렇듯이 덴마크도 그렇다. 기후 조건상 그렇고, 그래서 원료 생산이 어려워 음식값이 비싼 것 같다.
* 조합이 잘 받달된 나라
아파트를 지을 때 조합을 결성하여 많이 짓는다. 정육점 조합 아파트, 영국 배우 조합 아파트, 의사 조합 아파트, 등 그렇게 짓는다. 옛날부터 조합이 발달된 나라다.
바이킹족의 후예이고, 작은 나라, 사방이 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뭉쳐서 힘을 기르며 살아온 관습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집을 지을 때까지도 조합을 이루어 짓는 것 같다.
* 덴마크의 보육시설
보육시설이 잘 된 나라라고 강조한다. 유치원 보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횡단 보도를 건넌다. 10명 남짓 또래 아이들이 평하롭게 거너 간다. 길거리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풍경이 보이면 저것은 유치원생이라 했고 곁에는 반드시 교사가 있다.
보육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부부가 직장 생활을 편히 한다. 이런 이야기는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듣는 이야기다. 인권에 대한 존중, 어린이 보호, 교육시설, 시스템 등이 놀랍도록 잘 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이 기초적으로 잘 되어 있어야 사회가 안정되고 더욱 발달될 것이다. 날로 좋아지는 내 조국도 자랑스럽다.
* 뉴하운 노천카페
600년 된 노천 카페가 그대로 있다. 코펜하겐 시가지를 돌며 여러번 만난 곳이다. 상당히 아름다운 거리다. 바다에서 밀려든 물이 도심 가운데 깊숙히 들어오고, 사람들은 유람선에 승선하여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바다 위 다리를 이어 수많은 차와 사람이 통행하고, 물가에 늘어선 노천 카페는 장관이다. 바다에 뜬 배들과 함께 낭만이 깃들어 있다. 그곳 주변에서 1시간 정도 산책하며 유럽의 고전 향기에 젖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데르센이 살던 아파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보수하였겠지만 분홍 색상의 고운 아파트가 안내 설명문과 함께 보전되어 있었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 가서도 보고 '인어 공주' 동화로 유명한 한 작가의 자취를 더듬었다.
이곳은 덴마크의 상징 거리다. 아름다운 건물과 길가에 늘어선 카페, 유람선, 배, 바다, 바다와 이어진 뱃길, 등 환상적인 조화로 지나는 것도 내려서 걷는 것도 평화로운 행복이다. 시민들이 무수히 나와 난간에 앉아 바닷물과 배를 감상하기도 하고 폭이 그리 넓지 않는 양변 거리를 배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곳에 나의 발자국과 그림자도 두고 왔다.
* 안데르센이 살던 아파트
문단에서 간 여행이 아니어서 자가에 대하여 깊은 탐방으 하지 못함이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안데르센이 거주하던 집이 노천 카페 주변이 있어서, 그곳에 머물러 휴식하며 자세히 보았다.
내가 두 아들을 기르며 들려주고 읽게 했던 동화들, 그 명작이 이곳에서 탄생되었다고 하니 꿈속인양 애잔하다. 인어 공주, 미운 오리 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엄지 공주 등 130여편의 동화를 세계에 깔아 놓았으니 작가는 갔어도 그의 영혼은 우리 곁에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해외여행에 큰 비중을 두고 살아온 그는 독일에서, 이탈리아에서, 스웨덴에서 많은 활동을 하며 그곳 나라에서도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1805년에서 1875년까지 살다간 그의 생애, 마지막은 친구의 별장에서 죽었다 하니 사랑도 하ㅣ고, 결혼도 하고, 자손도 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유난히 아름답다. 유럽의 건물 양식으로 줄지어 이어진 주상 복합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분홍색 톤의 집이 동화 속 세계 같다. 그는 저절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리라. 뉴하운 이 노천 카페를 배회하며, 저 바다와 배의 들고 낢을 보며 얼마나 큰 고뇌를 했겠는가. 영혼을 태우고, 정열을 태워 쏟은 작품들이기에 불후의 명작이 되었으리라. 그의 뜨거운 정신을 나는 품어 가리라.
덴마크의 상징 거리이며 대단한 번화가인 뉴하운 거리, 노천 카페 즐비한 600년 전통의 거리에서 안데르센을 만난 것은 덴마크 여행의 큰 보람이다.
* 아마리엔보 궁전
67세 여왕이 살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 건물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름답게 서 있다. 500억원이나 된다는 하양 색 개인 요트가 부유한 바다에 떠 있어 궁전 문에 들어서기 전 큰 관심거리였다.
