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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백서
紅東白西
이 어 령
또 다투셨나보다. 요 며칠째 아버지는 경로당 발길을 끊으시고는 방 안에서 왼종일 신문만 읽고 계시다. 읽는다고 하기보다는 제니의 루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는지 모른다. 점장이가 손금을 들여다보듯이,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화경으로 종이 태우기 놀이를 하고 있듯이, 아버지는 제니가 드린 대형 루페를 손에 드시고 이 글자 저 글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경로당 노인들과 말다툼을 하셨다면 그건 바로 제니의 루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돋보기를 써도 신문의 큰 글씨를 볼 수 없다고 하시기에 언뜻 제니가 학생 시절 필드워크 때 쓰던 3.5인치짜리 대형 루페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것은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특수조명 장치가 되어 있는 서독 슈피겔 제 전문가용이었다. 아버지는 그 물건이 제니의 것이라고 하자 혼잣말처럼,
“그럼 이것도 순미제겠구나.”
라고 하시더니 곧장 그 루페를 들고는 밖으로 나가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제니가 쓰고 있는 것이면 모두가 미국 것이라고 생각하셨으며 같은 미제라고 해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이거나 도깨비시장에서 살 수 있는 밀수품과는 다른 것이라고 믿으셨다. 아버지는 그래도 순미제라고 부르셨다. 제니가 한국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처음 뵈올 때 선물로 드렸던 말보로 담배 한 보루를 받아드시고는,
“미국에서 가져온 거냐? 그럼 순미제 담배로구나.”
라고 하신 것이 그 시초였다. 같은 미제 담배라도 피엑스에서 흘러나온 양담배와는 다른 물건이라고 믿으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 뒤에도 서양 며느리가 드리는 것이면 모두 다 순미제라는 말을 쓰셨다. 조금씩 노인성 치매증이 생겨나시면서부터 이 ‘순미제’의 고집은 더욱 심해지셔서 급기야는 경로당의 언쟁거리로 번지고 만 것이었다.
제니의 루페를 들고 나가신 뒤 경로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그 광경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 이래도 순미제가 아니란 말여? 이런 거 봤냐, 오가야?”
“아니, 그건 뭐 화경 아냐?”
“화경? 무식한 놈 보게. 야, 이게 뭐 쌈지 담배 불 붙이는 화경으로 보이냐? 미국 사람들이 쓰는 루빼란 거다. 까막눈이라지만 눈 부비고 좀 봐라. 여기 어디 한자가 섞여 있냐, 한글이 섞여 있냐?”
“그래, 미제면 미제지 순미제는 다 뭐냐?”
“자, 이래도 이게 순미제가 아니란 말여!”
루페의 일류미네이션 버튼을 누르면서 불 켜진 렌즈를 오가의 눈에 갖다 댄다. 눈이 부셔서 찌푸리긴 하면서도 흰자위에 독기를 담은 오달수 영감의 눈이 제니의 루페 위로 어안 렌즈로 찍은 사진처럼 부풀어 오른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오달수 영감을 미워하셨다. 엣날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잠깐 무슨 도의원인가를 했다는 경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들이 무슨 오퍼상을 차렸다던가 해서 경로당에 모이는 노인들 중에서 이따금 양담배를 들고나오는 것은 오영감밖에는 없다. 아버지는 그게 한남동에서 흘러나오는 피엑스 담배로 제니가 선물로 드린 그 담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이를테면 순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오영감이 피우는 담배는 범칙물로 요즈음 한창 심한 그 양담배 단속에 걸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은연중 오영감을 협박하고 동시에 미국 시민인 당신의 서양 며느리는 박대통령이라도 어쩔 수 없는 치외법권적 위력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결국은 제니가 이삿짐에 넣어가지고 온 미국 물건들이 장기판을 두드리고 재떨이를 던지는 방아쇠 구실을 하게 된 셈이다. 미국은 이제 육이오 전쟁 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미국 사람들이라 해도 텔레비전하며 자동차며 일제를 많이 쓰게 되었다는 것과 우리도 미국에 수출을 하려고 많은 공장을 짓기 시작하였다는 설명을 드려 보았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순미국제 신앙을 한 치도 굽히려 들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니의 슈피겔 루페를 아버지에게 드린 것은 여러 가지로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경로당 싸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사실 그 루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결혼반지 못지 않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기념물이랄 수가 있다.
