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방에서 숨소리를 낮추어가며 참여하므로써 신앙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 성경을 5~10미리씩 두께로 따져서 읽어나갔다.
이제 기독교인으로 살아온지 19년차를 맞이하면서 질타를 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매 주일마다 당하는 황단한 일들을 겪으며 당혹함을 금할 수 없다. 마치 교회가 예수를 핑게삼은 거대한 친목계모임으로 인식되곤 한다. 예수를 핑게삼아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고, 교회내에 자기 책상과 자기 사무실을 차지한 자들은 근엄한 얼굴표정으로 주인행세에 여념이 없고, 마이크 잡은 자들과 실권을 잡은 자들과 일반성도들까지 기회만 있으면 자기자랑에 자식자랑질이 다반사이다. 청년들은 늦은 밤에 전화하여 담임목사님의 칠순잔치에 강제로 동원되어 절을 하라고 강요받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말로는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하면서 봉사근속년수 몇 십년 되었다고 모 장로는 예배시간에 강단에 나가 대표로 상을 저희들끼리 주고 받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공식선거기간 전에 출마자를 불러내어 인사를 시킨다. 예배시간에 목사님 설교만 시작되면 잠을 자고, 예배시간에 주보연구와 헌금자 명단을 꼼꼼히 살피며 딴짓을 하고, 대표기도시간이나 목사님 축도가 시작되면 일어나 돌아다니고 튀어나가도 누구도 제재하거나 주의를 주지않는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어서 탈출하라고 외치는 수준에서 이제는 침몰하는 배에 같혀서 유리창 너머로 살려달라고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치며,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 유리창을 깨야하는 심정이다. 고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인 옥성호씨의 글을 읽었다. 지금의 망가져가는 사랑의 교회를 이끄는 큰 힘은 바로 아무 생각이 없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중립적 위치를 지킨다는 대다수 성도들인데, 내 뜻과는 다르게 중립적 (혹은 회색적) 처신이 얼마나 양의 탈을 쓴 이리들에게 이용당하기 좋은 것인지에 관한 글이었다.
참으로 공감하는 내용이었으며, 교회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중립적인 성도들의 각 유형을 내 의견을 첨가하여 정리해보면
-주변이 아무리 역겨워도 내가 빠지면 성가대가 어려운데, 내가 없어지면 다른 분들이 상처받을텐데 염려하며, 내가 맡은 교회내 사역만큼은 감당해야지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부류
-내 일가친척들까지 온 집안이 모두 지켜온 교회인데 어떻게 떠나는가 하는 부류.
-자녀의 신양교육을 위해, 아직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마음에 안들어도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를 기다리는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
-내가 부조한 성도의 경조사에 비해서, 아직 내가 받아야 할 큰 일들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막내 결혼까지 시키고 나면 달리 생각해보려는 부류
-"사람보고 교회다니냐, 하나님 보고 다니지'하고 하면서 자기합리화에 빠져있는 부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은 교회 안,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예배당에만 있는줄 착각하는 부류이다.
물론 사람들을 의식하며 의지하지도 않지만, 교회는 부족한 성도들이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위해 모여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중보하며 함께 예배하는 곳이다. 그런데 교회에 위로는 커녕 착취만 있고, 자기 자랑질만 있으며, 지역사회에 거륙한 영향력을 전혀 끼치지 못한다면 이 또한 달리 생각해봐야 한다.
첫댓글 내 사십년지기 죽마고우. 열정적으로 사는 한 친구의 일성.
에고 가슴아픈 현실이죠. 제가 먼저 깨어 기도하고 바로 살아야죠~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