왕실용인지는 모르나 2층의 저 배는 바다 크루즈용으로 자가용 개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런 생활을 한단다. 드넓은 바다와 접한 궁전은 안르로 들어갈수록 넓어지고 큰 마당과 팔각으로 건물들이 빙 둘러 있다.
네 채의 로코코 건물로 이루어진 궁전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주거니로 현재도 마르그레테(마가렛) 여왕과 그 가족이 살고 있다. 내부는 공개되지 않으며 덴마크 깃발로 유무를 표시다. 근위병이 근엄하게 서 있고, 사진도 함께 찍는다. 정오에는 교대식도 공개된다.
여왕이 남편은 프랑스인이며 두 아들이 있는데 첫째의 아내는 호주인이고, 둘째의 아내는 홍콩인이다. 한국 정서롤 이해가기 힘든 대목이다. 그래도 혈통이 이어지는가.
권한이 없고 허울만 왕이다. 상징적인 존재가 이곳의 왕이다. 1849년 절대 왕정이 무너지면서 그렇다. 무조건 첫째가 아들, 딸 구별 없이 계승한다. 집무실과 아들이 사는 집이 나란히 있다.
* 게피온 분수대
여행 오기 전 미리 한국에서 찾아 보았던 자료에서보다 훨씬 웅장하고 근엄한 명소다. 그날은 보수공사 관계로 분수를 보지 못했지만 소와 여신의 조각상만으로도, 분수가 자리한 광활한 분수대만으로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190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 황소 네 마리를 몰고 가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아마리엔보 궁전에서 약 500m 떨어진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항구가 보이는 곳에서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분수의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성공회의 교회가 곁에 있더 더욱 자랑스럽다. 비스듬한 자태로 예술가의 손에 의해 설립된 계피온 부수대는 낮은 곳에서 높은 여신상과 소상까지 아득하다. 낮은 곳에서 내려 높은 곳까지 한바퀴 돌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덴마크의 힘을 체험했다.
* 인어 공주상
궁금했다. 동화에서 만난 그녀의 슬픔이 어떻게 조각되어 있을까. 왕자를 사랑하던 용궁의 공주가 목소리와 바꾸어 사람이 되었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비련의 여인, 그래서 사람도 인어도 아닌 아픈 사랑의 조각상, 나는 그 소슬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세계 여행 중 만나는 곳 중에 썰렁한 것이 세가지 있는데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그리고 덴마크의 인어공주라고 한다. 나는 이 모두를 보았고 마지막으로 인어공주상을 만난다. 왜 썰렁한가. 나의 두 눈에는 기막힌 비경이다. 모두가 인간 내면의 그독과 사랑을 담아 쏟아낸 걸작이다.
작은 인어상으로 불리는 인어공주는 바닷가에 고족하게 앉아 있었다. 안ㅂ은 키 80Cm의 인어상은 코펜하겐의 상징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소재를 얻어 덴마크의 유명한 발레리나를 모델로 하여 조각했다. 98년 전에 맥주 회사에서 주각가에게 부탁하여 1m 62Cm의 키 작은 발레리나 여인이 발탁되어 오늘의 저 조각상이 탄생된 것이다.
나는 아슬한 바위까지 올라가 그녀를 만났다.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려 맨질맨질하다. 빠지면 바다인 해변, 그래도 맨발로 다가가 그녀와 상면했다. 성숙한 사랑이다. 완전한 사랑이다. 그런 표상으로 기억되길 함께 빌엇다.
인어공주상은 덴마크 여행 중 곳곳에서 만났다. 호텔 로비에서도, 코펜하겐 공항에서도 동일한 형상으로 사랑을 읊조리고 있다. 한 작가의 힘은 위대하며, 작가의 혼이 서린 주인공의 표상은 모든 이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위대한 정경이다.
* 로젠버그 궁전의 보석 박물관
유적이 잘 보존된 나라다. 코펜하겐은 섬의 도시인데도 가장자리에서 만나는 바다가 아니면 섬이라는 생각을 망각할 만큼 견고하고 멋진 중세 향기의 건물이 한가득이다.
아곳 사람들은 한국에서 칭하는 궁궐이나 궁전을 '성'이라고 부른다. 로젠버그 궁전도 로젠버그성이라 칭하낟. 그것도 고전적 향수다.
이 궁전은 왕의 별장으로 작지만 아담하다. 크리스티안 4세 왕과 뭉크가 사랑에 빠진 곳이기도 하며 크리스티안 4세가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왕실의 보물관으로 역대 왕들이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가방을 일체 들고 입장하지 못한다. 카메라 촬영도 금지다. 모두 진품이어서 그렇다. 지하의 방까지 진주, 상아, 다이아몬드, 금, 옥 등의 보석이 한가득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3유로를 내고 표를 사야 한다. 진정한 보존이라면 사실은 그것도 허락하면 안 될텐데 유적 앞에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변이된 것이 아닐지, 나의 생각으로는 모순으로 비쳤다.