내가 제니를 처음 만나던 날, 그녀는 바로 그 슈피겔 루페를 목에 걸고 있었다. 보통 여학생일 경우에는 그 자리에 히피들의 수제품인 인디언 풍펜던트 같은 게 걸려 있었을 것이다. 제니가 문화인류학의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루페를 목에 걸고 나타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더구나 제니와 만나기로 한 아스트로 광장은 젊은이들이 전위적인 옷차림을 하고 모여드는 곳이라서 제니는 더욱 장터에 끌려나온 시골닭처럼 보였다.
“점을 치려고?……”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녀의 루페를 보며 나는 농담을 했다.
“그래, 점을 봐 주지. 그 대가로 내 질문에 대답해야 돼.”
제니는 보기보다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어떤 점인데? 그리고 무슨 질문?”
“인디언 점. 손금을 보는 거지.”
제니는 정말 루페를 손에 잡고는 내 손금을 보기 시작했다. 따뜻한 손이었다. 서양 애 치고는 몸집도 손도 작아 보였다. 그러나 제니가 내 손을 자기 무릎으로 끌면서 얼굴을 내 가슴 가까이 기울일 때에는 고향 보리밭 냄새 같은 것을 맡을 수 있었다. 반짝이는 불똥이 튀었지만 역시 노란 솜털이 많은 목덜미를 보자 금시 냉기가 스쳤다.
“슬폰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국 서른이 넘어서 성공하게 돼. 컨그래츄레이션.”
백마를 얼마나 탔는가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아트 스쿨을 다니는 미스터 오가 특히 그랬다. 나는 그런 친구들이 질색이었다. 거기에 애국심까지 섞어서 태극기를 꽃는다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메스꺼움이 일고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질문은?”
“역시 결혼에 관한 것. 한국의 결혼.”
“글쎄. 나는 결혼을 한 경험이 없어서 자신이 없는데 무엇에 관한 건데?”
“간단한 것. 난 지금 인디언의 부족에 대한 결혼제도를 리서치하고 있거든.”
“왜 꿩 대신 닭이야? 인디언과 한국인이 닮아서 날 고른 거라면 인디언 친구 하나 소개해 줄까?”
나는 제니가 한국의 결혼 풍습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한다는 것과 그 때문에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공연히 삐딱하게 굴었다. 백마 앞에서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그 태극기 꽂은 애국자와 다를 게 없는 것일까?
“아니, 인디언 자료는 충분해. 다만 말이지…….”
제니는 어느 인디언 족의 결혼 풍습에는 한국의 폐백과 아주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폐백을 드릴 때 한국에서는 신부에게 시집 식구들이 대추와 밤을 던져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상징성이 무엇인지를 아직 잘 모른다는 거였다.
아버지에게 얼마나 감사하였는가. 열 살이나 나이 터울이 지는 누나가 시집을 가던 날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으셨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함께 사는 것은 음양지도를 따르는 천리이니라. 음과 양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합해서 잘 될 수도 있고, 상극하여 패가 망신하는 수도 있느니라. 폐백을 드릴 때 대추와 밤을 던져 주는데 대추는 그 색이 붉은 것으로 양이고, 밤은 껍질을 벗기면 흰빛으로 음이니라. 대추 씨는 흙에 묻히지 않고서는 싹이 나올 수 없지만 밤은 혼자서도 움이 나오지. 대추는 남자, 밤은 여자니, 아들 딸 많이 낳으라는 이야기다. 이 음양을 잘 따라야 순리로 살게 되고 거스르면 역리로 패하고 마는 거다.
“리얼리? 대추는 정말 빨갛게 생겼니?”
“아주 빨개. 우리는 그걸 말릴 때 지붕 위에 넌단다.”
“마당이 아니고 지붕에?”
“그래 지붕에! 한국의 가을 하늘은 아주 파래. 짚으로 만든 한국의 지붕 위에 빨간 대추가 널려 있는 광경은 참 아름다워. 대추만이 아니야. 지붕 위에 박을 올리기도 하지. 여름에는 하얀 꽃이 그리고 가을이 되면 둥근 열매가 매달려. 달처럼 커다란…….”
“달? 지붕이 농장이란 말야?”
“그래. 하늘 위에 있는 농장이지. 달과 해의 농장.”
