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옴바사( Big Wombassa)
혹 복권(福券)을 사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젊었을 때에는 ‘내 주제에 무슨 복권?’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철들어서는 ‘공짜는 없다!’는 생각에 복권을 사 본 일이 없습니다. 복권이란 무엇인가요? 번호를 기입하거나 특정 표시를 하여 판매한 뒤, 제비를 뽑아 미리 정한 당첨조건에 맞을 때 표의 값보다 훨씬 많은 해당 상금을 주는 일정한 규격의 표찰이지요.
복권의 기원을 살펴보면, 우선 구약성서에는 제비뽑기에 의한 재산 분배 기록이 있고, 또 로마의 네로나 아우구스투스가 재산이나 노예를 나누어 주기 위해 복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복권제도는 16세기부터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광범위한 복권 활용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금에 비해 보다 손쉬운 재원조달 수단이 되었으므로, 복권은 정부가 통제하기에도 편리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복권제도는 18세기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퀘이커나 청교도들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주요대학들이 건물 건립 등 재원확보수단으로 복권을 널리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재의 형태와 같은 복권은 193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지방에서 발행한 피렌체복권이 시초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통 혹은 상자 속에 각 계원의 이름이나 번호를 기입한 알을 넣은 뒤 그 통을 돌려 나오는 알에 따라 당첨을 결정하는 산통계(算筒契)의 일종으로, 당첨자가 계회(契會) 당시의 계전(契錢) 총액을 취득하고 그 뒤에는 불입책임을 면제받는 작백계(作百契) 또는 작파계(作罷契)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복권당첨자들은 그 천문학적인 당첨금으로 행복했을까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행복입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 할 것 같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재벌이 자살을 하고 잘나가던 인기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최고의 권력과 명예를 가졌던 사람도 괴로워하며 세상과 단절을 하고 삽니다.
최근에는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돼 13억을 거머쥔 청년이 4년 만에 술집 카지노 등을 전전하며 다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됐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결국 그는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절도 행각을 벌이다가 쇠고랑을 차고 전과자란 불명예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빅 옴바사(Big Wombassa)’라는 말이 있습니다. 빅 옴바사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과거에 기대했던 것을 실제로는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빅 옴바사 문제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체험하게 되는 결과들을 비교해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2년 미국의 잭 휘태커(Jack Whittaker)는 역사상 최고액의 파워볼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그의 당첨 금액은 무려 3000억 원이 넘었으며 결과적으로 세금을 제외하고도 10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부유한 건설업자였던 휘태커는 당첨금의 10%를 교회에 기부하는 등 자선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휘태커에게 찾아왔던 행운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흥청망청 돈을 썼으며 몇몇 불미스러운 사건에도 연루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지요. 복권에 당첨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두 번이나 음주운전으로 체포됐으며 결국 재활시설에 수용되기까지 했습니다. 또 술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체포되기도 하고 카지노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이후 그는 무려 460건에 달하는 소송에 연루됐으며 분실과 도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5년 만에 그는 사실상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이후에 치르게 된 비극 중에서도 가장 슬픈 것은 당첨 후 2년이 지났을 때, 사랑하는 손녀가 마약에 찌든 몸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사건이었지요. 나중에 휘태커는 ABC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은 복권에 당첨된 것을 후회하고 있으며 그 일은 자신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복권에 당첨된 이들이 언제나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캐나다의 피터 더숍(Peter Dushop)은 2007년 복권에 당첨되어 약 36억 원의 당첨금을 수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당첨금을 거의 1년 동안 찾지 않고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기간 중에 그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자신과 어머니뿐이었고 심지어 여자 친구에게까지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갑작스럽게 굴러 들어온 거금 때문에 일어나게 될 생활 변화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할 여유를 갖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그는 복권에 당첨된 후에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으며 새 차 혹은 새 집을 구입하는 일 없이 월세 집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복권 당첨금에 대한 유효기간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이 되자 비로소 당첨금을 인출했지요. 더숍은 자신에게 닥치게 될 변화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미리 실감나게 느끼고 난 후에야 비로소 당첨금을 찾았으며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당첨금을 쓰고 싶은 욕구를 오랫동안 억제했던 것입니다.
휘태커와 더숍 일화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 부(富)가 행복을 선사해 주는 반면에 또 왜 다른 이에게는 불행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복권에 당첨될 경우, 막대한 부를 거머쥐더라도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정서적인 예측 능력의 수준에 따라 삶의 만족도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공짜로 굴러들어온 행운은 곧 재앙(災殃)입니다. 세상만사를 다 뜻대로 만족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천만년 영화를 누리려는 사람과 같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십 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낍니다. 또한 십분(十分)이 다 뜻에 맞을지라도 그 만족한 일을 혼자 차지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나누어 즐깁니다.
그래서 복이 굴러 들어와도 재앙을 당하지 않을뿐더러 복이 항상 무궁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공짜로 얻은 복이 있으면 나누어 써야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빅 옴바사’ 정서를 충분히 느끼는 좋은 감정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