한국의 경복궁과 같은 곳이다. 절대왕정이 무너지면서 밖에다 전시해둔 왕실의 보석들이다. 뜨락은 잔디 정원과 나무들로 싱그럽다. 첨탑의 건물이 중세 향기를 내뿜는다.
* 영국 왕립극장
버스가 잠시 멈추었다가 돌아나간 곳이다. 내리지는 않아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부분, 부분마다 조각상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금장식이 그대로 새겨져 잇고 아치형 문이 중후하다.
1850년에 지은 왕립 국립 극장이다. 코펜하게늬 도심 가운데 있어 웅장한 여러 건물들과 함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주변에는 최초의 쇼핑가가 있다. 1600년부터 열린 상가 거리다. 최초의 쇼핑가를 거닐며 덴마크의 문화를 보고, 기념품을 샀다. 비교적 영어가 잘 통하여 수월한 나라다. 특히 덴마크는 영어 표기도 판독이 쉽다. 영국의 입김으로 그런 것일까.
* 시청사 광장
외관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시계 첨탑이 하늘 닿을듯 높고 시청사 앞 광자이 아주 넓다. 사람과 차량이 많이 왕래하고 광장에는 거리의 악사도, 휴식하는 사람도 잇다.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안데르센의 동상이다. 건물 옆, 정원에 하늘을 응시하는 모자 쓴 작가가 있다. 1880년 압살라가 세웠다. '성냥팔이 소녀' 등 수많은 동화를 탄생시켜 어린이의 영혼을 익혀온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 그이 호흡을 느끼며 사람들은 줄을 서서 하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아름다운 사람은 죽음조차도 아름다워서 이토록 사랑받고 있다.
코펜하겐 시청사 광장은 유난히도 커서 매 해 신년 축하를 위해 덴마크인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곳이다. 또 1992년에는 수천 명이 모여 유럽 추구 챔피온쉽을 자축했던 곳이기도 하다. 가히 짐작된다. 안데르센 동상을 만나기 위해 광장을 가로지를 때 아득한 거리였다.
버스를 타고 주변도로를 달릴 때 본 경관은 더욱 아름다웠다. 저녁 그림자가 무겁게 내려 앉아도 주저앉지 않는 오롯한 시계 첨탑이 영롱하다.
* 안데르센 동상
배우 지망생이기도 했던 사람, 그래서 정면을 보지 않고 코믹하게 고개를 돌린 포즈일까. 모지도 비스듬하게 쓰고 묘한 자태로 앉아 있다. 그러다가 다 접고 문학에 인생의 열저을 바친 사람, 코펜하겐으로 집을 떠나 올라와서 문학에 대하여 공부하고, 유럽을 떠돌며 문학세계를 넓히고,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쓴 사람이다.
그에게도 고독은 있었으리라. 아내도 자식도 없는 독신남이었으니 그의 고독을 달래준 것은 오직 문학이 아닐까. 어찌 그리도 곱고, 순수하고, 재치잇는 동화를 썼을까. 그의 영혼을 닮고 싶어 시인인 나는 그를 보듬어 보고, 그의 품에 안겨보곤 했다.
코펜헤겐 시청사 광장 끝자락 화단 앞에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광장은 황량하도록 넓어 공허하지만 그가 자리한 곳에는 나무도, 꽃도, 잔디도 아름답게 피어 올라 향기롭다. 그가 있어 코펜하겐 시청사 광장이 빛나고 있다.
* 티볼리 공원의 바베큐 석식
호텔에 여장을 풀고 걸어서 갔다. 피곤하지만 코펜하겐의 도심 도심 한자락을 밟고 가는 기분이 흐뭇했다. 횡단보도도 건너 보고, 조각공원도 지나고, 티볼리 공원에 이르렀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공원은 중앙역 건너 편에 잇는 유원다. 1843년에 개장된 이래 시설물 및 건축물의 변경으로 오픈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각종 놀이 기구와 위락시설, 야외 음악당, 판토마임 극장 등이 있어 여러 문하 공연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그곳에 입장했을 때 음악 연주를 하고 잇었다. 우람한 나무들이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나무 위 높이 매단 등불이 아름답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구경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바베큐 석식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모두 고기를 굽거나 요리하여 풍성하게 뷔페로 차려놓은 식단은 그 어떤 식단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고급 메뉴였다. 또한 악사들ㄹ이 테이블마다 돌며 연주해 주는 모습도 아름답다.