제니와 나는 웃었다. 그리고 점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둘씩이나 먹었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두엄내 나는 작은 뜰이 생각났다. 대추나무 위에 올라가 대추를 털면서 먼 곳을 보면 기차길이 보였고 산모릉이의 하얀 길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저기로 자꾸자꾸 가면 바다가 있고 바다를 넘으면 하얗고 까맣고 노란 온갖 피부색과 온갖 말과 온갖 피가 뒤섞인 사람들이 밤도 낮도 없는 거리에서 뛰고 소리치고 쓰러지고 일어나고 하품과 기지개와 주먹질과 노래와 춤과 싸읍을 하는 옥수수밭 같은 뉴욕이 있다. 키가 큰 미국이 있다.
“인 앤드 양? 그건 중국이잖아?”
“태극기 알지? 그게 인 앤드 양이야. 그건 한국 거라고 해도 돼.”
제니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고 얼굴은 홍조를 띠었다. 지붕 위에 빨간 열매가 널려 있는 나라. 지붕 위에 달같이 자라나는 하얀 박이 열리는 나라. 그리고 신부의 치마폭에 하나 가득 생명의 대추와 밤이 고이는 나라.
그 뒤 나는 제니에게 밤이면 감자를 뒤져내 먹으러 오는 은하산의 멧돼지며 호랑이가 장꾼 뒤를 쫓아오며 모래를 끼얹는다는 장수바위 고개하며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면 헤엄치는 동리 아이를 꼭 한 명씩 잡아가는 물귀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꿈꾸듯이 아련해지는 제니의 눈이 좋았다. 그리고 고향 이야기를 하고 난 뒤의 잠자리는 최음제라도 먹은 듯이 강렬한 쾌감을 주곤 하였다. 제니가 백마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푸른 대추는 조금씩 붉게 물이 들어갔고 제니의 껄끄러운 밤송이는 조용히 아람이 벌어졌다. 제니는 목에 건 루페를 벗어버렸고, 우리는 방세를 절약한다는 뜻에서도 결혼하기로 낙찰을 보았다.
“아버지는 한국의 마지막 유생이시지. 우리의 결혼을 용서해 주실 리 없어.”
“원더풀. 당신 아버지는 지금도 뿔모자를 쓰고, 긴 담뱃대로 담배를 태워?”
“그런 건 아니지만 한 번 노(no)라고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으시지.”
“그런데 미스터 박은 어떻게 독재를 하지?”
“그래. 그러니 한국에 갈 생각은 말자.”
“나는 한국에 가고 싶은데…… 빨간 대추나무가 보고 싶은 걸. 남자와 여자가 열리는 나무들 말야.”
“그야 다음에 관광을 가면 되지.”
“아버지는 왜 우리 결혼을 받아 주시지 않는 거야?”
“아버지가 아니지. 조상…….”
“할아버지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구?”
“아니 신들이 되어 버린 할아버지.”
“그런데 왜?”
“서양 며느리가 들어오면 배고프시거든.”
“서양 며느리가 밥 짓는 걸 배우면 되지…….”
“한국의 신들은 아주 외롭지. 일년에 두어 번 살아 있는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무슨 신들이 그래. 신은 더 강한 거 아냐? 신들은 몰라도 난 당신 아버지는 외롭게 해드리지 않을 거야.”
“아버지도 돌아가시면 신이 돼. 제사날을 기다리게 되지.”
“두드려 봐. 그러면 열릴지도…….”
“계란으로 바위 깨기지.”
“그럼. 너도 바위가 되는 거야.”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였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방 안에 꼿꼿이 등뼈를 세우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벼랑처럼 솟은 바위와 다를 게 없었다. 논문서 팔아 유학길을 떠나려다 들켰을 때에도 나는 어린아이처럼 종아리를 걷어올리고 매를 맞았다.
“안 된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오직 이 한 말씀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로부터 처음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평생 고집으로 괴롭힌 당신의 아내에 대한 속죄라고 여기신 모양이었다. 그런데―서양 애하고 결혼이라니―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누나가 옛날 어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설득에 나섰지만, ‘내겐 자식이 없다’라는 말씀 한 마디로 말도 못 붙이게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누나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처를 데리고 속히 귀국하거라.”
