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휠체어를 타고 뇌운계곡을 따라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휠체어를 타기에는 너무 가팔라서, 뇌운계곡 입구에 있는 한 캠핑장까지 차로 갔다. 거기다 차를 세워두고 근 20킬로 정도를 왕복한 것이다.
주행이 끝난 후 차를 찾기 위해 캠핑장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서 막 캠핑장에 가족과 함께 도착하여 짐을 풀고 있는 한 초로의 신사를 만났다. 애초엔 한국에서 워낙 보기 드문 보조동력장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였는데, 그 양반의 정중한 태도에 감동한 나는 점점더 화제가 다양해지면서 근 30분 이상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양반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독일은 선생님 같은 입장에선 더 살기 괜찮지 않나요?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신 이유가 뭘까요?"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다 보니 내 직업이며, 독일에서 일한 것이 교회였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교회의 상황까지 간략하게 포함이 되었다.
어쨌든, 비교적 길게 나의 소회가 풀려 나왔는데, 그 마무리의 내용이 대강 이런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독일의 환경은 저 같은 장애인에겐 한국보다 나은 것이 사실입니다. 실은 그런 독일에 남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아내나 주변의 지인들의 권유도 그랬어요. 하지만, 저는 유학을 시작하면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나의 유학으로 비롯된 해외 체류가 한국에 사는 다른 분들에 비해 특혜에 가깝다는 생각을 잊는 적이 없었어요. 이런 생각은 제 삶이 절대적으로 저를 도운 이들의 사랑 때문이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더 강했는지도 몰라요. 그러니, 제가 할 일을 다한 마당에 굳이 저 자신의 편함을 위해 독일에서 여생을 보낼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이런 상황과 판단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고국에서 IMF 사태로 온나라가 수라장이 되었을 때, 친애하는 선배 선교사님으로부터 받은 전화를 잊지 못한다. IMF 사태로 인해 해외에 나간 유학생, 선교사 등은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환율이 이전에 비해 두세 배로 뛰었을 뿐만 아니라 송금 자체도 중단되어 두어 달 동안은 전혀 수입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선교사 선배의 전화를 받고 사정을 들어보니, 미국의 한인교회들이 이런 궁지에 몰린 선교사들을 염려한 끝에 세계 각지의 한인 선교사들을 모아 그들의 사정을 듣고, 그들의 사정이 일단 진정세로 돌아설 때까지만이라도 조금씩 돕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해주던 끝에 그 분이 이렇게 말했다. "홍 목사, 우리는 이제 약간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을 거 같애.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하지? 염려가 되어 전화했어..." 나는 대답했다. "어떻게 되겠죠 머. 형님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어서 고맙네요..."
내 소회는, 그로부터 며칠 후 우리집에서 몇 명의 후배를 만난 자리에서 더 길어졌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교사들은 이 나라 저 교회... 에서 염려의 대상이 되었고, 어떻게든 돕는 손길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내가 믿기로, 목사든 선교사든 유학생이든 동등한 동역자라고 믿어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학문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은 오로지 아르바이트와 가족의 도움으로 지금의 시간을 견디는데,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러 왔다고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좀더 부연하자면, 선교사는 염려하면서 유학생은 그러지 않는 것은 냉정히 말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해 우리를 앞서간 선배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의 자리에 섰을 때 그들이 한결같이 후학과 후배를 염려하고 격려하는 공적인 태도를 조금이라도 보여 주었을까? 그러지 않으니까, 교인들도 대부분 '아, 유학이라는 게 결국은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가는구나'하는 인식을 심어준 거 아닌가 싶다는 거요. '아니, 지 개인이 더 잘되자고 공부하러 갔는데 우리가 지금 그들을 위해 염려하고 도울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 누가 우리를 도와줄까 찾기 전에 우리가 과연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공부하고 있을까부터 진지하게 돌아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비단 목회자만은 아니지만,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누군가의 사랑의 빚을 지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 부채는, 소위 배우고 가진 사람일 수록 더 크다. 그러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당연한듯이 누리기만 한다면 그 태도에서 도덕적 우위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말의 권위도 존중받지 못하며,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내 생각일 뿐이고, 나와 다른 환경과 사정 때문에 다른 결정을 내린 이들과 나를 비교할 마음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오늘의 내가 형성된 과정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나 외의 어느 누군가의 도움으로 인해 가능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가진 것에 공적 의무를 지우는 첩경임을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