식사 후 각자 호텔로 가라 한다. 구경할 만큼 하고 알아서 가란다. 극장에서 조금 구경하고, 낙농업 국가 상징의 소 동상과 놀고, 우거진 공원을 거닐다가 호텔로 갔다. 덴마크 여행의 마지막 아름다운 장식이다.
2007년 8월 8일 수요일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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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칸딕 코펜하겐 호텔
코펜하겐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호텔이다. 어제 저녁 식사 후 티볼리 공원에서 걸어온 것이 이 호텔을 오래도록 기억시킬 것이다. 기차역, 항공 사무실, 은행 등 아름다운 자태의 빌딩 숲, 코펜하겐 도심 거리가 에워싸고 있어 고전과 현대의 향기가 드리워 있다.
더 큰 아름다움은 내가 머문 9층 룸에서 본 외경이다. 거대한 호수가 눈 앞에 가득 단기고, 나무와 분수, 중후한 코펜하겐 시가지가 나의 감성을 출렁이게 한다. 창가에 걸터 앉아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오늘은 러시아로 떠난다.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했다. 호텔 뷔페에서 끓여준 된장국은 구수하다. 동양 여행객을 위한 배려까지, 그리고 풍성한 메뉴, 식단의 고급스런 음식 등은 덴마크의 고운 이별 앞에서 깊은 정을 선사한다.
호텔 로비 중앙에 잇는 인어 공주상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애련한 여인으로 시선을 흡입히낟. 금빛 알몸의 동화 속 주인공, 안데르센의 향기가, 사랑에 대한 엄숙한 관념이 숙연하다. 사람도, 물고기도 되지 못한 상체는 사람, 하체는 물고기 정지된 그리움을 물고 오가는 객의 가슴을 적신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고 떠나 왔다.
* 러시아 여행시 주의사항
여행하기 힘든 나라라고 강조한다. 원래 이나라 시스템이 그런데다가, 영국에서 물폭탄 기내 시고 후 더욱 까다로워졌다. 러시아 공항의 행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러시아에서 찾는 가방은 모두 잠가야 한다. 다 뒤져서 귀중품, 카메라, 화장품 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나라 공항 직원들이 그렇게 하며 '나는 모른다'고 모두 책임을 회피한단다.
국제선, 국내선을 불문하고 수하물 벨트에서 늦게 나올 때는 내부에서 검색원의 검은 손이 작용하는 것이라 하니 어이가 없다. 가방에 표식으로 묶어 놓은 손수건까지 빼간다고. 잠가도 때로는 가방을 찢어 뒤진다고. 그래서 귀중품은 부치는 대형가방에 절대 넣으면 안 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단속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다민종국가라서 외국인 채용이 많아 일일이 단속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해하자고 나를 수없이 달랬다. 불의 앞에서 화가 나지만 이제 겨우 밝은 세상에 발돋움하는 나라가 아닌가. 국제적 매너를 더 배우면 개선되리라.
*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출발
면세점이 많고 잘 진열되어 있다. 휘황하다. 작은 나라의 공항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탑승 게이트 주변에는 낙농업 국가의 상징인 젖소가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서 있다. 등 위에는 나무를 싣고 안내문과 함께 커다란 동상이 사랑받고 있다.
원래는 오전 10시 20분 비행기였는데 11시 15분으로 연착되어 많은 시간 동안 코펜하겐 공항에 머물러 있어 자세히 둘러보았다. 깨끗하고 현대적 감각이 물씬 나는 공항이다. 게이트 05번에서 이륙했다.
덴마크는 산이 없다. 제일 높은 산이 160m, 그래서 자전거 타는 문화가 발달했다. 덴마크의 붉은 기와지붕 물결이 장관이다. 산이 없는 평원, 외곽에는 반듯반듯한 경작지가 보인다.
땅이 보이는 것도 잠시, 11시 40분경 발트해로 진입한다. 긴 해변과 바다가 비경이다. 우리 가족은 17A, 17B, 17C, 나는 창가에 앉아 행복한 항로 여행을 즐긴다. 이 바다를 건너면 스웨덴 영토를 지나 모스크바로 간다. 2시간 40분 소요된다.
SAS 항공이다. 스칸디나비아 연합 비행기다. 기내식이 없어 호텔에서 싸 준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물도, 차 한잔도 모두 개인 돈을 내고 사 먹어야 되는 시스템이다.
이제 덴마크와는 완전한 이별이다. 서서히 영토를 벗어나고 있다. 유틀란트 반도 국가, 독일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북유럽에서도 서유럽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나라, 파괴되지 않은 중세 유럽 건물들이 즐비한 나라, 100년 이상된 아파트가 많고 조각상이 건물의 벽에 장식되어 있어 고전을 노래하던 풍경이 뇌리에 잔잔히 저장된다. 북극 먼 나라에서 고아한 평화와 행복을 담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