대답도 들으시기 전에 ‘그러면 끊는다’로 통화는 끊기고 말았지만 전문(電文)처럼 짧은 그 말씀 뒤에는 서양 며느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변해 있었다. 그냥 서양 며느리를 받아들인 것만이 아니었다. 순미제에 대한 신앙처럼 그렇게 마다하던 제니를 자랑으로 알고 계셨다.
“아버지 벌써 열신데요 지금 떠나셔야 해 안에 돌아올 수 있겠는데요.”
하는 수 없이 루페를 들여다보시고 계신 아버지에게 채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니가 벌써 주차장에서 차를 빼 돌려놓고 클랙슨을 울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제니가 나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있었다면 바로 빨간 대추를 너는 지붕,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늘의 작은 농장이라고 불렀던 그 마을들을 자기 발로 직접 밟아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남동 외국인 아파트로 내다보이는 한강도 이제는 추워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한식이 되었는가. 제니는 한국에 오자마자 시골 고향으로 데려다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었다.
“내 고향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아니라구.”
“자료조사를 하자는 게: 아냐. 당신이 이야기해 주던 곳을 빨리 보고 싶다는 거지.”
“겨울에는 눈 때문에 안 돼. 한식날이 오면 데려다 줄게. 어머니 산소에 성묘 갈 때 말야.”
그런데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이 생각되던 그날이 오고 만 것이다.
“너희들끼리 가거라.”
아버지는 아직도 고향 사람에게 서양 며느리를 보신 당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나보다.
“한식에 산소 일로 산지기를 보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뭣하시면 제니를 두고 갈게요.”
아버지는 제니 이야기를 꺼내자 벌떡 일어나 털모자를 쓰시며 말했다.
“아니다, 아녀. 칠성이를 봐야 한다.”
그것은 제니가 알래스카 지방으로 필드워크를 갔다가 사온 해표의 털모자였다.
“이건 아주 드문 짐승털이에요 지금은 보호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짐승 못 잡아요.”
제니는 시아버지를 즐겁게 하려고 볼펜으로 미리 써 둔 대사를 낭독조로 읽으면서 첫 상면의 선물을 드렸다. 나는 알래스카가 북극 가까이에 있는 추운 나라라는 것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함부로 짐승을 잡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생겼다는 설명을 해드렸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미국 말도 조금은 배워 두었다. 댕큐 베리 마찌지.”
그리고 제니를 보시면서 조금은 웃으셨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위해서 울었다. 우리를 받아 주셨는데, 염청공 16대 장손이 오랑캐 피가 섞여 태어나게 되는 것을 용서해 주셨는데, 나는 거꾸로 배신을 당한 것처럼 섭섭해서 울었다.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하시던 그 아버지가 그리워셔 울었다. 지금 사모관대에 뭄복을 입으신 바위 같은 아버지는 이제 이 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족보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한식인데 털모자 덥지 않으시겠어요?”
“꽃샘 추위라 머리가 시리다.”
털모자를 쓰신 몸은 만주의 독립운동가처럼 보이셨다. 고향 사람들에게 순미제를 자랑하고 싶으신 거다.
어렸을 때 기억대로 한식날은 추웠다. 박대통령이 만들었다고 자랑하시던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제니와 나는 운전대를 ˙바꾸었다. 내가 운전을 하여 곧 장수바위 고갯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머플러가 깨져 요란한 소리를 내는 59년식 구형 포드였지만 아버지는 행복하시다.
고속도로 자랑을 하시던 아버지는 운전석 옆에 앉아 있는 제니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시면서 이제는 장수바위 이야기를 꺼내신다.
“저게 장수바위여. 거기 올라가 보면 다섯 뼘이 넘는 사람 발자국 하나가 찍혀 있지.”
아버지는 내가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구구하게 옛날 장수 이야기를 하신다.
“그게 장수 발자국이여. 임란 때 왜놈들을 쳐부수고는 하늘로 올라갔지. 4백년 뒤에 다시 이 마을에 나타나 이번에는 세계를 구한다는 거지. 그 약속의 징표로 저 바위에 자기 발자국을 찍어놓고 간 건데. 그 전설대로라면 지금쯤 그 장수가 나타나야 하는 거다.”
그건 나를 들으라고 하시는 말이 아니라 제니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러나 나는 보통 때처럼 영어로 아버지의 말씀을 제니에게 통역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금 뭐라고 하셨지?”
제니가 영어로 물었다.
“응, 박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해서 이 길이 넓어졌다고 하시는군.”
나는 거짓말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벌써 장수 발자국 이야기를 제니에게 들려 주었었다. 이런 전설 때문에 제니는 나를 좋아했고, 한국을 전설의 나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장수 발자국이 있다는 큰 바위는 ‘수출입국’이라는 새마을운동 구호가 쓰인 커다란 광고판으로 가려져 있다. 제니에게 이곳이 바로 밤이면 흐랑이가 나와 사람에게 모래를 끼얹고 장수가 용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그 장수 바위 고개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몇 마일 더 가요?”
고개를 넘어서자 제니가 이번에는 한국말로 말했다. 아스팔트와 구호와 비행기의 격납고 같은 비닐 하우스들이 다닥다닥 널려 있는 내 고향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리·남·았·어·요.”
나는 대답 대신 제니의 한국말을 고쳐주었다. 그리고는 제니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아주 많이 변했네요. 다리는 새로 생겼는데. 강이 없어진 것 같네요.”
그렇다. 처음부터 강 같은 것은 없었다. 작은 냇물이 있었고, 징검다리가 다리로 변한 것뿐이다. 그러나 아내 제니에게 나는 강물에 대해서 말했었다. 조금 있으면 용이 되어 승천하게 될 백 년 묵은 이무기가 사는 늪, 그리고 홍수가 나면 거목을 뿌리채 뽑아내서 휩쓸어가는 도도한 원시적인 강물. 그 뚝이 없는 강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었다. 내 어린 시절 그 향수 속을 흐르는 냇물은 어느 지도의 강물보다도 거대한 강이었다. 허클베리 핀이 뗏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미시시피보다도 큰 강이었다.
“강이라니, 무슨 강이 있었다구 그러냐?”
이번에는 제니가 가만있지 않았다.
“허니, 강이 뭐예요? 리버의 강 말예요.”
“응, 내가 언젠가 강 이야기를 했잖아. 그게 없어졌다구.”
고향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말았다.
“그럼 여기가 당신이 말하던 심양. 당신의 고향이란 말이에요?”
제니는 새마을운동으로 모두가 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버린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슈어. 바트 어 음 메이비 어…….”
나는 말을 더듬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영어로 이야기할 때처럼 더듬거렸다.
“초가 지붕은 어디 있어요.”
제니가 한국말로 말했다.
“응, 초가집? 얘가 한국 초가집을 다 아냐?”
아버지는 제니가 나에게 물은 것을 당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기뻐하신다.
“박대통령께서 초가지붕을 전부 벗기고 기와지붕으로 바꿨다. 이젠 산 속에 들어가도 가난한 집 없게 됐지.”
제니가 말하는 그 초가지붕이란 빨간 대추, 동양의 신비한 열매가 익어가는 하늘의 작은 농장인 것이다.
미안하다 제니야. 그러나 난 거짓말을 한 게 아냐. 진짜라구. 저기 저 지붕들에 빨간 대추들이, 그리고 달덩이 같은 하얀 박이 열려 있었지. 이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구대로 옮겼다.
“그럼, 당신이 태어났다는 99칸 집은 어디야?”
이제는 신문조로 제니가 묻는다.
“헐려져버렸겠지. 저 근방이었는데.”
프론트 글라스로 새마을회관인 블록 집이 보였다.
“2백년이나 묵은 집이라고 했잖아요. 그걸 헐어요.”
“응. 박대통령 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 잖아.”
“그건 지붕이랬잖아?”
“글쎄. 다 변한 거야.”
“산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가? 아버지, 말씀해 주세요. 정말 그랬잖아요 박대통령이라고 말씀하지 마시고 옛날 제가 어렸을 때 칡 뿌리 캐러 갔던 은하산은 저보다 몇 배나 높았잖아요? 봄이 와도 산마루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잖아요? 아버지도 그러시지 않았어요. 맑은 날 저 은하산 꼭대기에 오르면 서울 남대문이 보인다구요 산 중턱에 새로 생긴 채석장을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홈쳐 보며 속으로 외쳤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돌이여. 일본 사람들은 심양 돌을 제일로 친다더라.”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제니에게 통역하지 않았다.
언제나 구름에 싸여 좀처럼 그 신비한 정상을 보여 주지 않았다고 제니에게 말했던 그 은하산은 사실 해발 2백 미터도 채 안 되는 작은 동네 뒷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응, 산 높이도…….”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제니는 웃었다.
방향을 꺾자 도폭이 좁아 차를 더 이상 몰 수가 없었다.
나는 핸들을 놓고 두 손으로 서양 사람 특유의 제스처를 흉내내며 제니에게 말했다.
“데드 엔드.”
그리고 길이 좁아서 더는 못 간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새로 만들어진 둑길은 경운기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아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길이 넓어질 거다. 칠성이 말이 새마을운동을 해서 마을길이 신작로처럼 넓어졌다고 말하더라.”
칠성이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성큼 내려앉는다.
제니는 벌써 차에서 내려 걸어갈 기세다.
“저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오 미국 차라서 차체가 워낙 낮아요. 길이 넓어도 바닥이 닿을 거예요”
아버지는 한참 동안 차에서 내리시지 않고 미적미적하신다.
“아버지는 지금 아주 실망하고 계신 거야. 순미제 자가용을 타시고 당신이 떠나온 고향 마을로 들어가시려던 기대가 무너져 버린 거지.”
“어린애 같으셔.”
“어린애라니, 천만에. 동양에서는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았지. 비단옷이 다만 자가용으로 바뀐 것뿐이야.”
아버지는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늘 섭섭해 하신다. 비밀 이야기를 하는 줄 아시고…… 제니가 애를 달래듯이 자동차에서 겨우 내려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는,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괜찮아요?”
“조심!”
시아버지에 대해 미국식 애정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여러 번 주의를 주었었다.
미련이 남으셨는지 몇 번이고 길 어귀에 세워놓은 포드를 뒤돌아보시곤 하셨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애들이 차를 다치면 어떡하” 하신다.
동네로 들어가자 우리를 마중 나온 칠성이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도 그 자동차에 대해서였다.
“저기에다 얘들 자가용을 세워 두고 왔는데 괜찮겠나? 누굴 보내서 지키라고 하지…….”
칠성이는 아버지가 가리키는 둑길 쪽은 바라다보지도 않고,
“괜찮어유.”
라고 말한다.
은하산 자드락길로 들어서자 칠성이가 앞장을 섰다. 반쯤 벗겨진 뒷머리에 언제 생긴 것인지 못 보던 혹 하나가 부스럼처럼 쭈그러져 붙어 있었다.
“자, 덤비라고. 어서 덤벼 봐.”
칠성이의 앞가슴은 바위 같았다. 여섯 명이 달려들어도 왼팔 하나로 우리를 모래밭에 메어꽂곤 했다.
“칠성이가 이번에도 황소를 끌 걸.”
동네 사람들이 늘 칠성이 편인 것은 힘만 장수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공출 독려를 하러 나온 주재소의 일본인 순사가 점박이 어머니를 사벨로 때렸을 때, 두 놈을 한꺼번에 반짝 들어올려 도랑물 속에 거꾸로 집어처넣은 것도 칠성이였다. 그래서 한동안 칠성이가 바로 장수바위 전설의 예언대로 이 세상을 구하러 나온 장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칠성이와 냇가에서 함께 멱을 감은 사람들 말로는 정말 그의 겨드랑이에 작은 비늘이 돋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내 영웅은 역사책 속에 있었던 게 아냐. 내가 등에 업혀 땀내를 맡았던 칠성이야말로 내 진짜 영응이었지. 하루는 고삐 풀린 성난 황소가 뿔로 사람을 받으려고 날뛰어 우리는 무서워서 모두 짚단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는데, 그때 누가 나타났는질 알아? 칠성이었지. 고삐가 아니었어 두 뿔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격투를 벌였던 거야. 생각해 봐. 여자처럼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한 손에 칼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홍포를 휘두르는 투우사 놀이 같은 건 정말 유치한 거야. 알몸으로 소와 사람이 부딪쳐 한 덩어리가 된 것이지. 그것이야말로 진짜 투우였지.”
“물론 발가벗은 당신의 영웅이 이겼겠지?”
제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재미있어했다.
“칠성이는 힘만 센 게 아니었지. 물고기 좀 잡아 달라고 하면, 칠성이는 텀벙 강물 속으로 들어가서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 거야. 나는 강둑에 쪼그리고 앉아서 칠성이가 들어간 강물 위를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거지. 아주 한참 동안을. 그러면 예상치도 않던 저켠 쪽 강물 위로 고래처럼 말야 물보라를 뿜으며 용수철처럼 솟아오르는 알몸뚱이가 보였지. 칠성이야. 높이 치켜든 그의 손에는 꼬리치는 물고기의 비늘이 여름 햇빛에 차돌멩이처럼 번뜩거리고 있었지. 아, 이 세상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어?”
“맨손으로?”
“그래, 칠성이는 언제나 맨손이야.”
그 옛날의 영웅 칠성이가 아닌 칠성 영감이 지금 우리 앞에서서 절룩거리며 산길을 오른다.
해진 예비군 군복을 입고 있었고, 왼팔은 풍을 맞았는지 의족처럼 흔들거린다.
“장동 나리 다른 산지기를 구하시지유. 이젠 밭뙈기를 갈 힘도 없어서 아무래도 위답(位沓)을 내놓아야 할까봐유. 이젠 미국에서 박사 도령님도 돌아오셨구유.”
“왜, 몸이 성치 않나?”
“예, 전쟁 때 다친 데가 전부 도지는구만유. 거기에 풍도 맞구유.”
다행히 제니는 나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잊은 것 같았다. 제니가 만약 그에 대해서 물었다면 더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제니, 잘 보라구. 내 영웅은 바로 저 사람이지. 강물에서 잉어를 잡아 올리구, 황소를 쓰러뜨린 나의 영웅이 지금 우리 집 산지기가 되어 길 인도를 한다. 아버지를 향해서 나리라고 부르고, 나를 보고 도령님이라고 부르는 마지막 사람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거다. 제니야.
나를 사기꾼으로 만든 그 은하산 모롱이에 어머니의 산소는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곳에 합장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로 거기에 있었다.
비닐 돗자리를 깔고 상석에 한식 차례를 잡숫기 위해 나와 제니는 서울에서 가져온 사과와 배를 올려놓는다.
“그렇게 괴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잠시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르는 빛이 번뜩였다.
“언제나 사과 같은 빨간 과일은 동쪽에 놓고…….”
아버지는 청과점 진열대처럼 한가운데 수북히 쌓아 놓은 사과를 오른쪽으로 옮겨놓으시면서 제니의 얼굴을 쳐다보셨다.
“그리고 이 배는 서쪽에 놓는 거다. 홍동백서라고 하지 않더냐?〃
아버지는 또 배를 왼켠으로 놓으시고는 제니 쪽을 흘낏 쳐다보신다.
“윗 딛 히 세이?”
제니가 묻는다.
나는 아버지가 하신 말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다.
“왜 사과는 동쪽에다 놓아야 되는 거지?”
제니는 갑자기 깨져버린 전설의 쪼가리들을 다시 주워 모으기나 하듯이 생기를 되찾아낸 목소리로 물었다.
“인 앤드 억 대추와 밤의 내 첫 강의를 기억해?”
“붉은 색 과일은 양이고, 그건 방위로 동쪽이나 남쪽에 속해 있는 거지. 그리고…….”
나는 아버지 얼굴을 훔쳐보면서 제니에게 말한다.
“아버지, 동쪽은 원래 청색이 아니에요?”
“암, 동은 목(木)이니까 청색이지.”
“그런데 왜 제상(祭床)에서는 붉은 색을 동으로 치지요?”
“푸른 과일은 안 익은 건데 어디 제상에 놓겠니?”
“서쪽은 어째서 흰색이 되지?”
제니는 꼭 5년 전 아스트로 광장에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질문을 하던 그런 투로 방위와 색의 관계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볼펜까지 꺼내들고 수첩에 메모를 적는다.
“제니가 왜 서쪽이 되느냐고 하는데요?”
“글쎄다. 오방색(五方色)이라고 해서 그렇게들 써 왔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제니에게 오방색 이야기를 하면 길어질 것 같다.
“왜 서쪽이 희냐 하면, 제니 얼굴이 희잖아 서양에서 왔으니까?”
제니는 농담을 해도 웃지 않고 문화인류학자 마가레트 미드 여사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서툰 발음으로 아버지에게 직접 묻는다.
“부쪽은 무슨 색입니까?”
“북 쪽.”
내가 제니의 발음을 고쳐 주었다.
아버지는 서양 며느리와 의사가 전달되는 것이 아주 대견하고 기쁘신 것 같았다. 눈가에 잔주름이 펴지면서 잔잔한 웃음이 번져 갔다.
“북쪽은 수(水), 검은 색이지.”
“수가 무엇입니까?”
제니가 한국말로 되물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영어로 나에게 물었다.
“하우 두 유 세이 수 인 잉글리쉬?”
“수? 워터.”
“수는 물이다.”
아버지가 한국말로 대답하셨다.
제니는 큰 소리로 웃었다.
“물이 까매요?”
아버지의 눈에는 다시 분노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이상한 빛이 번득였다.
“마음 속으로 보는 빛깔은 눈으로 보는 것하고는 다른 법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색깔이 어떻고 방향이 어떻고 봄이네 겨울이네 하지만 만물은 그게 다 이치가 있어서 움직이는 법이다. 그 법을 모르면 조상들과는 만나지 못하는 거여. 홍동백서와 마찬가지로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에다 놓아야 돼. 어동육서(魚東肉西)!”
그리고는 물고기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요새는 제상에 아무 생선이나 올리지만 정식대로 하자면 숭어래야 되는 거다. 왜 승어냐 하면 그건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강 어귀에다 알을 낳고 사니까 그러는 거다. 이승과 저승이 서로 섞이는 게 제상이 아니냐? 민물과 바닷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처럼 저승에 계신 조상님들이 승어처럼 이승으로 올라오시라고 말이지.”
아버지의 숭어 이야기를 나는 연어로 옮겨 제니에게 통역해 주었다. 멀고 먼 바다를 회유한 끝에 연어는 모천(母川)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몇 해 동안 자기가 지난 그 넓은 바닷길을 어떻게 용케 다 기억해 두었다가 자기가 태어난 고향 냇물로 찾아올 수가 있는 걸까? 그리고 그 고생을 하고 난 항해 끝에 어째서 연어들은 목숨을 걸고 알을 낳는 걸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암컷도 수컷도 힘이 다해서는 입을 벌리고 조용히 죽어 가는 수천 수만 마리의 연어 떼의 죽음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들도 죽을 때는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뷰티 풀!”
차례 상이 다 차려지자, 절을 했다.
남자는 두 번, 여자는 세 번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제니는 베리 인터리스팅, 베리 인터리스팅 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큰 절을 했다. 세 번만이라고 했는데도 다섯 번이나 한 것 같다.
홍동백서! 어머니에게 절을 하면서 속으로 새삼스럽게 동쪽과 서쪽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 사람이 당신의 며느님, 제니예요.”
“얘야, 말이 통해야 잘 왔다는 말이라도 하지.”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섞어놓는 게 아녀. 붉은 과일은 동쪽에다 놓고 흰 과일은 이렇게 서쪽에다 놓아야지…….
아버지는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 제상조차 차릴 줄 모르는 제니 일을 생각하여 하신 말씀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뜻으로 들렸다. 동쪽과 서쪽, 하얀 과일과 빨간 사과 밤과 대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제니와 나.
아버지는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시어머니 산소에 절을 하고 있는 이 이방의 며느리를 묵묵히 쳐다보고 계셨다. 아버지의 그 눈에는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이상한 빛이 숨어 있었고, 이따금 골짜기에서 몰아닥치는 꽃샘바람이 아버지의 해표 털모자를 따뜻하게 했다. 갑자기 쏴一― 하는 산사태 같은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윗스 댓?”
제니가 놀라서 영어로 외쳤다.
“놀랄 것 없어유. 우린 밤낮 듣는 소린 걸유.”
“채석장에서 나는 소린가?”
아버지가 칠성 영감의 말에 꼬리를 다신다.
“옛날하고는 장비가 달러유. 집채만한 바위를 그저 두붓모 쓸 듯이 전기톱으로 잘라내는데 아주 굉장한 힘이지유. 어디 자르기만 해유? 바위를 팥고물처럼 단숨에 빠수기도 하는디유. 지금 게 바루 바위를 으깨는 소리구만유.”
칠성이와 아버지는 소리나는 채석장 쪽을 향해서 돌아서셨다. 두 사람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쌍바위처럼 그렇게 서서 은하산 봉우리를 쳐다본다.
“윗스 댓?”
제니만이 영문을 모른 채 같은 소리를 자꾸 되풀이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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